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고

[120호] 일본의 베트남 법 정비 지원활동과 시사점

<2012 베트남 학술기행 보고서>

 

일본의 베트남 법 정비 지원활동과 시사점

김 정식(법학과)

 

   20세기 후반 소련의 체제붕괴로 재편된 세계질서는 동구권 국가들을 비롯한 세계의 사회주의 국가들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많은 국가들이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치·경제체제를 수립해나가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소위 체제전환국들은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동구권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와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국가들은 체제전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정한 제도적인 불일치 또는 모순을 경험하게 된다. 기존의 공산주의 경제시스템에 적합하게 설계된 법제도로서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제대로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기존의 공산주의 체계 상 개인 간의 거래를 규율하는 사법(私法)체계는 물론 이를 지원하기 위한 공법(公法)체계 역시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19세기부터 이어진 식민통치와 세계대전 이후의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체제 성립으로 자본주의에 적합한 법체계 자체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체제전환국들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시장경제체제에 적합한 법 체제를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자연스럽게 서구의 국가들이 아닌 아시아 내의 자본주의 국가를 그 참고대상으로 삼게 되었는데, 이것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법률시장을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이 상황을 가장 잘 이용한 나라이다. 1990년 이후, 중국에서부터 이어진 체제전환의 큰 흐름 속에서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국가들은 해외 투자자본의 유입이 필요하였고,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이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은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아시아 체제전환국에 대한 법 정비 지원을 국가적 사업으로 지정하여 실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시아의 체제전환국들은 일본의 법제를 모방하여 자국의 법률시스템의 토대를 완성하였다. 이를 소위 동아시아법의 일본화(Japanization)라고 지칭한다.

   일본화는 최근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체제전환국은 물론 동유럽에까지 점차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동남아 체제전환국에는 이미 일본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확대되어있기 때문에 일본이 어떻게 법제를 지원하고 수출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베트남이 일본을 통하여 자본주의 법체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살펴보면 공산주의 국가의 법체계 변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이 베트남과 협력하여 베트남의 법제를 정비하고 법률가 양성시스템을 선진국형으로 구축하여 지원한 사업은 현재까지 대단히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일본이 지원한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다른 체제전환국에 대한 성과보다도 베트남에서의 성공은 특히 높게 평가받는다. 일본은 이러한 성공을 기초로 하여 법정비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몽골 및 우즈베키스탄 지역에도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과 같이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신흥 경제국에 법정비 사업을 지원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시행착오 및 성공 과정을 구체적으로 참고하고 우리에 맞게 변용함으로써, 우리나라도 법제 수입국에서 성공적인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