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3:47

참여관찰 연구의 실제: 외국인 자율방범대의 사례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 _ 김민석

 

 학위 논문 수준의 결과물에서는 물론이고, 국내 학계에서 참여관찰을 통해 이루어진 연구는 한정적이다. 질적 연구를 수행했다고 하면 우리가 인터뷰라고 칭하는 심층 면담 내지는 집단 심층 면담(FGI)을 떠올리듯,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질적 연구는 면담을 통한 자료 수집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참여관찰은 문화인류학에서 주로 이용하는 연구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의 참여관찰 연구는 교육학이나 마케팅 분야에 편중되어 있으며, 필자의 전공인 사회학에서는 일부에 그치고 있다. 지난 2017년 가을학기 대학원 학술대회에서 필자가 수행 중인 연구를 주제로 발표를 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참여관찰을 바탕으로 한 현장 연구 방식을 채택하였다는 연구 방법의 희소성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당시 발표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참여관찰 연구를 수행하면서 마주칠 수 있는 난관과 그 극복의 경험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참여관찰의 시작

 석사과정에 입문한 초보 연구자는 학사과정 때보다 배로 늘어난 과업의 양에 허덕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전공을 달리하여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이중의 고민을 안게 되는 셈이다. 동시에 대학원생으로서 자신의 학위 논문을 완성해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를 마주한다. 경험 연구를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느 사례를 연구할 것인지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참여관찰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연구 대상 혹은 연구 참여자와 대면하는 현장 침투의 과정은 피할 수 없다. 필자의 경우 국내에 거주 중인 이주민 문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특히 <황해> <신세계>, 최근에 이르러서는 <청년경찰>이나 <범죄도시>에 이르기까지 영화뿐 아니라 타 미디어를 통해서 형성되는 조선족, 즉 한국계 중국인 집단의 이미지와 국내 사회에서의 실제 모습과 현상에 관심을 두었다. 이들은 공식 집계되는 국내 외국인 수 중 차지하는 비율이 30%를 넘는 최대 이주민 집단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이주민과 가장 접하기에 용이한 것으로 알려진 종교 단체나 다문화센터 시설이 아니라, 외국인 자율방범대를 사례를 현장으로 삼아 연구의 시발점으로 결정한 것은 그 고민의 결과다. 외국인 자율방범대란 안산이나 대림동, 가리봉동과 같은 국내의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enclave)을 중심으로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결성하여 관할 기관과 협력관계를 맺고 치안 활동을 실시하는 일종의 지역 결사체다. 2007년 영등포구에서 최초로 실시되면서 치안 활동의 모범 사례로서 각 지역으로 확산되어, 현재 전국 수십여 개 지역에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례를 선정한 후에는 문헌을 통한 충분한 예비 조사를 수행함과 동시에 해당 집단의 담당자나 지도자에게 접촉하여 현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충분히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실제로 이 사전 면담의 과정에서 연구의 목적과 참여관찰을 통한 현장 연구를 실시하려는 이유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예비 조사를 통해 사례가 되는 집단이나 현장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수적인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필자의 경우 경찰백서와 같은 공식적인 자료의 기록이나 언론 보도가 해당 사례에 대한 연구 논문보다 실제적으로 더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문헌 탐색의 과정을 거친 후 해당 지역의 외국인 자율방범대의 담당자라고 할 수 있는 관할 지역 경찰서의 담당 부서 직원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방범대의 대장을 소개받고 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수행되는 방범대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필자가 접근했던 관할 경찰서의 직원과 방범대장이 게이트키퍼(Gatekeeper)의 역할을 한 셈이다.

 

참여관찰 수행 시 겪을 수 있는 어려움

 라포는 질적연구에서 양질의 자료를 얻기 위해 필요한데, 초보 연구자로서 연구 참여자와의 라포 형성 문제는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과연 연구 참여자에게 얼마나 어떻게 접근해야 충분한 라포 형성이 이루어지는지는 주관적이면서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해당 연구를 실제로 진행하면서 깨달은 바로는, 예비 조사를 통해 현장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고 몇 차례의 첫 대면에서 연구 참여자의 특성을 파악해야 연구 참여자와 원활한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바꾸어 말하자면, 막연히 현장에 머무는 시간과 연구 참여자와 만나는 횟수가 라포 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초기 단계에서 연구 참여자가 연구자와 공유하는 문화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가령 필자가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A 지역의 외국인 자율방범대 구성원들은 모두 이 지역의 외국인 상인 연합에 소속된 일원으로서 정해진 휴일이 없이 매일 오전부터 새벽 늦은 시간까지 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른바 먹자골목으로 한국인에게도 익히 알려진 지역에서 요식업에서 도·소매업까지 각자 다양한 상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생활 체계를 파악하여 심층 면담으로 이어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게다가 또 다른 연구 참여자인 관할 기관의 직원들은 공무원이라는 신분의 특성 상 연구자인 필자에게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으며, 이들이 제공해줄 수 있는 정보 또한 매우 제한적이었다. 결국 필자는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1년 간의 참여관찰 수행 기간 동안 결석없이 꾸준히 정기 순찰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친밀성을 쌓을 수 있었다.

 참여관찰은 일반적으로 문화기술지(ethnography)를 작성하는 활동이 동반된다. 문화기술지는 현장 연구를 수행하면서 관찰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참여관찰 연구로 축적할 수 있는 자료의 근간이 된다. 연구자로서 관찰 활동뿐만 아니라 현장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기록은 짧은 토막글, 즉 메모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함께 순찰 활동을 하는 동안 메모나 녹취를 수행할 경우 현장에서의 일상성이 왜곡될 가능성을 염려하였다. 이미 일종의 지역 치안 제도로서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 자율방범대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보도가 수 년에 걸쳐 꾸준히 이어졌기 때문에 필자의 행위를 연구가 아닌 취재로 오인하여 연출된 모습을 재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가피하게 현장에서의 기록이 어려울 경우, 가급적 해당 참여관찰 수행 직후 연구자만의 공간으로 복귀하여 작성할 수 있다. ‘무엇을 기록할 지는 결국 연구자의 연구 질문에 달려있다. 현장에서조차 보고 듣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무의미하기 때문에 연구자로서 무엇을 보고 듣고 기록할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기술지 작성에 관한 교본이라고 할 수 있는 Writing Ethnographic Fieldnotes』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The ethnographer seeks a deeper immersion in others’ worlds in order to grasp what they experience as meaningful and important. … These descriptive accounts select and emphasize different features and actions while ignoring and marginalizing others. … Descriptions differ in what their creators note and write down as ‘significant’.”

, 연구 질문에 따라 무엇이 기록할 만큼 중요하고기록하지 않아도 될 만큼 중요하지 않은지는 연구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달려있다. 따라서 만약 두 연구자가 같은 현장에서 참여관찰을 수행하더라도 서로의 문화기술지 내용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이주민에게 외국인 자율방범대 활동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라는 연구 질문을 바탕으로 방범대 활동이 이루어지는 방식, 연구 참여자 간의 대화 방식과 내용으로 유추할 수 있는 관계 구조에 집중하여 관찰하고 매 회 수행마다 3페이지 내외의 기록지를 작성하였다. 현장 연구 초기에 연구 질문이 모호했더라도 이와 같은 관찰과 기록을 반복하며 진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구체화할 수 있다.

 전술하였듯이 참여관찰을 수행하는 연구자는 동시에 사례 집단의 내부자로서 이중적인 정체성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때로는 연구 참여자와 동화되기도 한다. 윤리적 측면에서 중립적 위치를 지키는 것이 올바르다고 믿고 있는 필자와 같은 초보 연구자에게 가장 혼란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다. 해당 연구에서는 같은 지역 주민으로서 일상적으로 방범 활동에 참여하는 내부자의 입장을 취하면서, 게이트키퍼 역할을 해주었던 관할 경찰서의 담당자와 외국인 자율방범대의 방범대장을 중심으로 연구 내용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는 등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그 간극을 넘나드려 시도했다. 때로는 게이트키퍼가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조력자가 되어주기도 하는데, 필자의 경우에는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망각하지 않고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받았다. 관할 경찰서의 담당 직원으로서 해당 지역의 외국인 자율방범대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활동을 수행한 그는 필자가 새로운 방범대 구성원을 만날 때 마다 연구자로서 대신 소개를 시켜주는 한편, 방범대의 간담회나 연말 행사 등 공식·비공식적인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알려주었다.

 

마치며

질적 연구 중에서도 참여관찰 방식이 유용한지 여부는 해당 연구의 연구 질문과 사례에 달려있다. 발리 섬의 닭싸움 문화를 통해 심층놀이(deep play)의 개념을 서술한 클리포드 기어츠(1973) 외에도, 정신병원 내부에서 상징적 상호작용과 낙인(stigma)의 과정을 설명한 어빙 고프만(1961)이 참여관찰을 바탕으로 한 대표적인 연구라 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으로는 시카고 빈민 지역을 탐구한 수디르 벤케테시(2008)의 연구가 알려져 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참여관찰은 제 3세계의 원주민, 빈민, 외국인 등 주류 사회의 외곽 내지 경계 밖에 자리한 집단을 연구하는데 주로 채택된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해당 사례가 외국인 이주민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이루어지는 활동이기 때문에 실제로 방범대원으로서 참여한 내부자의 입장에서 그 활동의 의미파악을 시도했다. 따라서 참여관찰 방법은 다른 질적 연구 방법보다 비교적 시간과 노력이 더 요구되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수 개월 혹은 수 년의 기간 동안 연구 사례 집단의 내부자로서 시간을 보낸다. 기어츠와 고프만은 각각 발리 섬의 주민과 정신병동의 보조원으로 2년여간 생활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내부자의 입장에서 동고동락하며 관찰하고자 하는 현상을 직접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질적 연구 수행 방법 중에서도 가장 질적 연구다운방법으로 참여관찰을 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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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3:37

생명 텍스트와 생명 언어를 위한 시론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_ 이지환

 

 

확실히 언어가 문제다.

지금 내가 기생(공생?)하고 있는 지도교수님의 연구실에는 두 나무가 있다. 나는 그 나무들의 이름도 모르지만, 내가 여기에 온 순간 두 나무는 나의 책임이 되었다. 이 나무들은 너무 잘 커서, 물을 많이 주지 못한다. 그 나무 옆에는 안락한 의자가 있다. 그 의자에 앉아서 나무로 만든 책을 읽어왔다. 나는 이 나무한테 사람 이름을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적인 윤리의 사고방식을 깔고 나무를 보지도 않는다. 나무는 나무다. 이 나무들은 나와 살기 위해서 자신의 성장이 억제된다. 그리고 나는 이 나무들과 잘 살기 위하여 커피 찌꺼기와 물을 주고 있다. 이 뭔가 모자란 최소한의 생태에 많은 것들이 도움을 준다. 거기에는 산지 1년이 넘은 커피머신이 도움을 주고 있으며, 물이 나오고, 채광이 좋은 연구실(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공부하지 못하겠다.)의 환경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내가 여기 오랫동안 기생하게 만드는 국문과 대학원의 과제들이 또한 큰 도움이 된다. 그렇게 나무 옆에서 2년을 보냈는데, 나는 나무의 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나무는 정말로 인사도 하지 않으며, 나에게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환경을 나름대로 사랑하는 언어, 다시 말해 녹색 언어를 만들자고 하거나, 나무와 대화하자고 하는 이들을 믿지 못하겠다.

생명이 가지고 있는 텍스트성과 내적 대화는 인간이 직접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나는 의인화를 버리지 않고 녹색 언어를 말하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생명 윤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언어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자기모순이다. 왜냐하면 그 말은 정말로 생명윤리 그자체로 말하고 있기 보다는 생명윤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언어가 문제다.

한 생명과 대화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한 생명과 대화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치열하게 그 언어를 탐색하는 것은 인간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거기서 더 나아간 사람은 지금 자신이 가진 의인화의 틀을 의심한다. 일단 의심했으므로, 답을 찾지 않으면 잠도 잘 수 없다. 일어나자마자 도서관에 간다. 다시 한 번 그 나무에 관한 모든 것을 읽는다. 그 나무에게 가서 보고 느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기반으로 나무가 무엇을 느끼고 있을지 생각한다.

 

생명은 시적 원리로 구성된다.

안드레아스 베버는 모든 것은 느낀다에서 세포와 생명을 생존의 기계로 간주하지 않으며, 생명은 의미를 감정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실체라고 말했다. 의미를 감정으로 체험한다는 것은, 어떤 생명이 체험한 감정이 어떻게든 해석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스페르 호프마이어는 생태기호학을 주창했는데, 그의 생태기호학에서는 생태 속에서 수많은 기호들이 전달되고, 해석되는 과정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린 마굴리스의 세포 내 공생설에 의하면, 우리는 수많은 층위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관계들에 의하여 존속된다. 야콥 폰 윅스킬은 유기체를 기계적 인과율에서 벗어나는 주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저런 이론들이야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생명의 특성들이 인간중심적인 이해와 언어에 의하여 정말로 의미들의 작용 속으로 포섭되고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발제적 인지과학을 주창한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말했듯이, 유기적 생명체의 본질은 자기 창조성과 자기 동일성이다. 나는 과감하게 로만 야콥슨을 끌어와서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한다. 생명체는 질적으로 전환된 물리적 구성물이며, 그 물리적 구성물은 통시적으로 자기 자신의 공시성을 투사하기를 지향하는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기체는 시적인 존재다. 모든 유기체들은 시간 속에서 다양한 환경에 배치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끊임없이 획득한다. 그것이 생태이다. 따라서 유기체의 삶은 다양한 세포와 미생물들의 시적 표현이다. 자연의 모습들은 시적인 생명의 표현이다. 여기에 대해 순진하고 낭만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에 대하여 상당히 순박한 생각(참 아름답고, 건전하며, 잘 짜인 것으로)을 품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유전적 약호를 넘어서 모든 생명의 원칙들과, 육화된 언어들은 선택되고 결합된다. 유기체 속에 공생하는 것들이 어떤 것을 선택하고, 그것들이 자연의 시간 속에서 세포의 궤적에 통합될 때, 우리는 그것을 일종의 생태기호학적인 메시지로 볼 수 있다. 그것들은 다시 세포, 미생물과 공생하는 유기체, 뉴런 세포들이 상호작용하는 유기체, 유기체들의 관계, 생태 등으로 확장되면서 다양한 층위를 갖는다. 이때 유기체는 자기 자신을 강조하면서 다른 것들과 유사성, 인접성의 관계를 맺는 메시지다. 메시지의 자기 강조를 통해서, 생태 속에서 미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생태기호학적 관점에서 유기체는 소리, 형태, 의미들로 이루어진 생태기호들의 텍스트이다. 탄소, 질소, 무기질, , 기체들이 생명의 자기 생산 체계를 거쳐 결합될 때에, 유기체는 선택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자기 자신을 강조한다. 즉 시적 기능의 위계를 강하게 가지게 된다.

복잡하게 말했으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명의 궤적과 그 표현들을 하나의 의사소통이자, 로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을 보고 노래하는 것은 생태기호적 텍스트를 인간의 언어 텍스트로 옮기는 것이다. 생명의 시학, 서사학, 수사학의 가능성이 새롭게 열린다. 새로운 생명 언어는 자연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내는가, 생명이 자신을 어떻게 메시지와 텍스트로 만들어나가는가, 생명이 어떤 의사소통 기능을 강조하고 있는가, 생명의 발생과, 성장과, 변화와, 커뮤니케이션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러한 고민은 우선 식물의 정신세계같이 지나친 인간 및 동물과 식물의 동일화를 시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지나친 동일화는 의인화로 도약한다.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유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식물에 대한 주장을 과도하게 뛰어 넘는다. 동물이나 식물과 대화할 생명언어를 탐색한다면서, 다른 인간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모순적이라 할 것이다.

 

어떤 대화이든 인간은 의심하고 노력할 수 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개나 고양이 정도의 동물과는 무언가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식물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소개하고자 한다. 대니얼 샤모비츠(식물은 알고 있다)는 온건한 중도적 입장인데, 그는 식물이 생각한다는 표현은 피하려 한다. 다만 식물 속의 글루탐산 수용체가 뉴런의 의사소통 방식과 유사하게 기능한다거나, 식물지능을 다중지능의 한 양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교묘하게, 기존의 생물학적 관점을 옹호한다. 그의 주장은 식물이 아무것도 감각하지 못하는 기계에서, 몇 가지는 감각하는 기계라고 보강하는 정도의 주장이다. 스테파노 만쿠소(매혹하는 식물의 뇌)는 좀 더 강한 주장을 하는데, 식물이 명확히 지능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식물은 몸의 특정 지점에 그 시스템이 몰려있지 않다. 온 몸에 독립적인 모듈이 있다. 대개 식물은 빛, 휘발성분자화합물, 무기염류의 농도기울기, 접촉과 압력, 진동의 파악, 수분측정능력, 중력과 전자기장 등의 감지 능력 등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식물들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정보들을 처리하면서, 생태의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한다. 그들은 다양한 채널과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된다. 식물의 다양한 부위들 끼리도 커뮤니케이션한다. 가령 관다발계를 통한 전기신호시스템, 기공을 통한 화학, 호르몬 신호시스템, 액체 유출 경고시스템 등이 각자의 신호를 처리한다.

식물은 다른 생명들과 화학분자, 접촉, 위치선정, 제스처 등을 통해 몸으로 소통한다.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층위에서 수많은 화학적 신호들이 다양한 생명들의 움직임을 이끌어 낸다. 인간만의 의사소통과는 구별되지만, 굳이 인간의 의사소통이어야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가 뭐라하든 그들은 이미 넓은 의미에서 소통하고 있다.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생태는 사실 많은 존재들이 생태적 기호를 나누고 있는 대화의 장이다.

우리 또한 식물과 의사소통한다. 식물을 보고 감흥이 일고, 식물을 만지고, 때로는 식물에게 말하고, 물을 주고, 냄새를 맡고 마음이 안정된다. 가지를 쳐주고, 시를 쓰고, 노래하고, 소설을 쓴다. 열매를 먹고, 비료를 주고, 그 자라남에 기뻐한다. 시듦과 죽음에 애통해하고, 다시 살아날 때 희망을 얻는다. 식물은 우리의 빛과 색을 감지하고, 화학물질을 맡고, 압력과 진동을 감지하고, 물을 느끼고 흡수하고, 자기장을 인식하고, 생명의 주체성을 발휘한다. 피고, 지고, 유인하고, 내쫒는다. 우리의 언어기호는 식물에게 단순히 진동의 주파수로 파악되고, 우리는 식물의 화학기호와 생명의 표현을 모르거나,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오해, 무지와 식물의 무능력에 좌절할 필요가 없다. 모든 생태계의 유기체와, 특히 우리 인간 모두는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의사소통한다. 그런데 우리는 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식물을 단순한 기계나 무정물로 보지 않으며, 식물을 의인화하는 오해와 편견을 줄이고, 언어적인 분리를 좁힐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매체를 만들 수 있으며, 그것으로 식물에게 유효한 언어를 우리가 말할 수 있도록, 식물의 언어를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나아간다.

 

감정이입에서 감정공명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흥분하는 나무가 아니라, 세상을 둘러싼 진동들과 자기장에 교감하는 나무를 본다. 묵묵부답의 나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라, 나름의 생명의 언어를 외치는 나무를, 하나를 주는 대신 다른 것을 얻어가는 나무를 안다. 나무는 자신의 몸 곳곳에 지성과 감정을 가진다. 나무는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나무는 자기 방식대로 생명의 가능성을 실현한다. 나무는 온 몸으로 생각한다. 나무는 온 몸으로 더 확장되어 나아갈 자신을 다시 기획한다. 나무는 온몸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다른 나무와 나눈다. 동물의 삶이 긴 시에 가깝다면, 나무는 무수한 미시서사들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근단들은 각자의 주체성을 펼쳐나가지만, 그것들은 네트워크를 이루며 나무라는 하나의 군집으로 모인다. 가지와 잎들은 뻗어나가지만, 나무에 공기와 햇빛으로 만들어진 영양분을 전달한다. 수많은 생태기호들은 나무의 온 몸에서 기호작용을 펼친다. 각각의 기호작용은 하이퍼링크되고, 새로운 기호들을 생성해낸다. 그렇게 나무는 옆으로 하늘로, 자신을 확장시켜 나간다. 나무가 만들어낸 수많은 생태 기호들이 다른 기호시스템으로 전달된다. 나무는 온 몸으로 뻗어나가면서 생태기호체계를 유지한다. 나무의 발신이 없다면, 생태는 기호작용의 소멸을 맞는다. 생태는 침묵하게 될 것이다.

생명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언어로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신의 몸으로 시를 쓰고 있다는 것, 그 언어와 시에 가까이 가는 길은 감정이입이 아니라 감정을 공명하는 것이다. 생명 언어는 생명을 보고, 우리의 언어로 재단하고 끼워 맞춘 후에 자기만족하고, 정지하는 언어가 아니다. 생명 언어는 다시 나의 언어가 감정 공명과 함께 가는 언어인지, ‘생명 언어라 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과정 속에서 생겨난다. 함께 가는지 의심하면서, 우리는 다시 생명에게 되돌아가서 함께 하려 한다. 정말 맞는지 의심하면서, 우리는 다시 그 언어를 재해석하고, 수정하고, 배우고, 느끼고, 다시 말을 조심스레 꺼내기 시작한다. 대상 자체의 내적 활동의 양식이 따로 있음을 알고, 대상 자체가 느끼고 움직이고 기호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내적 활동에 가치적 우월을 부여하지 않고, 각자의 울림을 치열하고, 절실하게 공명하려 한다. 다양한 속도로, 다양한 질적 차이와 양적 차이를 가지고 울림들이 상대에게 가서 공명하고, 다시 나의 울림으로 회귀한다. 이때 우리는 우리를 재생성하기 보다는, 새로운 차이와 사유를 생성한다. 생태적 사유와 소통의 과정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우리와 환경은 분리되지 않는 복합체가 된다. 거기서 우리는 의인화에 안주한 상태에서 생명 언어를 말하려는 감정 공명 상태로 간다. 그리하여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황지우, 1985)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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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0:44

도스토예프스키의 실천적 사랑’(Love in Action)

 

석영중_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도스토예프스키(F. M. Dostoevsky)에게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기 위해서 타인이라고 하는 거울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타인 속에 투영된 자기의 모습을 볼 때 비로소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도 사고도 모두 마찬가지다. 미하일 바흐친(M. Makhtin)은 도스토예프스키의 타자 지향성을 대화주의라 부른다. 대화주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야 하고,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접촉해야 하고, 얼굴과 얼굴을 맞대야 하고 함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모든 것은 대화적으로 서로서로를 되비쳐주고 서로서로를 밝혀주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요컨대 대화주의란 존재와 존재간의, 의식과 의식간의, 말과 말간의 소통과 얽힘과 되비침을 의미한다. 만일 타자와의 대화, 소통, 상호조명을 배제하는 모종의 절대적인 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곧 윤리적인 의미에서의 악이다. 이 세상에 오로지 나만이 존재한다면 양심의 가책도 도덕적 성찰도 책임도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타자가 존재한다하더라도 그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양심의 가책이나 책임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화주의는 시학의 원리를 넘어 심오한 윤리적 개념이 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화주의를 책임의 윤리로 정착시킨 사람은 윤리학을 1 철학”(First Philosophy)으로 지칭한 엠마누엘 레비나스(E. Levinas). 레비나스의 윤리학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타자 지향성은 타자에 대한 전적인 책임으로 거듭난다. 레비나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중의 한 구절을 타자 윤리의 핵심으로 지적한다.

 

만인은 만인 앞에 만사에 대해 죄인이다.”

사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진술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아마도 백치이거나 위선자일 것이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영감을 받은 레비나스도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선이라 생각했다. 러시아어로 바꿔 말해보면 이 구절의 의미는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Kazhdyi pred vsemi za vsekh i vo vsem vinovat.

러시아어로 “vinovat”누구누구 탓이다” “무엇에 대해 죄가 있다를 의미하지만 또 책임이 있다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결국 우리는 모두 모든 일에 대해 모든 사람에 대해 책임이 있다라는 뜻으로 읽힌다. 이것은 타자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타자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적인 정의의 문제도 아니고 인과율의 문제도 아니다. 따지거나 논의해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결론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세상의 악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증오와 심판, 살인과 학대와 폭력에 대한 대안은 이것 밖에 없다.

책임의 윤리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 실천적 사랑으로 구체화된다.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 예술 전체, 사상 전체, 인생 전체의 결론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실천적 사랑이 언급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부인이 수도원을 찾아와 장로 조시마에게 자신의 딜레마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그녀의 딜레마는 마음속으로는 조건 없이 인류를 사랑하려고 하지만 가끔씩 대가를 바라게 되고 신심이란 것도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것을 요체로 한다. 그녀의 하소연에 대한 조시마의 답이 바로 실천적 사랑이다.

그는 사랑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 하나는 공상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적인 것이다. 공상적 사랑(love in dreams)은 문자 그대로 그냥 마음속에서 하는 사랑, 추상적인 사랑, 관념적인 사랑, 생각 속에서 진행되는 사랑, 혹은 감정적인 사랑이다. 예를 들어, 멋진 이성을 향해 느껴지는 호감은 엄밀히 따지자면 공상적인 사랑이다. 또 우리가 흔히 쉽게 언급하는 인류에 대한 사랑 역시 조시마에 따르면 공상적인 것이다. 인류란 너무나도 방대한 개념이다. 하나의 개념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간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조시마는 어떤 의사가 한 얘기를 인용하면서 거대한사랑의 한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인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놀라게 된다. 내가 인류를 사랑하면 할수록 개별적인 인간, 다시 말해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상을 할 때는 흔히 인류에 대한 지극한 봉사정신에 빠져들기도 하고, 만일 갑자기 그럴 필요가 생긴다면 사람들을 위해 실제로 십자가를 걸머지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단 이틀도 같은 방에서 어떤 사람하고든 함께 지낼 수가 없다. (...)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나는 하루만 지나면 그를 증오하게 된다.

 

조시마는 여기서 인류에 대한 사랑과 전 인류를 향한 막연한 봉사정신이란 것이 얼마나 쉽게 자기애와 자기만족을 덮어주는 몽상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바로 그만큼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쉽다는 것은 진정 아이러니다.

실천적 사랑(love in action)이란 바로 내 앞의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감정이 아닌, 어떤 행위로서의 사랑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실천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는 나를 전적으로 희생해야 함을, 아무런 보답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베풀기만 해야 함을 의미한다. 인류를 사랑한다고, 혹은 조국과 민족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인류의 한 구성원, 민족의 한 구성원인 내 이웃, 나에게 피해를 주고, 나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혐오스럽기까지한 가까운 누군가를 순전히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사랑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시마는 그것을 가혹한 일이라 말한다. “실천적 사랑은 공상적 사랑에 비해 가혹하고 두려운 일입니다. 공상적인 사랑은 사람들이 그것을 주목해 주는, 만족도가 빠른 성급한 성취를 갈망하게 됩니다. 그럴 때 실제로 자기 생명까지 바치겠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하며 모든 사람에게서 주목받고 칭찬받기 위해 무대 위에서처럼 얼른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그러나 실천적 사랑은 노동이자 인내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완벽한 학문이기도 합니다.”

조시마는 인간에게 이 사랑을 완성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토록 불가능에 가까운 사랑을 누가 완성할 것인가. 그러나 사랑하려는 시도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사랑에의 지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순간에 다른 누군가가 그 사랑을 완성시킨다. 그가 곧 신이다. “우리가 실천적 사랑의 완성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움 속에서 목격하는 순간 갑작스레 목표를 달성하게 되며 언제나 사랑으로 보살피며 언제나 보이지 않게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기적적인 권능과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조시마 장로는 설교에서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일관되게 사랑을 이야기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나는 존재한다, 고로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은 실존의 조건이다. 사랑이 없을 때 지금 이곳의 현실은 언제라도 지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조시마는 지옥이란 결코 더 이상 사랑 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단언한다. 문제는 조시마의 설교가 너무나 수도원식이라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이 그토록 어려운 사랑을 어떻게 현실 속에서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랑만이 답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등등의 구호는 허망하고 조시마의 사랑은 너무 작고 초라하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거대한 악을 희석시킬 수 있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작고 초라한 사랑이다.

그래서 도스토에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 유난히도 하나의 의미를 강조한다. 소설의 제사는 이점을 예고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의 복음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 밀알의 변주로 울려 퍼지는 것은 파 한 뿌리이다. 여주인공이 언젠가 들었던 우화의 형태로 기술되는 이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옛날에 아주 심술궂은 할머니가 살았다. 평생 단 한 번의 선행도 하지 않는 이 노파가 죽자 지옥 구덩이에 빠졌는데 그녀의 수호천사가 곰곰 생각해 보니 언젠가 할머니가 밭에서 파 한 뿌리를 뽑아 거지에게 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그 얘기를 했더니 하느님은 그것도 받아들여 할머니에게 자기가 베푼 적이 있는 파를 붙잡고 지옥 불구덩이에서 나오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요컨대, 단 한 번의 선행, 아주 작은 한 가지 일이 그걸 베푼 인간에게 지옥에서 나올 수 있는 가능성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는 이런 단 하나의 테마가 거창한 인류 구원 계획이나 제도나 이념들과 대비를 이루며 반복되다가 결국 밀알만한 믿음, 파 한 뿌리 만한 자선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귀착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은 사랑, 하나의 사랑, ‘실천적 사랑은 마더 데레사의 한 번에 한 사람이란 글을 생각나게 한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 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4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당신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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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1:37

한글 가로쓰기에서 나타나는 서구중심주의

 

윤희수 _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

 

 

의 문화로 변화한 동아시아

과거 세로쓰기 표기방식을 취했던 동양권은 근대 이후 서구문명을 접하며 점차 가로쓰기 표기법을 보편화해나갔다. 동아시아권이 약 500년 넘게 지속되어왔던 세로쓰기 필법에서 가로쓰기 필법으로 전환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의문이 들었다. 연구 결과, ··일의 가로쓰기 표기법 도입은 서구문명이 아시아에 들어온 근대 이후에 본격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공산 혁명 성공 이후,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그리고 한국은 미군정의 통치 이후 가로쓰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동일한 시기인 근대에 아시아 국가들이 일괄적으로 표기법을 변형한 이유를 찾고자 했고, 그 원인으로 서구중심주의가 있다는 논증을 해보고자 했다. 이 논문의 핵심은 한글의 표기법 전환 가로쓰기에 나타나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해 고찰해보는 데 있다.

언어를 표기하는 방법은 문자 체계의 기입 방향에 따라 상이하다. 일반적으로 표기법은 가로쓰기인 횡서와 세로쓰기인 종서로 나뉜다. 문자 표기 방향을 보면 동양 권은 ()’의 특성을 갖고 서양 권은 ()’의 특성을 갖는다. 한자문화권으로 분류되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아시아권 언어는 전통적으로 우 종서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의 문화를 갖고 있던 아시아권 언어는 점차적으로 의 언어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글이 현재 가로쓰기 표기법으로 전환된 이유에는 개화기 당시 서양인 선교사의 영향과 중국의 한자문화권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한국어 언어학자들의 소망에 기인한다.

 

표기법 변화의 역사적 배경

가장 먼저 한글 가로짜기를 표준화한 것은 미군정 교과서였다. 미 군정청 문교부는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조선교육심의회를 조직하여 한국교육의 이념으로 명문화된 홍익인간의 교육이념과 교육의 기본방침이 심의되었고, 미국과 같은 6·3·3·4 학제를 비롯한 교육제도에 대한 결의가 이루어졌다. 조선교육심의회에서는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새 교육에서 한자를 폐지하고 한글 가로짜기를 지정하는 한글전용방침을 결정하여 겨레의 교육을 실시할 것은 군정청 문교부에 보고하였고, 가로짜기에 대한 부칙을 추가하였다. 본래 목적이 미 군정청의 문교 정책 자문기구를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선 교육심의회는 미국식 학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물론 이전 종서표기법의 경우도 중국의 표기영향에 따른 것이었기에, 종서에서 횡서로의 표기법 변화는 단지 한국이 중심으로 여기는 국가의 변동에 따른 결과가 아니냐는 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즉 과거에 조선이 중국을 추종했다면, 현재의 한국은 미국을 추종하기에 표기법 또한 상응하여 따라간 것이라는 문제제기이다.

한글이 종서의 형태로 탄생하게 된 원인에 있어서, 당시 중국의 지배적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은 배제할 수 없지만, 500년의 시간에 걸쳐 한글이 세로짜기에 적합한 글자로 진화해왔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형태적 특징인 모아쓰기 구조와 글 줄 흐름성 등은 한자와는 무관하게, 한글 자체의 특성에 힙입어 진화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한글이 세로쓰기를 한 것에는 중국이 간접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근본적 원인으로 판단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한글은 한글문자 특유의 속성 때문에 세로쓰기를 채택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현재 한글의 횡서 표기법이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외의 역사적 사실에 기초했을 때 더 잘 설명될 수 있다. 한국의 근대화 운동은 주로 서구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후에 한글학자로 성장한 이들의 대다수가 이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사회는 서구를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이러한 인지체계는 표기법의 변화에 따른 사회의 저항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한글의 맹목적인 서구화가 만든 폐해: 정간보

당시 한글의 표기방향을 횡으로 통일하는 이유는, 횡서, 종서로 혼재된 한국사회의 표기법을 한데 모은다는데 있다. 하지만 표기법의 통일을 꼭 횡의 방향으로 할 이유가 있을까? 이에 대해 한글학자 최현배는 서양의 산수, 대수, 기하, 삼각, 물리화학, 음악 등이 횡의 방향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한글의 표기법도 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의 전통엔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림1] 종서형태의 정간보

 

그 대표적인 예가 전통국악이다. 지금 우리는 서양악보에 너무나도 친숙해져서 왼쪽에서 오른쪽(횡서형태)으로 악보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위에서 아래로 읽어나가는(종서형태) 정간보라는 악보가 존재하고 있었다. 한국의 전통음악은 음계에 12율명을 사용하는데, ‘황종, 대려, 타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응종이라 불리며 붙임표, 숨표, 쉼표를 활용해 음악의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를 갖고 있다. 박자의 경우 정간보의 칸을 몇 개로 나누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국악은 세로 형태의 정간보로 표기될 때 제일 잘 명시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글의 표기법 전환에 따라, 정간보 역시 가로형태의 악보로 강제 변용되었으며 기존의 정간보 틀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우리 음악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시김새와 장단이다. 시김새로 인하여 유동적으로 음이 움직이며 진행하는 것이 특징인 우리 음악을 전혀 다른 음악 어법을 지닌 악곡의 기보에 적합한 서양식 오선보로 표기했을 경우 우리 음악을 평균율의 음악처럼 왜곡하여 인식할 우려가 있다.

(), ()이 발달한 우리 음악은 세종대왕이 정간보를 창안한 이래 박자 표기에 대한 언급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박이나 장단을 표기하는데 쉬운 기보체계를 두고 음악 생성이 전혀 다른 문화의 틀로 설명하는 데 그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 주장하는 음악의 3요소인 리듬, 멜로디, 하모니가 한국 전통음악에는 다른 이름으로 있고 악보에 쓰여진다. 하지만 그 동안 정악곡을 제외하고는 다른 장르의 우리 음악은 서양 기보법을 빌어다 썼다. 서양음악과 다른 우리 음악은 서양 기보법으로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을 여러 가지 보조 기호를 만들어 서양기보법으로 써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 전통음악은 본질을 잃게 되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결론 및 제언

이와 같은 논의에 따라 필자는 당시 한글학자들이 횡서를 주장한 주된 이유를 서구의 유입과 그에 따른 서구중심주의의 결과라고 추정한다. 언어의 변화는 문화에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표기법의 변화가 일으킨 폐해 중 하나로는 위에 논의했듯, 한국 전통음악의 소멸성에 있다. 횡서표기법의 서양식 악보가 도입됨에 따라 종서 표기법이었던 기존의 정간보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악보가 되었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정간보라는 구체적 예시만을 다루고 있지만, 그 외에의 다른 문화적 소멸성 또한 존재할 것이라 추측한다. 따라서 한국고유의 문화를 되살리며 서구중심주의의 폐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이 수반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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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4.08 15:20

트럼프 대통령 시대 남북관계 전망과 과제

 

 

 

 

최용환 _ 경기연구원 연구기획부장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격랑에 휘말리고 있다. 미국 신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대북정책을 펼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어, 예전보다 더 강력한 대북제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상황이 겹쳐져서 한국은내우외환의 위기를 겪고 있다.

 

 

민낯을 드러낸 미국 우선주의

   

모든 국가의 외교는 기본적으로 자국 중심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강조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부에서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노골적이고 일방적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주민과 소수자들에 대한 노골적 편견을 보인 대통령의 등장은 지난 대선에서 유색인종인 오바마를 당선시킴으로써 세계의 환호를 받았던 미국 민주주의의 이면(􃤪)을 보여준 것이다. 이민자들이 건설한 국가인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이른바 ‘melting pot’이라고 불렸지만, 이번 대선의 결과는 아직 미국 사회의 주류는 백인임을 확인시켜주었다. 트럼프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할 것이며, 그 결과는 미국 소프트파워의 쇠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신행정부 대외정책의 구체적인 형태는 경제적으로는 중상주의적 정책이 예상되며, 안보 측면에서는 동맹국의 부담 증가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강대국들 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중심으로 한 중상주의적 경쟁은 지정학적 충돌의 가능성을 높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대선 기간 중 트럼프의 언급이 모두 실행에 옮겨지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으나, 그 기조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과거 냉전시기 미소의 이데올로기적 대립과는 다르다. 갈등의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으며, 갈등과 협력 요소가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비교할 때, 중 사이에 전략적 경쟁이 증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 전략적 경쟁의 경계선에 놓인 한반도이다.

 

 

중 갈등 상황에서 딜레마에 빠진 한국 외교

 

대통령 취임 이후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TPP) 탈퇴를 결정하였다. 미국의 TPP 탈퇴 결과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만약 이러한 예상이 현실화된다면 중국은 동남아 및 아시아 지역에서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한일 삼각동맹의 틀에 묶여 동남아시아로부터 소외된다면,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영향권에 역 포위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보다 긴 안목과 넓은 시각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핵심 축은 경제적인 측면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교역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미국과 미국인들이 손해를 보았다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세계 2위의경제대국이자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이 벌어진다면 양자 모두 다수의 대응 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으로

까지는 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미중 갈등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영유권 문제 등을 놓고 벌어진 중국과 일본의 갈등에서 미국은 일본편에 설 것임을 명확히 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다. 트럼프는 북핵문제의 해결과 관련하여 이른바중국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역할론은 1990년대 이후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었던 사안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하지만,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도 않는다. 따라서 중국은북핵문제북한문제를 분리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신행정부는 세컨더리 보이콧 등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여, 북한에 대해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할 계획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갈등이 심화되면 중국에 있어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최근 한국과 중국 간 THAAD 도입을 둘러싼 갈등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THAAD의유용성에 대한 논란을 논외로 한다면, 어떤 국가가 자국 방위를 위해 특정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명백하게 주권적 사안이다. 이에 대해 주변국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나오는 것은 THAAD 그 자체보다는 한국의 THAAD도입을 한국이 한미일 동맹체제에 편입되는 신호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다소 모호한 정책기조를 유지하여 왔다. 이러한 전략은 미중관계가 우호적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국 외교 딜레마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중국의 대외정책이 공격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화한 상황에서는 경제에 있어 중국의존도와 안보에 있어 미국의존도를 낮추지 않은 한 이러한 딜레마는

지속반복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평화적 관리의 중요성

 

미국 신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에 있어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은 공정무역(fair trade)을 명분으로 한FTA 개정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안보 측면에서는 한국의 안보분담 증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한국 정부는 선제적으로 대미 무역 흑자 규모를 줄이고 미국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협상 이전에 우리의 카드를 모두 보여주는 것으로, 협상 전략적 차원에는 결코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없다.

FTA는 일방에게만 이익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차분히 대응 논리를 만들어 대비하면 된다. 미국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부문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최대한 제도에 기대어 시간을 끌 수도 있다. 자국 방위에 대한 한국의 역할 증대 요구에 대해서는 대응논리와 함께, 추가비용 부담에도 대비하되 합당한 반대급부를 요구해야 한다. 특히 전시

작전권 반환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도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둔다면 필요 이상의 비용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의 과잉대응을 낳는 원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남북관계와 관련된 핵심 쟁점은 역시 북핵문제이다. 트럼프는 기존의 제도적 틀보다는 미국이 가진 힘과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외관계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은 대북 선제타격을 포함하여 다양한 대북제재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제타격을 검토한다는 것과 이것을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과잉 대응을 할 필요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핵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는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대북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남북관계의 평화적 관리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핵문제의 해결과 통일이라는 과제를 포기할 수는 없으나, 중단기적으로는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대국들의 결정에 의해서 한반도 상황이 전개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빚고 있으나, 그들 간의 빅딜에 의해 북한

문제가 급진전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의 긴장 국면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한국이 가장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잘못을 범하기 않기 위해서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과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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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2.14 15:30

『태일생수』에 나타난 물과 생명의 관계방식 고찰

 

박혜순 _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책임연구원

 

1. 물과 생명
오늘날 물기근∙물부족 문제는 우리세대가 풀지 않으면 안 될 핵심과제 중 하나이다. 미래세대의 존속 가능성을 심사숙고할 때 더욱 그러하다. 대부분의 종교전통에서 물은 만물의 모태, 생명 창조의 원천, 우주의 어머니로 그려지고 있다. 탈레스가 보기에 물은 이 세계에 실재하는 다자들의 행동이나 변화의 원칙을 내포하는 공통요소인 일자이며 원리인 아르케(原質,arche)다(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권 3장). 그렇다면 우주의 모든 생명과 직결되는 물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가 의문이 든다. 하지만 물의 기원을 밝힌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곽점 출토본『태일생수』가 현존하는 유일한 자료인 것 같아 보인다.


2. 우주생성의 기본원리
『태일생수』에서 우주생성의 기본원리는 도움이고, 물은 이 세계에 가장 먼저 생겨나 가장 먼저 도움을 실천한 사물이다.

 

태일이 물을 낳고 물이 돌아가 태일을 돕는다. 이로써 하늘을 이룬다. 하늘이 돌아가 태일을 돕는다. 이로써 땅을 이룬다. 하늘과 땅이 서로 돕는다. 이로써 신명을 이룬다. 신명이 다시 [서로] 돕는다. 이로써 음양을 이룬다. 음양이 다시 서로 돕는다. 이로써 사시를 이룬다. 사시가 다시 서로 돕는다. 이로써 차가움과 더움을 이룬다. 차가움과 더움이 다시 서로 돕는다. 이로써 습함과 건조함[濕燥]을 이룬다. 습함과 건조함이 다시 서로 돕는다. 한해가 완성되면 마친다『( 태일생수』).


인용문에서 우리는‘도움[輔]’이라는 동사적 행위가 우주생성의 기본 원리이며 자연만물의 존재원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9단계의 우주생성과정에서‘낳다’와‘마치다’는 단 한 번씩만 나오는데 반해‘돕다’와‘이루다’는 8회에 걸쳐 등장하고 있으니 도움은 우주생성의 모든 과정에 내재하는 필연적인 규칙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뿐만 아니라 천지, 신명, 음양, 사시, 창열, 습조 역시 이 세계에 생겨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돕는 행위이며, 태일에서 습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라도 돕지 않으면 우주의 생성은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도움’에 의해 생성된다. 『태일생수』의‘보(輔)’의 원리에 따르면 이 세계는 타자의 도움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서로 돕지 않으면 이 세계의 그 누구도 독자적으로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계에 타자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완벽하고 완전한 것은 없다. 심지어 우주생성의 근원인 태일조차 물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물도 태일의 도움 없이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돕는 것’은 곧 생존의 법칙이고, 공생의 근거이며, 이 세계가 유기적인 관계의 망을 유지하게 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태일생수』는 돕는 기준과 방법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돕는 기준은 천도귀약(天道貴弱)이고, 도움을 실천하는 방식은 일결일영(一缺一盈)이다. 노자철학적 사유에 입각해서 이해하자면 유약함을 귀하게 여기는 천도귀약의 정신은‘생생’의구조를지켜내는방법이다.『 도덕경』에서유약함은‘생생’의 조건이고 강함은‘생생’을 해치는 행위이다. 천도귀약의 정신은 물의 존재양태에서 잘 드러난다. 물은 자기해체를 기반으로 삼고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부족함은 채워주고 남는 것은 덜어내며 천도귀약의 정신을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수행해내고 있다.
『태일생수』는 천도귀약의 법칙에 따르면“공이 이루어지고 몸도 상하지 않는”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둔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인은 자신을 특정 상태에 고정시키지 않고 관계적 맥락 속에 자기를 해체시켜 놓음으로써 물처럼 천도귀약의 정신을 따른다. 만일 견고한 가치 체계, 고정적인 입장, 굳건한 의지를 고집하면“공이 이루어지고 몸도 상하지 않는 일거양득의 효과”는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천도귀약의 유약함은 어떤 중심도 갖지 않는 해체적 입장을 말한다. 성인이 이런 해체적 입장을 선택을 한 까닭은 천도귀약의 정신을 어김없이 수행하는 물의 존재양태 덕분에 만물의 생성소멸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며 이 세계에서 생명의 영속성이 구현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판단된다. 물의 존재양태와 성인의 선택으로 보아 천도귀약은 자연만물이 공존할 수 있는 최고의 공생법칙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즉 유약함을 돕는 것이 이 세계에서 타자와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이다.
일결일영은 부족하면 채워주고 여유로우면 덜어내는 반복적인 동사적 규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규칙적 동작이『태일생수』에서는 사물과 사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규칙으로 작용한다. 물은 물론이고 모든 자연사물이 채우고 비우는 이 단순하고 간단한 규칙을 수행함으로써 우주생성에 기여하고 생명세계의 조화와 균형유지에 이바지 하고 있다. 『태일생수』에 따르면 일결일영은 자연세계의 운행규율이고, 만물에게는 생명활동의 근간이자 존재법칙이며 자연만물이 존재하고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 법칙은 물론 인간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그것은 『태일생수』가 물의 존재양태를 만물의 존재법칙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과 생명의 관계방식을 한 걸음 더 들어가 살펴보자.

3. 태일과 물
이미 살펴보았듯 태일과 물은 우주생성의 공동근원자이다. 물은 태일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태일은 무엇인가? 그 개념은 크게4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도의 이칭(異稱)이며 원기이고 하나[一]이다. 둘째, 첨성(瞻星) 신앙의 대상이며 북극성이다. 셋째, 태일신이다. 넷째, 태일의 실체는 물이다. 이제 물과 태일의 관계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태일은 물의 발생근거지만 형태가 없다. 형태 없음에서 나온 물은 태일과 달리 형태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단정 짓기에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형태가 없다고 하기에는 물이라는 사물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형태가 있다고 하기에는 일정한 상(象)이 없어 꼴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은 유상(有象)이면서 동시에 무상(無象)이다. 다시 말해서‘형태 있음과 없음의 중간자’라고 할 수 있다. ‘꼴 있음과 없음’이라는 이 두가지 속성은 물로 하여금 만물의 모태라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게 한다. 물은 자신을 어떤 꼴로도 고정시키지 않는다. 물이 꼴을 갖출 때는 오직 타자의 요구에 응해서 그것이 그것이게끔 할 때 뿐이다. 물은 이처럼‘자기 없음’이라는 속성을 통해서 모든 사물이 본래부터 타고난 고유의 정체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만물의 생성을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물과 생명의 관계 설정에 “태일장어수”, “만물의어미”, “만물의 벼리”는 매우 중요한 관념이다. 우주생성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태일은 물과 하나가 된다[太一藏於水]”. “태일장어수”는 태일이 물과 하나 되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일체를 이루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태일이 물의 정신이라면 물은 태일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태일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지 않다면 물은 그저 하나의자연사물인H2O에지나지않을것이다.『 태일생수』에서 물의 생명창조 기능은 태일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발휘되는 것 같아 보인다. 이제 태일과 하나 된 물은 막강한 생명력을 발휘함으로써 생명의 절대적 담지자로 자리매김하고“만물의 어미[萬物母]”,“ 만물의벼리[萬物經]”라는 존재론적 위상을 확보한다.

태일은 물과 하나 되어 때에 따라 움직인다. 두루 미치거나 시작하며 자신을 만물의 어미로 삼는다. 한번은
비우고 한번은 채움으로써 자기를 만물의 벼리로 삼는다. 이것은 하늘도 말살시킬 수 없고, 땅도 뒤엎을 수 없으며, 음양도이룰수없는것이다『( 태일생수』).

여기서 살펴볼 것은 두 가지이다. 물이‘만물의 어미가 되는 원리’와‘만물의 벼리가 되는 원리’이다. 첫째 만물의 어미가 될 수 있는 원리는 때에 맞게 주행(周行)하는 것이며, 그 가능성은 바로 유약성에 있다. 노자철학에서 물은 지극한 부드러움[至柔]을담지하고있다.“ 지극한부드러움”은 물과 기의 공통상징이다. 물과 기는 들어가지 못함이 없고 지나가지 못함이 없다. 『태일생수』에서 물은 이런 유연성으로 천하를 아무 걸림도 없이 주행하며 이 세상의 어미노릇을 수행한다. 어머니가 한 집안의 가솔들을 모두 고루 살피며 집안 살림을 해나가듯, 물은 만물의 생성을 돕는 실체로서 만물을 두루 이롭게 함으로써 천지의 대덕인‘생생’을 구현한다. 그리고 그 물이 이루어내는 생명력은 절대적이어서 그 위력은 하늘도 땅도 음양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물이 만물의 벼리가 되는 원리는“한 번은 비우고 한 번은 채우는”일결일영의 방식에 의해서이다. 물은 때에 따라 일결일영하는 간단한 법칙의 수행으로 만물의 벼리라는 절대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늘도 땅도 음양도 어쩌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만물의 벼리라는 말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이 법칙을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달리 말하면 일결일영이 이 세계에 실재하는 모든 사물에게 해당되는 존재법칙이라는 것이다.


4.『 태일생수』에서연역해낸생명의존재법칙3가지
『태일생수』에 따르면 물은 우주생성의 최초 인자이고, 이 세계에 실재하는 모든 사물은 물의 속성을 담지하고 있다. 물의 존재방식은 우선 자기가 없고 유약성을 담지하고 있으며 채움과 비움의 완급을 천도귀약의 정신에 따라 적절히 수행함으로써 모든 생명존재를 돕는다. 이제 우리가『태일생수』에서 연역해낼 수 있는 생명의 존재법칙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겠다. 첫째 상보원칙에 따라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고, 둘째 천도귀약의 정신에 따라 공도 이루고 몸도 상하지 않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자기해체로 유약성을 함양하는 것이며, 셋째 일결일영의 원리에 따라 채움과 비움의 균형을 이루는 간소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 변화는 미래세대의 존속 가능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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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06.22 15:23

 한․중 인문교류의 정치학 

– 한국의 시각에서


                        전인갑_ 사학과 교수

             

중국의 부상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문제제기는 현 시점에서 매우 시의성 있고 중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이미 G2로 인정되고 있는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 사회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 동안 비약적 성장의 기반이 되었던 정치, 경제, 군사 등 제방 면에서의 미국의 우산에 의존하면서 미국과의 가치 동맹을 견고하게 지속할 것인가 혹은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미국과의 기존의 관계를 조정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봉착해 있다. 대중 관계를 강화한다면 그리고 대미관계를 조정한다면 어떠한 수준에서 어떠한 전략과 방법으로 이를 구체화할 것인가도 많은 사회적 갈등과 국제정치적 리스크를 수반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직면하게 된 ‘곤혹’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기획하는데 있어 반드시 해소해야 할 핵심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이미 ‘신흥대국론’을 외교정책의 기본이론으로 제시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 질서 속의 주도자를 넘어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의 편성 주체가 될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에 앞서 G2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취임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회의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중국의 꿈(中國夢)이라고 강조했다. 굴곡의 중국 근현대사 전개를 생각할 때,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이처럼 강한 어조로 ‘강한 중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는 ‘신흥대국’으로서 굴욕의 시대를 청산하고 과거의 중화제국을 연상케 하는 ‘강한 중국’의 국격을 세계에 선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그는 “중국의 꿈은 반드시 중국의 길(中國道路)을 걸으며, 중국의 정신(中國精神)을 선양하고, 중국의 힘(中國力量)을 결집하여 실현해야 한다”고 하며 중국몽 실현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 방법은 한마디로 Global Standard가 아닌 중국 고유의 표준에 근거하여 대국의 내실을 확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과 다름없다. 


변동하고 있는 동아시아 질서


우리는 이를 보면서 ‘지역제국’ 중국의 등장을 읽는다. ‘신흥대국’ 중국의 등장은 명확하다. 여기서 동아시아가 새로운 세계질서의 또 다른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음과 동아시아 지역질서가 향후 중국 중심으로 재구축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의 변화에 대응하여 한국은 중국에 대해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변화하는 지역질서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말하자면 중국을 전략적으로 재정의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부과된 이러한 과제의 심층에는 19세기 후반 이후 형성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동하고 있는 흐름이 존재한다. 보편문명을 자부했던 중화제국의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가 붕괴한 이후 150여 년에 걸쳐 형성되었던 동아시아 질서가 최근 근본적으로 변동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중국 대 미․일 대립의 구조가 정착해 가고 있고, 경제적 성취를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 각국 간의 헤게모니 경쟁 역시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동이 야기한 불안정성이 역사인식 문제와 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


이러한 변동의 중심에는 중국의 ‘지역제국화’가 자리 잡고 있다. 냉전시대라는 짧은 시기 동안 한국은 중국과 거의 무관하게 살아왔으나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지구적 차원에서 제국적 기획을 시도하거나 그럴 만한 능력을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아시아에서 지역제국으로서의 중국의 위상은 확고하다. 또한 우리를 포함한 중국의 이웃 국가들은 지역제국 중국이 만들어 낸 회오리 속으로 급속히 휘말려들고 있다. 오랜 한중관계 속에서 축적된 역사적 경험은 우리들로 하여금 중국의 이러한 동향에 대단히 민감하게 한다. 지역제국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미래를 기획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의 제국적 속성에 주목하는 현실적 이유, 즉 중국을 전략적으로 재정의해야 하는 학문적 과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러한 학문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지역제국 중국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제국화의 주인공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민국가이다. 다원일체의 다민족 국가라는 국가통합 논리를 중국의 주장대로 수용하고, 그 영역을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지역제국의 영역으로 전제한다면 동아시아의 지역질서는 현실적으로 중국적 제국질서(비대칭성을 본질로 하는 중국 중심의 질서)를 중심축으로 하는 중국 대 비중국이라는 구도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도를 학문적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재정의하지 않는다면 이 지역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한편 중국과의 공동 번영을 견인하고자 하는 한국은 자신의 미래전략을 수립하는데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현재의 중국과 역사상의 중국에 대한 기존 인식을 해체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기존 인식의 해체는 역사상 동아시아의 지역질서를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가 아니라 하나의 중심과 복수의 부중심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상호의존적이고 상호연동적인 복합질서로 재정의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 작업은 동아시아라는 지역 공간 속에서 ‘중화의 중국’을 포함하여 현재는 중국의 일부가 되어버린 역사상의 다양한 민족과 국가 그리고 중국 제국의 이웃에 존재하는 국가들이 교류와 갈등을 연출하면서 만들어낸 역사 전개의 다원성과 역동성을 복원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이 제국의 유산-제국의 영역, 지배전략, 운영시스템, 국제(조공)질서 등-을 근대적으로 재구성하면서 노정한 중국적 제국질서의 짙은 음영-중국 중심 위계적 질서 속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신강, 티벳, 몽골에 대한 한족 중심의 통치-을 걷어내고 공존의 동아시아 지역 질서를 지향하는 역사상을 정립하려는 이론적 모색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중국과 이웃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문화,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발전 단계 등의 측면에서 비대칭성이 매우 심했다고 전제하는 것이 통상적인 중국인식이다. 그러한 비대칭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중국의 영역을 전제로 그러한 비대칭성을 부지불식간에 상정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문화, 영역, 정치 등의 측면에서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가변성-예컨대 중국 제국 영역의 가변성, 비중국 세계에 대한 중국의 의존성 등-이 무시되고 중국의 절대적 중요성이 부각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역사적 사실과도 괴리가 있을 뿐 아니라 비대칭성을 고정불변의 속성으로 정의함으로써 향후 전개될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이웃 국가들의 관계를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 혹은 조공질서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프레임으로 인식하게 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학계에서는 이러한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중국의 위상을 상대화시키는 학문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중화문화를 통한 현대 중국의 이해 


한편 최근 10여 년 전부터 중국에서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산되고, 전통문화의 부활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탁고적(托古的) 미래기획을 추구해 왔던 중국의 문화사적 관성을 생각할 때 놀랄만한 사실도 아니다. 이것은 중화문화가 현재와 미래의 발전을 위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현대중국에 대한 인식은 전통과 역사와의 단절에 강조점이 두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현상의 등장은 단절보다는 그 연속에 무게 중심을 두고 현대 중국을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문정신 혹은 전통문화 부흥 논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국의 전통-특히 인문전통과 전통문화-이 다양한 차원에서 재구성되어 새로운 미래 건설에 활용되는 실태를 파악하여 그러한 현상의 현실적․정치적 함의를 규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몽 실현의 방법으로 “중국의 길(中國道路)”과 “중국정신”을 강조한 것 역시 제국의 경험과 중화문화의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사회적 흐름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출처: 베이징(중국)=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하는 모습. (편집자주) 


개혁개방 이후 경제적 성취와 G2로의 ‘굴기’는 근대 수용의 지식구조를 미래담론 창안의 지식구조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 미국 주도의 글로벌 스탠다드와 병립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중국 주도의 보편적 기준(Chinese Standard)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중국이 모색하고자 하는 대안은 ‘중국적 문화’ 건설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1990년대 중국 경제의 비약적 발전과 서구의 경제위기로 인해 중국인들은 민주 신봉을 타파하고 자신의 문화전통 복구를 시도하고 있다는 진단 역시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위와 같은 현상의 중심에는 유교=전통문화=(중국의)인문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 공자와 유교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하여 선양하는 까닭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가치를 만들기 위한 유용한 자원으로써 유교=전통문화=(중국의)인문전통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속가능한 대국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중화문화(인문전통, 유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 과거를 모델로 미래를 기획하는 중국의 문화사적 관성을 생각할 때 유교적 통치 이념의 적극적 활용, 전략적 의도가 내포된 문화논쟁 및 전통문화의 부활 등 일련의 사회문화적 현상은 전통문화 혹은 중국의 인문(학)전통이 21세기 미래의 중국을 만드는 핵심적인 자원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문화주의에 입각하여 통치되는 국가를 이상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이상을 실천해 왔던 문화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고 본다면 중국에서 전개되는 문화 논쟁이나 인문(정신)을 둘러싼 논의는 중국의 미래를 기획하기 위한 문화적, 지적 노력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중국 모델이라는 새로운 보편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중국이 창안하고자 하는 새로운 보편주의는 중국의 인문전통을 지적, 문화적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인문전통 강조나 <인문공동체> 구상은 극히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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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06.22 15:15

호스피스 철학에서 웰다잉의 문제 : 에디트 슈타인을 중심으로



                               이은영_철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웰다잉’의 문제가 우리사회에 있어서 상당히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사실을 촉구하면서 출발하였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우리는 ‘웰다잉’에 집중해 있는가? 필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오래 살지만 아프면서 오래 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2012년 기준 60세 남성은 22년, 여성은 27년을 더 살 것이라는 통계가 발표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10여 년을 아프다가 사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는 선진국이 약 6년인데 반해, 한국의 경우 거의 두 배에 육박한다. 이 사실은 진료비 통계에서도 알 수 있다. 2013년 고령층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50조 7426억 원)의 35%를 차지하며, 사망원인은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 폐렴 등의 순이다.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말기 판정에도 불구하고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받는 환자는 갈수록 늘어 간다. 가족이 병 수발로 겪는 정신적, 경제적 고통은 마침내 비참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둘째, 아픈 상황에서 빈곤의 심각성이다. 2013년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중위 소득의 50%미만 인구)은 48%로 전체의 3.3배이며 이는 곧 OECD 국가 중 60세 이상의 자살률이 최고라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평가에서 40개 국가 중 32위라고 밝혀지고 있다(Economist intelligence Unit, 2010). 이러한 배경 하에, 최근 들어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국내 연구자들의 다양한 ‘웰다잉’ 연구의 다변화가 시도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물론 본 연구에서 추구하는 호스피스 철학이 본격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연구의 본격적 수행을 예비하는 최근의 몇 가지 의미 있는 움직임들은 눈여겨 둘만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호스피스’ 내지는 ‘호스피스 활동’이 아니라 왜 ‘호스피스 철학’인가? 또한 인간을 탐구하는 철학은 죽음에 대하여 어떤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으며 또한 그 문제들에 대한 철학적 접근 방법은 다른 분야의 방법과 어떠한 차이를 견지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본 글을 출발한다. 


호스피스 철학


호스피스(Hospice)의 어원은 ‘손님을 집에서 정중하게 모셔 후대 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면에 의학사전에서는 ‘죽어가는 사람과 가족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영적 간호의 형태로 고식적이고 지적인 서비스 제공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공공시설’로 명시하고 있으며 숙소나 집의 의미보다 임종환자 내지 그 가족을 포함하는 사람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집과 사람이라는 양자를 함께 ‘집에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때 집에 머물러 있는 사람의 의미는 그가 하루속히 성지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야 하는데 심신의 피로로 인해 하룻밤 쉬어야 하거나 혹은 신병으로 떠나지 못한 채 며칠 동안 숙소에 그냥 남아 있는 사람들을 통칭한다. 더욱이 이들을 돌봐주고 간호해 주는 정중한 마음까지를 다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전인적 돌봄’이라고 할 수 있다. 호스피스의 현대적 정의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로서 환자가 남은 여생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으로 도우며, 사별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경감시키기 위한 총체적인 돌봄이다.(...)따라서 호스피스는 임종자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희망 속에서 가능한 한 편안한 삶을 살도록 하는데 전념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총체적 접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병 뿐 아니라 마음의 병, 영혼의 병을 갖고 있으므로 호스피스는 이러한 육체적인 치료와 영적 치료를 같이 해주는 전인치료를 목적으로 하며, 죽어가는 환자 뿐 아니라 그 가족 전체를 돌보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호스피스는 주로 종교적인 활동으로 인식되며, 하나의 운동 내지는 활동이라는 의미에서 ‘호스피스 운동’(Hospice Movement)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호스피스 정의를 토대로 백승균 교수는 다음과 같이 ‘호스피스 철학’을 규정짓는다, 그에 의하면, “호스피스는 순례자나 병약자를 돌보기 위해 ‘간호’(시간)하는 일과 그들을 편히 쉴 수 있도록 ‘숙박’(공간)하는 일이 중요하다. 즉 호스피스에 있어서는 순례자와 병약자를 위한 숙박과 간호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우리는 이 ‘숙박’(공간)의 개념과 ‘간호’(시간)의 개념을 인간존재라는 바탕에서 철학의 기본범주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서 재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를 ‘호스피스 철학’이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백승균에 의하면, “호스피스 돌봄 보다는 ‘호스피스 철학’이라고 명명하고, 인간존재와 생명현상, 그리고 그러한 생명의 존엄성이 무엇인가를 호스피스 철학의 이념으로 제시한다. 호스피스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가 인간이고, 인간의 삶이며 또한 그러한 인간 삶의 중심축이 바로 인간의 실존임을 주장함으로써 호스피스 활동이나 돌봄 보다는 호스피스 철학”임을 강조하였다. 필자는 백승균의 논의를 적극 지지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적 바탕 위에서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부가하고자 한다. 즉 호스피스에 있어서 순례자나 병약자를 돌보기 위한 ‘간호(시간)’와 그들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숙박(공간)’이라는 기본범주를 토대로 간호하는 호스피스와 간호를 받는 환자 사이의 ‘관계(태도)’라는 요소를 추가하여 인간존재라는 바탕에서 재해석하려는 것이며, 이를 ‘호스피스 철학’(Hospice Philosophy)으로 규정짓고자 한다.


호스피스 철학의 정초로서 사랑과 공감


필자는 슈타인의 박사논문『감정이입의 문제』에서 제시되었던 감정이입(Einfühlung)의 한 측면인 ‘하나로 느낌’과 ‘더불어 느낌’을 통하여 호스피스 활동의 이론적 근거를 모색해 내고자 한다. 우선 감정이입의 한 형태로서 제시된 ‘하나로 느낌’이다. 슈타인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곡예사와 ‘하나(eins)’가 아니라, 단지 곡예사 ‘곁에(bei)’ 있을 뿐이다. 나는 곡예사의 행동을 실제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즉 곡예사의 행동을 나는 외적으로는 실행하지 않지만 내적으로 함께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곡예사를 ‘고유한 자아’, 지켜보고 있는 나를 ‘낯선 자아’라 할 때, 낯선 자아가 고유한 자아의 움직임을 함께 실행하지 않아도 낯선 자아는 고유한 자아와 내적으로 함께 하면서 내적으로 하나가 되고 ‘하나로 느끼게’ 된다.” 이러한 ‘하나로 느낌’(Einsfühlen)에서는 ‘우리’가 하나로 느낌의 주체이기 때문에 ‘나’의 기쁨과 ‘너’의 기쁨, 그리고 ‘그’의 기쁨은 ‘우리’안에서 유지되며 따라서 ‘우리’의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호스피스는 임종하는 환자의 곁에 있으며, 임종자의 고통스러운 행동을 외적으로 직접 실행하지는 않지만 내적으로 감정이입하면서 함께함으로써 ‘하나로 느끼게’ 될 수 있다. 임종자의 고통을 하나로 느끼려 하는 호스피스의 태도는 심리적, 정서적으로 환자가 자신의 안정감과 만족감을 가지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더불어 느낌’이다. 슈타인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예컨대 A가 시험에 통과했고, A는 이 일에(시험에 통과한 결과에) 대해서 기뻐한다, A의 친구인 나도 기뻐하는데 기뻐하는 대상이 A의 기쁨 그 자체가 아니라 A가 시험에 통과한 그 결과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이다. 이 기쁨은 A가 시험에 통과한 사건에 대해서 A와 내가 함께 기뻐함이 된다. 이것이 곧 ‘더불어 느낌’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A가 기뻐하고 있는 그 사건(A가 시험에 통과한 사실)에 나를 옮겨놓는 것이며, 이때 나는 A의 기쁨 자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해서 A와 더불어 기뻐하고(느끼고) 있는 것이다.(PE, 13-14)” 마찬가지로 호스피스는 임종자의 고통에로 자신을 옮겨 놓으며, 임종자가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에 대하여 ‘더불어 느낌’(Mitfühlen)으로써 임종자의 호소에 응답하며 임종자로 하여금 친밀감과 가까움이라는 정서를 느끼게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감정이입의 한 형태로 제시된 ‘하나로 느낌’과 ‘더불어 느낌’의 근저에는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감정에 대한 철학적 가치는 슈타인의 주저『유한한 존재와 영원한 존재』 전반에 걸쳐 감정이 존재에 접근하는 유효한 방법임을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예컨대, 인간을 실례로 살펴보자면, 전쟁 중에 일어나는 현상들에서 감정을 기술한다. 군대는 거리를 따라서 열을 지어 행진한다. 그들은 경험이 없는, 차별이 없는 무리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엄마와 약혼자는 개개의 군인을 본다. 여기에서 논점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병사들의 통일된 본성(동일성)보다는 이성적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개인의 차별성을 보게 해 준다는 것이다. 통일된 본성은 궁극적으로 신의 전능한 눈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병사들의 통일된 본성(동일성)보다는 개개인에 대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며, 이는 곧 임종을 앞둔,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환자들이라는 동일성 보다는 개개인의 차별성을 통하여 그 고통과 괴로움을 공감할 수 있는 토대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가는 말


2014년 설문조사(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서 86%가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현재(2015년 3월) 암 사망자의 13%만이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실정이다. 말기환자는 그들의 바람과 달리 고가의 검사와 처치로 고통을 받으며 품위 있는 생의 마무리를 위한 돌봄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호스피스 국민본부는 ‘웰빙의 마무리는 웰다잉’이며 ‘호스피스 제도화로 말기환자 돌봄의 질을 높이고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국회는 호스피스 제도 도입과 함께 말기환자 완화의료 등을 위한 법안을 제정하고 정부는 웰다잉에 관한 범부처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그 성과를 점검하는 체계를 갖출 것을 약속하였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는 웰다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시행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오는 7월 1일부터 호스피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함으로써 말기 판단시점부터 환자의 호스피스 선택을 보장하고 최상의 의료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만일 오늘날 개인이 치유를 필요로 하는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마음의 문제뿐 아니라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몸과 감각적 측면 그리고 영혼과 정신적 측면의 상관관계 속에서 문제를 직시해야 함을 강조하는 측면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결국 인간의 죽음은 육체만의 문제라고 지정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영혼이나 정신적인 문제로 판단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 웰다잉의 핵심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관점의 웰다잉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그런 한에서 필자가 제시하는 슈타인의 호스피스 철학에서 웰다잉 문제는 우리 사회의 좀 더 성숙한 죽음 문화 형성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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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04.17 14:07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5년 학술대회 <근대 문체의 창출과 미디어>




근대초기신문과 단행본 서적의 문체 선택 및 분화 양상 연구

- 서사적 기사와 소설을 중심으로 -




강현조_연세대학교 Open & Smart Education 센터 

글쓰기교실 선임연구원




근대적 매체의 등장과 문체 분화


     한문 대 언문이라는 이중 문어 체계는 사실 전근대 시기부터 존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해 양반·지식인·남성 등으로 범주화할 수 있는 한문 해독층은 한문을 공식 문어이자 지식·정보의 독점 수단으로 향유해 온 반면, 평민·비지식인·여성 등으로 범주화할 수 있는 언문 해독층은 주로 서간·기행문·서사물 등의 집필과 향유에 있어 한글을 비공식 문어이자 대항 언어(counter language)로 활용해 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존의 이중 문어 체계는 서구 문물 및 근대적 지식·정보의 수용이 불가피하게 된 새로운 현실의 도래로 인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신문이라는 근대적 매체의 등장은 바로 이와 같은 현실 변화의 계기인 동시에 변화를 촉진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규정될 수 있다.

     근대적 매체의 등장에 따른 문체 선택 및 분화의 양상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곧 한문으로 되어 있는 글을 단순히 조사(토씨)만을 붙여 쓸 것인가, 아니면 한국어의 통사적 구조와 어순에 맞추되 한자 표기를 유지하는 형태로 쓸 것인가, 아예 한문 문장을 표기와 어의(語義) 양 측면에서 한글-한국어 문장으로 전환하여 쓸 것인가 하는 문제 상황에 따라 각각 한문현토체(한주국종체), 국한문혼용체(국주한종체), 순국문체 등이 선택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한문의 한국어 변환을 위한 각 매체별 선택과 실천의 과정에서 다양한 분화 양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의 모든 기사가 한문으로 집필 혹은 전재(轉載)되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이때까지는 서구의 근대적 문물에 대한 지식·정보의 획득에 있어 언문 해독층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의 지면 안에 한문·국한문·순국문으로 된 기사를 동시에 게재하였던 《한성주보》의 등장은 공식 문어로서의 한문의 지위에 균열을 가함과 동시에 더 이상 한문이 지식·정보의 독점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을 환기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895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한성신보》 역시 하나의 지면 안에 국한문체 또는 순국문체가 동시에 사용되는 문체 분할의 양상을 노정하였으며, 역시 거의 비슷한 시기의 단행본 서적 출판에 있어서도 유사한 형태로 문체 선택 및 분화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여 근대적 매체의 등장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 문체 선택 및 분화의 양상을 통시적으로 고찰하였다. 




<사진_ 14 한성순보. 오마이뉴스>




문체 선택 및 분화의 초기적 양상(1884~1897)


     《한성주보》의 ‘지면 내 문체 분할’은 한문 독해가 가능한 계층 및 집단뿐만 아니라 국한문 혹은 순국문의 독해가 가능한 계층 및 집단까지도 독자층으로 상정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외국 기사의 경우는 중국·일본 등의 신문·잡지에 게재된 원문을 번역한 것이 많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한자어의 고유어 변환뿐만 아니라 한문 문장 자체를 한국어 통사구조에 맞게 고쳐 써야 한다는 과제가 부여된다. 이 글에서는 그 구체적 양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사례를 새롭게 발굴하여 소개하였다. 

     1884년 4월 25일자 《한성순보》에 실렸던 『스페인의 馬爾慕亞가 太平洋을 발견하다(西班牙人馬爾慕亞檢出太平洋)』라는 기사와 2년여 후인 1886년 6월 28일자 《한성주보》에 실린 『스베인사 마르미아가 아다란짓그를 차진 속고』라는 기사가 그것이다. 두 기사는 동일 내용이며, 후자는 전자를 순국문으로 번역하여 다시 게재한 것이다. 같은 뉴스원(news源)에서 기사를 취했지만 《한성주보》는 《한성순보》와 달리 동일 기사의 대상 독자를 순국문 해독층으로 상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성신보》에서는 이러한 ‘지면 내 문체 분할’의 양상이 더욱 본격화된다. 일본인 발행 신문이었던 《한성신보》는 한국어 지면과 일본어 지면을 분할하였고, 한국어 지면은 한문을 거의 배제하고 국한문체와 순국문체를 거의 유사한 비율로 사용함으로써 국한문 해독층과 언문(한글) 해독층 모두를 주요 독자로 상정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순국문으로 된 서사적 기사가 증대하였으며, 허구적 서사물로 볼 수 있는 글들이 잡보란을 통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창간된 순국문 신문인 《독립신문》 또한 잡보란을 두고 있었지만 서사물로 볼 수 있는 글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과 대조를 이룬다. 이 글에서는 기존에 알려진 40편의 자료 외에 한국 최초의 ‘소크라테스 약전(略傳)’이라 할 수 있는 『希臘의 雅典國 賢人에 索克이란 사ᄅᆞᆷ에 行實이라』(1895.11.21)와 순국문으로 된 허구적 서사물인 『효자지감신(孝子之感神)이라』(1896.7.20)·『天感至誠』(1896.8.5) 등의 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하였다.

     이와 같은 《한성신보》의 순국문 기사 게재 확대 경향 및 허구적 서사물 게재 시도는 일본인 발행 신문임에도 불구하고 《한성신보》가 조선인 독자의 확보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을 시사할 뿐만 아니라, 주요 대상 독자가 한문 해독층이 아닌 국한문 해독층 및 언문(순국문) 해독층이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근대적 활자를 이용한 단행본(鉛活字本) 출판의 경우에도 《한성주보》의 등장과 거의 동시에 국한문체로 된 서적이 등장했다. 흔히 최초의 국한문체 저작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1895)이지만, 《한성주보》의 회계주임을 역임하기도 했던 정병하(鄭秉夏)가 저술한 『농정촬요(農政撮要)』(1886)가 훨씬 앞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성신보》의 발간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단행본 서적의 출판에 있어서도 국한문체와 순국문체의 선택 및 분화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학부 편집국이 발간한 『만국지지(萬國地誌)』(1895)·『만국약사(萬國略史)』(1895)·『조선역사(朝鮮歷史)』(1897) 등의 교과서들은 정부 주도의 출판인 동시에 사류(史類)라는 양식적 특성이 반영되어 대체로 국한문체가 선택되는 경향이 높았다. 이에 비해 민간 출판의 경우에는 주로 순국문체가 선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번역되거나 집필된 기독교 서사문학의 한국어 번역물 출판 사례가 이에 해당하며, 『천로역정』(1894)·『쟝원량우샹론』(1893)·『인가귀도』(1894) 등을 들 수 있다.

     요컨대 근대적 형태의 단행본 출판에 있어서도 국한문 서적(관 주도)과 순국문 서적(민간 주도)이라는 방식이 양분되어 있었고, 전자는 사류(史類)를 포함한 교과서에, 후자는 주로 서사성을 띤 저작물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서적별 문체 분화 양상 역시 신문과 마찬가지로 18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1890년에 본격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1890년대의 신문 발행과 단행본 서적 출판이라는, 즉 근대적 매체의 본격적인 도입과 그 메커니즘의 작동은 필연적으로 문체의 선택 및 분화 현상을 야기하였고, 나아가 서로 다른 해독 문자를 가진 독자층의 분화 및 확대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1898년 이후의 문체 선택 및 분화 양상


     1898년 이후에는 다수의 순국문 신문들과 소수의 국한문 신문들이 독자 확보를 위한 상호 경쟁을 벌였다고 할 수 있다. 1월 1일 《협성회회보》(4월 9일자로 《매일신문》으로 개명됨)의 창간을 필두로 하여 《제국신문》(8.10)과 《황성신문》(9.5)이 잇따라 창간되면서, ① 국한문·순국문 혼용 신문(《한성신보》), ② 국한문 신문(《황성신문》), 그리고 ③ 다수의 순국문 신문(《독립신문》·《죠션(대한) 크리스도인 회보》·《그리스도 신문》·《협성회회보(매일신문)》·《제국신문》 등)이 공존하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창간된 신문들은, ‘지면 내 문체 분할’ 방식을 선택한 《한성신보》와 달리, 매체별로 단일한 특정 문체를 선택함으로써 특정 문자 해독층을 주요 대상 독자로 삼는 형태로 존재했다. 이는 신문 시장 및 독자층 전체의 확대라는 당대의 추세에 상응한 결과이겠지만, 아울러 독자층의 분화 현상 및 신문사별 목표 독자의 차별화 추구 경향과도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잡보란에 허구적 서사를 포함한 서사적 기사의 게재 비율이 증대하였고, 소설란 또한 경쟁적으로 개설되었다. 《한성신보》는 이미 1897년 최초로 소설란을 개설하였고, 1906년에 이르면 《대한매일신보》(2월), 《황성신문》(5월), 《만세보》(7월) 《제국신문》(9월), 《경향신문》(11월) 등의 순으로 거의 대부분의 신문에 동시다발적으로 소설란이 개설된다. 하지만 <혈의루>의 등장 이전인 1904~1906년에도 신문에는 잡보란 등을 통해 서사물이 지속적으로 게재되고 있었다. 따라서 1906년에 나타난 각 신문별 소설란의 개설(속출)은 돌발적이고 비약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연속적인 현상의 누적 속에서 발생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요컨대, 1898년 이후 복수(複數) 신문 공존 체제 및 신문 간 경쟁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각 신문들은, 《한성신보》를 제외하면 대체로 매체별로 단일한 특정 문체를 선택함으로써 특정 문자 해독층을 주요 대상 독자로 삼는 형태로 존재했으며, 국한문 해독층보다는 순국문 해독층을 목표 독자로 삼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전반적인 신문 시장의 확대 및 순국문 해독층의 저변 확대에 따라 순국문 신문들 사이에서도 독자층의 분화 현상 및 신문사별 목표 독자의 차별화 추구 경향 또한 나타났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다시 순국문 독자층의 확대를 견인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결과 국한문보다는 순국문으로 된 서사적 기사 및 허구적 서사물의 비율이 우세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일종의 단선적 진화(발전)의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순국문 우세의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국한문체 기사 및 서적의 신문·출판 시장 지분 점유 양상은 일정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오랫동안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나오며


     신문과 단행본을 아우르는 문체 선택 및 분화의 양상은 대체로 국한문보다는 순국문의 우세라는 결과로 귀착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1910년대 이후까지도 여전히 국한문체의 언론·출판 시장 지분 점유 양상이 포착되는 것으로 보아 국한문-순국문 양분 구도는 후자의 우세 속에서도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근대초기 문체 선택 및 분화의 양상은 발전론(진화론)적 관점에서 포착되어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연속과 단절의 국면이 동시적으로 표면화되었던 당대의 양상을 최대한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는 태도는 이 시기 문체 선택 및 분화 양상의 연구에 있어 불가결하게 요청되는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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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04.17 13:58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5년 학술대회 <근대 문체의 창출과 미디어>




근대 매체와 한글 가로 풀어쓰기의 실험      

            



                                    권두연_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박사 후 연구원




한글 가로 풀어쓰기라는 문제틀


     훈민정음 반포 후 500여년이 지나 한자를 배제한 한글만으로 된 문자 사용의 전면화가 가능해졌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나가는 가로쓰기나 영어 알파벳처럼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각 분리해서 풀어쓰는 시도들은 모두 이 부산물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이 둘을 동시에 실행한 한글 가로 풀어쓰기는 한자와의 단절을 통해 한글로만 된 완벽한 문자 환경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 국어학자들뿐 아니라 선교사, 매체 편집인 등 한글을 상용하고자 한 이들에게 매력적인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로쓰기는 채택되었지만 풀어쓰기는 그렇지 못했다. 이 글은 초창기 한글 가로 풀어쓰기가 어문학자들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 관련자들 특히 최남선과 이광수 같은 신문학자들에게도 공통으로 시도되었음에 주목하여 그 양상을 고찰하고 이를 통해 풀어쓰기가 채택되지 못한 하나의 단서를 추정해 보고자 한다.

 


가로쓰기의 다양한 용례들


     한글 가로쓰기를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이 주시경이라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주시경은 1897년 9월 28일자 ⌜독립신문⌟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나가는 가로쓰기의 유용성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1909년 국문연구의 철자법에서는 가로 풀어쓰기의 용례를 단 한 줄이지만 흘림체와 함께 제시하였다.

     물론 가로쓰기의 용례는 이미 이전부터 서양 선교사들의 작업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바, 페론(S. Feron) 신부의 필사본 ⌜불한사전 1868)을 필두로 리델이 편찬한 ⌜한불자뎐 (1880), 게일이 편찬한 ⌜한영자뎐 (1897) 등 서양의 알파벳을 표현하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동반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외국어 사전에 가로쓰기가 일관되게 적용된 것은 아니다. 러시아 사람인 푸칠로가 편찬한 로조사전 의 경우 러시아 문자는 가로로, 거기에 대응되는 한글은 세로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인에 의해 편찬된 國漢會語(1895)에도 “字行은 從左達右”라며 실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자를 쓰고 있고 이는 “外國冊規”을 본뜬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홍윤표, 2013) 그러니까 한글 가로쓰기가 서양 알파벳을 본떠 실시되었다는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얘기는 아닌 셈이다.

     그런데 이들의 가로쓰기에서 풀어쓰기의 용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알파벳 하나하나를 독립해서 써야 하는 선교사들 입장에서 본다면 한글 자모 역시 독립된 음소로 썼을 법한데, 그러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주시경을 비롯하여 가로쓰기를 주장한 이들의 한글 가로쓰기에는 풀어쓰기가 거의 전제되어 있다시피 하다. 다시 말해 초기 서양 선교사들이 한글을 가로쓰기 할 때 풀어쓰기는 동반되지 않은데 반해 한글 연구자들은 달랐다. 가로쓰기는 풀어쓰기의 필요 요건이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세로로 된 풀어쓰기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풀어쓰기, 그 미완의 실험


     한글 전용이 전면화 되고 가로쓰기가 정착된 오늘날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로쓰기를 굳이 풀어쓰기와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한글 가로쓰기가 채택되기까지의 과정은 최현배의 표현처럼 “혁명”에 가깝다.(최현배, 1947)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은 표제를 가로로 썼지만 그 방향은 오른쪽에서 왼쪽이다. 매체의 표제에서부터 광고, 삽화, 사진(口繪) 등에 가로쓰기가 왕왕 보이지만 거의 모든 경우 세로쓰기의 독법과 같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되어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가로쓰기가 대중적 이해를 얻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상용화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설득력을 갖추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소요되었다. 

     풀어쓰기가 미완의 실험으로 남은 것도 이 과정의 산물이다. 최현배를 비롯해 많은 국어학자들이 한글 가로 풀어쓰기를 이론화하고 다양한 예문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려 했음에도 실현되지 못했던 것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처음부터 가로쓰기와 함께 제시되었고 그 반감도 비슷했지만 음절 단위로 사용되어 온 한글의 오랜 관습을 개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애초 음소문자로 창제된 한글이 음절 단위로 사용되어 온 오랜 전통을 불식시키고 음소화를 실현하려 한 풀어쓰기의 이상(理想)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근대 초기 국어학자들 외에도 다양한 매체 관련자들이 참여했고, 특히 한글 가로 풀어쓰기가 ‘2인 문단시대’의 주역으로 꼽히는 최남선과 이광수와 같은 문학자들에 의해서도 시도되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 있다.


1914년 각각 다른 지면에 소개된 한글 가로 풀어쓰기


            ⌜아이들보이



1914년, 세 사람과 세 지면


     1914년 주시경이 서거한 해에 출판된 그의 저서 말의 소리(1914.4)에는 '우리 글의 가로쓰는 익힘'이 가로 풀어쓰기 되어 있다. 가로쓰기라는 명칭과 가로 글의 유용함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이 글은 한글 가로 풀어쓰기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인 사례이다. 이는 이후 김두봉을 거쳐 최현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발전, 변주된다. 흥미롭게도 동시기에 최남선이 주간을 맡고 있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잡지 ⌜아이들보이1914.2~1914.9)와 시베리아 행을 감행한 이광수가 러시아로편집을 맡게 된 러시아 한인들의 기관지인 ⌜대한인정교보(1913.3~6)에도 한글 가로 풀어쓰기가 실린다. 

     전자는 <한글>란을 통해 한글 가로 풀어쓰기에 관한 다양한 예문을 선보였으며 특히 가로로 풀어 쓴 한글을 다시 세로로 모아 쓴 <한글풀이>를 별도의 형식으로 제시하였다. ⌜아이들보이가 선보인 이 <한글풀이>는 김윤경이 1937년 ⌜한글 지에 주시경의 예문을 가로로 풀어쓴 "내리글씨"의 원리와 유사하다. 후자 역시 <우리글>이라는 고정란을 만들어 가로쓰기에 관한 이론적 접근은 물론, 자모의 예에서부터 자작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였다. 무엇보다 흘림체를 선보였는데 이는 김두봉(깁더조선말본, 1922)이 제시한 것보다 8년이나 앞선다는 점에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경향신문 1979.12.18과 한글새소식 89호, 1980.1)

     더욱이 이 세 지면에 나타나는 한글 가로 풀어쓰기에는 몇 가지 유의미한 차이들이 드러난다. 풀어쓰기의 단순성으로만 보자면 아이들보이->말의 소리->대한인정교보⌟ 순으로, 갈수록 복잡해지는 양상을 띤다. 이처럼 풀어쓰기가 복잡해지게 된 배경에는 음소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혼란으로부터 음절 분리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가 포착된다. 그렇지만 본래 한글에는 없는 H/U나 딴이(Ĭ)와 같은 문자의 도입과 이로 인해 난해해진 형태는 오히려 훗날 풀어쓰기에 비판의 빌미를 작용해 가로쓰기만 채택되는 결과를 불러온다.



주시경의 말의 소리⌟(김윤경, 1937)




대한인정교보


     근대 초기 한글 가로 풀어쓰기의 실험은 단순히 국어학의 문제나 국어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새로운 매체를 만들고자 한 이들, 나아가 새로운 시나 새로운 소설을 쓰고자 한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중요한 문제였고 시도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결국 매체란 언어를 통한 ‘읽을거리’의 생산이고 만드는 사람과 향유하는 사람, 필자와 독자,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 속에서 형성될 수 있는 것이며 내용과 형식 역시 그 과정에서 결정될 터였다. 최초의 근대 한글 장편 소설을 쓴 이광수나 신체시의 창시자인 최남선이 한글 가로 풀어쓰기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은 문학 역시 언어를 통한 예술이며 그 선두에는 언제나 언어에 대한 고민이 먼저 놓여 있었음을 방증한다. 



데칼코마니, 시대를 앞서 간 글자


     한글 가로 풀어쓰기에 관한 선행연구들을 고찰하면서 떠오른 이미지는 미술에서 흔히 이용되는 데칼코마니(décalcomanie)였다. 초기 국어학자들만으로 구성된 한글 가로 풀어쓰기에 관한 언급과 서술들이 마치 한쪽 면이 가려진 채, 전체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과 흡사하다고 생각되었다. 1914년 동시기에 발생한 언어 실험들, 특히 매체와 관련한 여러 다양한 시도들이 함께 다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이 그림은 온전히 재현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편 주시경을 비롯하여 한글 가로 풀어쓰기를 주장한 이들이 한결같이 ‘박음술’의 이점에 대해 언급한 사실을 상기한다면 인쇄 (불가능한) 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된 데칼코마니의 이미지는 한글 가로 풀어쓰기에 또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 준다. 가령 주시경의 필체로 쓰인  말의 소리의 한글 가로 풀어쓰기는 책의 마지막 쪽에 부록으로 삽입되었고 아이들보이의 경우도 별도의 페이지로 덧붙여졌으며 대한인정교보의 경우도 석판 인쇄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인쇄에 유용하다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기술력의 부족으로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1914년은 최초의 한글 타이프가 발명된 해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 한글 타이프의 존재는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실용성도 검증되지 않았다. 한글 타이프의 상용화는 훨씬 후대에야 가능해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타이프의 원리가 한글 자모 체계의 혁신성을 보다 가시화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1914년 한글과 관련한 다양한 시도들, 그 가운데 한글 가로 풀어쓰기는 글자 하나하나를 (풀어) 치는 타이프의 발명과도 연동될 여지를 남기지만 정작 활자를 집자하는 당시의 인쇄 환경에는 역부족이었다. 역설적으로 미래적인 문자였던 셈이다.  



<참고문헌>

최현배, 글자의 혁명, 군정청 문교부, 1947.

홍윤표, 한글이야기1, 태학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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