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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20호] 한국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가?

 

 

한국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가?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의 저자

지주형을 만나다.

 

인터뷰 및 편집 박영흠 객원기자

 

   바야흐로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08년 신자유주의의 종주국 미국 한복판에서 터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모델은 금과옥조에서 파산선고를 받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난 1월 다보스에 모여든 0.1%의 자본가들마저 자본주의가 고장났다고 고백할 정도다. 세계는 이제 침몰하는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여기의 한국 사회도 그러한가? 황폐해진 삶의 밑바닥에서 잉태된 변화에의 요구는 닥치고MB연합으로 환원되고 있다. ‘88만원 세대의 해법은 여전히 경쟁에서 우월한 지위를 점하기 위한 스펙 쌓기이고, 40대에 퇴직을 걱정하는 고용 불안의 대책은 변함없이 주식-부동산 대박이다. 1997IMF 위기 이후 뿌리를 내린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의 냉랭한 현실에선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는 세계적 흐름과의 큰 온도차가 느껴진다. 아직 이곳에서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구조적 질서가 되어버렸기 때문인가?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의 저자 지주형 교수(경남대)를 만나 한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세상은 전쟁터고 국가와 사회는 믿을 수 없으니 가족과 지인끼리 똘똘 뭉치지만 그렇게 한다고 미래가 희망적인 것은 아니다. 대체 IMF 위기 이후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Q. 지금 한국 사회에서 왜 신자유주의를 말해야 합니까? 현실의 모순을 굳이 신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현 사회의 모든 문제를 신자유주의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신자유주의는 역사적, 제도적으로 특수한 자본주의의 한 형태를 이야기하는 건데, 신자유주의가 아니라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문제들도 분명히 있죠. 그러나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에 초점을 맞춘 까닭은 신자유주의가 현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는 1997년 이후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노동 유연화가 심화되면서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났고,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문제가 생겼으며 재벌의 힘이 더 커졌습니다. 이런 문제는 현 정권 5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 문제입니다. 정권 교체로 이 모든 것을 바꾼다거나 정권이 바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국과 미국에서 복지국가적-케인스주의적 국가와 사회관계를 해체해버리고 신자유주의 체제를 앞장서 이뤄낸 사람은 대처와 레이건입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축적이 이뤄지고 금융자본가들이 제일 큰 이익을 보게 된 건 오히려 이른바 진보적정권으로 바뀐 뒤인 블레어와 클린턴 시기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갑자기 잘못된 게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 다 있었던 일이지요.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축적을 더 확장시키고 싶었는데 오히려 세계 경제 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죠.

 

“...산업발전의 논리보다 금융적 수익성의 논리가 우세하게 됨으로써 한국의 자본주의는 과거의 발전 경로와 질적으로 단절하고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발전 경로로 들어섰다.”

 

Q. 신자유주의 이전과 이후 한국 자본주의에서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요?

A. 하나는 계산 방식에서의 단절입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기업 성과에 대한 평가 기준은 수출, 매출, 자산규모 등이었습니다. 지금은 단기적 수익성이 중요합니다. 산업을 보는 개념이 바뀐 겁니다. 산업지향적인 기준이 중시되다가 지금은 금전적 기준이 제일 중요하게 된 겁니다. 20032SK텔레콤이 기업설명회에서 설비 확충에 5200억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니까 투자자들은 배당금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서 주식을 내다판 적이 있습니다. 주가가 떨어지자 회사측은 놀라서 투자규모를 크게 줄일 수밖에 없었지요. 과거엔 대우그룹처럼 자산 규모가 큰 게 좋은 거였는데 지금은 꼭 그렇진 않아요. 부채가 많아서 또는 투자를 크게 해서 자산 규모가 커진다면 이자비용이 늘거나 배당금이 준다는 이유로 오히려 주가가 떨어질 수 있는 거죠. 예컨대 기업 인수전에서 승리한 기업이 오히려 주가가 떨어지고 재무상태가 나빠지는 승자의 저주라는 현상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기업 활동에 대한 멘털리티가 바뀐 겁니다. 또 하나는 금융과 산업의 관계가 단절됐습니다. 예전엔 국가의 산업정책이 있고 그 달성의 수단으로 은행이 이른바 관치금융을 통해 재벌기업에게 저금리 특혜금융을 주는 긴밀한 관계가 있었죠. 이게 안 좋은 측면이 있었지만 산업정책을 통해 어떤 산업을 전략적으로 발전시킬 때는 효율적 수단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거의 불가능하죠. 재벌기업들이 수익성 위주로 경영을 하다 보니 예전만큼 투자를 안 하기 때문에 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싶어 해도 오히려 돈을 안 빌려요. 은행도 재무건전성을 중시하니까 위험해 보이는 기업대출은 피해요. 그래서 전반적으로 기업대출이 줄고 가계대출이 늘었죠. 생산적인 부문으로, 고용을 더 창출할 수 있는 부문으로는 돈이 안가고 가계대출(바꿔 말하면 부채)은 크게 늘어나는 거죠. 이게 큰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IMF 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사회적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고단한 삶은 고용 불안, 노동시장 연장과 상습적인 야근, 자기계발과 재테크, 출산율 저하, 자살률 증가, 타인에 대한 신뢰와 삶에 대한 만족도의 저하를 특징으로 한다.”

 

Q. 한국 신자유주의를 연구함에 있어 굳이 그 형성과 기원을 역사적으로 살펴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사회과학에서 역사적 연구를 하는 까닭은 보통 지금의 현실이 자연적 질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어떠한 질서도 저절로 생겨나거나 그대로 둔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세력들 간의 각축 속에서 유지되거나 변화합니다. 한국의 신자유주의 질서도 자연적인 게 아니라 추진했던 세력들과 그에 저항했던 세력들의 투쟁의 결과로 형성된 거죠. 국내의 관료, 미국의 재무부도 있고, 부분적으로는 재벌이 원했던 측면도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인풋이 있었죠. 그들의 싸움에 의해서 신자유주의로 전환된 다음에도 그 신자유주의는 그대로 가지 않고 또 변화될 수 있어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면 신자유주의가 얼마만큼 역사적으로 퇴적된 결과물인가를 보는 과정을 밟아야 됩니다. 역사적으로 들여다보는 까닭은 그 퇴적물들을 다 확인하기 위해서죠.

 

Q. ‘시공간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분석하고 있는데, 그러한 개념을 활용하는 이론적 의의는 무엇인가요?

A. 70년대 이후 사회학과 지리학에서 공간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주된 관심은 사회적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입니다. 간단한 예로, 서울과 지방 사이의 교통은 매우 잘 되어있습니다. 근데 지방과 지방 사이는 교통이 아주 안 좋습니다. 이게 사회적 공간이거든요. 물리적 거리는 지방과 지방이 더 가깝지만 사회적 거리는 지방과 서울이 더 가깝습니다. 원래 그런 게 아니라 권력관계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진 거죠. 공간을 어떻게 조직하느냐에 따라 어떤 집단은 이익을 얻고, 어떤 집단은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회적 공간을 만드는 사회적 힘이 있고, 사회적 공간이 낳는 효과가 있는 거죠. 그런 전통에서 볼 때 IMF 위기 이후 한국의 신자유주의화도 공간의 변화와 함께 이해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가졌던 겁니다.

시간은 원래 사회과학이 사회 변동에 관한 학문이니 만큼 전부터 많은 관심이 있었지요. 특히 자본축적의 핵심 메커니즘 중 하나가 시간을 조작하는 것이잖아요. 노동가치론 체계 자체가 시간에 대한 거죠.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자본의 회전시간도 투자한 다음에 이익을 얻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말합니다. 그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자본은 더 많은 이익을 보겠죠. 신자유주의를 얘기할 때 금융자본의 헤게모니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신자유주의는 재산권자의 권리를 극대화하는 사상이고 그 사상에 가장 적합한 게 금융자본주의입니다. 예컨대, 자산을 유형자산으로 가지고 있으면 현금화가 쉽지 않습니다. 공장을 한 평씩 쪼개서 팔수는 없잖아요. 반면 화폐·주식·채권처럼 금융 형태로 보유하면 처분의 자유가 엄청나게 늘어나죠. 노조 걱정할 일도 없고 필요할 때 쪼개서 팔수도 있고, 미래 수익을 예측하고 금융공학 모델로 리스크를 계산해 그걸 기준으로 현재가치로 할인함으로써 미래까지 기다리지 않고 당장 이익을 실현하는 등 여러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일상의 삶부터 권력의 행사, 자본 축적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Q. 이 책은 오늘날 파편화된 분과학문 체계의 관행과 달리 국내와 국제, 정치와 경제·사회를 총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가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세계체제론을 연구하게 된 까닭이 그 필요성을 잘 설명해줍니다. 월러스틴이 원래 아프리카 전공자에요. 아프리카는 왜 저발전하는가? 처음엔 아프리카 국가들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죠. 그런데 알고 보니 아프리카가 세계 분업 질서 속에서 처한 위치 때문이었잖아요. 20세기, 특히 전후 미국 학제의 산물인 현대 분과학문 체계는 월러스틴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문제의식을 갖게 만듭니다. 한 사회의 문제를 파악하려 할 때 그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만 보면 많은 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한국전쟁을 설명할 때 남한과 북한만 보고 어떻게 설명해요. 마찬가지로 한국 경제를 설명할 때도 한국만 보고 설명할 수는 없는 겁니다.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잡한 현실에 단순한 처방을 내리면 재앙을 낳을 수 있는 거죠.

 

Q. 다른 나라의 신자유주의와 비교할 때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보이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A. 먼저 국가 주도로 신자유주의화 됐다는 점이 다릅니다. 물론 국가를 통하지 않고 신자유주의화 되는 경우는 없고 결국 제도를 바꾸는 건 국가가 하는 거지만, 어떤 세력이 먼저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는가를 보면 조금 달라요. 미국의 경우는 월스트리트가 압력을 가하고 정치인들이 그걸 받아들인 거잖아요. 우린 미국이 압력을 가하기 전에, 그리고 재벌이 압력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관료들이 먼저 했다는 거죠. 또 하나는 재벌이 먼저 신자유주의를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벌이 아직 완전히 금융자본화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어요. 물론 금융투자와 계열사를 늘리고 거기서 이익을 얻는 걸 선호하는 쪽으로 행태가 많이 변했죠.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처럼 국내의 제조업 베이스를 거의 포기해버리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어요. 해외에 많이 아웃소싱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은 그런 부분들을 많이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영국·미국과 달리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도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는 거예요. 개발국가 시대에 만들어진 경로에 대한 의존성이 있는 거죠.

 

위기관리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위기의 객관적 구조가 아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주어진 객관적 구조 속에서 위기관리에 따라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볼 수 있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직간접적인 사회적·정치적 투쟁이다. 그리고 그 결과 지배적인 위기관리의 방식이 결정되면 위기효과와 위기관리 비용이 불균등하게 배분된다. 투쟁에서 승리한 집단은 막대한 전리품을 챙길 수 있지만 반대로 패배한 집단은 극도의 고통을 감수할 수 있다.”

 

 

 

 

Q. 유럽의 신자유주의화를 보면 위기 상황에서 여러 사회세력들이 대안을 놓고 경합하고 투쟁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신자유주의의 형성 과정에서는 노동을 비롯한 반대세력들이 헤게모니 투쟁에서 상대적으로 무기력했던 것 같습니다.

A. 일종의 세력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한국 사회에는 신자유주의에 우호적인 세력들이 상당히 많았거든요. 87년 민주화 이후 재벌이나 관치금융에 대한 비판 세력이 많이 늘어났죠. 그런데 IMF가 한국에 요구한 것 중 하나가 재벌에 대한 개혁이었어요(물론 그것은 실패하고 대신 재벌의 체질만 개선시켜준 게 사실이죠). 기존에 추진하던 시장주의적 개혁과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시민운동도 거기에 편승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참여연대죠. 참여연대의 재벌 개혁은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거였는데, 당시 맥락에서 전혀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근본적으로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한다는 건 신자유주의의 주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겁니다. 결국 재산권자의 이익을 재산권 가진 만큼 보장해주자는 거거든요. 당시 유명했던 장하성 교수는 우리에겐 개혁적으로 보였지만 초국적 자본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자기들의 편이었죠. 노동운동은 이전부터 이미 상당히 경제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었고, 산별노조도 아닌 기업별 노조가 자기 회사 얘기가 아닌 한국 경제의 대안을 논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당시에 진보정당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상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하나도 없었던 거죠.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결코 논리적으로 필연적이거나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국내외의 소수집단들이 독점적이고 반민주적으로 내린 결정의 결과일 뿐이다.”

 

Q.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형성되는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세력들로 미국 재무부-월스트리트 금융자본-한국의 엘리트 경제관료들을 꼽고 있습니다. 한국 관료들의 내부 역할도 있었지만, 미국의 영향력이 심대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신자유주의의 형성과 전개에서 미국의 비중과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A. (IMF 이전부터)한국의 관료들이 독자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려 해왔지만 계속 실패했지요. 미국이 들어와서 (압력을 행사해줌으로써)비로소 성공한 겁니다.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확산에서 미국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클린턴 행정부 때 정책적으로 개방하라고 직접적 압력을 가했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IMF 위기로 몰아간 것도 미국이고, IMF 체제로 들어온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치밀하게 자기 이익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한 것도 미국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이 책에서 관료를 비롯한 내부 세력을 강조한 까닭은 거기에 대한 인식이 약하고 또 이들이 국내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집단이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공동체의 경제사회적 삶의 방식과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권위와 권력의 원천이 월스트리트, 미 재무부, 국내 경제부처 등의 자본, 국가, 전문지식에만 있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자본, 국가, 지식과 구별되는 제4의 정치적 권위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다.”

 

Q.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경제민주주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A. 지금 민주통합당이나 새누리당에서 말하는 경제 민주화는 김대중 정부 때 있다가 풀려버린 재벌규제, 즉 출자총액제한제도 같은 걸 다시 하겠다는 얘깁니다. 복지도 신자유주의와 완벽하게 호환이 가능한, 기껏해야 영국의 블레어 정부식의 복지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죠. 경제민주화가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본질에선 다 빗나간 거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경제민주주의가) 그런 걸 얘기하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경제의 실질적민주화란 말을 쓴 겁니다. 민주라는 건 실제로 참여를 해야 민주화가 되는 거죠. 얼마전 유종일 교수가 내놓은 정책안을 보면 노동자의 경영 참여라는 작은 조항이 하나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것을 전사회적 수준으로 대폭 확대해야 되는 거죠.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들어가는 식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짜 민주화가 되는 거죠. 작지만 그것부터 시작해서 좀더 많은 부분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끔 해야겠죠.

 

Q. 미국 재무부와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은 글로벌 신자유주의 질서의 지배블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탈신자유주의적 노선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일국적 차원의 경제시스템 변동이 현실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요?

A. 먼저 미국 재무부와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이 2008년 이전만큼 영향력이 있는지는 조금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영향력이 약화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옛날만큼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건 인정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한미 FTA 때문에 소송도 걸 수 있게 됐으니까요. 한국이 작은 실험들을 할 수는 있겠지만 대대적인 실험을 해서 전세계 자본주의의 구도를 바꾸도록 선도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전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인 것도 아니고요. 국내의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지혜롭게 대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Q. 경제 테크노크라트들의 독단적 결정에 의해 중요한 정책들이 수립되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제 정책의 결정이 고도로 전문적인 영역인 것이 사실인데요. 공동체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정책 결정의 민주화가 과연 가능할까요?

A. 가능합니다. 대통령이 지시하면 관료들이 실행하는 식의 기본 이념이 작동을 안 하는 게 문제지요. 관료들이 와서 대통령을 설득하는데 대통령한테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으니까, 경제 문제는 전문가들이 하는 걸로 생각하고 전체적인 경제 문제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니까, 게다가 정당과 노조가 제 역할을 못해 민의가 형성되지 않으니까 결국 못했던 거죠. 그런데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재벌이 추진한 게 아니라 관료들이 추진했다는 게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관료는 재벌보다 통제하기 쉬우니까요. 관료들은 재벌들하고 친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인사권자거든요. 민주주의에서는 (공동체 구성원이 뽑는) 인사권자가 마음만 먹으면 변화도 가능합니다.

 

Q. 올해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어 정치적 변동이 예상됩니다. 앞으로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전망을 부탁드립니다.

A. 한국이 자체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변화시킬 동력은 많지 않습니다. 유력한 대선 후보들을 봤을 때도 그렇고, 관료들이 바뀔 가능성도 없어요. 국가구조도 사회적 세력관계도 크게 변할 거라고 예측할 수 없어요. 만약 전세계적인 변화가 생기면 한국이 그러한 변화를 쫓아갈 가능성은 있겠죠. 그런데 그것도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어요. 한국은 살림살이가 그전부터 어려웠던 데다가 금융위기 이후에도 경제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지 않았고, 게다가 기업들이 수출도 잘하고 세계적 위기에도 잘 버티고 있기 때문에, 금융 위기가 터져서 세계적으로 난리가 난 지금의 상황에서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야 말로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만 예전보다 사람들이 살기가 좀 어려워진 건 사실이니 그 부분은 복지제도로 해결해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비관적 생각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책세상(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