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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112호] ‘토건망국’을 향한 질주를 멈춰라

정부가 ‘일로영일’(一勞永逸)을 내세운 호랑이 해의 봄도 어느 덧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오랜 안락을 향한 대한민국의 국책 사업은 땅을 파고 산을 깎는 반(反)녹색 성장을 지향하며 전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토건주의를 일선에서 비판하고 있는 필자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홍성태 (상지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교수)

한국이 토건국가의 덫에 걸려 고통 받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민주화와 고성장에 성공하고 ‘진정한 선진화’의 문턱에 이르렀으나, 토건국가의 덫에 걸려 위기에 처하고 만 것이다. 토건국가란 무엇인가? 그것은 막대한 혈세를 탕진해 소중한 국토를 파괴하는 기형적인 국가, 투기와 부패의 만연을 초래하는 개발 국가를 말한다. 이러한 토건국가를 개혁하지 않는 한 ‘선진화’는 불가능하다. 토건국가는 토건족과 투기꾼의 배를 불리며 ‘토건망국’을 향해 질주할 뿐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이러한 토건국가는 ‘정관재언학’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토건복합체’에 의해 작동한다. ‘정관재언학’의 연합이란 정계, 관료, 재계, 언론, 학계의 연합을 뜻한다. 이 연합에서 핵심은 ‘정관재’이지만 민주화 이후 언론과 학계의 역할도 대단히 커졌다. 합법적 절차와 과학적 외양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토건사업을 옹호하는 언론과 학계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김이태 연구원의 충격적인 양심선언에서 잘 드러났듯이, 토건국가는 거짓을 과학으로 포장해 제시하고 선전하여 국민들을 세뇌한다. 따라서 토건국가의 개혁은 이러한 토건국가의 현실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토건정치와 토건경제의 역학관계

한국에서 토건국가는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통해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토의 대대적인 파괴라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파괴를 좋은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의 확산과 파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세력의 형성이다. 이에 대한 극적인 사례가 곧 개발주의이다. 토건국가의 형성과정은 개발을 발전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개발주의의 확립과 맥을 같이 한다. 즉 개발주의에 근거한 막대한 혈세의 배분은 개발세력을 양산하였고, 이들 개발세력은 다시 개발주의의 확산과 토건국가의 강화를 강력히 추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의 정치는 토건정치를 기본으로 삼게 되었다. 

토건국가의 토건정치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일은 국토해양부를 비롯한 개발부서와 수자원공사를 비롯한 개발공사가 주도하고 있다. 토건국가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첫째, 정계에서 주도적으로 토건사업을 결정하고, 그것을 개발부서와 개발공사가 실행한다. 둘째, 개발부서와 개발공사에서 토건사업을 제안하고, 정계에서 그것을 수용하고, 그것을 개발부서와 개발공사가 실행한다. 어느 경우에나 결국 개발부서와 개발공사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게 된다. 따라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토건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개발부서와 개발공사의 폐지는 토건국가의 개혁을 위한 핵심적인 과제이다. 다시 말해 토건국가의 개혁은 무엇보다 토건 중심의 정부조직과 재정구조의 개혁을 뜻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토건정치를 떠받치는 것이 토건경제다. 물론 사회의 존속을 위해 토건경제는 일정부분 필요하다. 하부구조의 개발이 긴요한 경제성장의 초기단계에서 토건경제가 일시적으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토건경제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 전체 경제가 크게 왜곡되기 십상이기에 경제성장에 따라 토건경제는 크게 감축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원의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서 사회의 발전이 올바로 추구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토건경제는 국내총생산의 20%에 이르며 이는 OECD 국가들 단연 1위를 기록하는 수치이다. 

실제로 토건경제는 경제효과나 고용효과의 면에서 저열하다. 2009년 상반기에 토건경제에 31조원의 추가비용이 투자된 반면 일자리는 오히려 8만개나 줄었다. 토건경제는 약간의 ‘삽자루’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며, 토건경제로 고용증대를 이루겠다는 발상은 잘못됐다. 토건경제에 치중하는 한 복지경제와 문화경제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열릴 수가 없기에, 병적으로 과잉상태라는 평을 받고 있는 토건경제의 비중을 하루빨리 크게 줄어야 한다. 대신 복지경제와 문화경제 등 선진경제를 추구해야 한다.

민주세력의 패착과 토건사업의 과잉

한국의 민주화는 세계적으로 놀라운 사례이다. 한국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기에 고성장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이 민주화에 실패했더라면 남미나 필리핀처럼 고성장을 이루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성장이 민주화의 동력이라면서 독재를 적극 옹호했던 근대화론은 분명히 틀렸다. 그런데 민주세력은 독재세력이 남긴 구조적 유산인 토건국가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 포로가 되고 말았다. 민주세력은 토건국가 정책을 강행해서 지지를 확대하고자 했고, 그 결과 오히려 독재세력의 기반을 강화해주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에 민주화 이후에도 토건국가적 문제가 더욱 악화되었고, 그 결과 국민들은 차라리 원조 토건세력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처럼 토건국가는 민주화의 성과를 크게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토건국가를 하루빨리 개혁하지 않는 한, 이 나라에 밝은 미래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토건국가의 문제를 지적한다고 토건업의 가치를 전적으로 평가절하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자연 속에서 자연을 이용함으로써 존재하고, 토건은 자연을 이용하는 1차적 방법이다. 사회를 존속시키는 토건업의 근원적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는 셈이다. 문제는 토건업이 과잉상태에 이르게 되면 혈세를 탕진하고 국토를 파괴하고 부패를 만연시킨다는 점에 있다. 토건국가는 불필요한 토건사업을 나쁜 방식으로 강행해 토건업을 더욱 더 과잉상태로 만들뿐만 아니라 토건업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확산시킨다. 
 
토건국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한 때

토건국가의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아주 많다. 전국의 모든 도시에서 늘 볼 수 있는 보도블럭 교체사업이 아마도 가장 흔한 예일 것이다. 자전거도로처럼 환경을 내세우고 추진되는 예도 적지 않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시화호 개발사업, 새만금 개발사업, 한탄강댐 건설사업, 경인운하 건설사업, 한강운하 건설사업, 그리고 ‘4대강 살리기’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4대강 살리기’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문제는 너무나 심각하다. 그 실체는 ‘4대강 죽이기’이자 ‘대운하 살리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운하가 아니라고 했으니 믿어야 한다거나, 훌륭한 계획을 세워서 법에 따라 잘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실제와는 동떨어진 강변일 뿐이다. 실제로는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강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건국가는 우리의 현재를 넘어 미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4대강 살리기’는 더욱 더 그렇다. 전국에서 수많은 전문가들과 성직자들이 ‘4대강 살리기’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이 참담한 파괴사업에 퍼붓는 막대한 혈세를 교육에 쓴다면, 한나라당이 약속했던 반값 등록금은 당장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끔찍한 파괴사업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이익을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을 주체가 현재의 대학생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대학생들이 ‘4대강 살리기’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국, 토건국가는 생태적인 차원과 경제적인 차원의 양 면에서 극단적인 ‘위험사회’로 귀결될 수 있다. 따라서 ‘4대강 살리기’와 같은 극단적인 토건사업마저 강행하는 현재의 토건국가를 개혁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선진화’를 이루는 ‘생태복지국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