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06.22 15:23

 한․중 인문교류의 정치학 

– 한국의 시각에서


                        전인갑_ 사학과 교수

             

중국의 부상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문제제기는 현 시점에서 매우 시의성 있고 중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이미 G2로 인정되고 있는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 사회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 동안 비약적 성장의 기반이 되었던 정치, 경제, 군사 등 제방 면에서의 미국의 우산에 의존하면서 미국과의 가치 동맹을 견고하게 지속할 것인가 혹은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미국과의 기존의 관계를 조정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봉착해 있다. 대중 관계를 강화한다면 그리고 대미관계를 조정한다면 어떠한 수준에서 어떠한 전략과 방법으로 이를 구체화할 것인가도 많은 사회적 갈등과 국제정치적 리스크를 수반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직면하게 된 ‘곤혹’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기획하는데 있어 반드시 해소해야 할 핵심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이미 ‘신흥대국론’을 외교정책의 기본이론으로 제시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 질서 속의 주도자를 넘어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의 편성 주체가 될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에 앞서 G2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취임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회의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중국의 꿈(中國夢)이라고 강조했다. 굴곡의 중국 근현대사 전개를 생각할 때,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이처럼 강한 어조로 ‘강한 중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는 ‘신흥대국’으로서 굴욕의 시대를 청산하고 과거의 중화제국을 연상케 하는 ‘강한 중국’의 국격을 세계에 선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그는 “중국의 꿈은 반드시 중국의 길(中國道路)을 걸으며, 중국의 정신(中國精神)을 선양하고, 중국의 힘(中國力量)을 결집하여 실현해야 한다”고 하며 중국몽 실현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 방법은 한마디로 Global Standard가 아닌 중국 고유의 표준에 근거하여 대국의 내실을 확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과 다름없다. 


변동하고 있는 동아시아 질서


우리는 이를 보면서 ‘지역제국’ 중국의 등장을 읽는다. ‘신흥대국’ 중국의 등장은 명확하다. 여기서 동아시아가 새로운 세계질서의 또 다른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음과 동아시아 지역질서가 향후 중국 중심으로 재구축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의 변화에 대응하여 한국은 중국에 대해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변화하는 지역질서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말하자면 중국을 전략적으로 재정의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부과된 이러한 과제의 심층에는 19세기 후반 이후 형성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동하고 있는 흐름이 존재한다. 보편문명을 자부했던 중화제국의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가 붕괴한 이후 150여 년에 걸쳐 형성되었던 동아시아 질서가 최근 근본적으로 변동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중국 대 미․일 대립의 구조가 정착해 가고 있고, 경제적 성취를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 각국 간의 헤게모니 경쟁 역시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동이 야기한 불안정성이 역사인식 문제와 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


이러한 변동의 중심에는 중국의 ‘지역제국화’가 자리 잡고 있다. 냉전시대라는 짧은 시기 동안 한국은 중국과 거의 무관하게 살아왔으나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지구적 차원에서 제국적 기획을 시도하거나 그럴 만한 능력을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아시아에서 지역제국으로서의 중국의 위상은 확고하다. 또한 우리를 포함한 중국의 이웃 국가들은 지역제국 중국이 만들어 낸 회오리 속으로 급속히 휘말려들고 있다. 오랜 한중관계 속에서 축적된 역사적 경험은 우리들로 하여금 중국의 이러한 동향에 대단히 민감하게 한다. 지역제국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미래를 기획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의 제국적 속성에 주목하는 현실적 이유, 즉 중국을 전략적으로 재정의해야 하는 학문적 과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러한 학문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지역제국 중국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제국화의 주인공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민국가이다. 다원일체의 다민족 국가라는 국가통합 논리를 중국의 주장대로 수용하고, 그 영역을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지역제국의 영역으로 전제한다면 동아시아의 지역질서는 현실적으로 중국적 제국질서(비대칭성을 본질로 하는 중국 중심의 질서)를 중심축으로 하는 중국 대 비중국이라는 구도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도를 학문적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재정의하지 않는다면 이 지역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한편 중국과의 공동 번영을 견인하고자 하는 한국은 자신의 미래전략을 수립하는데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현재의 중국과 역사상의 중국에 대한 기존 인식을 해체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기존 인식의 해체는 역사상 동아시아의 지역질서를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가 아니라 하나의 중심과 복수의 부중심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상호의존적이고 상호연동적인 복합질서로 재정의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 작업은 동아시아라는 지역 공간 속에서 ‘중화의 중국’을 포함하여 현재는 중국의 일부가 되어버린 역사상의 다양한 민족과 국가 그리고 중국 제국의 이웃에 존재하는 국가들이 교류와 갈등을 연출하면서 만들어낸 역사 전개의 다원성과 역동성을 복원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이 제국의 유산-제국의 영역, 지배전략, 운영시스템, 국제(조공)질서 등-을 근대적으로 재구성하면서 노정한 중국적 제국질서의 짙은 음영-중국 중심 위계적 질서 속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신강, 티벳, 몽골에 대한 한족 중심의 통치-을 걷어내고 공존의 동아시아 지역 질서를 지향하는 역사상을 정립하려는 이론적 모색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중국과 이웃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문화,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발전 단계 등의 측면에서 비대칭성이 매우 심했다고 전제하는 것이 통상적인 중국인식이다. 그러한 비대칭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중국의 영역을 전제로 그러한 비대칭성을 부지불식간에 상정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문화, 영역, 정치 등의 측면에서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가변성-예컨대 중국 제국 영역의 가변성, 비중국 세계에 대한 중국의 의존성 등-이 무시되고 중국의 절대적 중요성이 부각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역사적 사실과도 괴리가 있을 뿐 아니라 비대칭성을 고정불변의 속성으로 정의함으로써 향후 전개될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이웃 국가들의 관계를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 혹은 조공질서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프레임으로 인식하게 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학계에서는 이러한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중국의 위상을 상대화시키는 학문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중화문화를 통한 현대 중국의 이해 


한편 최근 10여 년 전부터 중국에서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산되고, 전통문화의 부활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탁고적(托古的) 미래기획을 추구해 왔던 중국의 문화사적 관성을 생각할 때 놀랄만한 사실도 아니다. 이것은 중화문화가 현재와 미래의 발전을 위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현대중국에 대한 인식은 전통과 역사와의 단절에 강조점이 두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현상의 등장은 단절보다는 그 연속에 무게 중심을 두고 현대 중국을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문정신 혹은 전통문화 부흥 논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국의 전통-특히 인문전통과 전통문화-이 다양한 차원에서 재구성되어 새로운 미래 건설에 활용되는 실태를 파악하여 그러한 현상의 현실적․정치적 함의를 규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몽 실현의 방법으로 “중국의 길(中國道路)”과 “중국정신”을 강조한 것 역시 제국의 경험과 중화문화의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사회적 흐름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출처: 베이징(중국)=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하는 모습. (편집자주) 


개혁개방 이후 경제적 성취와 G2로의 ‘굴기’는 근대 수용의 지식구조를 미래담론 창안의 지식구조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 미국 주도의 글로벌 스탠다드와 병립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중국 주도의 보편적 기준(Chinese Standard)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중국이 모색하고자 하는 대안은 ‘중국적 문화’ 건설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1990년대 중국 경제의 비약적 발전과 서구의 경제위기로 인해 중국인들은 민주 신봉을 타파하고 자신의 문화전통 복구를 시도하고 있다는 진단 역시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위와 같은 현상의 중심에는 유교=전통문화=(중국의)인문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 공자와 유교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하여 선양하는 까닭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가치를 만들기 위한 유용한 자원으로써 유교=전통문화=(중국의)인문전통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속가능한 대국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중화문화(인문전통, 유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 과거를 모델로 미래를 기획하는 중국의 문화사적 관성을 생각할 때 유교적 통치 이념의 적극적 활용, 전략적 의도가 내포된 문화논쟁 및 전통문화의 부활 등 일련의 사회문화적 현상은 전통문화 혹은 중국의 인문(학)전통이 21세기 미래의 중국을 만드는 핵심적인 자원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문화주의에 입각하여 통치되는 국가를 이상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이상을 실천해 왔던 문화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고 본다면 중국에서 전개되는 문화 논쟁이나 인문(정신)을 둘러싼 논의는 중국의 미래를 기획하기 위한 문화적, 지적 노력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중국 모델이라는 새로운 보편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중국이 창안하고자 하는 새로운 보편주의는 중국의 인문전통을 지적, 문화적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인문전통 강조나 <인문공동체> 구상은 극히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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