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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18호] 『안전, 영토, 인구』의 역자 심세광을 만나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안전, 영토, 인구』의 역자 심세광을 만나다.


 

인터뷰 및 편집 박승일

Q 푸코는 책의 서두에서 이번 강의의 주제가 생명관리권력(bio-pouvoir)이라고 말합니다. 이 개념이 설명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고 이를 계기로 푸코의 작업에 생기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푸코에게 68년 5월은 학문적 전환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아시다시피 60년대 푸코의 논의를 특징짓는 것은 고고학입니다. 담론이나 에피스테메 같은 언어적 실천들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앎의 대상으로 구축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었지요. 1966년에 쓰인 『말과 사물』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68년을 통과하면서, 푸코는 언어적 실천과 상관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정치적인 실천 혹은 비언어적인 실천들의 효과를 그동안 균형 있게 탐구하지 못했다고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68년의 영향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넘어가게 되고, 이후 75년에 『감시와 처벌』을 쓰게 되죠. 그런데 이 사이에 푸코가 행한 강연 ‘Omnes et Singulatim’, 즉 ‘전체적임과 동시에 개별적으로’에 비추어 보면 『감시와 처벌』은 개별적인 것에 대한 천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서 제시되는 규율권력이란 철저하게 개인과 개인의 행동 방식을 표적으로 삼는 권력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전체적인 것에 대한 분석, 즉 개인들로 이루어진 무리를 조절·관리·통제하는 테크놀로지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지식 및 실천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집니다. 이것이 생명관리권력이라는 용어가 제출되는 배경입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네요. 『성의 역사: 앍의 의지』에서 지적한 것처럼, 푸코가 보기에 근대의 통치성은 생명관리정치(biopolitique)로 특징지어 집니다. 그리고 이 생명관리정치는 두 축을 토대로 하죠. 바로 규율권력과 생명관리권력입니다. 규율권력은 개인을 핵심 대상으로 삼는 반면, 생명관리권력은 개인들의 집합이지만 또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리, 즉 종으로서의 인구를 대상으로 삼습니다. ‘전체적임과 동시에 개별적으로’, 즉 생명관리권력과 규율권력이라는 두 축에 기반을 둔 테크닉이 생명관리정치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종의 단절이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규율권력과 생명관리권력을 아우르는 생명관리정치와 관련해 살펴본다면 단절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푸코가 근대의 권력 테크놀로지를 구성하는 두 개의 핵심요소를 순차적으로 발견했기 때문이며, 또한 장치라는 게 하나의 장치가 다른 장치를 단절적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메커니즘을 완성하는 동시적인 작동이기 때문입니다.

Q 사법(주권)-규율-안전 메커니즘 각각의 특징은 무엇이고 이들이 맺는 관계는 어떠한가요?

법과 주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네요. 중세는 전쟁사회였어요. 전쟁이라는 물리적인 힘을 통해 영토를 제압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십자군 전쟁 이후 변화가 생깁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영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성직자이자 지식을 독점한 사람들이 전쟁의 지배에서 법의 지배로 전환을 꾀합니다. 법의 패러다임이 보편화되면서 결국 중세 봉건 영주의 권력이 안녕을 고하게 되는 거죠. 지금의 우리는 항상 근대 이후의 법만 생각하지만 중세 봉건제 이후 등장한 절대 군주제 역시 법을 통해서 통치되었습니다. 물론 이 법은 당연히 왕이 임의로 정한 법, 즉 사법이고요. 여기서 군주는 법이라는 울타리 바깥에 존재하는 초월자였습니다. 그래서 푸코는 마키아벨리가 근대적이지 않다고 얘기했던 거죠.

중요한 건 전근대적인 의미의 법과 근대적인 의미의 법에서 주권자가 차지하는 위치가 다르다는 겁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법에서 주권자는 절대 법 바깥에 있을 수 없게 됩니다. 근대국가에서는 군주 자체도 법의 지배를 받는, 법에 내재하는 한 요소에 불과합니다. 국가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볼 수 있는 초월적 존재가 이제는 영토의 일부로 내재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법에 의한 통치가 핵심요소가 되면서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기준 역시 주권자의 위치, 즉 법 바깥에 군림하는지 법 안에서 통치하는지의 차이로 바뀝니다. 입헌군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의 지배를 받는 통치자, 다시 말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국가라고 하는 것이 정치와 경제 혹은 모든 것의 목표가 됩니다. 이 시기가 바로 근대국가가 탄생한 시기이자 법에 의한 지배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규율과 안전 메커니즘은 아마 인터뷰 중에 계속 설명할 것 같으니 차차 보도록 합시다.

Q 주권과 규율 그리고 안전 메커니즘이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주권이 영토를 목표로 삼는다는 것은 방금 설명했으니 규율을 살펴보도록 하죠. 푸코는 리슐리외라는 도시를 예로 듭니다. 로마병영을 모델로 삼고 있는 이 도시는 매우 인공적인 공간이에요. 원래부터 있던 마을이나 도시를 재정비한 곳이 아니라 허허벌판에서 새롭게 건설된 곳이거든요. 이 도시는 치밀하게 격자화 되어 있는데, 이러한 격자화의 목적은 모든 것을 보고 또 모든 것을 통제하기 위해서 입니다. 규율도시는 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관리·조절·통제하기 위해 이에 걸맞게 공간을 구획하고, 또 그곳에 거주하는 개인들을 각자의 사회적인 신분이나 맡은 역할에 따라 인위적으로 배분하는 체제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워진 도시는 경제적인 활동, 풍속, 도덕, 욕망 등 개인의 모든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또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를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근대국가가 탄생하면서 도시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뀝니다. 푸코는 낭트라는 도시를 예로 드는데요. 근대도시는 모든 것을 네트워크로 연결합니다. 여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근대 생물학의 영향을 받은 순환이라는 개념입니다. 순환을 막으면 안 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거죠. 이제 관심은 인체의학, 생물학, 생리학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역시 나쁜 순환과 좋은 순환을 구별해서 나쁜 순환을 최소화하고 좋은 순환을 최대화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안전의 문제가 싹트게 되는 겁니다. 범죄와 질병과 같이 통제는 가능하지만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위험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 거죠. 여기서도 국가의 개입은 제한됩니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내고 또 그것에 부단히 개입하면서 철저한 통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요소들을 일단 인정한 뒤 이들 사이에 적절한 순환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개입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고려되기 시작합니다. 현재의 순환을 내버려두는 일, 즉 움직이고 운동하게 ‘잘’ 내버려두는 일에 관심을 갖는 거죠.

Q 중상주의와 중농주의의 해법은 명백히 다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하게 내버려두는’ 자유가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안전장치와 자유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 연관됩니다. 리슐리외와 같은 규율적 도시체계는 경제사의 중상주의 혹은 중상주의적 내치(內治, police)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어요. 내치 역시 모든 인민과 인민의 활동을 표적으로 삼아 부단히 개입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중상주의는 거의 완벽한 통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식량난’에 대처하는 중상주의의 방식이 애초부터 식량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식이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반면 중농주의자는 식량난에 전연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식량난은 환상이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된다는 입장이에요. 아담 스미스나 리카르도 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의 자유주의적 방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중농주의의 핵심은 죽어야 될 사람들은 죽게 내버려둬야 다수가 산다는 것, 즉 전체를 구하기보다는 일부를 희생시켜서 다수를 구하는 것이에요. 인식론적인 틀 자체가 바뀐 겁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방임을 특징으로 하는 자유주의의 메커니즘이 놓여 있고요.

또 다른 예로 나병과 흑사병 그리고 천연두를 봅시다. 나병은 나병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을 분할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마을 밖으로 추방하는 거지요. 하지만 흑사병은 조금 다릅니다. 추방하기보다는 흑사병이 창궐한 지역을 격리하는 형태를 취하거든요. 뿐만 아니라 엄격한 규율을 강요합니다. 전염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계속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 바깥으로 언제 나갈 수 있는지,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등의 규칙을 강제하거든요. 앞서 말한 규율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반면 천연두는 추방도 격리도 아닌 접종의 방법을 택합니다. 쉽게 말해 병에 걸리게 내버려두는 겁니다. 즉 접종을 통해 병에 걸리게 내버려 둠으로써 역설적으로 신체가 일정한 저항력을 상실하지 않게 만드는 거지요. 하지만 여기서 관심의 초점은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인구라는 집단적 신체입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정신병의 형태건 실업의 형태건 범죄의 형태건, 국가가 보존되기 위해서는 ‘찌질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중상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사람들은 뿌리 채 뽑혀야 되지만, 중농주의적 입장 혹은 자유방임적 입장에서는 국가라는 신체가 적절히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러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존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배제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만 역설적으로 그렇지 않은 다수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죠.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가 이러한 근대의 통치 메커니즘입니다.

Q 식량난과 전염병 모두 안전메커니즘의 유형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경제학이 도입되기도 했고요. 여기서 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앞서 중농주의를 통해 설명했듯이, 정치경제학의 탄생은 곧 자유주의의 탄생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유주의의 통치와 그 이전의 절대군주제와의 차이는 뭘까요. 전근대적인 주권국가에서는 통치의 대상이 영토였던 반면, 근대 자유주의 하에서 영토는 통치의 주요한 목표가 아니에요.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영토에 포함된 하나의 요소인 무리 입니다. 중세만 하더라도 땅 덩어리가 얼마나 큰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그거 갖고 싸웠던 거 아닙니까? 그런데 자유주의의 탄생 이후에는 영토에 거주하는 인민에 포커스가 맞춰지게 돼요. 근대 국가의 틀이 형성되면서 주안점이 분산되기 시작한 거죠. 바로 인구라 할 수 있어요.

근대 이전의 신민들은 거의 통치를 받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반은 인간이고 반은 그냥 위험한 동물일 뿐이었거든요. 평등, 자유라는 개념의 인식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말이죠. 절대군주주의 시대, 중상주의 시대 때 통치자가 피통치자를 보는 인식론적 관점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어요. 그러니까 세제 형태도 단순히 징발이었던 거죠. 그랬던 것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 사회가 도래한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비로소 어떤 변화가 생겨나요. 바로 정치경제학적 변화겠죠. 푸코의 『말과 사물』을 보면 알겠지만 이전까지는 경제학이란 말이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그냥 부의 분석만 있었지요. 철저하게 물물교환에 입각해서, 상품의 표상 가능한 가치가 뭐냐는 물음이었던 거죠. 여기에는 인간의 힘이라든가 노동력이라든가 인간을 어떻게 조절·관리·통제해야한다는 식의 사유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치경제학은 영토에 주안점을 둔 통치로부터 영토에 거주하는 인간에 대한 통치로 넘어가는 것을 잘 보여주죠. 다시 말해 정치경제학은 영토에 거주하는 인간의 무리인 인구를 통치자가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리고 이로부터 일탈할 때 어떻게 조절·관리·통제할 것인가를 일컫는 총체적인 기술, 즉 통치술을 일컫습니다. 사망자 수, 병자 수, 전염병의 관리, 노동과 부의 관계 등에서 통계학과 확률은 인구의 활동을 측정하고 이로부터 경제적 효과를 이끌어내는 주요한 도구가 되지요.

“우리의 현재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의 국가화가 아니라 국가의 ‘통치화’라고 부를 만한 것입니다.”

Q 푸코는 “안전, 영토, 인구”라는 제목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통치성의 역사를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요. ‘국가의 통치화’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통치(government)라는 말 자체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 혹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일로서 여겨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예컨대, 여자가 밥을 많이 먹어서 통치하기가 힘들다는 식으로 쓰였거든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하고는 무관하게 일상생활에서 마구 쓰였던 것들이 근대에 들어와서 국가가 하는 모든 일로 얘기가 됩니다. 국가하고 전혀 무관했던 일들이 18세기, 19세기 초에 완전히 국가가 전담해야 하는 일로 정착이 돼요. 푸코가 묻는 것은 이것을 둘러싸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거예요. 그럼 해답이 나오죠. 통치의 다양한 행위와 함의가 국가와 관련된 불가분의 실천으로 정착되는 역사적인 어느 순간에 비로소 통치가 현재의 의미로 결정화돼요. 어떤 특유한 실천이 결정화되는 그 순간에 실천과 더불어서 국가가 탄생한단 말이죠. 푸코가 보기에, 서구의 근대가 시작되는 18세말과 19세기 초에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통치가 체계화되면서 어떤 장치를 구성하더라. 그 실천의 효과가 국가라는 겁니다.

Q 그리스-로마의 사유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사목권력이 그리스도교 교회를 매개로 해서 도입되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사목권력은 앞서 살펴본 통치성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나요?

사목(司牧)은 고대 근동지역에서 원형적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요. 성경에도 나오지만 사목의 대상은 양떼입니다. 목자가 책임지는 건 양떼인데, 당연히 양떼는 무리지요. 무리는 이동 중에 있기 때문에 어떤 영토를 점유하고 있지 않아요. 다시 말해 특정한 영토를 점유하고 있는 고정된 대상에 대한 관리나 통치가 아니라 늘 어디선가 계속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통치라는 거예요. 유동성, 이게 바로 앞서 말씀드린 자유주의와 똑같은 겁니다. 필요할 때와 필요하지 않을 때, 최적화된 행위와 최적화되지 않은 행위를 매번 확인하면서 거기에 조절적으로 개입하는 거예요. 전체를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일단 인정한 가운데 계속해서 유동적인 조절을 하는 작업이란 말이죠. 이게 바로 무리에 대한 목자의 배려입니다. 근데 여기에 모순이 있는데, 개체와 전체를 모두 인도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를 위해서는 전체를 인도함과 동시에 무리를 구성하는 개체 하나하나를 다 챙겨야 합니다. 이동하는 무리 전체를 관리하는 동시에 어린 양에게 먼저 연한 잎을 먹이고 나이든 양에게는 억센 잎을 먹이는 식의 섬세한 관리가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굉장히 모순적인 게 나타나죠.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전체를 희생하기도 해야 하니까요. 이게 바로 Omnes et Singulatim, 다시 말해 전체적이면서 또한 동시에 개별적인 방식의 통치입니다. 전체를 구성하는 개체를 잘 돌볼 수 있을 때 전체를 돌볼 수 있고 또 그 역도 마찬가지인 불가분의 관계이죠.

이러한 사목권력은 근대 국가 이전까지 아이러니컬하게도 신앙의 차원과 양립해 왔어요. 그런데 정교분리 후 세속화가 진행되고 근대국가가 도래하면서 교회가 이 권한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죠. 그러나 이게 없어진 게 아니라 세속화된 권력의 테크놀로지로 흘러들어가 버렸다는 겁니다. 바꿔 말해 사목권력이 근대국가의 통치에 핵심이 되었다 이 말이에요.

여기서 발전하게 되는 지식이 통계학과 같은 것들입니다. 오늘날에는 통계학이 수학의 일부로 축소됐지만 원래는 그게 아니었어요. 통계학은 원래 국가학이었어요. statistic은 국가(state)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학문이었거든요. 통치자는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서 낱낱이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혁명적인 변화이죠. 절대군주 시대에는 이런 것이 불가능했어요. 인구통계를 예로 들면, 이전에는 역병과 같이 급격한 변화가 발생할 때만 인구 조사를 했어요. 이건 상시적인 통계가 아니라 불연속적이고 일시적으로 했던 작업이에요. 그러던 것이 근대국가에서는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자 국가를 통치하는 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 됩니다.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물적, 인적 자원에 대한 완벽한 지식이 요구되는 거죠. 이로부터 정치경제학, 인구통계학, 인력관리와 같은 여러 지식체계가 나옵니다. 인력관리의 예는 『성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인간 종으로서의 성을 통제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성의학, 생리학, 인류학, 인종학 등이 19세기에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게 됩니다. 요컨대, 통치자가 전체와 개인을 완벽하게 알고 그들의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지속적인 감시·조절·관리·통제하는, 이전과는 새로운 목표가 출현한 것이죠.

“[그리스도교적] 사목제도, 새로운 외교적·군사적 기술, 마지막으로 내치, 저는 바로 이 세 가지야말로 서구의 역사에서 국가의 통치화라는 근본적인 현상이 발생할 수 있게 됐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푸코는 사목적 합리성과는 다른 통치합리성, 즉 통치이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통치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적어도 근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국가는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었어요. 최후의 심판이라는 목적에 이르러 세계는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근대를 알리는 신호탄을 푸코는 베스트팔렌조약이라 하고 있습니다만, 이 조약은 앞서 말한 것과는 완전히 단절되는 거예요. 그 조약을 체결할 당시에 존재하던 국가들 간의 영원한 공존이자 평형이 명문화 되거든요. 그래서 베스트팔렌 조약을 보면 오늘날의 유럽을 볼 수 있는 거에요. 조그만 나라들, 중간 크기, 그리고 대국들, 이것은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어야한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겁니다. 오히려 이제는 이들 간의 평형이 문제가 돼요. 평형 상태에서 생존이 문제가 되고요. 그러니까 국가에 대한 이전의 관념과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의 관념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지금 존재하는 국가의 영속적인 평형이 목적이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의 제국이나 합중국으로 통일이 되지 않고 왜 이런 형태를 취하면서 유지돼야 하는가,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는 거예요. 푸코는 이 지점에서 국가이성을 말합니다. 국가이성의 핵심은 국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겁니다. 국가에서 벗어날 자는 왕이고 뭐고 아무도 없으며, 모든 것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라는 거예요. 이 괴물 같은 이성이 바로 국가이성이라는 거죠. 그래서 쿠데타는 가장 탁월한 국가이성의 현시인 겁니다. 왜냐하면 쿠데타야말로 국가의 구제라는 이름으로, 국가이성을 법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국가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최후의 이성이기 때문입니다.

Q 근대 국가의 계보학을 구성하는 출발점에 통치성을 위치시키는 건가요? 푸코가 이 작업을 통해 보려한 바는 과연 무엇인가요?

강의의 제목이 안전, 영토, 인구잖아요.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제목과 내용이 잘 안 맞아요. 왜냐하면 푸코도 인정하듯이, 안전-영토-인구의 틀에서 안전-통치-인구라는 새로운 틀로 이동하고 있거든요.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푸코는 영토라는 전근대적인 개념을 안전과 인구라는 근대적인 개념으로 샌드위치처럼 에워싸려고 한 것 같아요. 하지만 강의를 하면서 푸코 스스로도 놀랄만한 사유의 전환이 발생합니다. 아시겠지만 푸코의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핵심은, 권력은 편재한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권력이 편재하며 심지어 생산적이기까지 하다면 이로부터 해방 혹은 저항의 가능성을 생각하기란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단초를 통치성(government)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어요.

푸코의 마지막 강의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요. 제목이 『자기와 타인에 대한 통치』입니다. 권력의 문제를 통치의 문제로 확장시켰을 때 나름의 해결책을 발견한 거예요. 강의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죠. 통치로 넘어가야겠다. 예컨대, 오이코노미아, 즉 경제학이란 말의 전신인 가정 관리술이란 말이 『성의 역사』에 나오죠. 그리고 3권에는 자기 돌봄(국역본에는 자기배려로 번역됨)이란 말이 나와요. 자기 돌봄을 할 수 있을 때 타인을 돌볼 수 있고, 타인을 돌볼 수 있을 때 상위의 국가를 돌볼 수 있고, 국가를 돌볼 수 있을 때 세계의 평화를 돌볼 수 있다는 겁니다. 단절된 게 아니란 거예요. 다시 말해 정치, 미학, 윤리, 도덕 등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이 돌봄인 것이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푸코, 예컨대 미국식 비평을 통해 제시되는 푸코는 전기, 중기, 후기 사이에 단절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요. 단호하게 말씀드리지만, 아닙니다. 푸코가 죽기 직전인 84년에 한 인터뷰에서, 결국 지금까지 자신의 문제계는 권력이 아니라 주체였다고 말합니다. 주체의 문제였다는 거예요.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통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의 여분으로서 타인을 어떻게 내 통치의 연장으로서 통치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이었던 거죠.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아포리아 앞에서 정치의 차원을 포기하고 윤리적이거나 미학적인 차원으로 후퇴했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정치, 철학, 과학, 삶 자체가 사실은 한 몸이라는 걸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단절이지만 또한 동시에 단절이 아닌, 역설적이게도 이걸 보여주고자 통치성이란 말을 쓴 거죠. 윤리적, 정치적, 미학적 문제가 분리 가능할까요? 아름다운 것과 정의로운 것 그리고 윤리적인 것이 분리될까요? 이것은 분리 불가능한 하나의 실체에요. 여기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건 조화로움이죠. 이것은 탁월하게 정치적인 문제에요. 가장 과격하게 정치적인 문제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