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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40호]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2017년 2월 세미나, 트럼프 대통령 시대 남북관계 전망과 과제

트럼프 대통령 시대 남북관계 전망과 과제

 

 

 

 

최용환 _ 경기연구원 연구기획부장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격랑에 휘말리고 있다. 미국 신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대북정책을 펼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어, 예전보다 더 강력한 대북제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상황이 겹쳐져서 한국은내우외환의 위기를 겪고 있다.

 

 

민낯을 드러낸 미국 우선주의

   

모든 국가의 외교는 기본적으로 자국 중심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강조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부에서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노골적이고 일방적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주민과 소수자들에 대한 노골적 편견을 보인 대통령의 등장은 지난 대선에서 유색인종인 오바마를 당선시킴으로써 세계의 환호를 받았던 미국 민주주의의 이면(􃤪)을 보여준 것이다. 이민자들이 건설한 국가인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이른바 ‘melting pot’이라고 불렸지만, 이번 대선의 결과는 아직 미국 사회의 주류는 백인임을 확인시켜주었다. 트럼프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할 것이며, 그 결과는 미국 소프트파워의 쇠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신행정부 대외정책의 구체적인 형태는 경제적으로는 중상주의적 정책이 예상되며, 안보 측면에서는 동맹국의 부담 증가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강대국들 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중심으로 한 중상주의적 경쟁은 지정학적 충돌의 가능성을 높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대선 기간 중 트럼프의 언급이 모두 실행에 옮겨지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으나, 그 기조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과거 냉전시기 미소의 이데올로기적 대립과는 다르다. 갈등의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으며, 갈등과 협력 요소가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비교할 때, 중 사이에 전략적 경쟁이 증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 전략적 경쟁의 경계선에 놓인 한반도이다.

 

 

중 갈등 상황에서 딜레마에 빠진 한국 외교

 

대통령 취임 이후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TPP) 탈퇴를 결정하였다. 미국의 TPP 탈퇴 결과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만약 이러한 예상이 현실화된다면 중국은 동남아 및 아시아 지역에서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한일 삼각동맹의 틀에 묶여 동남아시아로부터 소외된다면,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영향권에 역 포위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보다 긴 안목과 넓은 시각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핵심 축은 경제적인 측면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교역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미국과 미국인들이 손해를 보았다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세계 2위의경제대국이자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이 벌어진다면 양자 모두 다수의 대응 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으로

까지는 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미중 갈등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영유권 문제 등을 놓고 벌어진 중국과 일본의 갈등에서 미국은 일본편에 설 것임을 명확히 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다. 트럼프는 북핵문제의 해결과 관련하여 이른바중국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역할론은 1990년대 이후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었던 사안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하지만,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도 않는다. 따라서 중국은북핵문제북한문제를 분리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신행정부는 세컨더리 보이콧 등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여, 북한에 대해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할 계획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갈등이 심화되면 중국에 있어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최근 한국과 중국 간 THAAD 도입을 둘러싼 갈등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THAAD의유용성에 대한 논란을 논외로 한다면, 어떤 국가가 자국 방위를 위해 특정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명백하게 주권적 사안이다. 이에 대해 주변국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나오는 것은 THAAD 그 자체보다는 한국의 THAAD도입을 한국이 한미일 동맹체제에 편입되는 신호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다소 모호한 정책기조를 유지하여 왔다. 이러한 전략은 미중관계가 우호적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국 외교 딜레마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중국의 대외정책이 공격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화한 상황에서는 경제에 있어 중국의존도와 안보에 있어 미국의존도를 낮추지 않은 한 이러한 딜레마는

지속반복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평화적 관리의 중요성

 

미국 신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에 있어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은 공정무역(fair trade)을 명분으로 한FTA 개정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안보 측면에서는 한국의 안보분담 증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한국 정부는 선제적으로 대미 무역 흑자 규모를 줄이고 미국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협상 이전에 우리의 카드를 모두 보여주는 것으로, 협상 전략적 차원에는 결코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없다.

FTA는 일방에게만 이익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차분히 대응 논리를 만들어 대비하면 된다. 미국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부문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최대한 제도에 기대어 시간을 끌 수도 있다. 자국 방위에 대한 한국의 역할 증대 요구에 대해서는 대응논리와 함께, 추가비용 부담에도 대비하되 합당한 반대급부를 요구해야 한다. 특히 전시

작전권 반환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도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둔다면 필요 이상의 비용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의 과잉대응을 낳는 원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남북관계와 관련된 핵심 쟁점은 역시 북핵문제이다. 트럼프는 기존의 제도적 틀보다는 미국이 가진 힘과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외관계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은 대북 선제타격을 포함하여 다양한 대북제재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제타격을 검토한다는 것과 이것을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과잉 대응을 할 필요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핵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는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대북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남북관계의 평화적 관리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핵문제의 해결과 통일이라는 과제를 포기할 수는 없으나, 중단기적으로는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대국들의 결정에 의해서 한반도 상황이 전개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빚고 있으나, 그들 간의 빅딜에 의해 북한

문제가 급진전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의 긴장 국면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한국이 가장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잘못을 범하기 않기 위해서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과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