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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0호] 대(大)재난과 상처 받는 사회

 

 

()재난과 상처 받는 사회

 

이경엽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법성포 무속 수륙재 현장 사진 <출처: 저자 제공>

 

인간사회는 크고 작은 재난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무방비 상태의 끔찍한 재해를 피하고자 대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재해를 겪을 때마다 사회안전망과 방재시스템의 문제를 되짚어 거론하곤 한다. 그런데 이와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회적 치유에 관한 것이다. 재난으로 인해 빚어진 죽음과 상실은 제도나 시스템으로 다 채워지지 않는다. 자연재해건 인재이건 억울한 죽음은 필연코 크나큰 원한으로 남기 마련이다. 특히 최근의 세월호 참사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죽음이라면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안긴다. 이는 죽은 이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런 까닭에 그것을 풀어가기 위한 사회적 장치가 필요해진다. 이는 즉흥적인 요구사항이 아니므로 민속문화로 전승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무속수륙재가 그런 사례다.

우리의 무속[무교]에는 다양한 형태의 위령제가 있다. 서울의 진오기굿, 영남의 오구굿, 호남의 씻김굿 등 지역마다 색다른 굿들이 전승된다. 서해안지역에서 전승되는 무속수륙재는 특히 사회성이 짙은 굿이다. 무속수륙재는 대형 인명 사고에 대한 지역사회의 종교적 대응 차원에서 연행되고 전승되었다. 사례를 보면, 대부분 바다와 강, 저수지 등에서 벌어진 조난 사고, 익사 사고와 관련된 고혼(孤魂)들을 위로하기 위한 의례라는 공통점이 있다. 불교적인 명칭을 갖고 있고 사회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남다르다. 무당이 진행하므로 수륙굿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전승자들이 수륙재[]’라고 지칭하고 있으므로 그대로 따르되 불교 수륙재와 구분하기 위해 무속수륙재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무속수륙재의 사회적 성격과 연행 내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재난에 대한 사회적 대응, 무속수륙재

무속수륙재는 불교 수륙재의 명칭을 차용해 만들어진 굿이라고 추정된다. 무속수륙재의 연행 내용이나 절차는 불교 수륙재와 별로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이름을 가져 간 것은 불교 수륙재가 오랜 동안 유지해온 종교적 권위를 빌리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명칭과 권위를 빌려서 새로 전승하기 시작한 무속수륙재의 입지를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원혼을 위한 무속신앙의 전통은 다양하지만 고을 단위의 천도굿은 없으므로 그에 따른 명칭을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용과 관념은 기존의 무속의례를 지속하면서 불교식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규모 천도굿을 무당굿 방식으로 연행하는 게 익숙해지면서 수륙재라는 이름을 가진 무당굿 전승이 나름의 입지를 확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것이 전통성을 얻게 되면서, 본래의 유래와 상관없이 수륙재가 하나의 민간신앙으로 수용돼 전승된 것이라고 추정된다.

우리의 생사관에서 원혼은, 이승에서 불행한 삶을 살다가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영혼들과 관련된다. 불의의 사고로 어린 나이에 죽거나 결혼을 하지 못하는 등 일생의례를 제대로 거치지 못한 죽음, 객사나 전사수사사고사 등을 겪은 죽음, 자손으로부터 제사를 받을 수 없는 주인 없는 죽음이 원혼이 된다고 여긴다. 이들 객사귀, 자살자, 타살자, 수사자, 미혼자(몽달귀), 무후자(무자귀신) 등은 정상적인 죽음과 그 처리 과정을 거쳐 조상이 된 존재가 아니므로 흔히 잡귀라고 호칭된다. 전통적으로 무주고혼(주인없는 외로운 영혼), 맺힌 원한이 강하기 때문에 저승으로 편히 가지 못하고 이승 사람들에게 해꼬지를 한다고 하며, 공포감을 주는 두려운 존재로 간주된다. 그래서 의례에서 물려지고 퇴송되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대접하고 달래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 영혼만을 위해서 천도굿을 하겠는가. 궁극적으로는 산 사람들이 문제가 된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산 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와 상실을 안겨 주는 바,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해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진다. 위령제는 그 이름처럼 영혼을 위한 것이지만 그 제의가 이루어지는 현장은 상처입은 가족과 이웃들이 아픔을 나누고 공감하는 자리가 된다.

 

특별한 상황에 대한 지역사회 차원의 대응

우리의 민간신앙에는 고혼을 달래고 대접하는 의례가 많이 있다.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탈이 날 경우 대개 원혼과 연결해서 이해하며, 그 원혼이 현세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주기 위해 굿을 하고 헌식을 한다. 이와 같은 원혼 의례는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개인 단위의 의례뿐만 아니라 공동체의례에서도 폭넓게 나타난다.

한편 정례적인 마을굿에서 잡귀를 위한 의례를 수행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원혼만을 위한 별도의 큰 의례를 베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무속수륙재다. 잡귀를 위한 기존의 공동체의례가 있는데도 왜 수륙재를 지내는지 해명할 필요가 있다. 수륙재는 일반적인 공동체신앙과 달리 특별한 상황과 연계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상황이란 큰 규모의 인명 사고를 지칭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지역사회 차원의 종교적 대응으로 마련된 것이 수륙재라고 할 수 있다.

큰 재난 사고를 겪은 뒤 벌였던 무당굿의 사례로 가거도의 별신굿을 들 수 있다. 1968년도의 보고서에 자세히 언급된 가거도 별신굿은 134위의 무주고혼을 위한 굿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가거도의 별신굿은, 절해고도라는 환경과 빈번했던 해난 사고로 인해 불행한 죽음이 잦았던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가거도에서는 세 마을이 모여 합동으로 별신굿을 했다고 한다. 각각의 마을에서 지내는 당제와 별도로 별신굿을 성대하게 거행했던 것으로 보아, 특별한 상황에 대한 지역사회 차원의 대응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러 자료에서 언급된 무속수륙재의 전승 사례들은 대부분 특별한 재난 상황과 관련이 있다. 전북 위도의 수륙재도 대형 해난 사고에 대한 지역사회의 대응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위도는 예전 조기잡이의 중심지였는데, 조업철이 되면 수백 척 이상의 어선들이 모여 조업을 하고 수천 명의 어부와 상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태풍피해로 인해 대형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수륙재가 연행되었다. “1925년에 주민 80여명이 풍랑으로 조난을 만나 실종된 사건이 일어난 이후 고혼을 위로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수륙재를 매년 4월 초파일에 거행했다.”는 설명에서 그것을 잘 볼 수 있다. 이 수륙재는 개별 마을에서 지내던 것이 아니라 도() 수산과에서 주관했으며 지역사회 전체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위도에서는 각 마을마다 정월 초에 당제를 지내는데, 그 마지막에 용왕제와 띠뱃놀이를 하면서 잡귀를 위한 굿놀이를 펼친다. 그런데 그와 별도로 4월 초파일에 수륙재를 지냈다는 것을 보면, 수륙재가 재난 상황에 따른 지역사회의 대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륙재는 일회적인 행사로 그치지 않고 일정한 주기를 갖고 지속되었는데 이는 지역적 특수성과 관련 있다. 바다와의 절대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명 사고와 원혼에 대한 공동체의례는 아픈 상처와 경험을 공유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생태환경과 해난 사고의 반복, 그리고 원혼에 대한 도서해안지역 특유의 종교적 관념이 수륙재의 전통을 지속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본 대로, 무속수륙재는 대형 인명 사고에 대한 사회적 대응 차원에서 연행되고 전승되었다. 이런 점은 일반 무당굿의 범주를 새롭게 확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큰 규모로 수행되던 불교수륙재와 연결된다는 앞에서의 논의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다.

 

 

무속수륙재의 연행내용, ‘차이와 유사

무속수륙재는 기존 굿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절차로 되어 있다. 그 절차에는 무당굿의 전통적인 구성 원리가 담겨 있다. 우선 진굿 / 마른굿[묵은굿]’의 구분이 잘 드러난다. 상가에서 이뤄지는 곽머리 씨끔굿이나 삼오굿의 경우 진굿에 해당하므로 조왕굿, 철륭굿, 칠성굿, 제석굿은 안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진굿은 망자의 천도를 비는 절차 중심으로 구성되며,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뒤에 하는 마른굿은 산 사람들의 복락을 축원하는 내용이 대폭 추가된다. 예를 들어, 줄포의 진시끔굿은 성주굿-조상석-해원굿-연올리기-오구물림-고풀이-소당개시끔-질닦기-중천멕이로 구성된다. 그리고 묵은 시끔굿은 조왕석, 철융석, 선영알림, 지신석, 서낭석, 칠성풀이, 손님석, 장자풀이 등이 앞부분에 추가된다. 이에 비해 마른굿은 진굿과 달리 부정을 타지 않는 상황이라고 해석되므로 진굿에서 조심스럽게 경계하는 절차들도 제약없이 연행하게 된다. 이렇게 추가된 절차들은 대부분 현세의 복락을 축원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수륙재 역시 마른굿에 해당하므로(해난 사고 직후에 하면 진굿이지만 시간이 경과한 후에 하면 마른굿이다.) 위와 같이 복을 빌고 재수를 비는 절차 위주로 구성된다.

한편 수륙재가 묵은(마른) 씨끔굿과 유사한 굿거리를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굿의 목적이 다른 만큼 똑같을 수는 없다. (1)도량청정, (3)용왕굿, (10)배연신굿은 씨끔굿에는 없는 절차다. 수륙재에는 배를 부리며 고기잡이 하는 선주들이 많이 참여하므로 이 굿거리들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1)씨끔굿과 (12)길닦음에서 여러 무녀가 여러 집의 씨끔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수륙재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잡귀들을 풀어 먹이는 (14)중천멕이는 수륙재의 핵심 절차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씨끔굿에도 중천멕이가 있지만 수륙재에서 의미를 더 강조한다. 이와 같이 수륙재에서는, 용왕신을 청배하고 어로 안전을 빌고 풍어를 축원하는 용왕굿, 배연신굿과 망자의 원한을 씻겨주는 씨끔굿, 그리고 원혼들을 대접하는 중천맥이가 특히 중시된다. 흔히 호남지역에서는 씨끔굿이 대표적이고 큰굿이라고 말하는데, 수륙재는 그보다 더 많은 굿거리로 구성돼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수륙재는 호남지역 무당굿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한 짜임새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굿의 상황성과 현장성

굿은 굿판 특유의 상황성과 현장성이 반영되면서 새로워지기 마련이다. 무속수륙재도 마찬가지여서 굿을 하는 무당들은 현장의 분위기와 수요를 감안해서 여러 가지 내용을 새로 추가한다. 그 내용들은 대부분 살아있는 사람들의 축원과 관련된 것이다. 크나큰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치유할 수 있도록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축원들이 담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과 인간이 어우러지고, 사람들이 서로 교감하고 굿을 신명나게 즐길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이와 같이 굿이 필요한 이유를 굿 구성에 반영하고, 현장성 있는 축원을 확대해가고 그것을 매개로 사람들이 신명을 공유한다. 이런 점이 무속수륙재가 살아 있는 굿으로 전승돼온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무속수륙재는 대형 인명 사고에 대한 사회적 대응 차원에서 수행하던 굿이다. 기존의 연례적인 마을굿에 원혼을 위한 의례가 있음에도 이들을 위해 별도의 의례를 성대하게 베푸는 것은 특별 상황에 대한 지역 공동체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서다. 복수의 마을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섬 전체나 면 단위에서 수행하고, 어떤 경우 관련 기관에서 주관했다는 사실을 통해 무속수륙재의 사회적 성격을 가늠해볼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무속수륙재는 사회성이 짙은 굿이므로 현실적인 수요와 연결되기 마련이다. 재난을 겪은 후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 그에 걸맞는 문화적인 장치로 수륙재를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물으면 대답이 궁색해진다. 본질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막고자 정치적으로 왜곡하고 그에 따라 굴곡이 더 깊어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것을 풀어가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도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 속에서 이어져 오던 무속수륙재의 의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산부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아이 낳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무주고혼의 한을 풀어주는 중천맥이는 다양한 사연의 원혼들이 등장한다.(출처:저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