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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35호] '딴따라' 예능PD가 건네는 사회 이야기 - 예능PD 권성민 인터뷰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콘텐츠를 만들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전달할 수 있는 영역은 무척이나 다양한데 그 중 방송사 예능 PD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권성민 PD(이하 권)> 어렸을 때부터 콘텐츠 만드는 일을 버릇처럼 해왔다. 만화 같은 것도 계속 그렸고, 소설 같은 것도 쓰고 연극도 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으니까. 그러다가 사실은‘피디가 꼭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마침 대학교 졸업할 시기 즈음에 MBC 예능 PD 공채가 떴고, 한 번 써봐야지 해서 써본 것이 입사로 이어졌다. 콘텐츠 만드는 일은 학생 때부터 늘 계속 해서 그런지 막상 예능국에 들어가 보니 엄청 새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처음 입사한 날이 2012년에 MBC노조가 170일 파업을 시작한 날이어서 예능국에서 이런저런 걸 느끼기에는 굉장히 어수선했다. 나도 얼마 안돼서 바로 파업에 참여하였다.

서강> 개인적으로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무한도전>을 즐겨본다. 얼마 전 <무한도전> ‘우토로 마을’ 특집을 보면서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와 사회적인 이슈를 동시에 다루는 게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능프로그램이 재미와 사회적 이슈를 조화롭게 담아내어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권> 어렵다. 일단은 김태호 선배가 <무한도전>에서 사회적인 아이템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사람들에게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한 아이템을 한다고 해서 <무한도전>의 헤게모니가 무너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무한도전>은 탄탄한 기반 위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하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이고 자기 위로가 되는 것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는 ‘이게 문제다. 이게 잘못됐다. 이게 개선되어야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특히 예능으로 풀기에는 어렵다. 사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영역에 있어서는 약자에 속하지만, 또 그 밖의 굉장히 많은 영역에 있어서는 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빈곤한 남성은 경제적인 차원에 있어서는 약자지만, 젠더의 측면에 있어서는 어쨌든 남성의 영역(주류의 영역)에 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빈곤의 문제를 다룬 콘텐츠에는 와 닿겠지만, 젠더의 문제에 있어서는 불편할 수 있는 거다. 기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송곳> 같은 드라마보다 <그녀는 예뻤다>, <응답하라 1988>를 더 보는 이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희’를 위해서 콘텐츠를 소비한다. 사실 예능은 시청자를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능의 본연은 어쨌든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거니까 그 본 기능에 충실 하는 게 맞고, 예능을 통해서 사람들을 교화하겠다는 태도는 굉장히 바람직하지 못 하다고 생각한다. 나영석 PD가 “한 번씩 쿡 찔러주는 역할을 하는 게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 또한 동의를 한다. 예를 들면 전혀 사회적인 예능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빠! 어디가?>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아빠! 어디가?>라는 예능이 할 수 있는 일은 ‘자. 아빠가 애들이랑 이렇게 놀고 있는 모습을 봐. 귀엽지? 사랑스럽지? 재밌지?’라고 보여주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사회에서는 이게 안 될까?’라는 질문이 따라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저렇게 못 하지?’라는 질문의 대답을 예능이 해줄 필요는 없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들은 위정자들이 해야 한다고 본다. 학자들이, 지식인들이 해야 되는 거다. 그게 예능이 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서강> 어떻게 보면 예능이라는 역할이 되게 쉽고, 얄미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능이 문제제기를 해놓고, 해결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그게 예능의 한계라고 생각하는가.

권> 한계인 것 같다. 왜냐하면 예능은 재미를 잃기 시작하면 그 모든 권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게 예능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능한테 그걸 요구할 필요는 없다. ‘예능이 이렇게 재미있게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데, 좀 더 그러면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이야기할 수 있도록 뒤로 빠지지 말고 얄밉게 하지 않으면 안 되냐’ 물을 수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예능PD들한테는 그런 의무가 없다. 물론 언론인이긴 하지만 언론인이라는 타이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예능PD이기도 하다. 그건 대부분의 예능 PD들의 자의식인데 스스로를 ‘딴따라’라고 부르면서 조금은 자조하는 분위기도 있다. 예능PD는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라는 임무를 받고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대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역할에 충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예능 같은 포맷에서는 ‘어 쟤가 나를 가르치려고 드네?’라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 때 사람들의 마음에는 거부감이 훅-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서는 (예능이) 조금 얄미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서강> 현재 타파스2)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제작하시는 웹드라마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웹드라마에서 염력을 쓰는 주인공 정규가 치안 유지를 위해 초능력을 쓴다는 설정만 놓고 보면 한국형 코믹 액션 히어로물 같다. 하지만 주인공이 놓인 사회적 상황은 다소 심각하다. 국가가 치안을 사유화한 상황,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상황 등 드라마의 사회적 상황을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는가?

권> 일단은 그 드라마가 생각보다 반응이 없어서 (웃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드라마 기획은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실태 고발을 위한 콘텐츠이다. 사람들한테‘이런 노사정 합의안이 적용됐을 경우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이 처하게 될 현실은 어떠할까’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기획의도였다. 그런데 그냥 노동이슈를 이야기하는 건 재미가 없으니까 일단 사람들이 보게 만들려면 어떤 요소를 넣어야 할까 하다가 ‘히어로물’같은 장르는 웬만하면 사람들이 보니깐. 별 재미가 없어도 특수효과가 있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어~~”하면서 본다. 그래. 그러면 그런 요소. 대중들이 크게 지루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포맷에다가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이슈를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히어로 액션물로 설정하여 제작했다. 드라마에서 히어로 노동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짧게 총 4화로 기획을 하고 거기서 다룰 수 있는 메인은 실제로 임금 피크제가 시행이 됐을 때 어떤 방식으로 기업이 저성과자들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몰아붙여서 해고할 수 있는지를 히어로물을 통해 풀어보려고 했다.

 


서강> 방송사 시스템을 벗어나서 독립된 환경에서 콘텐츠를 제작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오히려 더 재미있었던 부분이 있었는지.

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일단 방송사 예능 쪽만 하더라도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 중 비정규직이 반 이상인 것 같다. 대부분 비정규직, 계약직, 프리랜서이다. 방송국은 어쨌든 콘텐츠 제작을 굉장히 오래 해 온 곳이니까 PD는 정말 딱 연출만 하면 된다. 연출하기 위한 모든 제반 조건들은 말만 하면 다 해주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연출 외적인 행정 요소들도 다 처리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PD들 중에서 자기 통장에 다달이 월급이 얼마 들어오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에 방송국 밖에 나가서 혼자 제작하려면 섭외부터 촬영, 효과, CG, 미술 등을 다 직접 해야 한다. 로케이션도 내가 직접 찾아가서 “선생님. 안녕하세요.”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하고. 또 방송사는 ‘음반저작권협의회’랑 저작권 계약이 되어있어서, 아무 음악이나 그냥 가져다가 쓸 수 있다. 그런데 방송사 울타리를 나오면 음원 하나 쓰는 것도 굉장히 큰 문제가 된다. 그러니까 SBS, KBS, MBC처럼 시작부터 방송사였던 회사들은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곳이다. 그게 방송사 시스템의 장점이고, 반대로 단점은 방송사도 사실은 대기업의 조직 구성이라서 개개인이 지켜야 하는 것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또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정말 해볼 수 있는 기회는 PD 정년 중에서 많아봐야 2, 3번이다. 나머지 기간은 기존에 있는 프로그램에 로테이션 들어가는 거고. 어쩌다 내가 하고 싶은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해도 프로그램이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여기저기서 간섭과 조직 구성원으로서 감당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엄격한 심의와 제작에 돈이 많이 들어가니깐 광고, PPL도 어쩔 수 없이 제작비 때문에 넣어야 한다. 나는 솔직히 제작비가 없으면 없는 대로 찍을 마음이 있는데 그게 회사 매출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내가 원치도 않는 광고를 얻어준다. 그러면 그걸 또 지켜야 한다.

서강> 방송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지금, 자유롭게 만들고 있는 콘텐츠는 무엇인가.

권> 사실은 MBC에 입사하기 전부터 늘 콘텐츠를 만들어왔기에 방송국을 벗어나서 콘텐츠를 만드는 경험이 엄청 새롭지는 않다. 옛날에 하던 것을 다시 하고 있는 기분이다.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를 만들기 직전에는 <트루맛 쇼>랑 <쿼바디스>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하신 김재환 감독님이 지원해주신 제작비로 신촌에 있는 오래된 장소들, 그 공간에 있는 주인공을 통해 신촌 다양한 공간성을 드러내는 기획을 해보고 싶어서 <신촌 기억전>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을 했다. 현재 첫 편까지 만들었다.‘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술집이 있는데 그곳의 공간성이 조금 독특해서, ‘아름다운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한 편을 만들었다. ‘신촌 독다방’이라든지 이런 곳들을 하려고 섭외를 하고 있던 차에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를 시작하게 돼서, 잠시 중단한 상태이다. <신촌 기억전> 프로젝트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그래서 제작할 때 재미있다. 시간이 잘 간다. 일단 만드는 게 즐겁기도 하고. 사실 대본도 금방 써서 하루 만에 찍어서 이틀 만에 만들어서 냈는데, 그게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보다 반응이 훨씬 좋다.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는 사람들이 많이 보게끔 하기 위해서 생각한 요소를 일부로 맞춰서 기획을 한 작품이고 <신촌 기억전>은 그 반대였다. 사람들 반응을 신경 쓰고 만든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보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만든 <신촌 기억전>의 반응이 훨씬 더 좋더라. 기획의도라는 게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서강> <신촌 기억전>처럼 추억 어린 공간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재밌는 것만 하면서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화가 나는 일들이 많은 세상인 것 같다. PD님께서는 2014년 인터넷 사이트‘오늘의 유머’에 MBC 세월호 보도 형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서 정직 6개월 조치를 받으셨다. 세월호 사건은 PD님께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였는가.

권> 이 일에서 사람들이 느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비슷한 것을 느꼈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굉장히 좋지 못한 보도를 했던 방송사에 소속된 직원들 중 한 사람으로서 왜 그런 보도가 나갔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해고가 되고 나서도 어차피 영상을 만들 수 있으니까 하고 싶었던 말을 영상으로 계속 만든 거고. 세월호를 위해서 릴레이 단식 같은 것도 할 수 있으니까 같이 했던 거고. 사는 대로 살되, ‘야 진짜 이건 아니지.’싶은 것만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기로 어느 정도 가치관을 정립한 것 같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이상한 건지 내 생각이 바뀐 건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한국 사회 안에서‘솔직히 이건 아니지 않나?’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졌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이 사건에 대해서 의혹이 있는 부분들은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세월호 유가족들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고..... ‘..이건 진짜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MBC를 비롯한 언론사들의 보도들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났고 나 역시 MBC 직원으로서 MBC에서 그런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내부적인 상황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죄송하다고 말한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고 생각한다.


서강>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런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연대’라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영상들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건 해결을 위한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가 클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정작 다르더라.


권> 연대는 유일한 방법이 아닌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해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여기저기 고공농성을 하고 계신 노동자 분들 되게 많다. 언론에서 하나도 안 다뤄줘서 문제인 거지. 고공농성에 대해서 아무도 모른다. 관심도 없고. 그런데 수학여행 때문에 아이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침몰해서 죽었고, 여기에 좀 미심쩍은 게 있으니 설명 좀 해달라고 해도 사람들이 저렇게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세상인데 기업이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한 일에는 과연 누가 공감을 해줄까? 고공농성, 단식 투쟁은 어떻게 보면 사람들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측은지심조차 없는 사회인 것 같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람들을 억압하는 방법들도 바뀌었다. 옛날에는 곤봉을 휘둘러서 때려잡고, 고문실에 데려가서 물고문을 했지만 지금은 그냥 밥줄을 끊고 있다. 여기에 맞서는 방법들을 아직 사람들이 찾지 못한 것 같다. 밥줄을 끊어 놓고 ‘네가 무능한 거야’ 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사람들도 ‘그래 맞아. 네가 무능한 거야’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거다. 오로지 자기 계발서가 베스트셀러인 시대인 사회에서 저마다 자수성가의 꿈을 꾼다. 개인의 상황에서 봤을 땐, 굉장히 아름다운 상황일 수 있다. 먹고 자는 거 줄여가면서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본인이 열심히 해서 대가를 얻겠다는데. 그런데 오로지 나만 보는 게 문제이다. ‘그래 내가 지금 이렇게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있지만, 나중에 이 시간들을 아름답게 그리워하면서 바라볼 수 있는 나날이 올 거야. 보상받는 시대가 올 거야.’ 그런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니까 대가를 받지 못 하는 사람들의 문제제기를 ‘네 탓’으로 돌려버리는 거다. 즉 사람들은 ‘나도 언젠가 이 고통과 노력을 보상 받을 거야. 그런데 쟤는 지금 비정규직이야. 그럼 그만큼 노력을 안 한 거야. 그래서 보상을 못 받은 거야.’라고 생각을 하는 거다. 이런 관점에서 구조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구조를 개선해 달라고 하는 이야기는 무임승차가 되어버린다. ‘나도 비정규직이 되기 싫어서, 이렇게 굶고 2-3평 밖에 안 되는 고시원에서 잠 줄여가며 개고생하면서 살고 있는데, 너는 왜 비정규직이면서 그 정도 노력도 안 한애가 정규직 시켜달라고 떼를 쓰냐. 너는 나만큼 노력했니?’ 이런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거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야. 배가 그냥 침몰해서 죽은 거야. 왜 떼를 써? 정부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다. 한국 사회는 지금 그런 사회인 것 같다. ‘연대’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러니한 것이 타인의 일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 일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월호 사건에 분노하지만, 나는 감히 세월호 사건에서 아이들을 잃은 부모님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정말로. ‘네 일이라고 생각해봐.’ 라는 말만큼 힘이 없는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 일이 아닌데? 내 일이 아닌데 어떻게 내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다. 나는 내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할 수 있을 만큼만 해도 세상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자기 계발서 시대에 사람들이 개인의 탓으로 모든 원인을 돌리는 이유는 구조가 잘못됐다고 느껴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바꿀 수 있고, 내가 선택할 수 있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개인에게 집중하기 시작하고 구조를 안 보기 시작하는 거다. 그래서 무력감이나 좌절감이 굉장히 무서운 거다. 무력감이나 좌절감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에 눈을 돌려버리느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차피 세상에 영웅은 필요 없다. 사실은 영웅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내가 MBC문제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뛰어들 수 있는 건, 이게 내 일이 됐기 때문이다. MBC 노조파업에 170일 참여하게 된 것도, 이게 내 회사의 내 일이기 때문이다.

 

서강> 2014년 MBC의 정직 6개월 조치에 이어서 2015년에는 예능국에 대한 웹툰을 SNS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MBC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으셨다. 언론 자유를 통해 사회 비판의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방송사에서 제작자에게 내린 일방적인 해고 통보는 부당한 것 같다.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권> 해고 사유가 전혀 될 수 없는 일로 해고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대법원까지는 사실상 이긴다고 본다. 사실은 그 부분에 있어서 내 개인적인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MBC 방송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위치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떤 공적인 역할이 나한테 주어진 부분이라고 생각을 한다. 따라서 내가 감당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어쨌든 언론인으로서 내가 감당해야할 영역이 생긴 것이니깐. 해고 무효 판결이 난다면 일단 복직을 해야 한다. 복직을 해야 하는 게 맞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MBC 현 경영진들이 얼마만큼 법을 무시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최종적인 확인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MBC로 돌아가서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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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성민 PD는 2012년 MBC에 입사했다. 2014년 5월 17일 권성민 PD는 인터넷 공간에 올린 글을 통해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MBC 보도를 비판했다. 그러자 MBC는 회사 명예 실추 등의 이유로 정직 6개월을 내렸다. 정직 종료 후 예능1국에서 경인지사로 전보 조치된 권성민 PD가 예능국 이야기를 다룬 '예능국 이야기' 웹툰을 페이스북에 연재하자 MBC는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권성민 PD에게 해고 조치를 내린 상태이다. (편집자주)


2) 한국탐사저널리즘 센터‘뉴스타파’에서 쉽고 재미있는 뉴스를 전달하고, 공감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페이스북 페이지이다. 현재 타파스에서 권성민 PD는 연출 및 제작을 맡고 있다. 타파스 유투브 링크 https://youtu.be/8vhnn0pTgF8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