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125호] 건축, 건축학, 그리고 우리의 건축학 연구 1. ‘건축학(建築學)’이란 물론 건축을 연구하는 학문 분과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시 ‘건축은 그럼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사전적으로 이것은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기술 혹은 예술’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며, 더 쉽게는 ‘집짓기 술(術)’이라 요약할 만하다. 하지만, 모든 정의가 다 그렇듯, 이처럼 딱딱한 규정만으로 건축의 의미를 포괄하긴 힘들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프랑스의 르 코르뷔제(Le Corbusier, 1887~1965)가 건축을 “빛에 비추인 볼륨들의 능숙하고, 정확하고, 장려한 유희”라고 서술함으로써 건축에 시적 울림을 부여한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종종 언급되듯 ‘아키텍쳐(architecture)’의 어원을 헬라어 ‘아르케(arche: 사물의.. 더보기
[125호] 현대무용은 오늘날 몸문화, 몸사상의 이상적 구현체 현대의 극장예술을 이끌고 있는 두 대표적인 예술 영역을 꼽아낸다고 하면 연극과 무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연극은 많은 경우 희곡, 혹은 대본이라고 하는 것을 매개로 주로 언어와 행동을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무용은 언어를 거치지 않고 바로 몸짓을 써서 인간의 감정이나 어떤 이미지, 혹은 사상을 전달한다. 물론 이 이외에도 음악과 연극의 결합체라 할 수 있는 고급스런 오페라와, 보다 대중적인 뮤지컬이 있겠지만(우리의 경우 창극), 두 영역은 예술 창조와 그 수용의 측면에서 그리 다양하거나 폭넓지는 않다 하겠다. 반면, 오늘날의 연극이나 무용은 매우 다양한 층위에 걸쳐 수용되거나 교육되면서 그 표현의 측면에서 놀랄 만큼 다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 특히 현대무용은 현대적 삶의 감성을 매.. 더보기
[125호] 사진의 또 다른 문맹과 비주얼 리터러시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정보들은 대부분 매스-미디어와 멀티-미디어 그리고 스마트폰 등이 방출하는 시각 이미지, 특히 사진과 동영상으로부터 전달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과거 문맹에 대한 문자 리터러시 교육과 마찬가지로 시각 문맹으로부터 탈피하도록 하는 비주얼 리터러시 교육이 중요해졌다. 리터러시(literacy)라는 말은 원래 1492년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 이후 문자로 읽고 쓸 수 있는 문식력(文識力)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사진과 영화의 출현 이후 20세기 후기 정보 산업시대 영상매체의 급진적 발전, 특히 디지털 매체와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해 사진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능력으로서의 비주얼 리터러시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코드를 매개로 하는 문자 리터러시 언뜻 생각하기에 사진을 만들고 이해하는데 무.. 더보기
[125호] 21세기 음악연구, '음악학'의 경계를 넘어 음악, 현대인의 필수품 지하철이나 도서관, 일상의 곳곳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모습은 오늘날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처음 발명했을 때, 소리를 저장하여 재생한다는 그 새로운 발상이 다음 세기 어떤 변화를 낳을지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라모폰과 레코드는 그저 스러져갈 운명인 소리를, 순간의 예술인 음악을, 시간성으로부터, 그것이 존재하는 장소성으로부터 해방시켰다. LP와 CD로 음악은 하나의 상품이 되었고, 워크맨의 시대를 지나 mp3의 등장은 무형의 음악파일로 변환된 음악을 전 세계 어디서나 손쉽게 다운받아 들을 수 있게 했다. 아이팟의 재생방식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클래식, 록, 힙합, 월드뮤직 등 음반 시대에 존재했던 음악 장르의 장벽도 사라진다. 헤비메탈과 중세.. 더보기
[125호] 현대미술의 교양은 상아탑 바깥에서 ▲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바 없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 비둘기 박제 2천 마리를 설치해서 관행적 미술감상과 전시의 문법을 파괴했다. 눈높이 맞춤 교육의 위험 “마르크 샤갈, 모딜리아니, 뭉크 등 예술가의 삶이나 작품을 바탕으로 이들의 창의력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관한 소개를 꼭 글에 포함해서 써주세요.” 한 기업 사보가 필자에게 보낸 원고 청탁서에는 ‘원고 방향’이 이렇게 명시적으로 적혀있었다. 세간에서 예술의 창의성과 연결되는 예술가의 전형으로 무엇을 인식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구청과 기업들이 구민과 임직원을 위해 마련하는 예술 교양 강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대략 8회 분량의 커리큘럼 안에 영화 문학 미술 음악 방송 등 분야별 전문가를.. 더보기
[124호] 불안, 제약이자 가능성 불안, 제약이자 가능성 윤 여 일(작가) 불안한 시대다. 불안에 물드는 시대다. 불안은 미래 시제의 감정이다. 불안한 시대인 것은 미래가 불확실해서다. 불확실한 미래는 불안을 동반해 현재를 찾는다. 불안한 시대다. 불안에 익숙해져버린 시대다. 사회는 불안해하기를 권하고, 불안이야말로 사회의 지극히 정상적 감정이 되었다. 이 사회의 인간은 불안에 물들어 불안 없이는 살지 못한다. 불안은 떨쳐낼 수 없다. 불안한 자는 자신을 불안케 만드는 사회를 향해 불안을 분노로 전환시켜 발산해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은 막혀있다. 안에서 불안이 차올라 바깥으로 꺼내보지만 현실 벽의 두께에 부딪혀 죄다 토해내기도 전에 체념으로 다시 집어삼킨다. 그리고는 버틴다. 버티는 자들의 표정에서는 냉소의 빛이 돈다. 그게 시.. 더보기
[124호] 불안은 당신의 몸을 겨냥한다. 불안은 당신의 몸을 겨냥한다. 박 승 일(서강대 신방과 박사수료) 사례 1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개강총회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가 음주가 지나쳐 토할 경우 무게중심이 머리에 쏠려 자칫하다간 화단에 고꾸라져 사망할 수 있습니다. 이참에 공부하자고 책을 읽으면서 도서관에 가다가는 청명한 하늘에 반사된 유리창 빛에 넘어져 뇌진탕으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집에 있어서도 안 됩니다. 밀폐된 공간에는 포름알데히드와 기타 중금속이... 천식과 폐렴을... 사례 2 질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방지하며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고른 영양섭취가 필수적입니다. 암 예방을 위해서는 마늘, 당뇨병 예방은 콩, 심장병에는 고등어, 노화억제에는 호두, 다이어트에는 버섯, 정력증강에는 보리, 활성산소 해독에는 부추,.. 더보기
[124호] 위기의 담론에 불안하게 대처하는 방법 위기의 담론에 불안하게 대처하는 방법 불안을 증폭시키고 전염시키는 불안의 애국적 사용설명서 최 정 우(비평가, 작곡가, 파리 국립동양어문화대학 강사) *사진출처: 민중의 소리 우리는 이미 불안의 자기증식과 대량생산 체제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안은 감정적인 것이나 심리적인 것이기 이전에 먼저 하나의 구조 또는 체제이므로. 이러한 불안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질문의 형태가 아닐까.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이 모든 불안을 걷어내 주겠다고 약속하는 어떤 달콤한 소시민적 행복의 속삭임, 그 치유에의 유혹과 건강성에의 회유에 가장 먼저 의문을 던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문제는 불안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불안의 체화 혹은 내재화일 것이다. 불안은 일종.. 더보기
[124호] 빛/빚에 당하다 빛 / 빚에 당하다 이 소 연(문학평론가) 자크 라캉은 “불안, 그것은 속이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불안만큼 우리의 본래적 상태에 가까운 감정도 없을 것이다. 불안은 대체로 모호한 원인으로부터 비롯되며 또 다른 형태의 불안으로 대체될 뿐, 좀처럼 소멸되는 법이 없다. 불안은 대개 막연하나마 모종의 ‘위기’가 임박했음을 경고하는 신호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불안은 어쩌면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인 우리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기분일 뿐,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일지 모른다. 하이데거는 오히려 불안이 인간을 전면적으로 뒤흔들어 본래적 자신을 대면하는 상태로 이끈다고 두둔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불안이 불러일으키는 불쾌한 감각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선택하.. 더보기
[124호] 불안한 영혼과 두려움의 지배 불안한 영혼과 두려움의 지배 서 용 순(영남대) 모든 것이 흔들린다. 적어도 외양은 그렇다. 우리에게 드러나는 세계는 그 자체로 동요하고 있고, 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존재 역시 흔들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주 심각한 동요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모종의 불안이며, 그 불안이 구체화되는 순간 우리는 두려움의 지배를 받는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은 가까운 미래에 두려움으로 바뀔 것이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무슨 이야기냐고? 결코 복잡하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불안으로 드리워진 세계고, 그 이면에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자리 잡..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