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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13호] 홍석천을 만나다

 


"그들의 삶은 coming out 이 아니었다. coming soon 이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차분한 성격이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음악과 미술, 글짓기, 운동 등 다방면에 소질이 많았어요. 시골 동네에 흔히 있는, 공부 잘하고 잘 노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이성관이 남들과 달랐고, 쉽게 이야기할 곳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했었지요. 또 대학진학 이후엔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기도 했어요. 제가 89학번인데, 90년대 대학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고 방송과 뮤지컬, 개그맨 활동까지 그야말로 정신없이 활동했거든요. 그때엔 그냥 이렇게 살면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을 좋아해 보려고도 했고, 또 그때는 여자 친구도 있었어요. 나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던거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내적인 갈등이 심했습니다. 노력한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점차 알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커밍아웃의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군대에 입대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사회와 떨어져서 지내다보니 생각할 시간이 많잖아요. 내적인 고민을 많이 했던 때였죠. 그러다가 제대를 하고 모델을 하는 첫 번째 남자친구를 3년 정도 만났어요. 그 친구 때문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동성애자라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되고 힘이 생겼어요. 그 친구가 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왜 그걸 동성애자라고 해서 네가 스스로 그걸 부정하고 사랑하지 않냐. 그렇다면 누가 너를 사랑하겠냐. 더욱 당당해지자라고 조언을 해준게 큰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대학교 연기 수업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어요. 교수님과 가까운 친구들 지인들은 알고 있었죠. 그때도 사실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문제는 사회 속에서의 '자아'였어요. 아무래도 방송활동을 하니까 계속해서 저를 숨길 수는 없었지요. 결국 공인으로서 사회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커밍아웃을 해야 했죠. 커밍아웃이 그들에게 이해를 바라거나 설득을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있는 그대로를 봐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이었는데 사람들에겐 그게 쉽지 않았나봐요.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쳐오니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그 뒤 2년 동안 인생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갔던 것 같아요. 힘들었고 속상했죠.

그래도 이제 홍석천씨를 보면서 정말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떠신가요?

글쎄요, 단지 제가 공인인 홍석천이기 떄문에 봐주는거 같아요. 그만큼 홍석천이라는 사람이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오고 있는 것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스스로도 많이 회복을 했죠. 하지만 여전히 성적 소수자로 사는게 녹록치 만은 않습니다. 특히 제 가족들, 다시 말하면 성적 소수자의 가족들은 원하지 않는 고통을 함께 감내해야 하죠.

반대로 그들의 고통은 제가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저 집 아들이 동성애자래' 혹은 '쟤네 형이 동성애자래' 라는 말들 하나 하나에 가족들은 예민해 질 수 밖에 없어요. 마치 식구 중에 죄인을 둔 것과 같아요. 범죄가 없는 죄인인거죠. 저 역시 아직도 가족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힘듭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어떤 면들이 변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10년 전 커밍아웃을 했을 때보다 지금은 환경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성적 소수자 모임도 많아졌고 간혹 대학교 동아리도 있더라구요.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회와 소통을 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죽어라' '더럽다' 라고 하면서 동서애자들을 매도하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몇몇 분들의 관심을 통해서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해가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주목할 만 하다고 봐요. 저 역시 그런 점에서 생활하는데 좋아진 부분들이 있죠. 예를 들면, 제가 하고 있는 가게들과 사업들이 그런거죠. 예전에는 홍석천 이름만 들어도 꺼려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요즈음에는 저를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요.

사회에서 바라보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에 대해선 어떤 입장이십니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관심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억압과 탄압과 차별이 있는데, 그렇게 주어지는 관심은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관심이 있어야 생각이 있고 생각이 있어야 약간의 변화라도 생기기 떄문이죠. 물론 성적 소수자가 바라는 건 있는 '있는 그대로를 봐달라는 것' 이에요 하지만 사실 그대로를 나둘 수 없는 게 사회 현실이잖아요. 일단 주어지는 관심은 받아야 해요. 그리고 그 관심 속에서 고쳐나가고 변화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커밍 아웃을 후회 하지 않으시나요?

물론 힘들고 속상할 때, 그냥 감추고 살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적은 있어요.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의 홍석천은 없었겠죠. 커밍아웃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그러면서 제가 가진 진정한 정체성을 찾게 되었고, 또 사회적으로 부딪혀 내야 할 부분이 더욱 명확해 진거죠. 삶이 더 치열해 지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전보다 많아지긴 했지만 후회스러운 적은 없어요.

하지만 많은 성적 소수자가 커밍아웃의 기로에서 힘들어 합니다.

사회적인 커밍아웃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행동입니다. 가족들과 합의도 있어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하죠.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지만큼 사회는 소수자를 열외 시키기 때문이에요. 아이러니 하게도 조금 전에 말한 좋아진 환경은 동성애자를 밝힐 수 있는 환경에 관한 것이에요. 동성애자가 설 자리에 대한 환경은 아직도 부족하죠. 그렇기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커밍아웃은 더욱 어려운 환경을 자초하는 것이에요.

커밍아웃 이후 끝내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타깝죠. 굳이 그렇게 힘든 커밍아웃은 하지 않을 필요도 있어요. 그만큼 더욱 준비를 해야죠. 사회적 인식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는 건 너무도 슬픈 일이잖아요. 또 보통 가족들에게 먼저 커밍아웃을 하기 마련인데 가족들의 분위기가 아니라면, 굳이 할 필요가 없어요. 기다려야됩니다. 물론 커밍아웃을 하기 전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을거에요. 또 생활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죠. 하지만 커밍아웃은 그보다 더한 고통이 따라오게 되어있어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죠. 사람들 혹은 사회가 이 땅에서 성적 소수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벽은 상당히 높거든요. 부딪혀서 부숴져 버릴 것이면 커밍 아웃을 늦추는 편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열외된 성적 소수자들에게 필요한 용기는 어떤 것일까요.

먼저 사회 생활에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경제적인 면도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하죠. 네가 누구든, 나에게 어떤 욕을 하든,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용기에요.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것들이 닥쳐 올 거에요. 그리고 분명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잔인할 거에요. 하지만 죽고 싶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구원의 손길을 구하고 있는 거에요. 나는 열외받고 싶지 않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 나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의지인 것이지 정말 죽고 싶은 건 아니에요. 죽을 용기보다 더한 용기로 살아가야 해요.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용기인 것이죠.

갈등하는 성적 소수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기엔 자신의 인생은 짧아요. 삶에서 필요한 것은 일단 자기 중심으로 생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건 단지 열외자들 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지금 말하는 자기 중심의 삶은 이기적인 것과는 달라요. 자기 자신과 열애하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싶습니까? 그렇지 않죠?, 자기 자신과 열애하는 사람은 삶을 쉽게 포기 하지 않아요.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굳이 남들을 설득시키거나,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져요. 다시 말하지만 삶이라는 건 그리 길지 않아요. 자기 마음가는데로 가장 편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바로 내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매분, 매시간, 하루 하루가 중요하죠. 그렇게 자신과 열애하면서 지내다 보면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삶, 얼마 전 입양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생활은 어떠신가요?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과 똑같아요. 신경써야할 부분이 많죠. 아이들이 크면서 점점 성에 대해서 사춘기도 오고 하는데 그점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좀 많아요. 그리고 여는 학생들 처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바쁜 가족에 대한 불만들이 생겨나더라구요. 물론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 주고 싶죠. 하지만 쉽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가족이 있다 라는 건 오늘, 제가 사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해요.

아이들을 키움으로써 교육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단순한 학업 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교육에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게다가 제가 성적 소수자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회적 열외자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사회속에는 저뿐만이 아닌 많은 열외자들이 있잖아요. 그런 교육들이 어릴 때부터 이루어 져야 앞으로 더 많은 환경이 변화할 거라고 생각해요.

성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에요. 학업에서는 획일적인 이론으로 그치고 마는 성교육이 정말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어쩌면 어설픈 교육으로 한 인격의 정체성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죠. 교육이 변해야 아이들도 변하고, 사회도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신 가족이라는 존재도 그렇고 성적 소수자로 살면서 관계라는 것이 가장 큰 벽일 것 같아요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담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나쁘게 들릴 수 도 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죠. 물론 가족은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끝까지 부딪히면서도 서로 잡아주고 끌어줄 수 있죠. 하지만 친구라거나 동료는 그렇지 않거든요. 어제까지 형님, 아우 하다가도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는 존재잖아요. 내가 주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더라도 남에게 받고자 하는 것에는 인색할 필요가 있어요. 기대감으로 뒤섞인 '의리'라는 것을 믿기 보다 단지 현재의 모습을 믿는 것이 낫죠. 네가 있어서 좋다고 한다면 그게 좋은 것이 되어야지,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을 기대하게 되면 관계의 벽이 생길 수 밖에 없어요. 기대하지 않으면서 행복할 수 있는 법,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기대하지 않은 행복이 찾아온 경우가 있었나요?

커밍아웃을 한 뒤 한동안 저 자신에게 몰입해서 살던 적이 있었어요. 열심히, 아니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면 안 될 시간들이었죠. 그당시 사람들은 '홍석천' 을 보기 보다 '동성애자 홍석천' 으로 바라보던 때였으니까요. 그런데 언젠가 가게에 한 가족이 식사를 하러 왔어요. 그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저기 저 아저씨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아느냐 하고요. 식사를 마치고 저에게 인사를 하더라구요. 아이들과 함께... 커밍아웃을 하고 뿌듯했던 순간이었죠. 작지만 동성애자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었고요.

선생님에게 열애 그리고 열외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열애... 다시 말하면 사랑이겠죠. 사랑은 혼자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내 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아니에요. 일방통행이 된 사랑은 열애할 수 없죠. 사람이 제 각각 다르듯, 그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만큼 두 사람이 함께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은 매우 힘든 것이죠. 그리고 언젠가 모두가 헤어지듯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어요. 다만 그 유통기한의 사이에서 가장 멋진 순간을 위해 열애하는 거죠. 기간은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그리고 열외는... 제가 항상 경험하는 것이죠. 늘 열외의 대상이 되는 만큼 열외되지 않기 위해서 싸워야 해요. 열외의 의미에는 '무시' 라는 것이 포함되어요. 같은 곳에서 다른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같은 곳에 있을 수 없는 것이죠. 너희는 우리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니까 공평한 조건에서 열외 시키는 거에요. 함께 열애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죠. 적어도 출발선이 다른 열외는 앞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건 자유겠지만, 동등한 권리에서 열외된 다는 건 너무 가혹한 것이죠.



마지막으로, 10년뒤의 모습을 그려 본다면?

제2의, 제3의 홍석천이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10년 동안 혼자 싸워내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자신의 권리와, 정체성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만큼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으면 하고요. 가능하다면 더 이상 성적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도 없어졌으면 해요. 그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편해지고, 굳이 인터뷰를 하거나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거겠죠. 성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 10년 뒤에 왔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및 정리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