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39

서강대학원141호최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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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30

서강대 대학원생 여러분은 어떤 논문을 쓰고 계신가요?

실험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연구도 있을 것이고, 앞서 걸어간 사람들을 만나는 연구도 있을 것입니다. 생사와 연결된 내용의 연구가 있는가 하면, 한 시대의 통념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연구들이 존재하지만, 이 모든 연구들이 개인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회와 맞닥뜨릴 때 생겨나는 물음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 속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질서와 법칙에서 종종 무력함을 느끼기도 하고, 다수와 소수로 구분되는 체제에서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의 논문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의 달리기가 떠올랐습니다. 러닝머신은 기계가 작동하는 대로 내 몸을 맡기지만, 마라톤의 경우 각자에게 맞는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달리는 과정에서 타자와의 교감이 가능하기도 하고, 거리의 풍경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도 보입니다.

이번 141호에서는 여러분과 함께 마라톤을 해보려 합니다. 그 출발은 우리의 주체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로 나누고 싶습니다. 일상 속 당연하게 생각하며 걸어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이 거리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그 고민이 연구에서 어떻게 이어지면 좋을지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장 양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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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30

주체적 개인을 위협하는 고도 정보화 사회의 역설

- 참다운 공동체를 위하여

 

김재홍 시인 _ 2003<중앙일보>로 등단. 시집 메히아, 다큐멘터리의 눈발간

 

 

에피스테메(Episteme)나 아비투스(habitus)가 만일 우리 무의식 속에 잠재된 집단성에의 맹종적 태도나 다수성에의 몰입을 지시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부정되어야 한다. 혹은 인간 조건의 보편성과 사고의 인접성에 대한 세밀하고 방대한 지적 성과를 충분히 사숙하지 않은 단순 추상화라면 이 또한 거부되어야 한다.

 

한때는 분화보다 총화가, 다양성보다 총체성이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던 때가 있었다. 대량생산과 박리다매의 수출 전략이 국가경제의 에너지원이 되던 산업화 시대의 기업에는 말할 것도 없으며 가난을 면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생존 과제인 수많은 가정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정보의 분출이 차별성과 개성으로 연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정보 권력에 대한 맹종적 태도를 야기하는 세태 속에서 분화와 다양성에의 요구는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다. 단일성이 아니라 다질성이, 통념이 아니라 개성이, 집단이 아니라 개체가 중요한 시대다. 우리는 누가 우리들에 더 가까운가를 찾기보다 자신의 고유성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오직 를 발견해야 한다.

 

개성적 군상들의 협화음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개별 연주자의 역량이 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수준 전반을 보장해 주는 기초가 되듯 한순간도 동일한 존재일 수 없는 각자의 외삽(extrapolation)되지 않는 개체성이야말로 우리 공동체의 참다운 동력이 되어야 한다.

 

내 눈으로 세상보기

 

신체발부의 주인으로서 나는 내 몸과 정신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모든 과정을 통제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생성되는 일체의 변화를 포함하는 당당한 주체다. 그러나 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 정신으로 판단하며 내 몸으로 행동하는 상식적 생활이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의 물리적 조건이나 다른 주체들과의 이질적인 접면과는 별개로 나는 이미 해석된 정보의 범람 속에서 주체성 상실의 비극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식과 판단과 행동의 주체로서의 위상을 몰락의 길로 내모는 원인은 멀리 있지 않다. 매일 24시간 공급되는 신문과 방송, 포털사이트와 SNS 속의 정보는 그 정보 공급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미 우리 주체성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 거센 지원군으로 등장한 이른바 1인 미디어 시대의 폭주하는 해석들도 우리 주체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정보의 물량과 현란하고 선정적인 수사만이 아니라 근거가 부실한 선동까지 횡행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갈수록 의 위치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망과 모바일 서비스 수준을 가지고 있는 고도 정보화 사회의 역설로서 내 눈으로 세상보기를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절대 과제로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생산된 정보와 해석된 가치의 뿌리로 돌아가려는 자세가 절실하다. 어떤 사태의 기저로 파고들어가는 집요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자체를 본질로 삼고 그에 핍진하게 육박해 들어가는 고역(苦役)을 마다하지 않는 의지가 긴요하다.

 

정보화 세계의 이른바 파워집단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을 얻기 위해 들이는 무시무시한 집중력과 에너지 투입에 상응하는 우리의 주체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더라도 광우병 사태나 천안함 침몰,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사건은 물론이고 일상에서 수시로 접하게 되는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1차 정보에 접근해 자신이 직접 해석하고 판단하겠다는 태도는 드넓은 네트워크 세계를 종횡사해(縱橫四海)’하는 미지칭의 정보 공급자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다시 세우게 할 것이다.

 

언표이론을 기반으로 한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에피스테메는 담론 형성 조건에 대한 시대적사회적심리적 지평을 선험적으로 추상화한 게 아니다. 오히려 한 시대의 방대한 연구 성과를 엄밀하게 분석한 결과이자 그에 따른 경험론적 분류학(고고학)의 총화에 가깝다. 때문에 그는 어떤 에피스테메가 득세했다고 해서 특정 시대와 문화의 모든 사람들이 그 노선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일상의 우리가 시시각각 봉착하는 판단 의탁의 비주체적 상황의 총합은 결코 에피스테메가 아니다. 푸코는 개성적 주체들의 천변만화(千變萬化)를 세세하게 살핀 끝에 그 기저에 흐르는 바탕을 포착한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어떤 압력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외부에 대한 신체와 정신의 계루(係累) 혹은 길항(拮抗)이다. 그런 면에서 아비투스는 분석의 결과이기보다 논리적 추론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제반 조건과 유기적으로 조응하고 변형시켜 나가는 필연적인 성향이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가 본 것은 인간 내면의 구조이자 일종의 집단 무의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비투스는 개성적 주체를 갈망하는 우리에게 명시적 부정의 대상이지 체념하며 받아들일 용어가 아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압력에 대응할 때 우리는 일정한 공유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따라서 해석된 정보가 아니라 그 원형질에 다가가 직접 해석하고 판단하는 주체적 행위는 고도 정보화 사회의 주인공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에피스테메와 아비투스의 생산자로 우뚝 서는 길이기도 하다.

 

허상의 주체와 실상의 주체

 

가령 주말 종로 통인시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장년과 초로의 시민만이 아니라 이십 대의 새파란 연인들과 한복을 차려 입은 아가씨들이라고 할 때 그 비집단적 집합의 원인은 통인시장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값싸고 맛있는 도시락이 아니라 오히려 음식 품앗이를 마케팅에 적용한 전통시장의 유명세에 자신을 던지는 비주체적 자기보호 본능에 가깝다.

 

 

[그림2] 주말에 통인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풍경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주말 통인시장은 더 이상 생필품과 식재료의 유통 창구를 본질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복궁에 인접한 시티투어 코스이거나 전통시장 체험장이거나 청춘들의 다소 특별한 데이트 코스에 가깝다. 또한 다수성에 터 잡으려는 불안한 현대인의 비주체적 볼셰비키(Bol’sheviki, 다수파) 의식을 만족시켜 주는 심리적 기제이다.

 

어떤 외부적 사태에 대한 인식과 판단과 행동의 주체성 상실이 정보화 시대의 역설적 양상이라면, 실상의 주체가 사라진 비주체적 자아의 원인은 내부적이다. 허상의 주체는 스스로 자신을 벗어나 타자를 향한다. 실상의 가 아니라 잠재적인 허상의 ’(타자)를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 좋아하는 유명 배우의 옷과 가방과 선글라스를 선망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을 유명 배우에 연결 짓는다.

 

좋아하는 운동선수, 선호하는 정치인, 신뢰하는 작가, 존경하는 학자의 이미지를 향해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가는 , 그러나 디지털 신호의 단속적인 절연상태(絕連狀態)와 같은 불안정한 영상에 투사된 허상 혹은 시뮬라시옹(Simulation)을 만날 뿐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나는 허상을 와 동일시하는 비주체적 로 전락하고 만다.

 

가령 타르드(Gabriel Tarde, 1843-1904)자아의 참된 대립은 비자아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또한 “‘있음’, 즉 갖기의 참된 대립은 있지-않음이 아니라 가진 것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주체의 성격에 대한 엄밀한 형이상학적 존재론이다.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이다. 이미 누가 걸어간 길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첫걸음을 떼는 그 길을 가는 존재이다. 내게 이미 속성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삶, 그것이 주체적 삶이며 허상의 자아를 실상의 주체로 만들어 주는 길이다.

 

나의 귀속 범위가 나에게 본질적으로 밝혀주는 것은 역전된, 일시적인 또는 잠정적인 귀속들이라고 하면서 우리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소유물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할 때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염두에 둔 것은 물론 모나드 사이의 지배-피지배 관계에 관한 존재론적 문제이지만, 그것은 또한 도 알 수 없는 나의 어떤 가능성을 실행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일 수밖에 없다는 전언이기도 하다.

 

하나의 신체가 나의 모나드에 귀속되는 게 아니라 모나드들이 나의 신체의 부분들에 귀속된다는 역전, 모나드들이 일시적으로 나의 신체에 귀속된다는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가 이미 나의 부분으로 내게 잠정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가 다수의 타인이 형성해 놓은 어떤 틀을 맹종하지 않는 한 언제나 새로운 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가 된다. 그리하여 나의 고유한 소유물을 차츰 늘려가는 가운데 주체적 자아의 명석한 주름(pli)’은 공존하는 우리의 세계를 빛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가는 통인시장은 더 이상 비주체적 자기보호 본능의 플라시보 효과로서가 아니라 나의 참다운 주체성의 표현이 된다. 나는 이제 유명 배우의 옷과 가방과 선글라스와 상관없이 나를 표현하는 실상의 주체가 된다.

 

 

참다운 공동체를 위한 주체적 개인

 

판단을 의탁하고 행위를 위탁하는 주체 실종의 사회에는 건강한 공동체 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가 사라진 우리를 용납할 수 없는 이유이다. ‘가 아닌 우리에 빠지는 순간 헤어나기 어려운 집단의 굴레에 갇힌다. 이런 유형의 우리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 아닐 수 없다. 주체적 개인이 있어야 참다운 공동체가 성립된다.

 

해석의 정당성이나 공적 책임 의식보다는 조회수와 댓글에서 짜릿함을 느끼는 키치적 욕망만이 문제가 아니다. 또한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애써 해석과 판단의 주체가 되기보다 피동적 수용자에 그치고 마는 정보 수용자만을 탓할 수도 없다. 군사독재와 폭압적 권위주의 시대를 벗어나 권력 자체가 다기화(多岐化)된 민주화 이후 생활인들이 겪는 왜소증과 눈치 보기를 함께 지적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학사는 오랜 동안 의()와 사()의 전장이었다. 의미론과 표현주의 논쟁은 한 시대의 문학적 지평을 정의하는 큰 주제였기 때문에 치열한 쟁론으로 이어졌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궁이공(窮而公)’을 외치며 사륙변려체의 관습화된 복제 문학을 넘어 생동감 있는 작품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은 당시 흥기하던 사대부 계층의 청신한 개혁 기류를 옹호하여 귀족주의 체제를 벗어나려는 문학적 열망의 표현이었다. 이들의 고문 운동은 당나라 때 비롯되어 거금 400여 년 동안 지속된 치열한 논쟁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에게는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의 정신이 요구된다. 그 어떤 전범도 인정하지 않는 자아의 치열한 갱신의 태도야말로 개성적 주체를 가능하게 하고 이런 조건 위에서 진정한 다양성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다원주의는 주체의 공존이지 몰개성의 다기성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주체적 개인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전제가 아닐 수 없다.

 

할둔(Ibn Khaldūn, 1332-1406)해질녘 산들에 비치는 그늘처럼 마그레브 전체에 서서히 밀려오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이 그늘을 내가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알모라비데 제국(1056-1147)과 알모하데 제국(1120-1269) 등 강력한 국가가 흥기했던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 북서부 아프리카 마그레브(Maghreb) 지역의 몰락 원인을 유목민들의 강한 야전적 움란(Umran, 한 집단의 생활·심성·문화 등의 총칭)이 위축된 데서 찾았다. 기번(Edward Gibbon, 1737-1794) 역시 로마의 군인 정신과 용기의 쇠퇴가 제국을 파멸로 이끌었다고 했다. 군사적 아사비야(asabiyya)든 유목민들의 강인하고 튼튼한 움란 바다위(badawi)든 그 기층에는 개성적 인간이 있었으며, 기번과 마키아벨리가 주목했던 로마인의 비르투(Virtu)도 그 근저에는 어디까지나 동시대를 힘차게 살아간 주체적 개인이 있었다.

 

참다운 공동체의 조건이 우리 각자의 주체성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영광의 터전을 위해 허상이 아닌 실상에 전착하며 이념이 아닌 실질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주체적 다원성이 민주주의의 근거가 되고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다시 미래를 개척하는 영원회귀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언제나 당당한 주체들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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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8

헌법의 주체로서 광장의 국민에 관한 헌법해석적 검토

 

박찬권 _ 고려사이버대학교 법학과 조교수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나타난 광장의 목소리를 계기로 일반 국민들은 헌법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하는 촛불 집회와 이에 비해 소수였지만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집회에 모인 국민들은 각자 자신들의 주장이 헌법을 수호하는 길이라 외쳤고, 탄핵 심판을 담당한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이름으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였다. 이제 국민은 헌법 제1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조항만을 가지고도 그들이 국가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진정한 국민주권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미 도래하였다.

 

헌법해석의 기준으로서의 국민주권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국민주권이 단순히 광장의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와 같은 국가기관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헌법원리이자 동시에 헌법해석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무엇보다 국민주권의 헌법적 의미와 여기서 말하는 국민의 실체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국민주권이란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에게 있고, 국가의 모든 권력들은 이념적으로 국민의 의사에 귀결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국민은 헌법학에서 크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하여 설명된다. 하나는 이념적 통일체로서 국민, 즉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관념화된 전체국민이다. 주로 대의기관이 공익을 추구하는 의사결정에서 지향하는 추상화된 국민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국가기관을 구속하는 국민의 직접적 지시나 명령은 있을 수 없으며, 다만 자유위임의 원칙에 따라 대의기관은 자신의 객관적 양심을 가지고 그러한 국민의 의사를 추정할 뿐이다. 다른 하나는 현실에서 법적으로 실존하는 개개인으로서 국민이다. 주로 선거나 국민투표에 의한 주권의 개별적 행사로 나타나며, 이들의 주권행사는 대의기관을 구성하는 직접적인 결과로 경험된다. 그런데 우리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일반적인 헌법해석론에 따르면 전자, 즉 추정적 의사의 귀속주체로서 국민은 자연법적 이데올로기로만 볼 뿐 구체적인 헌법해석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국민의 선거로 선출되어 민주적 정당성이 강하게 부여된 대통령과 국회의 의사결정에 대한 관계에서 사법자제의 법리를 낳아 헌법의 적극적 실현에 사법기능이 기여할 여지를 현저히 좁혀놓았다. 과연 그러한 헌법해석의 태도가 타당한가? 이를 논하기 위해 우선 헌법해석의 고유한 특징과 그로 인한 해석적 한계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헌법해석은 국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근본법칙인 헌법원리들로 규정된 헌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세부적인 내용으로 규정된 일반 법률과 달리 주로 원리로만 규정된 헌법조항은 그 해석이 매우 다양하고 개방적인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모습은 헌법의 가장 근본원리인 민주주의원리에 관한 해석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관점과 태도로 민주주의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결론이 달라진다. 민주주의를 정치과정에서 지켜야할 규칙으로 이해하는 형식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다수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제정한 법률을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원리와 모순된다. 그러나 헌법적 가치실현을 위한 통치형태로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실질적 관점에서 종합한다면 국회의 법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통제는 소수자보호의 차원에서 자유·평등·정의 등 통합된 헌법가치실현을 위한 것으로 민주주의원리에 합치한다. 이렇게 동일한 제도적 상황을 동일한 헌법 원리로 평가하더라도 해석자가 어떠한 관점과 태도로서 이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헌법에 합치 또는 모순되는 서로 상반된 결과를 초래한다.

 

여기서의 모순이란 현실의 대상에 대하여 어떠한 헌법원리를 주장하는 것과 그러한 헌법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전제되는 것 사이의 대립이다. 이는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과정 안에 내재된 모순으로 그러한 모순이 헌법해석에 의해 지양됨으로써 평가의 대상과 관련하여 헌법원리는 간접적으로 인정된다. 예를 들어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효력이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해 좌우되는 앞의 경우 형식적 관점으로 민주주의원리를 분석한다면 헌법재판소가 다수결원칙과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 국회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현실의 제도적 상황은 헌법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를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하여 헌법원리가 주장된다는 점에서 모순이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관점과 태도인 실질적 관점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원리가 재해석되고 규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형식적 관점과 실질적 관점에 따른 분석과 종합이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반복함으로써 민주주의원리는 전체적인 헌법체계 안에서 그 해석의 적정성이 확보된다.

 

 

국민과 주체성의 상관관계

이처럼 복수의 원리들과 관점들이 서로 모순되거나 배척됨이 없이 규범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상호 조화롭게 공존 하도록 헌법해석은 정합성을 이루며 진행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모순은 헌법원리 안에 또는 헌법적 평가의 대상 안에 이미 존재하는 모순이 아니라, 현실의 대상에 대하여 헌법원리를 실현하려는 의식작용에 있어서의 자기모순이다. 의식작용은 자기모순을 지양함으로써 동일한 자기의식으로 정립해 나가는데, 이는 주체성의 문제로 이것이야말로 헌법원리가 실현되는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공통의 매개이자 일반 형식이다. 여기서 현실의 대상에 대하여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모든 의식작용이 시작되므로 주체성은 헌법의 원천이 된다. 주체성에 있어 자기모순은 지양되어야할 쟁점으로 작동하여 해석의 대상과 관련한 또 다른 헌법원리를 실현하는 점에서 동일한 자기의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출발조건이다. 출발조건으로서 의식작용의 자기모순은 형식논리의 연역적 추론에 따라 그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자기의식의 전체적 지평에 의해 역으로 그 의미가 규정됨으로써 대상과 관련한 모든 헌법원리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실현되는 형태로 결론된다. 따라서 각각의 헌법원리들은 의식작용의 자기운동을 통한 주체성을 매개로 통합됨으로써 내적으로 연결되고 전체적인 헌법체계를 구성한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주체성이 누구의 주체성이냐라는 것이다. 국회나 헌법재판소와 같은 헌법기관은 헌법체계로부터 도출된 기관에 불과하기에 헌법의 원천이 되는 주체로 볼 수 없다. 결국 이들 헌법기관이 헌법을 해석함에 있어 지향하는 근본원리인 헌법 제1조로 다시 돌아가서 볼 때 주권의 주체인 국민과 그러한 국민을 구성하는 기본권 주체인 개인에게서 헌법의 원천이 되는 주체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 주체란 자유로운 의식에 따라 판단하고 행위하는 실체를 말하며, 주체성은 이러한 실체가 자유로운 의식에 따라 판단하고 행위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으로서 개인에 의해 이 주체성은 우선적으로 발현된다. 개인은 의식과 대상을 번갈아가는 순환과정을 통해 의식의 대상을 자기 동일화한다. 주체와 동일화하는 과정에서 대상은 존재 자체의 직접성이 부정되고 그 본질이 드러나는데 이는 주체의 입장에서 반성이다. 개인은 부정성을 지닌 자신의 반성적 의식작용을 진행함으로써 대상과의 자기동일성을 계속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작용이 진행되는 가운데 개인은 대상 안에 계속 머무르는 의식작용의 보편양상인 사태 자체를 경험한다. 사태 자체는 개인의 개별적 본성이나 주관적 의식과는 달리 대상을 매개로 추상적 형식을 지닌다. 개인의 주체성은 이 사태 자체를 토대로 대상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제 자기 동일화는 다른 개인들의 의식작용과 필연적 관계를 맺으며 발생한다. , 주체성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는데 그 최종형태가 바로 국민(das Volk)이다. 여기서 국민은 모든 개인들이 공동의 주체성을 형성·유지하며 동시에 각자의 개별적 의식작용을 실현하는 장으로서 하나의 시·공간을 의미하는 관념적 개념이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국민은 그동안 여러 정치·사회·문화·역사적 맥락과 결부되어 민족, 국민, 인민, 민중, 백성 등 각자 복합적 의미를 함축한 다양한 개념으로 불리어져 왔다.

 

국민의 주체성은 개인의 주체성이 공동체 차원으로 고양되는 것이기에 개인의 반성적 의식작용에 따른 부정성이 항상 수반된다. 이로 인해 공동의 의사를 새롭게 형성하는 운동이 끊임없이 지속될 수 있으며, 자기동일성과 모순되는 제도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공동체 내 공적·사적인 모든 생활의 동화적 통합을 이루는 정신작용으로서 국민의 주체성이 드러난다. 동화적 통합과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국민적 차원의 법칙과 원리는 각 개인들에 의해 공감되어 규범화되는데 이것이 헌법(die Verfassung)이다. 헌법은 국민의 전체적 통합과정으로 실현되는 것이기에 탄력적이며 동태적으로 작용한다. 한편, 통합과정으로서 헌법 안에는 그것이 지향하는 추상적 형식의 원리들과 그것의 이론적 구성물인 체계가 사태 자체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국민의 주체성은 이러한 원리와 체계를 정신작용의 근거인 동시에 지향점으로 삼아 끊임없는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데, 이렇게 통합과정으로서 헌법 안에 내재한 추상적 형식의 규범이 헌법조문이나 헌법재판소의 판례로 공식화한 것이 실정헌법(das Verfassungsrecht)이다. 실정헌법은 현실을 일방적으로 도식화하는 규정된 체계가 아니라, 생동하는 정신으로서 국민의 주체성이 동태적인 헌법으로 드러날 수 있게 자유롭게 부유해 있는 개별 원리들의 체계로 존재한다.

 

 

국민주권의 실현을 위하여

그러면 헌법과 실정헌법으로 발현되는 국민의 주체성은 국가와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Hegel에 의하면 세계정신이 출현하는 과정을 볼 때 기존의 세계정신과 새로운 세계정신 사이에는 내적 연속성이 없이 단지 대체되어질 뿐인데, 이는 국가를 통해 실체화된 국민이나 민족 정신들 간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세계정신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은 국가(der Staat)의 상태로 들어가야만 객관적 실체를 확보할 수 있다. 국가는 특정 시점의 특정한 의사를 법률과 권력으로 정립함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드러낸다. 국가의 주체성은 국가조직의 정점에 있는 기관, 즉 행정부와 입법부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인적 집단에 의한 궁극적 결단이 곧 국가의 개체적 인격으로 간주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정점에 있는 국가기관의 의사결정은 국민의 주체성으로부터 독립하여 별도로 생성되기에 국가는 형식적으로 자신만의 주체성을 배타적으로 전개한다. 그러나 국가의 의사결정이 국가 내에서 대내적 보편성과 실효성을 담보받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최종 주체성인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가기관은 헌법과 실정헌법으로 발현되는 국민의 주체성을 자신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사실적인 것의 규범력이라 한다.

 

국가조직을 구성하는 각 국가기관들의 특수한 의식작용들도 그들 각자 안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국민의 주체성을 의식하는 가운데 하나의 의사로 수렴되는 과정을 통해 국가는 유기적 조직으로 고양된다. 또한 국가의 의사결정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 각 개인들은 국가의 의사에 따르도록 스스로 내적인 규범의식에 의해 동기 지워지는데 이로써 국가의 법률과 권력은 사회심리적 실효성을 가진다. 이는 국가의 행위가 국민의 주체성에 의해 승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의 승인은 국가에 대해 무엇을 규정할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적 기준으로만 작용함으로써 규정되지 말아야 할 것을 소극적으로 통제하는 역할에 그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하여 국민은 항상 소극적 지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헌법전에 규정된 선거와 국민투표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헌법가치를 수호하러 광장에 집결하는 현상을 통해 국민은 국가작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러한 적극적 의미의 국민은 각 개인들의 의식작용이 일정한 권위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주체성을 응집시켜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상태로 나타난다. 선거에서 주요 정당을 중심으로 국민의 의사가 수렴되는 현상이라든지, 매스컴의 보도나 일정한 사람들의 행위로 나타난 사실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 광장으로 집결하는 현상은 국민이 공적인 현존으로 경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살과 피를 가진 개개인의 형태로 경험되는 구체적인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die Nation)은 시·공간의 장으로서 관념화된 국민, 즉 헌법과 실정헌법의 배후에 정신작용으로 존재하는 국민과는 구별된다.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은 특수한 자기목적적 범주를 형성하며, 그 범주 안에서 각 개인은 어떠한 권위를 중심으로 응집된 것만으로 상호연대를 이룬다. 이는 범주의 폐쇄성으로 이어져 다른 목적으로 범주를 형성하려는 타자의 주체성과 현실적으로 대립하면서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점에서 앞서 본 동화적 통합과정에 있는 의식작용의 장으로서 국민과 차이가 있다.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 안에 있는 각 개인은 자신의 특수한 정치적 실존을 의식하고,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규정하는 주체성을 지닌다. 최근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공적 사명을 가진 국민으로 광장에 참여하였고, 그것이 구체적 영향력을 지닌 현실상의 실체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그들의 집합체는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에 해당한다.

 

그러나 범주의 폐쇄성으로 인한 정치적 대립은 공동체의 분열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가공동체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의 배후에 그들 모두가 하나의 시·공간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관념화된 국민의 주체성이 동화적 통합을 이루는 헌법의 원천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음으로써 상호 의사소통과 실천적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정신작용으로 국민의 주체성을 지속적으로 구성해 나간다. 이는 국민의 주체성 실현이 열려진 영역 위에 여론의 형태로 나타나는 점에서 공론이라 할 수 있다. 공적인 현존으로서 국민(die Nation)이 적극적인 모습을 띄며 범주의 폐쇄성을 통해 정치적 구분을 지운다 해도 각 개인의 반성적 의식작용을 수반하는 국민(das Volk)의 주체성이 그 배후에서 항상 작용을 할 때라야 국가 작용의 실질적 효력을 담보하는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된다. 개인의 반성적 성찰과 자유로운 표현은 그들의 이질적 주체성이 의사소통과정에서의 평등한 참여를 통해 국민의 주체성을 재정립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주체성을 원천으로 하는 헌법은 세대를 초월하여 동질성과 역사성을 지닐 수 있다. 실정헌법 또한 통합과정으로서의 헌법이 지니는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다. 따라서 실정헌법으로부터 도출되는 국가권력은 헌법적 가치실현의 원천인 국민의 주체성이 개인의 반성적 의식작용을 수반하여 항상 작용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을 분할한다. 국가의 민주적 정당성은 이러한 기능적 권력통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국민의 전체적 통합과정을 실현하려는 헌법의 동태적 작용으로 반영되는데 실정헌법은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워 이를 확보한다.

국민의 주체성이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 이루어짐은 실정헌법, 특히 여러 헌법조문에서 잘 드러난다. 헌법의 제정과 개정은 먼저 대의기관인 국회나 대통령의 발의가 있은 후 국회의 의결을 거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된다. 국가권력의 어떠한 행사도 이를 다시 한 번 통제하는 절차를 거침으로써 특수한 국가기관의 주관적 의사가 국민의 주체성과 괴리됨은 없는지 반성적 고찰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국회의 법률제정과 개정 또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와 재의요구권을 통해 국민의 주체성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한다. 또한 대의기관에 임기제를 둠으로써 대의기관을 구성하는 개인이나 인적 집단은 그들이 판단하는 국민의 추정적 의사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진다. 뿐만 아니라 선거를 통해 발현되는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구분과 대립은 대의기관이 대신 정치적 책임을 짐으로서 공동체의 분열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 탄핵심판에 의해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도 촛불집회로 나타난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과 태극기 집회라는 다른 공적 현존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대립을 헌법기관의 정치적 책임으로 대체한다. 이 경우 헌법재판소는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고 전체국민의 주체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완충적 성격을 지닌다. 결국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 및 국가기관의 의식작용 배후에는 국민의 주체성이 작용하며, 그것을 원천으로 하는 동화적 통합과정인 헌법은 국가의 작용에 보다 완성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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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6

전능했던 주체와 무기력한 주체, 그리고 파상(破像)의 힘

 

 

임명현 _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석사, MBC 기자

 

아주 예전부터 나에게 허락된 인생이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여러 번 살 수 있다면, 아주 주류처럼도 살아보고, 또 아주 비주류처럼도 살아보고, 권세와 쾌락 이기심을 추구하면서 살아보고, 신앙와 윤리 이타심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보고... 아니 최소한 두 번은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한 번은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다른 한 번은 남이 살아보라는 대로 살 수 있지 않은가. 허황된 생각이었다. 내가 살 수 있는 삶은 단 한 번뿐이다. 그나마 이 삶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평균 수명이라는 통계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100년을 갈 수도 있지만 당장 내일 끝날 수도 있는 것이, 예측 불가능한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 불만은 있었지만 그럭저럭 내 삶은 연속성을 가지고 흘러왔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제도권 교육과정을 마쳤다. 21세기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에 입사했다. 사회부, 정치부, 스포츠취재부 등을 거치며 10여년을 보냈다. 흐름에 수동적으로 몸을 맡기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순간순간 물꼬를 트고 물길을 잡는 선택은 내가 내렸다. 때때로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진력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성찰하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기획했다. 그렇게 앞으로의 삶도 살아갈 작정이었다. 다양한 분야에 풍부한 취재경험을 가진 좋은 기자가 되고 싶었다. 권력에 불편부당하고 낮은 자들에겐 친절한 뉴스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에서 의미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의미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다. 그것이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삶에 대해 내가 가진 태도였다. 그렇게 살아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살아있는 삶이고 싶었다.

 

2012년이 변곡점이었다. 그 해 이후 내가 저널리스트로서 그려가던 서사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파업이 있었다. 170일 간 벌어진 파업이었다. 그 파업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기자로서 나의 서사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종료되었다. 그 종료가 일시적인 것인지 영구적인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2017년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인 것만 분명할 뿐이다. 나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좋은 기자, 좋은 뉴라는 비슷한 꿈을 함께 꾸고 그렸던 선후배 동료 상당수가 유사한 처지가 되었다. 더 이상 MBC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좋은 뉴스를 만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은 자들이 만들어 방송하는 MBC의 뉴스가 좋은 뉴스인 것도 아니었다. 전혀 권력을 향해 불편부당하지 않았고 낮은 자들을 향해 친절하지도 않았다. 되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권력을 향해 친절했으며 낮은 자들을 외면하고 멸시했다. 세월호 참사 보도가 그 대표적 증거다.

 

이러한 MBC의 상황을 문제적으로 느낀 이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했다. 성찰했다. 헤게모니를 쥔 경영진이 바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말했다. 썼다. 일상적으로 그들과 교섭했고, 사내 게시판에 문제제기를 하는 글을 썼다. 성명서를 썼다. 피켓팅을 했다. 구호를 외쳤다.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말과 글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오히려 반격을 불렀다. 말하고 쓰는 이들이 보복당했다. 징계를 받고 뉴스의 외부로 배제됐다. 말하고 쓰지 않았던 자들은 이 광경을 보며 분노했지만 동시에 위축됐다. 말과 글이 힘이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행동에 나설 수도 없었다. 이 모든 일들이 패배한 파업의 후폭풍이었기 때문이었다. 말과 글뿐 아니라, 실천의 힘까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더 이상 성찰할 수 없었다. 문제 상황을 이해하고 우리의 언어로 인식하는 작업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성찰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한들 그 깨달음이 가진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획도 할 수 없었다. 말과 글은 물론 실천의 힘까지 상실한 상태에서 어떤 기획을 한들 그 기획이 우리의 문제 상황을 변화시킬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찰도 기획도 할 수 없는 상태, 이것은 파산을 의미했다. 좋은 기자, 좋은 뉴스를 향해 흘러가던 나와 우리의 꿈이 파산했음을 의미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더 좋은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려가던 나와 우리의 서사가 파산했음을 의미했다.

 

나와 우리는 지난 몇 년 사이 너무도 극과 극의 주체를 경험해야 했다. 적어도 파업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MBC 내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느꼈다. 사주가 없는 공영방송, 그러면서도 정부가 직접 지분을 갖지 않은 공영방송이라는 지배구조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했다. 그것이 MBC였다. 어느 기업이든 사장은 나름의 지배적 아우라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사장을 월급사장이라고 불렀다. 사장이 가진 존재감을 체감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이후 모든 것이 해체되면서 우리는 새로운 주체가 됐음을 절감해야 했다.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주체였다. 좋은 기자가 될 수 없었고 좋은 뉴스를 할 수 없었던 차원을 넘어,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조차 분석할 수 없었다. 성찰할 수 없었다. 해봤자 소용이 없기에. 또 문제적 상황을 변혁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기획할 수 없었다. 해봤자 소용이 없기에. 그렇게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전지전능한 주체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한 주체 모두를 동시에 경험했다.

 

전능한 주체였던 시절 나와 우리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근질근질한체질을 갖고 있었다. 마음 속에 그린 아이템과 기획안이 방송물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선순환을 자주 목격했다. 뭔가를 해야만 했고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러나 무기력한 주체가 된 우리는 이제 뭔가를 하는 것이 불안한체질로 변화됐다. 해도 안 되기 때문에 무기력하고, 나아가 이것을 했다간 우리 모두가 끝장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불안하다. 그토록 전능하게 느꼈던 우리의 뉴스, 우리의 직업, 우리의 선배, 우리의 노조가 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를 논의하는 게 두렵다. 탄핵된 구 권력과 새롭게 등장한 신 권력, 그리고 사회 곳곳에 변화의 물결이 이는 것 같은 지금의 장면을 보면서도 뭔가 새로운 기획에 나서는 것이 두렵다.

 

전능했던 주체였기에 타자의 탓을 할 수 없다. 우리가 패배한 것은 우리의 탓이다. 또 전능했던 주체였기에 우리의 구원을 타자에게 부탁할 수도 없다. 우리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라는 주체는 전능한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주체다. 그렇기에 나와 우리에겐 외부가 없다. 이건 네 탓이라고 귀책사유를 돌릴만한 외부가 없다. 또 제발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눈물로 기원할 만한 대상으로서의 외부도 없다. 외부를 탓하고 외부에 구원을 위탁하는 우리 스스로를 여전히 수치스럽게 느끼는데, 외부를 탓하고 외부에 구원을 위탁하지 않고서는 이 무력한 주체를 탈피할 수도 없다. 어떻게 이렇게 지독한 모순이 있을까?

 

엄기호(2016)의 관찰을 빌리면 외부가 없는 주체에게 가능한 것은 숨는 것뿐이다. 그의 표현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알처럼 웅크려 들거나 누에고치로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렇게 숨어서 바깥을 내다보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 우리는 숨어 있었다. 각자에게 허용된 공간에 최대한 숨은 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최대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애써 스스로의 감정을 탈각화했다. 때로는 그냥 회사일 뿐인 MBC에 그동안 너무 내 인생을 쏟아부었다며 이젠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자 다짐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이질적 주체는 차단하고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소수와의 밀도를 끌어올렸다. 그런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살아가기 위해 살아있는 게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삶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극과 극의 모순된 주체를 오간 우리가 지난 몇 년의 시대를 버텨낸 방법이었다.

 

다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9년 전 내심 전능한 주체로 보수정권의 시대를 직면했던 나와 우리는 이제 고갈되고 메마른 무기력한 주체로 새로운 정권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시대를 열기 위해 한국사회는 초유의 국정 농단 사건과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이라는 누구도 예상 못한 길을 헤쳐나와야 했다. 어떤 힘이 시대를 밀고 온 것인가.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상상력인가? 그 상상을 구체화하는 기획력인가? 아닌 것 같다. 김홍중(2016)의 개념을 빌면 나는 이 시대를 밀고 온 힘은 파상력(破像力)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파상이란 기왕의 가치와 열망의 체계들이 충격적으로 와해되는 체험이다. 바로 나의 체험이었다. 좋은 기자, 좋은 뉴스에 대해 갖고 있던 기왕의 가치와 열망의 체계가 산산조각난 체험을 했다. 또한 이것은 바로 한국사회의 체험이었다. 세월호 참사,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가깝게는 구의역 김군과 최순실게이트에 이르기까지, 국가공동체와 민주주의, 안전, 한 인간의 존엄 등이 파상된 체험을 우리는 일상화해왔고 그 파상된 조각, 깨진 꿈을 끌어안은 채 버텨왔다.

 

파상력이란 그러한 버팀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김홍중의 말대로 이런 파상의 시대에서 우리는 각자의 기획을 실천하는 행위자라기보다는 깨져나가는 어떤 것을 경험하는 겪는 자에 가깝다. 이때 행위가 갖는 힘이 있듯이, 겪는 것이 갖는 힘 또한 있다. 그 힘은 깨진 꿈과 아직 오지 않은 꿈 사이에 펼쳐진 이 지독한 가위눌림과 환멸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겪어내는 힘,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의 근거를 그 파편들 속에서 찾아내려는 자세다(김홍중, 2016). 나는 이러한 파상의 시대의 저항이라는 것은 체제를 무너뜨리는 정치적이고 혁명적 행동이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제시된 정체성과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행위(박명진, 1991)에 보다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해왔던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어있었지만, 무기력했지만, 그것은 말과 글이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강제하는 정체성과 통제를 체화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 끝에 찾아낸 실천 전략이기도 했다.

 

나는 그러한 버팀이 가진 힘을 긍정하기로 했다. 기획과 행위만큼이나, 버팀과 겪는 것이 가진 힘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시대 저마다 파상의 조각을 끌어안고 버텨온 내 자신과 동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스스로가 전능한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가 겪은 모순된 주체, 전능함과 무기력함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새로운 우리의 주체를 찾아야 하고 그 과정은 상상의 결과인 필연이 아닌 파상의 결과인 우연 속에서 어느 순간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버팀겪음의 힘이 황폐화된 내 삶의 무대, 공영방송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며 새로운 길을 뚫고 예기치 않은 희망이 생성되는 장면을 곧 목격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참고한 글>

김홍중. 2016. 사회학적 파상력. 2016. 문학동네.

박명진. 1991. 즐거움(Pleasure), 저항, 이데올로기.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社會科學政策硏究> Vol.13 No.2, 67-95p.

엄기호. 2016.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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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5

전문등반을 하는 여성들의 주체성

 

김세옥 _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 한국여성산악회

 

 

 

산에서 발견한 여성의 역사-산에도 여자가 있었다

등반은 무상(無償)의 행위이다. 올랐다는 사실외에는 어떤 보상도 없다. 물리적인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니까 반자본주의 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산에 간다. 등산에 입문한 후 나의 의문은 왜 목숨걸고 등반할까?’였다. 하지만 인류는 한계에 도전하는 위대한 본성으로 죽을 수도 있는 신대륙, 남극, 북극, 히말라야에 도전하며 인간의 대서사를 만들어왔다.

유산(遊山)을 목적으로 산에 가던 인류는 200여 년 전쯤부터 더 높이 오르겠다는 욕망으로 근대등반을 시작했다. 적지 않게 남아있는 조선 선비들의 유산기에서 알수 있듯 이전의 산은 도전의 장이라기보다 바이오필리아 적 즐거움을 주는 놀이터였다.

유럽에서도 눈과 얼음으로 싸여있는 높은 산들은 인간 접근을 불허하며 악마가 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한계와 위험에 도전해 온 인류는 1786년 알프스 최고 봉우리 몽블랑4810m에 오른다. 그것을 시작으로 히말라야 8천미터 봉우리들에도 앞다투어 올랐다. 초기 고산등정은 경쟁적으로 대규모 물량을 쏟아 붓는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다. 1953년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영국이 시기를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에 맞춘 일에서 보듯 고산정복은 국력과시의 수단이었다.

 

오늘날 등산은 대중화되어 있지만 초기 등반은 많은 물자와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엘리트만이 가능했던 귀족등반이었다. 일제시대 백령회로 비롯된 한국의 근대 등반도 친일혐의를 벗을 수가 없으며 해방 후에도 대학산악부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런 등반환경은 젠더적으로 불평등한 여성들의 접근을 매우 어렵게 했고 등반욕망을 가진 여성들을 좌초하게 만들었다.

필자가 산과 등반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여 놀랍고 매력적인 등반역사에 빠져 있을 때 인간의 다른 역사가 그렇듯 여성의 역사는 보이지 않았다. 치열한 산의 역사속에 눈에 띄지 않던 여성의 희미한 발자국을 발견한 놀라움이 공부의 시작이었다. 척박한 등반환경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실천한 여성들의 역사와 궤적을 찾아낸 일은 여성학공부와 등반을 동시에 시작한 필자에게는 필연이었다. 남성중심의 산에서 여자들도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목숨걸고 등반한 흔적은 감동이었다. 등반을 인문학적으로 연구한 사례는 드물었고 등반하는 여성을 연구한 일은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등반은 남성의 전유였고 여성의 등반은 스캔들로 불리우기까지 했다. 등반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산악회 규율은 군대같은 상명하복이고 초기 산악회는 여자를 입회조차 시키지 않았을 만큼 등반문화와 조직은 여성에게 배타적이었다. 현재도 그리 달라지지 않은 풍토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등반 욕망을 추구하며 치마를 입고 산에 갔다. 발목까지 닿은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등반하는 여성들은 전복의 상징이다. 여성억압과 섹슈얼리티 통제의 상징인 치마를 입은 채로 산을 욕망하며 등장한 여성들은 여성 금기의 현장인 '산과 등반'에 균열을 내고 자신의 욕망을 실천했다.

 

등반은 예측 불허한 자연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등반가 앞에 주어진 장애를 극복하는 운동이다. 생존이 어려운 고산이나 수천길이의 거벽 등 대부분의 등반지는 자연의 가혹함과 가변성으로 위험이 상존한다. 고도로 단련된 강한 몸과 정신으로 집중해도 위험한 등반에서 그 행위를 지속하게 하는 육체적인 행위성과 정신적 사유의 결집인 이 등반수행성을 등반가들은 '알피니즘'이라고 부른다. 물리적으로 강하고 제도적으로 유리한 남성들도 추구하기 어려운 '등반과 알피니즘'을 자신의 삶을 관통시키는 테제이자 세계관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등반가들이 존재했다. 등반에 매료된 여성들은 도제식으로 힘들게 등반을 배우며 '등반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림1] 치마입고 등반하는 초기 여성등반가

(출저: 메스너, 레인홀드,정상에서(2012) )

 

여성들의 서사-강한 등반가/인간/주체성

 

등반의 한계에 도전하고 남성 주도의 산 문화와 조직에 저항했던 여성들의 등반은 여성주체로서 수행한 등반이라는 역사성을 남겼다. 가부장적 조직과 문화를 수용할 수 없었거나 귀속이 불가능했던 독립적인 여성등반가들은 남성적 규범과 질서와 충돌하고 조정하는 한편 끊임없이 그 경계를 교란하고 전복을 시도하며 자신들만의 등반성을 구축했다. 삶의 경로에서 대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산과 등반을 배치한 여성등반가들은 자신이 경험한 성차와 젠더적 경계의 모순을 갈등/전복/극복하게 된다.

70년대 여성 불모지의 산악지형에서 젠더/시대적 한계를 이겨내고 한국최초/여성/동계히말라야등정이라는 역사를 쓰며 안나푸르나8091m를 동계 등정한 김영자, 남성들의 세상과 불화를 마다하지 않으며 자주적인 등반을 추구하고 삶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최초의 여성/단독/동계/태백산맥종주라는 뛰어난 등반사적 자취를 남기고 "낮은 산"이라는 새로운 등반의 장을 제시한 남난희, 여성등반대라 할지라도 남성등반가들 지원하에 조직되었던 당시 풍토에서 자발작인 여성등반대를 조직하여 히말라야가 아닌 알래스카 맥킨리6194m를 자력으로 등반하여 여성/최초/자력/비아열대 등반이라는 기록을 남긴 <‘88년 여성 맥킨리등반대>, 뛰어난 체력과 등반력을 지니고 남성들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위력으로 토왕폭 빙벽등반을 로프없이 단독등반한 전위적인 등반가 김점숙,

 

이들의 성취는 여성등반가도 한계 극복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전위적이고 첨예한 등반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생물학적 여성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여성등반가의 물리적 힘과 등반기술력을 증명한 전설과 신화였다. 그 신화는 후배 여성등반가들에게 미래와 변화의 꿈에 대한 명징한 메시지가 되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상처와 영광을 딛고 올라서 지금여기에서 나아감넘어섬을 도모하고 실현한다.

여성등반가들은 신화의 이면에 있던 배제의 상처와 젠더적 그늘을 걷어내고 스스로 주체가 되는 등반을 시작한다. 여성과 남성의 다른 문화, 관계, 소통, 몸 등의 차이가 여성등반가들에게 좌절과 부담으로 작동하여 남성들과 함께하는 등반을 거부하게 되고 여성들만의 등반과 연대를 모색하여 여성등반대를 조직한다. 강한 힘과 높은 등반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산 거벽 등반은 성격상 남성/여성은 리더/보조, 선등/후등라는 성별화된 이분법이 강하게 재생산되는 문화였다. 그러나 스스로 조직한 여성들만의 알파인 거벽원정대는 성차별적 질서와 위계를 흔들며 자신들만의 꿈을 실현한다. 2006년 조직된 아줌마등반대는 등반의 발원지 유럽을 거쳐 2012년 남미 파타고니아 피츠로이3405m를 아시아 여성 최초로 등반해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2013년 다시 파키스탄 트랑고 타워6286m를 올라 여성등반대의 위력을 과시한다. 이제 고산거벽도 여성들만으로 등반이 가능함을 세상에 보여준 것이다.

 

산에서 좋아하는 것(욕망)을 하며(실현) 잘 나가는 그녀들

 

한 사람의 클라이머cilimber가 된다는 것은 일상적인 몸의 단련으로 힘과 등반력을 높여서 산이라는 공간을 통제할 수 있는 힘과 기술력을 체화한 힘센 몸을 지녔다는 의미가 된다. 힘이 생긴다는 것은 대상을 제압할 수 있는 강한 '몸적 파워'와 역경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의지력이 동시에 견지되어야 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여성등반가들이 몸의 단련과 강화인식적 여성주체가 확장되는 경험을 말한다. 물리적 힘이 쎄어지는 몸적 임파워링empowering은 개별 여성등반가의 등반현실과 삶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등반'이 인류에게 주는 위로와 쾌락을 여성들도 즐기며 산에서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해왔다. 전문등반을 하는 여성들이 지니는 페미니즘적 의의는 성차와 젠더적 난관에도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가족/모성/결혼/로맨스 등의 이데올로기로 여성의 자발적 공모를 획득한 가부장제와 갈등하면서도 등반가로서의 욕망실현을 위하여 과감히 '비혼(非婚)과 비출산' 전략으로 젠더 역할을 조정했으며, '자발적 실업'과 자기자원의 개발로 등반 욕망과 생존을 구획하였다. 여성등반가로서 지닌 주체성과 행위성이 가부장적 시스템을 교란시킬 때 마다 억압과 차별과 소외가 노정되었지만 자신들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전면화하며 가족/연인/공동체 등 자신의 주변은 물론 시대와의 불화도 감행했다. 산과 등반에서 여전히 여성등반가의 욕망은 순조롭게 발현되고 있지 않지만 또 그런 만큼 여성주의 정치학적으로 의미를 지니게 되는 양가성을 가진다.

 

개별 여성이 억압과 장애 없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그것이 개인적 복지와 쾌락으로 구현되는 것이 여성주의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행위주체로서 자기욕망을 수행하고, 실존에서 배타적인 선택과 협상이 가능한 주체로 변화하는 것이 여성주의적 진화이다. 등반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높은 의지로 몸을 단련하고 고산/거벽을 등반하는 특수하고 힘든 과정을 수행하며, 그것을 통해 주체성을 획득하고 젠더 위치를 재배치하는 협상력을 보이는 여성등반가들은 젠더적 경계에서 다소 분열을 겪고 있긴 하지만 여성주의 실천의 주체이다. 자신의 힘과 주체성으로 등반욕망을 실천하고 있는 여성등반가들은 산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전문등반이라는 독특한 시간과 경험을 구성하며, '여성주의 정치성'을 구현하고 있다. 산이라는 현장에서 여성등반가들이 실현하고 있는 알피니즘은 여성주체성의 다른 이름이다.

 

 


주1) biophilia 인류는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친자연적인 유전인자 가지고 있다는 미국 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이론이다.

주2) 등반가들은 정복이라는 제국주의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 예측할 수 없는 눈사태나 수천의 낭떠러지로 추락하여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인간의 존재는 대자연 앞에 절대 약하고 초라하다는 점을 절감하기 때문이고 신이 허락해야 잠시 다녀올 수 있다는 겸손함이 저절로 생기기 때문이다.

주3) 1808년 유럽 최고봉 몽블랑에 여성 최초로 오른 18세의 '마리 파라디스'를 남자들은 부추김과 대중적 명성을 얻기 위한 등반의 스캔들이라고 야유했다. 여성 최초 등정을 인정해주기보다 여성의 도전을 가십으로 취급하려는 남성우월주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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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2

장애인 입장을 이해시키는 연구, 제가 할 일이죠

입는 로봇 기술 연구팀, 공경철 교수 인터뷰

 

 

 

 

무적의 슈트를 입고 악당을 물리치는 영화 아이언맨을 보셨나요? 하지만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인간이 로봇처럼 옷을 입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입는 로봇 워크온으로 사이배슬론대회에 출전하여 세계 3위로 팀을 이끈 기계공학과 공경철 교수를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 및 편집 양계영, 정재원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안녕하세요. 먼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공경철(이하 공)> 서강대학교 2000학번입니다. 기계공학과로 입학해서 물리학과를 복수전공 했고요. 서강대학교에서 석사졸업 후 미국에 2006년에 유학을 가서 2009년에 박사 받고, 현재는 우리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로 있습니다. 분야는 제어전공을 했고, 응용 대상은 로봇입니다. 로봇공학은 융합 분야라서 로봇을 만들기 위해 기계 설계도 해야 하고, 제어도 해야 하고, 디자인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할 게 많아요.

 

서강> 제어 쪽으로 전공을 확정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셨어요?

 

> 학부 3학년 때부터 유학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제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본교에서 석사까지는 마치고 싶었습니다. 석사 전공분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유학을 잘 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다는 교수님의 전공분야가 제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학원에서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걸 하고 싶었어요. 대학원 갈 때 누구나 고민 많이 하잖아요. ‘대학원 가면 바로 취직해서 사회 생활하는 친구들에 비해 어떤 점이 나을 것인가하는 생각... 공부하는 기간 동안 받을 수 있는 회사월급 같은 기회비용도 생각이 나고요. 이런 여러 고민을 했을 때 제어분야가 제일 마음에 들더라고요.

 

서강> 교수님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교재를 직접 제작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많은 교수님들이 다른 사람이 쓴 책을 활용해서 강의를 하시잖아요? 저도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제 박사 지도교수님 강의를 듣는데, 직접 쓰신 교과서로만 강의를 하시더라고요. 이유를 여쭤봤더니 다른 사람이 쓴 책으로 강의하면 말투나 문제 푸는 방식이 달라서 학생들이 헷갈릴 수도 있다고 하시는데, 뭔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교수가 되면 반드시 직접 만든 교재로 강의해야지 하고 다짐을 했지요.

그런데 학교로 돌아와서 진짜 해 보니, 직접 만든 교재라는 게 학생들에게는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출판된 교과서를 쓰면 미리 읽어볼 수도 있고 연습문제도 풀 수 있고 한데요. 그렇지 못한 경우에 학생들이 오히려 힘들 수도 있기도 해요. 하지만 적어도 학생들이 제 열정을 알아주는지, 오타 가득한 교재라도 잘 따라와 줘서 즐겁게 강의하고 있습니다. 어설프더라도 매 강의마다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벌써 9권을 만들었어요. 매년 똑같이 강의하는 과목은 매년 교정을 하니 어느새 내용과 질도 많이 좋아지고,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자고 연락도 오는데 거절했어요. 굳이 그렇게 상업인 목적으로 쓰고 싶지는 않네요. 그냥 서강대에서 제 강의 듣는 친구들을 위한 특권으로 하고 싶어요.

 

 

[사진1]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웨어러블 로봇 엔젤렉스(Angelegs)

 

서강> 장애인을 위한 입는 로봇 엔젤렉스(Angelegs)와 워크온수트(Walk-ON Suit)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셨는지 소개해주세요.

 

> 제가 석사 때부터 근력이 약화되어 걷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시는 노인을 도와드리기 위한 여러 기초 기술들을 연구했어요. 박사과정 중에도 계속 그쪽으로 연구를 했고요. 서강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는 연구실 셋업도 해야 하고, 학생들 지원해 주려면 연구과제도 따와야 하고, 여러 할 일이 많잖아요. 교재도 준비해야 하고. 2011년에 서강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늦어져서 보조로봇을 활발하게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가을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기초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로봇이 바로 엔젤렉스(ANGELEGS)라고 하는 로봇입니다. 근력이 약화된 노인이나 경미한 마비환자를 돕기 위한 로봇이지요. 비슷한 대상자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으로 일본의 HAL이라는 것이 있는데, 엔젤렉스는 HAL과는 달리 몸에 붙이는 센서 없이도 훨씬 자연스럽게 보조할 수 있어요.

반면에 워크온수트는 완전히 마비가 된 장애인을 위한 로봇이에요. 마비가 되면 움직일 수 없지만,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의도를 어떻게 파악하는지, 그리고 균형을 잘 유지하게끔 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등 좀 더 민감하게 설계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요.

제 생각에는 엔젤렉스가 훨씬 더 많은 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고 더 실용적인 로봇이라고 믿었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어차피 조금 걷는 사람이 입는 거니까, 그 사람이 걷는 건지 로봇이 도와주는 건지 감흥이 별로 없는 거에요. 연구자가 다른 사람 눈을 신경쓰면 안 되는데... 그래도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실제로 감흥이 좀 있으려면 완전마비 장애인이 로봇을 입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걸어 다니고 하면, “!” 하잖아요. 근데 엔젤렉스는 그런 게 없었던 게 문제였나봅니다. 그런 면에서는 워크온수트가 참 많은 감동을 가져다줬죠.

 

서강> 그 후 워크온 수트를 제작하여 2016 사이배슬론 대회에서 3위에 오르셨어요.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많은 보람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 우리 연구팀이 엔젤렉스를 만들면서 장애인을 다시 걷게 하는 기술은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좀 더 감동이 있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감동이라는 게 문자 그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잖아요? 아직 장애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들의 눈에 뭔가를 보여줘야 해요. 그래서 작년 10월에 사이배슬론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나가보자 마음먹었어요. 제 연구팀하고 세브란스 병원의 나동욱 선생님이 의기투합을 했죠. 그렇게 워크온수트(Walk-ON Suit)를 제작했습니다. 워크온수트(Walk-ON Suit)는 장애인 선수뿐만 아니라 저희에게도 참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죠. 일단 로봇 없으면 못 일어나는 분들이, 로봇을 입고 일어나서 걷고 계단도 오르고 할 수 있게 됐잖아요? 그런 기능적인 면도 좋지만, 저희가 가진 기술을 확실하게 홍보하고 각인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무엇보다 우리 서강대 학생들한테 세계 무대에 나가서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죠. “서강대학교에서 1등하면 세계에서 1등 할 수 있다이런 말을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데, 그래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잖아요?

사실 객관적으로 서강대가 로봇으로 유명한 학교는 아니에요. 아무리 한두 번 좋은 성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대중의 인식은 순식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아직도 서강대에도 기계공학과가 있어?”, “서강대에서도 로봇을 해?”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교수로 부임하고 7년째 되니까 저도 괜히 자격지심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세계 최고의 대회에 도전을 했지요. 처음에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팀들, 예를 들어 NASA에서 후원받아 출전한 IHMC,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러시아 등과 경쟁하려니 얼마나 긴장을 했겠어요. 대회를 통해 큰 자신감을 회복했던 게 제일 큰 수확이었고요. 우리 연구팀 모두다 똑같이 느꼈다고 생각해요. 정말 영광스럽게도 이제 어디를 가든 저희 연구팀을 알아봐 주십니다. 정말 감사하지요. 우리 서강대학교 대학원의 모든 학생들에게도 작은 응원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왼쪽 가슴에 서강대학교 마크 떡하니 붙이고 세계무대에 다녀온 그 기분을 우리 서강대 대학원생들 모두와 나누고 싶습니다.

 

 

[사진2] '사이배슬론' 대회에 출전해 세계 3위에 오른 공경철 교수 연구팀

 

서강> 사이배슬론 대회 참가 전후로 바뀐 지점이 있을까요?

 

>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수많은 신문기사와 방송에서 다뤄지고, 전국에 안 다닌 곳 없을 정도로 활발한 강연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다 좋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좀 더 연구에 대해 진지한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대회 전에는 그저 지금까지 연구해온 기술을 실제 장애인에게 적용한다고 하는 순수한 학자로서의 마음으로 설레었다면, 지금은 보다 많은 분들에게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아직 로봇을 혼자 입을 수도 없고, 넘어지는 것에 대비해 누군가 항상 따라다녀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걸을 수만 있다면 이게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사실 장애인들은 단순히 걷고 싶어서 로봇을 입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주지 않고 스스로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로봇을 찾는 것이거든요. 예전에는 좋은 기술 만들어서 논문만 많이 쓰면 좋았는데, 이제는 실제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좀 더 부담스럽지만 훨씬 더 영광스럽고 의미있는 방향으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강> 인상 깊었던 게, 교수님이 입는 로봇을 잘 만들려면 사람을 연구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셨더라고요.

 

> 사람 몸에 부착하는 로봇이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사람의 신체 근골격구조와 신경구조를 알아야 로봇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몸을 제대로 알아야 꼭맞는 옷을 만들 수 있듯이, 웨어러블 로봇은 사람을 이해해야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그런데 실제로 연구를 해 보면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공학연구팀이 책으로 혼자 공부하면 차라리 수월할 수도 있는데, 실제 연구는 의학연구팀과 치료사, 의지보조기기사분들과 다 같이 해야만 합니다. 문자 그대로 융합연구지요. 문제는 이분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에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참 다릅니다. 공학자들은 천 번의 실패 끝에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연구하는 사람들이고, 의사들은 천 번의 성공 중에 한 번의 실패를 막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문제를 같이 풀어나간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서강> 일상생활과 더 긴밀하게 로봇을 도입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인식 전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국제 기술 개발 지원에 있어서는 아쉬운 부분은 없나요?

 

>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과제들은 연구자의 입장에서 진행된 것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아직 장애인들의 입장에서는 부족한 점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비장애인들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실제 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미 로봇 잘 만들어서 잘 걷고, 계단도 올라가고, 이 정도면 이미 다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기술의 내용을 잘 모르는 장애인들이 기술수요를 정확히 전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장애인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연구자들에게 잘 전달하고, 그에 맞는 지원을 끌어내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강> 이해를 시키면 지원문제는 따라온다는 건가요?

 

> 그렇죠. 저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지원제도가 상당히 선진화되었다고 느끼거든요. 진짜 필요한 연구가 있다고 하면 충분히 지원 받을 수 있는 길은 많다고 생각해요. 수요자와 공급자의 입장에서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이해시키는 일이 중요하죠.

 

서강> 결과적으로 로봇공학은 단순히 연구의 대상이 아닌 로봇과 인간의 삶 사이의 이치를 파악하는데 힘쓰고 함께 나아가는 연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앞으로 교수님의 연구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 지난 2월에 서강대학교 로봇시스템제어 연구실의 스핀오프(Spin-off) 스타트업 기업인 ()SG Robotics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LG전자와 세브란스 병원과 각각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LG전자로부터는 대규모의 투자도 받았고요. 이제 연구실뿐만 아니라 기업, 병원들이 모두 함께 장애인과 노인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재미와 보람,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굉장히 커진 상황이라 지금 당장의 이것저것 일을 벌리기 보다는 서강대학교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그리고 이제 기업의 대표로서, 제게 받은 관심에 보답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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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20

<서강대학교 대학원생 권리장전> 선포를 향하여

 

대학원생 인권유린 및 부당처우에 관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강대학교 역시 대학원생 인권문제 개선의 필요성을 꾸준히 인식해왔다. 이에 따라 제30대 대학원 총학생회 <상상>에서는 지난해 추진되다 불발된‘대학원생 권리장전’선포를 재개했다.‘ 대학원생 권리장전’선포는 대학원생의 인권 및 노동권 보장을 위한 행보의 첫걸음이다. 본지에서는 올해 6월 중순 경 선포식을 앞둔‘대학원생 권리장전’의 수립과정을 취재했다.

취재 신윤희(shinyoonhee1@naver.com), 양계영(ozo69@naver.com), 정재원(agnes.jaewon.jung@gmail.com)

정리 및 편집 신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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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15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정치와 예능, 그 시대와의 싸움
- 지금은‘대중정치(정치예능)’의 시대

 

바야흐로,‘ 정치예능’1)의 시대라고들 부른다. 종편의 출범과 함께 범람하고 있는 정치예능은 연일 화제 속에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예능과 정치. 전혀 친하지 않을 것 같은 둘의 만남이라니…. 상반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 두 분야의 협업이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던 나는 정치예능에 대해 파헤쳐보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예능은 한 번도 정치를 외면한 적이 없었다(!). 다만 시대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 해왔을 뿐이다. 예능과 정치의 만남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면‘정치예능’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어떻게 변해 온 것일까. 제대로 된 기능은 하고 있는것일까.‘ 정치예능의 시대’라는 것은 바로‘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는 어떤 시사점을 주는 것일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들을 따라서 정치와 예능의 콜라보레이션을 추적해보기로 했다.

글 신윤희

 

 

시대가 바뀌면 많은 것이 변한다.


여기 두 가지 장면이 있다. 두 장면 모두에 한 여자와 남자가 있고, 배경이 되는 시대는 다르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 그러니까 다시 말해‘커플’이다. 첫 번째 커플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다. 반면에 두 번째 커플은 서로 팔짱을 낀 채 걷고 있다. 이따금씩 뽀뽀도 한다. 첫 번째 커플이 보면 아주 놀랄 장면이다. 그들이 두 번째 커플과 같은 애정행각을 하려면 모르긴 몰라도 사람들이 안 보는 곳에서 은밀하게(?) 했어야 할 것이다. 두 장면 사이에는 시간의 흐름이 있었다. 이에 따라 두 커플의 행동에도 변화가 있었지만, 사실 그 저변에 그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과 생각이 바뀌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면 많은 것들이 변한다. 예능과 정치, 이 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위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처럼, 둘은 어떤 때에는 몰래 숲 속에서 만나야 했을 것이고, 어떤 때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하는 길거리에서 손잡고 다니기도 했을 터이다. 물론 그와 동시에 그들의 만남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도 변화가 있었다. 사회는 생각보다 급작스럽게 변화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진단하고 비평하던 이들과 그들에게 공감하는 여러 사람들이 만나야 비로소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예능과 정치의 만남 사이에도 이러한 변화과정이 있었을까?

 


시대 속의 오래된 친구, 정치와 예능


예능과 정치. 이 둘 사이에는 아주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웃음과 정치, 이들은 사람들의‘일상’이다. 즉, 사람들의‘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퍽퍽한 사회에서 웃음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고, 퍽퍽함의 강도가 셀수록 예능에게는 그 임무가 가중될 것이다.
그러는 한편 사람들의 웃음을 앗아는 것은 정치이고, 또 앗아간 웃음을 되찾아주는 것 또한 정치이다. 정치는 사람들의 일상을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웃음은 자기 존재의 유무를 좌지우지하는 정치를 늘 감시해야한다. 잘못하고 있을 때는 풍자로 꾸짖기도 하면서…. 그러한 측면에서 예능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이들처럼 붙어 있는데도 함께 의식하지 못하는 관계도 드물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고, KBS TV가 개국(1961년 12월 31일)한 지도 60여년을 넘어서고 있다. 그동안 텔레비전은 우리사회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 밀접한 영향을 끼쳐왔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텔레비전은 사회기관의 일종으로서 사회를 반영하며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사회의 변화에 의해 바뀌어오기도 했다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 점에서 텔레비전은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다 같이‘근(根)의 공식(*‘그네 공식’으로 들리기도 한다)’을 외워 보죠.”

“이 반에서 창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린 학생이 있어요. 다시는이런 일이 없도록 학교 창문을 없애버리겠어요”
- KBS <개그콘서트>‘ 닭치고(高)’코너 중 약속을 지키는 교장 ‘꼭이오’의 대사 (2014년 7월 6일/ 7월 20일 방송)

KBS <개그콘서트>‘ 닭치고’의 한 장면 [제공: KBS 화면캡쳐]

 

디자이너:“ 젊은 애들이 돈이 뭐가 필요해? 열정만 있으면 되지?”
인턴:“ 최저 임금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니에요?”
디자이너 :“ 너희들이 배우겠다고 온 거 아니야? (뺨을 때리며) 가세요, 집에 가세요! (곧 이어) 남의 가게에서 잘렸는데 왜 여기 있느냐!”
인턴: (표정을 바꾸며 디자이너의 뺨을 때린다)“ 옷사러 왔어요”
- tvN <코미디빅리그>‘ 갑과을’코너 중 디자이너와 인턴의 대화 (2015년 1월 18일 방송)


 위 두 프로그램 속 일부 대사만 봐도 코미디·오락 속에는 우리사회의 시사적인 이슈와 사회적인 이슈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청자들은 이들 프로그램을 보면서 불통의 어느 권력자를 떠올리기도 하고, 일상 속에서 경험한‘을’의 사례에 공감하기도 한다. 코미디 프로그램은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답답함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다가도 순식간에 부하직원에서 손님으로 뒤바뀌는‘갑과 을’의 관계를 그려내면서 통쾌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그 상황이 현실과 얼마나 합치하는 내용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잠시나마 권력을 비판하고 전복된 상황을 제시해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곧 풍자 코미디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사회의 축소판이라면 그 중에서도 예능·오락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당시의 사회·문화와 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사회경제적 상황이 열악해지면 오락 프로그램이나 오락 요소가 많아지는 반면에, 권위적인 정치 분위기가 확산·정립되면 오락적 요소보다는 체제를 옹호하는 내용의 교양프로그램이 더 많아지기도 한다는 점을 짚어내기도 했다.2) 실제로 유신체제의 1970년대 중반의 거의 모든‘프라임 타임’에는 반공이나 새마을 운동과 관련된 교양프로그램을 편성해야 했고, 민주화운동이 팽배했던 1980년대와 양적 경제 성장이 활발했던 1990년대에는 오락프로그램이 양적으로 팽배해졌었다.
그러나 코미디 프로그램과 사회적 상황은 단순히 프로그램의 양적 개수와만 연관되지는 않는다. 그 내용과 다루는 소재에 있어서도코미디·오락 프로그램은 사회적 상황과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 권력을 향한 비판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던 시절을 지나, 최근에대두되고 있는‘정치예능’의 시대까지. 그동안 코미디·오락 프로그램에는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그 변화는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정치예능’은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전혀 새로운 소재라거나 급작스러운 포맷의 변화는 아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사회를 진단하고 비평하던 이들과 그에 공감하는 대중이 만나 프로그램이 흥망성쇠를 겪으며 점진적으로 변화해온 산물이다. 그렇다면 국민 정서와 가장 밀접하다고 할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의 변화상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한국사회, 적어도 정치에 대한 국민 정서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 예능 이전에 있었다.‘ 텔레비전 풍자 코미디’


정치예능의 시작을 2011년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하면서로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정치예능을‘종편 장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정치와 예능의 만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가면 나라님과 양반님에 대해 풍자하던 탈놀이‘양주별산대놀이’도 있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텔레비전에서 정치와 예능의 만남은 풍자 코미디를 그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군부독재 시절 이른바‘3S정책3)’은 국민들의 정치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일환이었다. 이때 예능PD들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임무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정치적 함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전두환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TV 예능 프로그램을‘3S정책’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비난하기도 했다고 한다.4) 그런 정치적 상황에서도 계속 권력을 견제하고 이를 풍자하려는 노력은 있었다. 서강대학원 신문 138호에서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 장덕균 코미디 작가가 극본을 쓴‘변방의 북소리’도 그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풍자 코미디였다. 또 다른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KBS <개그콘서트>다. 1999년 9월 4일 첫 방송을 내보낸 <개그콘서트>는 오랜 시간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장수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속 시원한 풍자를 일삼으며 시청자들에게“코미디가 웃음을 주지 않으면 웃을 일이 없다”는 정서를 전파하고 지지받았다. 물론 <개그콘서트> 역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개그에서 권력에 대한 비판이 다소 사라져갔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MBC <PD수첩>, KBS <추적60분> 등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크게 축소되는 상황에서 예능PD들도 덩달아 위축되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었다. 개그맨 김학도는“도전을 같이 할 만한 PD가 없고,‘ 저랑 같이 하실래요’하는 연기자도 없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또 개그맨 김한석은“5공화국 당시에는 소재의 제약은 많았지만‘네로25시’ ‘변방의 북소리’등 사회 풍자 개그가 넘쳐났다”며“지금은 표현의자유가 보장되는 시기인데 정작 이를 다루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고 한다.5) 그러나 뒤이어 서수민PD가 <개그콘서트>를 연출하면서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기도 했다. ‘비상대책위원회’,‘ 닭치고’등은시청자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며 풍자 코미디로서의 역할을 재개했다. 그 후로도 여전히 정치풍자 코미디는 정치와 예능 콜라보레이션의 한 기둥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다. 2012
년 이후 tvN <SNL 코리아>에서는 대선과 같은 굵직한 선거철마다‘여의도 텔레토비’코너를 통해 여의도 동산에 사는 텔레토비(정치인)들의 관계를 그리며 정치풍자를 말 그대로 ‘대놓고’ 했다.‘ 여의도 텔레토비’는 현실 정치를 반영한 센스 있는 대사와 출연진들의 익살스러운 연기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다.

 

‘여의도 텔레토비’를 잇는 tvN <SNL 코리아9>의‘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
[제공 : tvN 화면 캡쳐]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공익프로그램의 등장

 

정치인들이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이나 예능적인 편집 요소를 쓰는 시사·정치 프로그램은 국민들의 정치 진입장벽을 낮춰준다는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예능은‘제도 정치’에 치우쳐진 경향이 있다. 김성윤 문화사회평론가는 최근의 정치예능의 대두 현상을 보며“논의가 제도 정치에 집중돼 있다”며“성, 인종, 민족 등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생활정치라고 해야 할까. 이런 부분은부차적으로 다뤄지거나 아예 다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정치예능 이전에 이미‘제도 정치’보다‘생활 정치’에 더 집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공익 예능 프로그램의 시초라고 불리는 <!느낌표>
가 그것이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표현의 자유가 피어나면서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었다. MBC의 <!느낌표> 또한 그러한 시도 속에서 탄생했다. <!느낌표>를 연출한 김영희PD는 당시 시대
상을 반영하여 21세기에 주목받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며‘공영 (共榮)적 오락’을 선보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느낌표>는 21세기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을 주요 아이템으로 다루고 있다. 환경, 청소년, 노인, 책 등을 주요 아이템으로 다룰 것인데,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며 이를 위해 거창한 담론이 아닌“작고 사소한 문제로부터 진지한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라고 했다.6) <!느낌표>는 지금도 정치를 포함한 사회의 다양한 면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예능프로그램으로 자주 회자된다. 책을 읽는 문화를 장려하고, 이주노동자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며, ‘칭찬합시다’를 통해 서로 배려하고 칭찬하는 따뜻한 사회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아침을 굶고 다니며 공부하는 고등학생들의 삶을 비추기도 하고, ‘양심 냉장고’와 같은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와 같이 <!느낌표>는 사람들의‘생활 정치’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며, 궁극적으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공익(共益) 예능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에도‘공익 예능’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이 이따금씩 나오기는 했지만 <!느낌표>만큼 사회적 호응을 이끌어 내고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던 프로그램은 드물었다.

 

MBC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의 한 장면 [제공: MBC 화면캡쳐]

 

 

현실/정치풍자를 하나의 긴 서사로

 

공익 예능의 연장선에서 <무한도전>의 이야기도 꺼낼 수 있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한국갤럽 조사에서‘한국인이 사랑하는 TV프로그램’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국민예능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 또한 <!느낌표>처럼 사람들의 일상에 관한‘생활 정치’를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녹여내며 사회적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무한도전>이 공익 예능으로서‘생활 정치’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제도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전면적으로 정치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시청자들은 <무한도전>을 보며 정치적 메시지를 받는다. 그런 점에서 평론가들은 <무한도전>이 이미 예능 장르 차원의 영향력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가까운 예로 무한도전은 미래 예능을 이끌 차세대 예능주자를 뽑는‘선2014’방송을 통해 현실 정치를 재현하며 이미지정치의 허상을 풍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무한도전>의 정 치성이 가장 두드러졌다는 평가를 받는‘좀비특집’은 5·18민주화운동의 분노 바이러스를 다루며 풍자했다. <!느낌표>가 공익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생활정치를 다루었다면, <무한도전>은 앞서 언급한‘풍자 코미디’의 한 코너를 긴 서사로 늘어트리며 하나의 스토리이자 이미지로 현실을 풍자하는 셈이다. 그러는 한편 무한도전은 점차 풍자를 넘어서 제도 정치를 전면에 다루기도 했다. 지난 4월 1일 국정농단 사태 이후 조기 대선 국면에서 방송된‘국민의원특집’이다. ‘국민위원’200명을 뽑아 국민이 주체가 되어 직접 법안을 만드는 특집이었다. 정치와 국회, 법안의 발의 과정 등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면서, 열악한 노동 처우, 청년, 육아, 환경 문제 등이 언급되며 이에 대한 실제 입법을 예고하기도 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무한도전> ‘국민의원특집’은 예능이 라는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정치에 대한 문턱을 낮춰주었고 법안이 라는 것이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들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며“정치인만이 아니라 국민들 역시 함께 머리를 모을 때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아이디어들이 나올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MBC <무한도전> 국민위원 특집 [제공 : MBC 화면 캡쳐]

정치예능의 전성시대

 

<무한도전>이 긴 서사의 풍자와 국민 참여를 정치로 이끄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최근 주목받고 있는‘정치예능’은 본격적으로 정치 안건을 다루고 토론한다. 지난해 12월 JTBC <썰전>은 한국갤럽이 발표한‘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조사에서 2위(9.2%)에 올랐다. 1위 MBC <무한도전>과 0.2% 차이였다. 올해 초 무한도전이 7주라는 휴식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대표적 정치예능 장르인 <썰전>7)이 이렇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정치예능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대표적인‘정치예능’이라 불리는 JTBC <썰전> [제공 : JTBC 화면 캡쳐]

 

 그러나 범람하는 정치예능 속 그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볍게 인식할 우려나, 정치인들이 이미지 정치로써 예능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부작용을 무시할 순 없다. 그들이 방송에서 보여주는 행보는 실제와 다를 때가 많고, 때로는 정치에서 실패한 이들이 재개의 일환으로 방송에 나와 비판받기도 했다. 실제로 2013년 <썰전>에 출연한 강용석 전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에게 대두된‘이미지 세탁’에 대해“저는 방송을 통해 정치계에 복귀하려는 사람이다. (이를) 숨기지 않겠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치예능은 종편 출범 등으로 미디어 사업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뉴스에 오락을 접목시켜 시청률을 높이고 이익을 창출하는 방식의 일환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정보가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정보처리능력에 한계를 느낄 때, 쉽고 재미있게 포장된 정보에 흥미를 느끼게 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대세로 자리 잡았다.8) 이러한 정치예능은 다매체 시대 시청자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정보를 분류하고 해석하여 지적인 통찰력을 재미있게 제공한다.이렇다보니 정치예능의 가장 큰 순기능은 무엇보다도 정치가 쉬워진다는 점이다. 일례로 이번 대선에서는 대선후보들을 ‘취업준비생’으로 가정하는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이 방송되기도 했다. 굵직한 대선후보들이 출연해 예능의 형식으로 면접을 받고, 후보자 자신에 대한 ‘악플’을 읽기도했다. SBS 모바일채널<모비딕>‘ 양세형의 숏터뷰’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출연해 양세형을 두손으로 안아 들고 귓속말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정치인들을 가까이, 친근하게 느끼는 것과 어렵게 느껴지던 정치 사안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은 정치예능의 가장 큰 장점이다.

 

SBS 모비딕 <양세형의 숏터뷰> 안희정 편 [제공 : 유투브 화면 캡쳐]

 

 한편 정치예능은 제작진이 필터링한 관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정덕현 문화평론가는“(정치예능에는) 제작진이 의도한 강조점과 자막,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가이드를 해주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예능에는 확실히 어렵고 딱딱한 정치의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지만, 이러한 점에서 시청자들은 정치예능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치예능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은교·금희조9)에 의하면 정치적 관심이나 뉴스 선호도와 관계없이 정치예능토크쇼를 많이 시청할수록 정치 참여 의사가 많아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이나 오락적 콘텐츠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오락과 정보를 함께 전달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정치예능은 더 진중한 행보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정치와 예능의 만남이 남긴 것

 

채널A에서 방송하는 <외부자들>에 출연하는 전여옥(전 새누리당 의원)은 프로그램 출연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장사하느라 글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분이 저더러 TV에 나와 정치 이야기를 해달라고, 그러면 올바른 투표를 할 수 있을 것같다고 하더라고요.”


왜 사람들은 정치예능을 보는 걸까? 문화사회학자 엄기호10)는“20대 청년들이 언제 정치적으로 움직이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정치가 사기라는것을 잘 아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움직일 때는 정치가 오락이 되거나 혹은 정치가 오락을 방해할 때이다.” 우선 첫 번째의 사례로는 이명박 정부의‘꼰대스러움’을 봐줄 수가 없어서 2010년 지방선거 투표장으로 달려갔다는 이,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를 폐지해야 한다는 국회의원을 보고 투표장으로 향한 이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오락을 방해하고 금지할 때,
“이들은 자신의 일상이 정치에 의해서 심각하게 방해받고 있다고 느끼고 정치적으로 움직인다”. 두 번째로는 정치가 오락이 될 때이다. 트위터를 통해 투표 인증샷을 남기는 행위 등은 정치가 일종의 오락이 된 사례이다. “정치적 냉소에 맞서는 것은 진정성이 아니라 재미, 오락이다”11). 정치예능은 국정농단과 조기대선을 치르며 유례없이 높아진 정치적 관심도에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엄기호의 분석도 (비록 20대에 한한 분석이긴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정치예능의 붐 현상과 맞닿아 있다. 정치예능은 정보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정보와 관점을 제공해준다. 일부 분석에서는 정치예능의 인기가 언론이 그 역할을 충실히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전통 시사교양 프로그램 사이의 틈을 새로운 정치예능이 메꾸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를 분석하는 예리함을 아주 쉬운 말로 풀어내는 것도 정치예능이 인기를 끄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인간적으로는 애처가이고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에요."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


“그게 한나 아렌트가 말한‘악의 평범성’이죠
. 나치도 훌륭한 버지고 남편이고 성실한 직장인이었다는 거잖아요.”-진중권 동양대 교수
- 채널A <외부자들> 중


오락 프로그램은 지친 시청자들의 마음에 한 줄기 웃음을 주는 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긴다. 시청자는 그런오락프로그램을 보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속 시원함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공익적 메시지와 캠페인에 동참하기도 한다. 정치적 사안을 비평하는 레비전 속 평론가들의 말에‘좋아요’를 누르기도 하고, 실제 예능프로그램에 참여해 법안을 발의하기도 한다. 처럼 시대적 상황에 따라 오락 프로그램은 포맷과 소재 면에서 화를 거듭해왔다. 지금까지 추적해 본 정치와 예능의 콜라보레이션이 다양한 형태의 결합관계를 띄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예능이 기존의 것을 대체하면서 지금의 형태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 프로그램 나름의 흥망성쇠를 겪으며 보존되고 변형된 형태들이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는 꼴이다. 풍자 코미디, 공익예능 등의 잔재가 남아 사회적 환경과 맞닿을 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정치예능’형태라면, 앞으로도 이 모든 다양한 형태의 정치예능이 모두 공존되고 유지, 변형,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선 <무한도전-국민위원특집>과 같은 정치예능이 남긴 것은 더이상 정치가 남의 것, 즉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지점이었다. 우리가 직접 참여하고 논의할 때 정치는 오락이 되고 재미있어진다. 정치와 관련된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의 환경 변화는 어쩌면 그동안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대중들의 원이 만들어낸 변화는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현재의 정치예능은‘대중정치’현상의 일부로도 볼 수 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복잡한 정치의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역할로서 정치예능이 계속해서 활성화된다면, 정치를 다시 누군가에게 뺏기지 않고 우리들의 정치로 남기는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주1) 정치예능에 대한 보편적·학술적인 정의가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정치예능은 정치 현안을 놓고 여러 전문가 패널들이 나와 입담을 겨루는 토크쇼로 정의할 수 있다. 최근에 정치예능은 그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팽창했다. <외부자들>(채널A), <강적들>(TV조선), <썰전>(JTBC) 등 이른바‘정치예능’을 표방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매주 요일별로 방송되고 있다.


주2) 강태영·윤태진(2002),『 한국TV 예능·오락 프로그램의 변천과 발전』, 서울: 한울, p.23.

주3) 3S, 즉 스크린(screen:영화), 스포츠(sport), 섹스(sex)에 의한 우민(愚民)정책. 대중을 이와 같이 3S로 유도함으로써 우민화하여, 대중의 정치적 자기 소외,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함으로써 지배자가 마음대로 대중을 조작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말한다.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주4) 이채훈,「 정치와 예능, 시너지는 가능한가」,『 PD저널』, 2014.8.28.기사.


주5) 원성윤·김도영,「 코미디의 탈정치화“MB는 재미없어요”」,『 PD저널』, 2009.4.21.기사.


주6) 이채훈,「 시대정신을 담아낸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저널』, 2014.9.5.기사.


주7) <썰전>은 사회정치 이슈를 안건으로 보수와 진보 진영의 패널들이 각 1명씩 나와서 사회자를 중심으로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썰전>은 방송사 측에서 시사·교양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그 시작은 예능이었을 뿐만 아니라 <썰전>을‘정치예능’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썰전은 새로운 방식의 예능 혹은 시사·교양프로그램으로 평가받으며 시청자에게 큰 사랑을 받는데 이에 따라 평론가들은 정치예능이 <썰전> 이후부터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주8) 이하늬,「 “어제 썰전 봤냐? 정치예능 전성시대」,『 미디어오늘』, 2017.1.12.기사.


주9) 정은교·금희조(2014),「 정보인가 오락인가: 정치예능 토크쇼의 정치적 효과」,『 한국언론학보』제58권 5호, pp.362-390.


주10) 엄기호(2010),『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경기: 푸른숲, pp.91-93.


주11) 엄기호의 같은 책.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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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1:41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으로부터 본 문화

-마크 로스코의 전시를 중심으로

 

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이소라

 

관람객과 소통하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 시각적으로 잘 나타내는 것은 그림이고, 마크 로스코는 이를 매우 잘 충족시키는 예술가라고 생각하여 마크 로스코전을 문화 체험의 장소로 선택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주로 추상주의 작품들인데 추상화라는 예술 작품을 매개체로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어떻게 그림 속에 담아냈을지, 관람객들에게 시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큰 관심이 있었다. 추상화는 외부세계를 나타내는 요소를 제거하고 오로지 예술가의 내면세계만을 표현하기 위해 발전한 양식이기 때문에 화가의 감정을 매우 잘 나타내는 그림이다.

그는 그림에 자기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이를 관람객이 정서적으로 공감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사는 동안 표현성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그림을 통해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크 로스코전시는 그의 작품 경향에 따라 초기 작품부터 순서대로 5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의 그림이 시작되는 입구 부분의 벽 중앙에는 다음과 같은 마크 로스코의 말이 있었다. “그림은 사람과 교감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며 감상자에 의해 확장되고 성장한다.” 이는 그의 그림에 대한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문장이다.

 

1. 신화제작자(Mythmaker) -신화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는 감정

그의 초기작은 주로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 많아서 전시장의 초반에는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과거 고대인의 신화를 이용한 것은 감정적인 부분을 있는 그대로의 날 것으로 더 잘 표현해서 그림에 담긴 감정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마크 로스코는 예술가는 아이와 같아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아이들은 감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는 아이들처럼 자유롭고 순수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중시했다.

또 독일의 생물학자 헤켈(Ernst Heinrich Haeckel)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한다.”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사람의 유년시절은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를 반복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술가가 아이와 같다면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는 원시인이나 고대인이고 이는 곧 예술가가 이들을 계승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1942년 로스코는 신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거기에 자신이 느낀 불안과 공포를 표현했다. 이는 당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인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의 신화적 그림에는 당시 사람들이 처한 비극적인 사회상을 직시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2. 색채의 시대(Age of Colour)- Multiform

로스코 작품의 세계에서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지나 전시장의 두 번째 구역에 다다르면 색채의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마크 로스코가 그린 그림들의 대부분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색채이다. 특정한 색을 자주 쓰는 것은 그 사람의 정서를 나타내며 색채는 감정적이기 때문에 그림에 나타내는 색채에 따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캔버스의 크기도 점점 커졌는데 커다란 캔버스 안에서 색채들이 자유롭게 떠다니며 퍼지다가 다시 뭉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림마다 색채가 배치된 방법도 다양하고 색채를 그려낸 기법도 다양해서 그가 전하려는 여러 감정들을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진1] NO.2 (넘버2) 1947 캔버스에 오일

 

 그의 이러한 형식의 작품들을 사람들은 멀티폼(Multiform)이라 칭하며 종종 살아있는 유기체로 비유한다. 워싱턴 내셔널갤러리의 큐레이터인 해리 쿠퍼(Harry Cooper)는 그의 에세이에서 멀티폼을 생명 기원 이론인 원시 수프(primordial soup)’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과 관람객이 만나 소통이라는 스파크가 더해지면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가 탄생하여 감정이 살아서 전달된다.

 로스코는 그림에 비극을 표현하여 관람객에게 비극적 숙명에 처한 인간을 직시하게 했고 비극, 황홀과 같은 인간 고유의 감정을 작품에 표현하고자 했다. 비극적인 모습의 그림 이면에는 밝은 에너지를 내뿜는 모습도 존재해서 사람들의 감정을 치유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감정의 소통을 이룬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는 관람객이 자신의 그림을 보고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는 사실은 곧 자신이 그것을 그릴 때 느낀 것과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며 자신이 인간의 기본 감정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했다.

 또한 그는 색채를 통해 자신의 회화 작품에 내면세계의 감정을 표현하여 관람객의 내면과 소통하였다. 그리고 한 곡의 음악처럼, 한 편의 드라마처럼 전달하여 관람객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전시장에 자신의 그림을 내걸 때는 그림의 배치에서부터 조명의 밝기와 비추는 각도까지 섬세하게 신경 쓰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져서 그가 그림에 담은 감정이 보는 이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예술에 있어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여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진정한 예술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렇게 빚어진 예술은 곧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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