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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글

[137호] 대안에 대한 대안(계속)

1. 3년 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보냈던 하루하루를 생각해봅니다. 그곳은 시간을 수치로 매겨 나타내는 시계가 없었기에 무언가 다급하거나 촉박할 이유가 없는 공간입니다. 가리지 않고 모든 걸 품는 하늘과 거기에 덧대어 흘러가던 구름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길 위를 어슬렁거리던 까만 개의 눈동자와 지긋이 마주해봅니다.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죽음을 맞이하고 있던 반쯤 말라버린 나뭇잎 하나를 발견합니다. 작은 것들이 주는 아름다운 정동을 느낍니다.

 

 

2. 돌아온 세상은 빠른 속도로 하나의 방향으로만 내리닫기만 합니다.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낄 새도 없습니다. 삼천포로 빠지고 싶은 여유를 부리고 싶지만 괜한 죄책감이 듭니다. 눈앞에 닥친 것에 급급해져 주위를 둘러볼 수가 없습니다. 다들 자신의 고통에, 누군가의 고통에 점점 무뎌져 갑니다. 죽음을 타자화합니다. 서로서로 잡아먹습니다. 애석하고 슬픈 움직임들입니다.

 

 

3.‘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이성복 시인의 언어를 곱씹어 봅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단단해져 버린 일상들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주어진 삶에 순응하면서 그저 자조(自嘲)하기에는 저 자신과 연결된 무수히 많은 삶과 삶, 죽음이 떠오릅니다. 너와 나,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에 대한 책임을 느껴봅니다. 신명나게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 대안을 상상해봅니다. 결과로서 정체한 대안이 아닌, 연쇄적인 대안에 대한 대안을 (계속해서) 질문해 봅니다.

 

 

편집장 황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