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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121호] 아, 삼민광장

칼럼

 

, 삼민광장

박승일 기자

 

한 때 우리에게도 광장이 있었다. 돈이 없어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던 곳, 때로 공부도 하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던 그곳, 선생이 거닐던 그 자리에 다시 제자가 머무르던 그곳, 광장은 마침 그 이름이 삼민이었다. 아담한 풀밭을 한 쪽은 벚꽃 나무가 다른 한 쪽은 플라타너스 나무가 빙 둘러치고 그 사이를 투박한 나무 벤치가 기다리고 서 있었다. 밀린 독후감을 쓰다가 하늘이 파랗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냥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눈웃음 자아내는 행복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신입생이었을 때 대학은 그처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주위에서 뛰어다니던 학생들은 운동장의 먼지를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그 경사진 풀밭에서, 자장면 먹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잘도 축구를 해댔다. 고학번 복학생이 광장 구석에 앉아 치는 기타는 모두가 듣는 라이브 공연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광장이었던 삼민은 놀랍게도 자기 이름 안에 민족과 민권과 민생을 모두 보듬고 있었다. 대학 광장이, 그것도 후문 옆에 초라하게 자리 잡은 광장의 이름이 삼민이었다는 사실은 도서관 옆 공터의 이름이 의기촌이라는 사실만큼이나 우리에게 낯설고 잊혀진지 오래다.

어느 새 삼민광장의 그 자리에는 곤자가 플라자가 들어섰다. 벚꽃과 플라타너스가 있던 자리에는 거대하게 발기된 기숙사가, 경사졌던 그 풀밭에는 온갖 장사꾼들이, 누워서 뒹굴던 그 땅에는 주차장이 버티고 서있다. 이제 쉬려면 돈을 내야한다. 노래를 부르던 그 선배도, 동그랗게 둘러앉아 토론을 하던 그 모습도, 더 거슬러 올라가서 민주화 투쟁을 벌이던 앞선 이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다. 더 슬픈 것은 삼민광장의 이름이 없어진 것과 함께 우리의 기억도, 그 기억을 공유할 사람들도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거의 10년 만에 학교에 온 선배는 기숙사 앞에 남아있는 한줌의 동그란 잔디밭을 바라보고 담배만 펴댔다. 한 뙤기 구색 맞추기로 남아있는 잔디밭에서는 자장면을 먹지도 노래를 부를 수도 누워서 뒹굴 거릴 수도 없다. 모두의 광장이었던 그 자리는 BTL(임대형민자사업)으로 지어진 찬란한 건물과 돈 없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배려한 온갖 상업시설들로 가득 차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호주머니를 털어 학교 땅에 건물을 지어준 사업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리고 학교는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학생들이 낸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고 펀드에 투자하고 그렇게 이익을 계산한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기숙사를 짓고 학생 복지를 향상시키는 일은 학교의 중차대한 임무임이 분명하다. 돈이 없기에 빌려서라도 교육 조건을 완성하는 자세는 더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백번 양보해서 수익이 극대화되어야 학교 운영과 학생 복지 그리고 교육 개선까지 이룰 수 있다는 그 말이 설령 맞다 하더라도,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해서 완성된 공간이 학생들의 공간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발전이고 성장이라기에 재개발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니 내 살던 집은 온데간데없고 부동산 업자들만 배부르게 된 그런 흔한 상황에 빗댄다면 지나친 오해일까.

얼마 전까지 우리의 광장이었던 삼민은 민족과 민권과 민생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리를 이제는 민영화라는 다른 이 서강대 후문 한 쪽 귀퉁이에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광장을 몰아내고, 포악스럽고 흉물스럽게 그러면서도 동시에 세련되고 번듯한 모습으로 우뚝! 서있다. 그렇게 광장은 사라지고 플라자만 남아있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삼민광장의 모습 (사진출처 서강학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