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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8호] 탈핵의 정치사회학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여전히 조용히 불타고 있다. 핵발전의 기본 원리가 연속적인 핵분열인 이상, 아무리 냉각수를 들이부어도 녹아내린 격납용기와 핵연료는 조용히,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와 냄새도 없는 방사능을 내뿜고 있다. 핵발전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조차 이 사고를 수습하는데 최소 십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 예상한다. 이 사고가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수준에서 마감된다 하더라도 그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후쿠시마 주민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는 직접 또는 간접적인 상해와 부담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꺼지지 않는 핵발전소의 불길만큼이나 핵산업의 드라이브도 아직 꺾이지 않고 있다. 이는 핵발전의 시작과 성장이 정치와 군사, 에너지 산업의 동맹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그 동맹이 쉽게 깨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 르네상스’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해외 원전 수출과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을 강행하려는 이명박 정부는 그 첨병을 자임하고 있다. 그리고 ‘핵발전은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와 동시에 ‘그래도 우리 지역에는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여전히 국민 다수의 여론이다.

왜 ‘핵마피아’는 거대하고 강고하며, 왜 어떤 사회는 ‘탈핵(脫核)’을 선택하고 어떤 사회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조건이 탈핵을 촉진하거나 가로막는가? 이는 세계화된 자본주의 경쟁 체제의 경제성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핵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와 힘들도 봐야 한다. 나아가 탈핵을 이야기할 때도 그 정치사회학적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

탈핵의 정치사회적 측면

한 국가와 사회가 탈핵에 접어든다고 할 때, 거기에는 몇 가지 지렛대 또는 배경이 있다. 이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때, 탈핵은 보다 효과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는 구조와 경로의존성의 문제다. 이는 경제와 에너지 순환에서 핵발전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이해관계 주체가 어느 정도 강하게 얽혀있느냐의 문제다. 핵발전은 다른 어떤 기술이나 에너지 시스템보다 경로의존성이 크다. 예로,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 유독 핵발전 비중이 높아서 그만큼 탈핵이 어려운 상황이다. 생산된 전력의 수출 뿐 아니라 연료재처리, 핵융합 등으로 커진 핵산업 덩치를 쉽게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는 핵산업 비중을 높이려고 (보수)정부가 의도하더라도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산업의 이해당사자(업주, 노동자, 전문가, 언론인, 정치가)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복지의 단물처럼 탈핵의 단물도 경로 의존적이다.

둘째는 사회역량, 특히 탈핵을 지지·지원할 시민 역량의 문제다. 1998년 독일의 사민-녹색 연정이 탈핵의 분수령이었지만, 이는 70년대 이래 누적된 탈핵 담론과 운동의 결과였을 뿐이다. 소수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이 이끌고 가는 탈핵운동은 외부 환경의 급변이나 정치권의 풍향 변화에 휘둘리거나 뒷심을 갖지 못한다.

셋째는 정당, 특히 녹색정당의 존재와 활동 유무의 문제다. 현재의 정치 체제에서 정치세력은 표를 좇게 되고 여론의 중앙값을 지향하기 마련이며, 이는 당연히 타협적이고 보수적인(현상유지적인) 경향을 만들게 된다. 기성의 산업과 에너지 체제, 그리고 사는 방식과 문화에 기반한 정당들(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이 수미일관하게 탈핵의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는 것은 숱하게 목도된 일이다.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과감하게 탈핵 궤도로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집권 민주당마저 부분적으로 핵산업(그리고 현재의 에너지-문화 체제)과 이해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반면, 탈핵 시나리오를 가동하고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녹색지향의 정당이 존재하며 게다가 유의미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핵 문제에서 ‘소외’된 한국 정치

하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6개월이 넘도록 한국 정치권의 대응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기껏해야 국내에 유입되는 방사능 물질에 대한 모니터링과 안전지침 요구, 핵발전소 안전점검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미온적인 활동이 국회의원들의 게으름 탓이라고 치부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핵발전 정책과 운용에 대해 정치권 역시 그 동안 놀랍게도 ‘소외’되어왔기 때문이다. 

핵에너지는 ‘거대기술’이다.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며 군사무기와도 직결되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래서 초기 핵발전 시장이 형성될 때까지 민간 발전사들은 수익성과 안전성 확보에 대한 부담으로 진입을 꺼려했고, 정부가 나서서 투자와 정책적 지원을 시행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핵발전소를 어디에 어떻게 건설하고 운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소수의 과학자, 관료, 기업가의 손에 맡겨져 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정치인에게조차 핵발전 관련 내용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59%로 확대하고 이를 위해 십 수기의 핵발전소를 증설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할 때도 정치인들이 개입하고 발언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었다. 핵발전소나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은 지역 주민들의 주민투표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가장한 관권선거에 내맡겨져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지금 수명연장에 들어간 고리1호기와 수명연장을 계획하고 있는 월성1호기 같은 노후 핵발전소의 연장 가동 문제는 가부 결정이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는 자본이자 권력이다. 에너지 정책이 한 번 수립되면 그것은 국책사업과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지역과 국민에게 강제된다.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거부하는 지역과 주민은 님비(NIMBY)로 매도당하고, 국민은 정부가 설정한 에너지 수요치와 그에 따라 제공되는 발전량을 가지고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유도된다. 그래서 에너지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우리가 에너지를 얼마만큼 생산해서 얼마만큼 쓸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비용과 부담을 누가 그리고 어디에서 담당할 것인가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논의할 수 있다면 핵발전을 지속하고 심지어 늘리자고 쉽게 결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는 결국 정치의 역할과 국민의 참여 문제로 돌아온다.

‘탈핵정치’의 자리찾기

탈핵을 위한 시나리오의 대강은 이미 나와 있다. 결국 문제는 총에너지 소비의 6%, 전체 발전량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핵발전의 비중을 어떻게 대체할 것이냐의 문제다. 물론 산업사회가 도래한 이래 이제껏 우리가 취해 온 자연착취적이고 낭비적인 삶의 양식을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이지만, 핵발전 없는 녹색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대중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논의의 틀거리가 필요하다.

탈핵 한국 사회를 상상하는데 있어 가장 큰 반론은 수출과 소비 증가로 에너지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가운데 핵발전 증설이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것과 핵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당장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의 사례를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천불 정도에 이르면 에너지 소비가 오히려 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도 내일 당장 핵발전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보다 가시적으로 핵발전을 줄이고 대체하는 그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할 때 이에 해당하는 전력분은 에너지 수요관리와 효율화로 충당하고, 노후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로 인해 발생할 전력 부족분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로 충당하는 시나리오다.

수요관리와 효율화로 신규 핵발전소 계획분의 발전량보다 많은 수요 절감을 이룰 수 있다면 핵발전소 신규 건설의 설득력은 지탱될 수 없다. 그리고 재생에너지가 노후 핵발전소와 가동 중인 핵발전소의 발전량을 대체할 수 있는 만큼 기존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는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탈핵의 과정을 수행한 이후에는 에너지 수요를 더욱 줄이고 화석에너지를 점차 재생에너지로 대체해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탈핵의 도정에서 당면한 구체적인 이슈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수명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 월성 1호기 핵발전소를 그대로 폐쇄하고, 이미 수명연장에 들어간 고리 1호기를 폐쇄하는 일이다. 그 연속선상에서 현행 원자력법을 개정하여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법률로 다루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전면 재검토하여 적정한 에너지 수급 전망과 핵발전 비중을 설정하고, 탈핵 시나리오가 기본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원자력문화재단을 해체하거나 재생에너지문화재단으로 바꾸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에너지 민주주의, 올바른 에너지 정치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 즉 정치인과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