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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8

[140호] PDF 파일 더보기
[140호] 무의미의 축제 하나. 대학원 수업 중이었습니다. 한 ‘학생부모’(아이를 둔 대학원생)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유치원생 아들이 치마를 입어도 되냐고 물어봤어요.” 마침 그 수업은 여성학 수업이었습니다. 그 학생 부모는 질문을 받고, “그래도 된다”고 쉽게 대답할 수 없던 자신이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했습니다. 남자인 아이가 치마를 입고 유치원에 갔을 때,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고 했습니다. 배움과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 어쩐지 저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둘. 고향집에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곧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와 읽고 있던 책을 덮었습니다. 밀란 쿤데라 장편소설『무의미의 축제』. 마침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던 차였습니다. “다르델로, 오래전부.. 더보기
[140호] "무의미의 축제" 몇몇 사상가들이 삶의 의미라는 문제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데에는 매우 일반적인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의미’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라는 점 때문이다. 삶의 의미는 질감이나 무게, 색깔 같은 사물들 자체의 특징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사물들에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관련된 문제이다. 양배추나 심박동 측정기 자체는 의미가 없다. 그것들은 우리의 대화에서 거론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인생의 의미』(2016) '잃은 것을 찾는 삶' 천주희 (문화연구자 겸 작가) 지난 10년 동안 대학(원)생으로 지불한 등록금은 약 5000만 원. 그중 2.. 더보기
[140호] 세상은 당신의 ‘쓸모’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_천주희(『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저자) 세상은 당신의 ‘쓸모’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천주희 _『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저자 나는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연극을 한다. 언제부터 나의 경제활동과 창작활동이 분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의 노동이 경제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할 때부터, 어쩌면 나는 빈곤의 숙명을 애써 덤덤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석사과정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지식을 생산하든지 그것은 남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 삶의 과제는 늘 생존 그 언저리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매 학기 값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졸업할 때쯤 덤덤함은 막막함으로 이어졌다. 여느 .. 더보기
[140호] 공익변호사로서의 삶의 의미_이일(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공익변호사로서의 삶의 의미 이일 _ 공익법센터 변호사 월요일 아침. 기상한다. 어젯밤 재판기일이 임박하여 밀린 서면을 쓰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했지만 오늘의 일정은 소화해야한다. 씻고 나와 간단히 요기한 후 첫째 딸을 유치원 버스에 안전하게 태워서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인사하여 보낸다. 시간을 체크하고 시내버스에 탄다. 다행히 종점 부근에서 출발해서 보통은 의자를 찾아 앉을 수 있다. 의자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은 1시간여의 출근시간 동안 문서작업들을 추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와이브로 에그를 켜서 노트북이 와이파이 신호를 잡을 수 있게 한 후 지난밤 국내외에서 온 메일들 중 시급히 답해야 할 것을 답한다. 영어로 답하는 것에는 아직도 시간이 좀 필요하므로 급히 답할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한.. 더보기
[140호] 물음을 참는 우리에게_김종현(독립서점<퇴근길 책 한잔>대표) 물음을 참는 우리에게 김종현 _ 독립서점 대표 어려서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스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거리의 나무는 왜 저렇게 서 있고 사람들은 왜 저렇게 인사를 나누며 사람들이 숱하게 내뱉는 말들은 왜 하나같이 진실이 아닌 것 같은지.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책방을 열면서도 세상의 스스러움을 거부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책방에서 모든 것은 주인인 나의 취향대로 흘러간다. 들여놓는 책 종류부터 인테리어와 분위기, 영업시간, 손님을 대하는 태도까지 하나같이 주인의 마음대로다. 따지고 보면 손님이라고 해서 왕이 아니라 그저 값을 치르고 물건을 교환해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 책방에는 ‘진상 강퇴’라고 크게 붙여 놓고 운영을 하며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우리 책.. 더보기
[140호]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_윤이나(책『미쓰윤의 알바일지』저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윤이나 _ 책『미쓰윤의 알바일지』저자 지난 2월의 마지막 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음악상을 수상한 아티스트 이랑이 무대 위에서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다. 이 퍼포먼스에 대해 온갖 논란이 펼쳐졌지만, 나는 그 논란들 보다는 이랑의 친구가 했다는 말이 계속 생각났다. 돈, 명예, 재미중에 두 가지 이상을 충족시키는 일이 아니라면 하지 말라고. 나도 그 기준에 따라 내가 하는 일을 생각해보았다. 돈? 없다. 명예? 역시 없다. 재미는 사람들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일단 나에게는 있는 편이라고 해 두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별 다른 의미가 없는 일들을 계속 해나가도 되나?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 역시 이랑이 시상식 전에 SNS에 남긴 말을 곱씹게 되었다... 더보기
[140호] "온전한 나로 받아들여지는 것" - 이명선 기자 인터뷰 진실탐사그룹 이명선 기자 인터뷰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 다음 스토리펀딩에 위와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알았으니까 사직서 놓고 나가요” 3년 세월을 정리하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허망함에 헛웃음과 함께 눈물이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기자 준비 3년, 기자였던 3년이 그렇게 1분의 사직서로 막을 내렸습니다 뭘까. 종편과, 사직서. 두 단어에 시선을 빼앗긴 저는 빠른 속도로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막내 기자인 저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과연 기자란 어떤 존재일까’감춰진 진실을 끝까지 추적해 밝히고,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대리인이 바로 기자입니다. 그렇게 배웠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더보기
[140호] 도시에서의 삶, 공간의 의미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가장 가까운 것에 대한 관심이다. 내가 마주한 공간에서 의미들은 결코 평범하고 작은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의미있게 만든다. 취재 및 편집 양계영 밀집된 도시, 의미의 부재 오늘날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도시의 역사성과 전통양식을 보존하면서 쾌적한 문화도시를 만드는 것이라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대의 도시는 사람들의 다양한 인간 활동에 의해 살아 숨 쉬던 곳곳을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모두 획일화하고 있다. 급속한 성장 속에서 업무지구, 상업지구, 주거지구의 형식으로 구역이 나뉘어졌으며, 그에 알맞은 건물들로 외형을 채워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외형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제작하여 인위적으로 채워 넣는.. 더보기
[140호] 재원의 성격으로 충족되지 않는 공공성 - 자율과 참여로 공공의 가치 구현해야 재원의 성격으로 충족되지 않는 공공성 - 자율과 참여로 공공의 가치 구현해야 김소연_연극평론가 대학로X포럼은 페이스북 그룹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극 및 공연예술인들의 토론 플랫폼으로 현재 뜨거운 논쟁이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인 지난 해 국립극단에서 진행된 창작극 개발 프로젝트‘작가의 방’. 논쟁은 한겨레 기사, “[단독] 국립극단도 검열했다... “‘개구리’같은 작품 쓰지 말라”강요”(2017년 3월 16일.)에서 촉발되었는데, 이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미 계간 [연극평론] 2017년 봄호에 발표된 고연옥의 기고“국립극단 ‘작가의 방’, 왜 극작가를 교육, 교정하려 하는가?”에서 있었다. 두 글의 제목에서도 대비되듯이 지금 논쟁은 국립극단이 운영한 특정 프로그램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공공..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