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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37호] 젝스키스의‘지금’이 말해주는 것들_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젝스키스의‘지금’이 말해주는 것들

 


김윤하 _ 대중음악 평론가

 

오빠가 돌아왔다.
누군가는 환히 웃었고, 누군가는 소리 없이 눈물지었다. 이제
는 당당한 성인의 모습으로 그 때와 똑같은 노랑 풍선과 플래카드를 들었고, 그 중 일부는 아이와 함께였다. 2000년 5월 20일 공식 해체 이후 무려 16년 만에 다시 무대 위에 선 아이돌 그룹‘젝스키스’를 만나러 온 팬들의 모습이었다. S.E.S, 터보, 쿨, 지누션, 김건모, 김현정 등 90년대에 박제되어 있던 가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방송문화계를 비롯한 음악계 전반에‘복고 붐’ 을 불러온 MBC <무한도전> 제작진의 두 번째 도전이었다.
결과는 성공 그 이상이었다. 4월 중순에서 말까지 총 3주에 걸쳐 방송된 프로그램은 방송되는 날마다 각종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SNS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게릴라 콘서트에는 목표관객 5,000명을 훨씬 상회하는 5,808명의 팬들이 집결해 노란 물결을 만들었다. 방송을 기점으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팬덤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젝스키스가 데뷔하던 1997년부터 활동해 온 골수팬에서 방송을 통해 처음으로‘입덕(팬이 되는 것)’했다는 10대까지, 아직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옛 우상’들을 향한 마음 하나로 똘똘 뭉쳤다. ‘오빠’들에게 엽서나 전화 사서함 대신 SNS로 팬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대규모로 열리는 개인 팬미팅까지 살뜰히 챙기고 기획했다.
그렇게 방송을 기점으로 움튼 젝스키스를 향한 관심과 사랑은 결국 그룹의 정식 재결성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연예계를 떠나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멤버 고지용을 제외한 다섯 명의 멤버는 젝스키스라는 이름 그대로 3대 기획사 가운데 하나인 YG엔터테인먼트와 전격 계약을 체결했다. 결성 20주년 특별기획이라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무한도전>의 젝스키스 재결합 프로젝트 <토토가2>는 그들 스스로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내외부의 거대한 동력에 의해 시대에 박제되어 있던 한 그룹에게 새로운 생명
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무한도전> 토토가2 - 젝스키스 (사진 출처: MBC <무한도전> 478회 화면 캡처) (편집자 주)


‘토토가’와‘젝스키스’그리고‘팬덤’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놀라운 부활 스토리의 가장 큰 조력자는 누가 뭐래도 <무한도전>그리고 <토토가>다.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라는, 1985년에서 1997년까지 MBC를 통해 방영되며 대중적으로 큰사랑을 받았던 음악 예능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살짝 비튼 타이틀을 통해 이들이 주목한 건 다름 아닌 한국의‘90년대’였다.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모든 게 풍요롭던 때였다. 밀리언셀러가 한 해에 십 수 장씩 탄생했고, 헤비메탈에서 트로트까지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대중 음악이 사이좋게 어깨를 나누며 인기를 끌었다. 누구나 돈을 주고 음악을 샀고, 그런 만큼 뭘 해도 되던 시절이었다.
양감 넘치던 시대의 잔영은 그 시기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는 슬픈 사실과 겹쳐지며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1997년 IMF 외환위기까지 꼭 10년. 그 한가운데 놓인 90년대는 그 자체로 그 시절을 살아낸 이들에게는 일종의 자부심이었고, 풍문으로만 접한 이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의 온상이 되기 충분했다. 같은 시대를 둘러싼 이런 양가적 감정의 소용돌이는 90년대를 다른 어떤 시대보다 신화적인 위치에 자리하게 만들었다. 아는 이들에게는 고될 때마다 꺼내보는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모르는 이들에게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풍요와 여유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바로 그‘90년대’를 공격적으로 타겟팅한 <무한도전>의 <토토가> 시리즈는 2014년 2015년 초까지 방송되며 갖은 기록을 남겼다. 본 공연 2부는 전국 시청률 24.1%, 수도권 29.6%, 순간 최고 시청률 35.9%를 기록하며(TNS 조사기준)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보편적 성공기준인 20%를 훌쩍 뛰어넘는 것은  물론 10% 대를 겨우 유지한 공중파 3사의 어떤 연말 가요축제보다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송 이후 한동안 2016년인지 1996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되었던 각종 음원 차트 순위는 이‘현상’이 만들어낸 일종의 덤이었다.

그토록 많은 이들이 사랑한 한국 사회의 이 짧고 강렬한 화양연화는 역시 짧고 굵어 애틋했던 그룹 젝스키스의 역사와 묘하게 궤를 같이한다. 아이돌 그룹 1세대의 선봉장이자 케이팝 역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그룹 H.O.T의 유일한 대항마로 여겨졌던 이들이니만큼 젝스키스가 꽤 오랫동안 활동했다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젝스키스가 현역으로 활동한 건 1997년 4월 15일에서 2000년 5월 20일까지 고작 3년을 조금 넘기는 기간이었다. 단지 이들은 그 짧아도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넘치도록 많은 것을 남기고, 채 수습하지 못한 채 안녕을 고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뿐이었다. 젝스키스가 그렇게 도망치듯‘사라질’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소설로 쓴다 해도 이보다 극적일 수는 없는, 각종 연예/문화계의 첨예한 이슈들이 있었다. 멤버 본인들도 직접 인정했듯 계약서 한 장 없이 구두계약으로 데뷔해 활동하는 동안 제대로 된 정산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 불합리함과는 상관없이 정규에서 라이브, 스페셜 앨범까지 앨범 발매와 활동은 숨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앨범 발매 사이 조금 뜬 시간에는 공연, 뮤지컬, 영화촬영 스케줄이 촘촘히 채워졌고, 이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활동 러시는 결국 2000년 이들이 정상의 위치에서 미련 없이 해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90년대의 주먹구구식 연예기획사의 운영 행태와 극한직업 아이돌의 단점만을 골고루 골라 엮은 듯한 젝스키스의 3년은, 그룹 멤버들은 물론 그 누구보다도 뜨거웠던 이들의 팬들
에게도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열혈 팬들을 중심으로 한 각종 형태의 해체 반대 시위는 물론, 그로 인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한 소속사의 일방적 계약조건, 탈세 문제 등이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파헤쳐지기도 했으며, 해체 당시 이성을 잃은 팬들로 인해 한 유명 연예 리포터의 차량이 파손되는 아이돌 역사에 길이 남을 결정적 순간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오빠’들을 향한 드라마틱한 간절함은 <토토가>의 특기인 추억 복원능력을 만나며‘성공할 수밖에 없는’서사를 완성했다.
자신의 레이블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꾸준한 예능활동을
통해 젝스키스라는 이름을 현재진행형으로 유지하는데 큰공을 세운 은지원과‘로봇연기’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성공적으로 연예계에 복귀한 장수원이 기본적인 판을 깔았고, 오랜 법적 분쟁으로 고통 받아온 강성훈의 MBC 방송 출연정지 해제소식과 해체선언 이후 공식적으로는 한 번도모습을 드러낸 적 없었던 멤버 고지용의 신비주의가 화려한 장식을 더했다.
특히 해체 이후 지금껏 젝스키스의 재결합에 도전했던 모든 예능 프로그램들이 너무도 넘고 싶었지만 결국 넘지 못 했던 마지막 관문, 고지용의 극적인 섭외는 이 기획의 마스터키와도 같았다. 은퇴 이후 사업에 전념하며‘연예계는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입장을 유지해온 그의 마음을 돌린 건 어릴 적 동료들의 재개를 돕고 싶다는 선의와 유재석과 <무한도전>이라는 이름에 보낸 신뢰였다. 비록 프로그램을 통해 일회성으로 함께 했을 뿐 정식으로 젝스키스 활동을 다시 할 예정은 없다는 의사를 재확인하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맞이한 여섯 개의 수정이 발한 반짝임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말했다. 이제는 2,30대 성인이 되어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구매경쟁력을 갖추게 된 오랜 팬들에서 방송을 통해 새롭게 팬층에 유입된 1,20대 팬들까지. 예상보다 넓고 깊게 구성된 젝스키스의‘새로운’팬덤은 곧 이어질‘활동기’에 대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90년대로의 회귀, 퇴행일까
지난 수년간 대중문화계의 가장 큰 화두였던 90년대로 의 회귀에 대해 언론들은 종종‘퇴행’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미화하고 그리워하는 현상은 힘들고 어렵고 막막한 감정이 만연한 지금, 현실을 등한시 한 채 빛나던 시절의 그림자만을 쫓는 사회, 문화, 정치적 퇴행의 부산물이라고, 그렇게들 말했었다. 동의하기 힘들지만 설사 그 분석에 합당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토토가2>를 통해 다시 시작된 젝스키스의 새로운 이야기는 기존의‘복고 아이템’들과는 사뭇 다른 영역으로 가지를 뻗고있다.‘ 그시절’의 재현과 재조명에 높은 가치를 두었던 <토토가1>에 비해,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1세대아이돌 그룹의 부활에 초점을 맞춘 <토토가2>는 특정 대상에 대한 새 생명의 부여와 동시에 기획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 자연스레 떠안게 되었다. 노래를 담당하는 화이트키스와 춤과 랩을 담당하는 블랙키스로 구성되어 있는, 지금을 기준으로 해도 상당히 세련된 면모를 자랑하는 그룹 구성과 멤버별로 확연히 나누어진 개성,‘ 냉동인간’이라는별명을 얻을 정도로 잘 관리된 외모는 이들을 추억에서 지금으로 무리 없이 가져다 놓을 수 있었던 훌륭한 밑거름이었다. 한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무려 16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젝스키스는 새로운 기획사와의 만남과 함께 본격적인 ‘지금’을 그려나갈 예정이다. 과거완료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시제를 바꿔 입은 이들이 앞으로 걸어 나갈 길은 그대로‘추억’이라는 단어가 가진 한계에 하나하나 맞서 나가야 할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이들이 남기는 발걸음은 그룹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물론 그동안 게으른‘추억 팔이’로 천편일률적인 기획만을 쏟아내던 방송계에 적지 않은 울림을 자아낼 것으로 보인다. 젝스키스와 팬들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연예문화계에는 위대한 도약이 될지도 모를, 조심스럽고 설레는 새로운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