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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2호] 대학 풍경, 낯설게 보기

대학 풍경, 낯설게 보기
대학의 ‘사회적 공간’ 복원을 위하여

이해수 기자

 

“ ”의 인용구들은 구보 박태원 作『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의 문장들을 각색한 것이다. 경성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물질적 가치관이 팽배한 공간을 비판했던 구보의 시각을 우리 대학으로 옮겨 왔다.

 

‘대학’이라는 공간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빈 곳’이라면 어디든 앉아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곳, 온돌 바닥일리 없는 연구실에서 동료들과 논문을 읽고, 머리 싸매고 고민하며 날밤을 새는 곳. 학교 내 잔디밭 광장은 맥주 한 캔씩 들고 학생들이 서로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자 학교의 전횡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자주터였다. 그러나 대학가의 낭만은 이미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갈수록 급증하는 취업난과 경제난으로 인해 도서관마다 `열공` 열기로 가득하지만 학생들의 눈 마주침, 얼굴에 미소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생들은 서로 무관심하며 자기 계발에만 몰두한다. 그 사이 학교의 학생 자치 공간은 기업들이 세워주는 으리으리한 건물들로 대체된다. 이제 우리는 고급 커피를 마시러 굳이 학교를 벗어날 필요가 없다. 집 근처의 스포츠센터를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학내 퓨전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앉아 교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기가 학교인가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그러나 사라진 광장은 어디로 갔는지 묻는 이가 없다. 우리의 시선은 스펙터클에 홀려 건물의 화려한 외피만을 훑고 지나갈 뿐이다.

 

대학, ‘사회적인 공간’의 복원. 그것은 스펙터클의 쾌감에서 우리 스스로가 빠져나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본 글은 안팎으로 바뀌고 있는 학교의 풍경을 낯설게 보는 것을 제안한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편안한 것을 불편하게, 아름다운 것을 추하게, 선한 것을 악하게 말이다.

 

‘기(氣)’가 막힌 연구실

 

“어디로…. 연구실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하나 남았던 좌석은 바로 한 걸음 먼저 연구실에 도착한 후배에게 내주어야했다. 15평 좁은 공간 안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22개의 책상들을 바라본다. 그 빈약한, 너무나 빈약한 연구실은 역시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여주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연구실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는 대개 이렇다. 빈틈없이 메워진 책장,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공간에 웅크려 연구하는 원생들. 이미지 뿐 아니라 실제 연구실을 살펴보면 온갖 자료들과 PC테이블, 쌓여있는 커피믹스 박스까지 점령해 빈틈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화가 있고, 팩스까지 갖추고 있으니 연구실이기보다는 사무실이거나 작업실이라 함이 옳다. 게다가 의자 사이의 간격이 좁아 조금만 움직여도 옆 사람과 부대끼게 되니 작은 소리에도 곤두선 신경은 집중력을 무너뜨리는 주범이다. 이는 학술 연구 의욕 고취를 위해 가장 능률적인 공간이어야 할 연구실이 기가 막힌 채로 방치되고 있는 형상을 보여준다.

 

 

 

우리 대학 신문방송학과 연구실은 108명의 석사생들이 22석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논문학기 배정 자리 12석을 제외하면, 10석만으로 나머지 학기 학생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법학과와 여성학과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법학과는 2011년 42명의 재학생과 그 중 논문학기생 10명이 등록했으나 별도의 공간배정이 전무한 상황이다. 여성학과의 경우 재학생 9명과 논문학기생 3명, 소수 인원이라는 이유로 고정 좌석은 물론 연구 공간조차 없다. 별도의 연구실과 강사실이 없어 강사, 학부조교 및 학부생, 대학원 조교 및 대학원 재학생 등 학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조교실을 휴게/스터디/회의/연구/사무 등으로 혼용하고 있다. 


연구 공간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학교의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대학원 총학생회에서는 X관 열람실 내 대학원생 전용 좌석을 설치하여 운영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12석으로 한정되어있어 원생들이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공간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석·박사 논문학기 학생 우선, 1개월 이용 신청 등의 사용 기준 자격을 적용해 좌석이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원총은 X관 지정 열람석을 이용하는 대학원생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유로, 학부생들에게도 앉을 자리를 제공했다. 당시 원생들의 특별한 반발 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우들이 반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따로 있다.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연구 공간’이란, 자신들이 소속된 학과 건물에 위치해 자료의 열람이 쉬운 곳이다. 또한 강의실, 교수 연구실과 석·박사 연구실을 수평적인 공간에 두어 ‘공부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만나 뜻이 통하는 대화를 주고받는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불필요한 소모적 낭비를 줄이고 꾸준히 논문을 쓸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연구 공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유리 외벽의 ‘세련됨’, 빛 좋은 개살구

 

“정하상관(국제인문관, 이하 J관)과 떼이야르관(산학관, 이하 TE관)의 모던함은 건물의 외관과 색깔에서 느껴지고 멀리서 보는 원경의 건축물은 도발적이다. 고개를 거의 90도로 들어 올려 가치 경배와 복종의 자세로 바라보아야 건물이 눈에 들어올 듯하다. 빈 땅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의 학교는 과연 모던한 것인가? 턱을 수직으로 치켜 올리고 작열하는 태양빛을 어지럽게 반사하는 커다란 건축물을 경배하듯 바라보아야하는 것이 서강의 풍경이다.”

 

 

이제 빛바랜 외벽과 우중충한 콘크리트 건물로 표상되던 대학 캠퍼스는 옛말이다. 건물 전체를 유리로 감싼 채 마주보고 있는 J관과 TE관을 보고 있으면 그 유리 외벽의 ‘세련됨’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세련된 외관이 대학 내의 실상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건물을 짓고, 공간을 만들어도 학생들은 여전히 공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이는 건물 신축·중축이 단지 보여주기만을 위한 것임을 말해준다.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다. 원생들은 J관 신축이 대학원의 연구실 확보에 기여할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 J관에는 각종 회의실을 포함한 42개 강의실과 그룹 스터디실, 열람실, 멀티미디어실 등이 갖춰져 있다. 그러나 대학원생 전용 공간은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 세미나실을 대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알아보지만 강의실을 행정실마다 따로 관리하다보니 비어있는 강의실을 파악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공급이 제 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다. 오늘도 원생들은 엉덩이 붙이고 공부할 장소가 없어 이리 저리 공간을 찾아 바쁜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커피 한 잔’ 달콤한 유혹 불편한 진실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지만 어디에서도 앉아 쉴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없다. 그저 수많은 학생들이 어두운 지하에서 무표정하게 쏟아져 나오고 들어가길 반복할 뿐이다. 용기를 내어 지하계단을 내려가본다. '최저가'가 현란하게 적혀있는 휴대폰 대리점의 쇼윈도로 이내 피로감이 몰려온다. 더 이상 둘러보기를 포기하고 지하를 빠져나왔다. 느리지만 서강의 살아있는 풍경과 일상을 바라볼 수 있고, 굳이 지하 굴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는 삼민광장이 새삼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학교 측은 곤자가 플라자 건립에 대해 “학내 구성원들의 학교식당 증축 요구에 따라 건물 위치와 임대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대학의 교육 연구 및 학내 복지라는 목적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2008년 삼민광장 잔디밭을 밀어내고 각종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곤자가 플라자에 입주했다. 닌텐도를 판매하는 '반디앤루니스'와 'GS25', '파파이스', '김가네', '커피빈' 등 다양한 외식업체 부터 학생들의 실생활과 관계없는 예식장까지 들어섰다. 학생들은 커피빈의 야외 테이블에서 4800원짜리 까페라떼를 마시며 땅 밑으로 꺼진 삼민광장의 흔적을 바라본다. 이는 과거 집단성이 구현되는 공간이자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오던 대학 내 광장이 ‘이미지’와 ‘스타일’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소비 자본주의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생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드나들던 그 곳은 공간을 빌려주는 업체를 이용하지 않으면 쉴 수 없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학교 내에 커피빈이 위치한 대학교는 우리 대학과 고려대학교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누릴 수 혜택은 차이를 보인다. 고려대학교의 커피빈은 대학 내 매장이라는 특성을 반영하여 ‘음료, 베이커리 류 10% 가격 인하‘, ‘전체 매출액의 10% 장학금 지급‘을 제공하기로 약속 했다. 이는 "신성한 캠퍼스에 노골적인 상업시설을 끌어들인다."며 입점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이다. 할인된 가격 제공과 수익의 일부를 장학금 지급하는 조건으로 커피빈 임대 계약을 연장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는 각각 ‘청춘카드’, ‘온(ON)카드’라는 이름의 자체 멤버십 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식사, 음료 및 주류, 문화생활, 미용 등 학내의 프랜차이즈 업체와 학교 주변 다양한 분야의 업체들과 제휴를 맺어 학생들에게 할인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적게는 식사 메뉴 당 500원 할인부터 많게는 치아미백, 여드름 치료 50%할인까지 업종별 특성에 따라 다양하다. 기업이 제공하는 편의시설에 자치공간을 내어주고,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 동일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학 학생들은 학내 공간의 변화에 대해 무심한 듯 보인다. 학생회가 나서서 커지는 대학 내 상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보지만 학우들의 관심과 참여 부족은 허공 속 외침을 낳을 뿐이다. 상업화에 무뎌진 학생들은 오늘도 곤자가플라자에 앉아있다. 무엇인가를 소비하지 않고서는, 적어도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지 않고서는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서로를 쳐다볼 수 있는 공간들은 줄어들고 있다.

 

*‘곤자가 플라자’의 이명이 ‘곤자가 지하캠퍼스’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하 캠퍼스란 이름이 무색하게 곤자가 플라자는 학생들이 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자치활동 공간이나 학습편의 시설보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각종 상업시설을 유치하고 있다.

 

곤자가 플라자에 대한 문제제기는 단순히 부담을 줄이자는 경제적 논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 상업화 경향에 대한 의문의 제기는 대학이 학생들의 권리를 지키는 자치기구로서의 본래 역할에 충실해야한다는데 있다. 시장 자체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너무나 완벽한-다른 어떤 형태의 사회조직보다도 우월한-것으로 가정한 나머지, 이전에 대학에서 규제되어온 시장논리가 절대지존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 때문이다. 학생 복지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생협, 로욜라도서관의 음악감상실이 사라졌고, 여자휴게실이 사라질 예정이다. 이러한 학내 공간 변화가 반드시 시장논리에 의한 것이라 볼 수는 없지만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 우리 대학은 1988년 ‘학생소비자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생협을 설립했다. 그러나 학생직영사업을 해체하라는 교육부의 압력에 의해 해체됐다. [대학원신문 120호 참고]


* 잡까페의 설립은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공적인 영역에서 취업이나 더 나은 수익과 같은 사적인 이익추구를 위한 사적영역으로 변화하였음을 말해준다.

 

사라진 빈 공간복원을 위하여

 

대학은 담장 밖의 경제논리, 소비문화가 아무런 장벽 없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오는 공간, 지역 주민에게 개방되어 언뜻 열린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교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대학생들에게는 몸을 누이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한 뼘의 공간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은 여전히 닫힌 공간이다. 열린 공간의 기본 전제는 빈 공간이다. 무언가를 꼭 소비해야만 하는 상업시설로 가득 찬 학교 주변일지라도, 대학 교정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자유로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빈 곳이 있어야 한다. 지갑을 열지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광장, 운동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특히 대학원생들에게 빈 공간은 더욱 절실하다. 원생들은 하루 중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며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연구하고 끼니를 해결한다. 머물러있는 곳이 한정되어있는 원생들에게는 빽빽한 연구실을 벗어나 한 숨 돌릴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이 필요하다. 연구 성과는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연구실 밖 빈틈이 보이던 잔디밭과 조그마한 쉼터들은 또 다른 건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학교의 겉모습은 계속해서 화려해지고 있지만 공공의 영역이 사라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도 사라지고 있다.

 

옛 대학의 건물은 별다른 특징 없이 투박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학생들이 만들어낸 공간 그 자체로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곳이었음을 기억한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문화를 만들고 의미를 채워가는 빈 공간이자, 열린 공간이었다. 지금의 대학은 어떠한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광장, 동선 없이 자유로이 활보할 수 있는 길은 사라지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상업적 공간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회적 의미를 상실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사라져버린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야한다. 화려하고 매혹적인 소비 공간들을 낯설게 보아야한다. 교육과 학문의 공공성을 뒷받침 해줄 공공의 공간, 공동체의 숨결이 살아있는 공간을 복원해야한다. 사회적 공간이라고는 열악한 동아리방과 연구실밖에 남아있지 않은 대학의 현실을 바꿔보고 싶다면, 바로 우리가 고민을 시작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