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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29호]실천, 연대로 얻은 용기 - <또 하나의 약속> 윤기호 PD 인터뷰



가끔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에게 비결을 물으면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건데 ….”라는 허무한 말로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윤기호 PD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자신을 스스로 ‘쓰레기’라고 칭할 만큼 유흥을 즐긴다는 그가 타인을 위한 일에 용기를 내 실천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인터뷰 및 편집 김하늘 기자



윤기호 프로듀서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제작사의 공동대표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던 스무 살 딸을 가슴에 묻은 속초의 평범한 택시운전 기사가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생을 건 재판을 벌인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여긴 재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직업병 승소판정을 받아 전세계가 먼저 주목한 기적의 실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30여년간 속초에서 택시운전 밖에 몰랐던 소박한 아버지가 인생을 건 재판에 뛰어든 지 6년 만에 2011년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 14부에서는 “백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황유미씨의 산업재해를 처음으로 인정하였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판결로서 평범한 아버지가 이뤄낸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IBM에도 직업성 암,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있었고 당시 IBM은 노동자 수백 명에게 개인적으로 합의서를 써주고 보상했다. 다만, 합의 내용을 비밀에 부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산재법이 갖춰진 나라가 많지 않았기에 법원을 통해 직업병이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고(故) 황유미의 판결은 국내에서도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판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약속>은 다큐멘터리나 사회고발영화가 아니다. 평범한 가족이 슬픔을 겪고 거대 기업과 맞서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또 하나의 약속>이 감동적인 이유는 세상을 떠난 딸과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각종 유혹과 협박에 굴하지 않는 아버지의 뜨거운 진심 때문이다.

고(故) 황유미의 산재인정 판결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로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2014년 1월 현재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접수된 피해자는 151명에 이르며, 그 중 58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Q. 최근에 좋은 소식이 들리더군요. 7년 넘게 계속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백혈병 산업재해 보상을 요구했던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삼성전자 측에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대표단을 구성해 ‘반올림’ 측과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이런 변화의 움직임을 더욱 가속시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게 바로 언론도 해낼 수 없는 영화만의 힘이 아닐까요. 소감이 어떠신지요?

A. 5월 15일에 황상기 아버님 1차 공판이 있었어요. 저도 황상기 아버님, ‘반올림’ 여러분들, 김태윤 감독과 함께 서울고등법원에 다녀왔는데요. ‘반올림’ 측 변호사와 이야기를 해봐도 이번 삼성전자의 사과문에는 사과문의 전형적인 형식들이 존재하고, 이렇게 정식으로 나서서 사과한 사실은 분명 환영할만하다더군요. 아마 반올림 측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존재하지만, 삼성의 변화에 대해서는 환영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보냈을 겁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영화가 이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를 생각해보면, 사실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황상기 아버님과 반올림, 노무사님들이 그 자리를 계속 지켜왔기 때문이잖아요. 그 모습을 보고 저희 같은 일반 영화인들이 그 이야기에 감화되어 동참했던 것처럼, 관객들이 이 영화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으로 함께 같은 고민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 삼성 측에서도 이 부분을 고려하게 만들수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상기 아버님도, 저희 ‘제작두레’ 회원들도 관객분들이 관심 가져주신 점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작은 기적, 조그만 성취감을 함께 했던 1만여 명의 관객들이 가져갈 수 있다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영화 제목이 <또 하나의 약속>인 이유가 있나요? ‘약속’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김태윤 감독이 처음 대본을 썼을 때 제목은 <꿈의 공장>이었어요. 영화 시작하는 장면을 보면 직원들이 모두 회사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 버스가 바로 ‘꿈의 공장’인 거죠. 공장에 다니면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겠다는 꿈을 가진, 사회에 처음 진출한 친구들이 바로 그 공장으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꿈의 공장>이라는 제목이 역설적으로 참 잘 어울린다 싶었어요. 그런데 제작단계에서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있기에 대안으로 생각해낸 것이 <또 하나의 가족>이었어요. 그런데 결국 이 제목도 바꾸게 되었죠. 그 이유는 극장 개봉 할 때 ‘가족’이라는 어감이 극장매니저에게 부담이 된다는 거였죠.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하면 상부에서 뭐라고 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요. 외압이 아니라 내압이 작용하는 거죠. 안 그래도 어려움이 많을 텐데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생각한 제목이 <또 하나의 약속>입니다. ‘가족’에서 바뀌더라도 그 의미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제목이 뭘까를 상당히 오랜 시간 고민해서 나온 제목이에요. 또 저희가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황상기 아버님과의 약속 때문이거든요. 아버님이 제게 부탁하신 단 한 가지가 바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거 하나였어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달려온 거니까 ‘약속’이라는 단어가 의미 있게 느껴졌어요.

또 다른 이유는 영화의 확장성에 대한 거였죠.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들 때 아는 사람들끼리만 본다면 이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하는 고민이요. 이 이야기는 작업장에서 피해를 받은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이고, 결국 이것은 정규직, 비정규직 할 거 없이 모든 노동자들의 이야기잖아요. 그렇다면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fms 생각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영화를 통해 정답이 없을지라도 함께 고민해보는 과정에 의미를 두자는 거였어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가족’이라는 단어가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종적으로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거죠.


Q. 윤기호 PD만의 영화 철학이랄까요? 영화에 대한 생각들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세요?

A. 영화쟁이로서의 고민과, 창작자로서의 고민을 따로 분리해 말씀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일단 영화쟁이로서 말씀드리면 전 대중을 상대로 한 영화라면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에 어떤 메시지가 있더라도 그것을 주입이나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객들은 일단 영화를 즐기고 그 안의 메시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이 하는거죠. 그저 저희들은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결론은 맺지 않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들이 재미를 느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영화는 기본적으로 재미가 있어야 하고, 그 안에 드라마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켄 론치인데요. 그 감독의 영화는 그 안에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영화적 재미가 뛰어나요. 예를 들어 <빵과 장미>나 <랜드 앤 프리덤> 같은 영화를 보면 메시지도 훌륭하지만 일단 재밌는 영화라는 거죠. 그것이 영화쟁이로서 상업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거 같아요.

영화인으로서는 메시지가 좋은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액션의 끝을 보여 주겠다는 마음도 제게는 이유가 돼요. 내가 하고 싶은, 내가 끌리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페이스메이커> 같은 영화가 그런 경우예요. 세상에서 1%의 승자들, 위너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페이스를 맞춰주는 내 친구들의 이야기. 그것이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화로 만든 것이거든요. 사실 프로듀서라는 직업은 영화의 흥행을 계산해 흥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거든요. 그렇지만 그게 직업이라는 사람도 흥행여부에 대해서는 몰라요. 그럼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자, 그게 제 가장 큰 기준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Q. 세상의 1% 위너들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작년에 콘텐츠진흥원에서 하는 창의인재 멘토링 사업에 참여했던 적이 있어요. 그 때 한 작가가 제게 PD님이 관여하신 영화는 다 그런(주변사람들의 이야기) 스타일이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제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나와 같은 주변인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요. 사실 1% 사람들의 이야기는 좀 비현실적이잖아요. 사실 우리는 98%에 속하는 페이스메이커들인데. 그래도 삶의 주인공은 그런 우리들 자신 아닌가요? 그러다보니 98%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게 더 와닿고 잘 그려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요.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요. 예를 들면 영화 <혈의 누>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어떤 작품을 쓰는데 상류층의 파티를 구현해야하는 신(scene)이 필요했대요. 후에 그 친구가 쓴 글을 읽어봤는데 그 장면이 리얼리티도 전혀 없고 부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이 신은 왜 이러냐고 했더니 “몰라서.”라고 답하더라고요. 제가 만약 아주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또 그때 내가 아는 세상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겠죠.


Q. 사실 이 영화는 제작방식에서도 큰 화제가 됐었어요. ‘제작두레’가 무엇인가요?

A. 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많은 사람들과 같이 보고싶다’는 이유였는데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자본이 필요할까를 우선 고민했어요. 최소한의 퀄리티, 재미,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영화에 참여하는 스텝들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 정도의 자본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최소 예산을 잡으니 8, 9억원 정도더라고요. 이 영화를 처음 제작하려 했을 때 충무로 자본의 투자를 받기는 힘들다는 판단을 했어요. 물론 시도는 해봤고, 결국 실패했죠. 그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독지가가 거액을 투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거예요. 자본의 통로가 막혔으니 이제 어쩔 것인가를 고민하다 크라우드펀딩을 생각했죠. 선례로 <26년>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되었는데, 당시 이 방식이 제작비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크라우드펀딩은 투자가 아니거든요. 원래 미국의 ‘퀵스타터’가 모델인데 미국에서는 금액이 얼마든 거기에 대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금융다단계의 위험이 있어서 아직까지는 불법이에요. 그렇다면 크라우드펀딩으로 투자를 받으면 투자자에게 무조건 이익을 돌려줘야 하는거죠. 그래서 지금 크라우드펀딩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다 상품선구매의 방식이에요. 이 영화에 대한 투자 역시 2만원을 투자하면 시사회표 2장, 5만원을 내면 DVD를 드리는 방식으로 3억을 모았어요. 나머지 12억 정도를 더 모으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위한 ‘제작두레’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입소문의 창구로 만들었죠. 또 팟캐스트에 출연을 하거나 페이스북 등의 SNS를 통한 홍보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영화제작이 가능하게 되었어요.


Q. 많은 난관을 겪고 영화를 만드셨는데 상영관 문제로도 또 어려움을 겪으셨다고요.

A. 사실 제작과정은 차라리 편했던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스텝들은 사실 모두 A급 스텝들이 참여했어요. 그런데 그게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그들에게 대본을 줬을 때 모두들 하고 싶어 했어요. 배우도 마찬가지고요. 이 대본을 보고 오래 고민을 했던 사람은 오히려 아무도 안했어요. 처음 보자마자 하고 싶은 생각이 든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촬영과정은 힘들어도 웃으면서 견딜 수 있었죠.

그러다 2라운드에 와서는 시스템의 문제인거예요. 만드는 것 까지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용기내서 왔는데 시스템 내부로 들어온 순간 문제가 발생한 거죠. 삼성 측이 외압을 걸어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영화 전에도 <부러진 화살>이나 <남영동 1985>같은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했던 사례가 있기에 우리 영화를 못 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자본의 논리를 믿어 봤어요. 극장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니까 흥행할 수 있는 영화라면 우리 영화를 선택할 거라고요. 그런데 우리 영화보다 훨씬 더 관객이 적은 영화를 배정하면서 우리 영화는 선택하지 않는 겁니다. 자본의 논리마저 깨진 거죠. 극장 관계자 스스로가 혹시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내압으로 인해 상영관을 배정해주지 않는 거예요. 외압보다 무서운 것이 내압이더군요.


Q. 언제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난관이 불 보듯 뻔한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결심하는 데는 사회적 문제에 오랜 시간 관심을 가져 오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A. 저는 사회운동가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영화인일 뿐이에요. 저희 같이 창작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에 누군가는 소설가가 되고, 누군가는 영화인이 되겠죠. 제가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가장 끌리는 주제였던 거죠. ‘이 영화를 통해 반올림의 활동에 보탬이 되겠어!’라는 생각이 아니라 이 영화를 통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게 궁극적인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서울에 와서 막노동도 해보고, 갖가지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학생회장도 하고, 게다가 마지막 화염병 세대이다 보니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은 생기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항상 직접 나서서 행동하기보다는 관찰자로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학생회장을 할 때도 가장 힘든 것이 모범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한 가지 중요하다고 여기는 건 있죠. 저는 약자에 대한 ‘합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의 약속>도 결국 불합리한 부분을 합리로 맞춰 나가는 이야기인 것 처럼요. 이런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인내하고 고민하신 황상기 아버님이나 노무사님들의 경우는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합니다.


Q. 인생선배로서 대학원생들에게 실천을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는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A. 자신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유지하는 것도요. 사회인으로 살다보면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뀔 때가 있어요. 생활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 사회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만났을 때 이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도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속에서 결심을 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 당장은 실천하지 못한다 해도 자신을 믿으면서 생각과 고민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분명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