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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3호] 재미의 원리

재미의 원리

이현비(‘재미의 경계’ 저자)

 

(1) 내가 설명하려는 것은


손오공과 삼장법사가 길을 가다 저만치 앞에 수많은 요괴들의 무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오공은 즉각 ‘머리카락 분신술’을 이용해 여러 명의 손오공을 만들어 내 요괴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열심히 싸우다 얼핏 보니 웬 나이 드신 할아버지께서 열심히 싸우고 계신 것 아닌가?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워진 손오공은 성함이라도 알라보려고 그 할아버지께 누구시냐고 여쭤 보았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주인님, 저 새치(흰 머리카락)인데요….”
이것이 웃기는 유머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 짧은 이야기는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웃기는 것일까? 이 글에서 바로 그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유머가 웃기는 이유,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이야기가 유머가 되는 조건 말이다. 그것을 간단히 ‘유머의 논리적 구조’라 하자. 이것은 어떤 이야기의 ‘재미’와 일맥상통하며, 사실상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재미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유머와 재미’, 이것이 이 글에서 내가 설명할 내용이다.

 

(2) 유머의 4가지 조건


앞에서 본 손오공의 이야기는 4가지 조건을 갖춤으로써 유머가 된다. 그것은 ①긴장의 축적과 해소, ②이야기의 2중 구조, ③숨은 이야기의 공유, ④유쾌한 감정의 자극이라는 네 조건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손오공 이야기는 긴장의 축적과 해소를 중심에 두고 있다. 여기서 긴장은 언제 축적되는가? 요괴들을 만나는 것?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오공을 위해서 싸우는 할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긴장은 마지막에 짧게 해소된다. “주인님, 저 새치인데요…”라는 짧은 한 마디로 말이다. 이것이 긴장의 축적과 해소가 의미하는 바이다. 여기서 ‘짧은 한 마디’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는? 잠시 후에 설명할 것이다.
둘째, 손오공 이야기가 재미있을 수 있는 까닭은 맨 마지막 결정적 한 마디가 두 가지 모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결말이면서도 동시에 ‘합리적으로 이해되는’ 결말이라는 점이다. 이런 결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두 겹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드러난 이야기와 숨은 이야기의 두 겹 말이다. 드러난 이야기에서는 손오공이 요괴와 머리카락 분신술로 싸우고 웬 할아버지를 발견하며 누구인지 궁금해 한다. 숨은 이야기에서는 손오공의 머리카락 중의 하나가 새치이고 이것이 분신술로 인해 할아버지가 되어 요괴와 싸우다가 손오공에게 답한다. 이 두 이야기가 결말에서 만나는 것이다.
셋째, 그런데 이 숨은 이야기는 유머에서 드러내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이해하고 웃을까? 그것은 사람들이 그 숨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고, 혹은 이미 경험하여 익숙한 부분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공유 경험’이다. 여기서 ‘익숙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는? 이것 역시 잠시 후에 설명할 것이다.
넷째, 유쾌한 감정의 자극은 최종적으로 드러난 결말이 어떤 감정과 연관되느냐 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슬픈 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고, 때로는 공포심을 자극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 그것은 ‘재미있지만’ 유머는 아니게 될 것이다. 혹은 지나치게 야하거나 외설적인 상황을 보여줄 경우도 있다. 이 때는 유머가 재미있지 못하고 오히려 큰 결례로 끝나기도 한다. 대학원생들 정도의 나이라면 유사한 경험을 보고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3) 인지적 충격과 감정의 폭발

이 개념들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머가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웃음’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인지적 충격에 의해서 유쾌한 감정이 폭발하는 것이다. 유머가 목표로 하는 것이 ‘인지적 충격’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재미있는 유머를 재미없게 표현하기 쉽다. 예를 들어 손오공 이야기의 끝을 이렇게 표현할 가능성이 크다. “그 때 할아버지가 뭐라고 했냐 하면, 자기가 사실은 머리카락 분신술에서 섞여 들어 있던 흰 머리라고 말했대, 하하하!!!” 자신만 웃고 다른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 뭐가 잘못 되었는가?
긴장과 해소가 이루어졌고, 숨은 이야기가 결말에 개입되었다. 문제는 긴장의 해소가 너무 완만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지적 ‘충격’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앞에서 “주인님, 저 새치인데요…”라고 짧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긴장이 축적된 후에 급격히 해소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지적 충격이 크고, 쾌감의 폭발도 크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유머를 잘 하기 위해서 걱정해야 할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초등생들에게 이 유머를 들려주면 재미없을 것이다. 왜? 초등생들은 흰 머리가 나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미리 설명해 주면 어떨까? 이것으로도 부족하다. 왜 그런가?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경험’이 공유되어야 유머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긴장은 축적되었다가 ‘급격히’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결말이 갑작스럽게 반전되는 것이다. 그것을 듣고이해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해야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공유되는 것이 ‘암기된 지식’이 아니라 ‘익숙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문화와 경험이 총체적으로 다른 외국인들, 혹은 낯선 사람들을 웃기는 것은 더욱 어렵다. 상대가 가진 익숙한 경험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머에 대한 설명에서 마지막으로 강조할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그것은 긴장의 축적 능력이다. 유머가 재미있기 위해서는 긴장의 축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긴장의 해소도 없고 2중 구조와 공유 경험도 모두 힘을 잃는다. 이 때 말하는 긴장이란, 이야기 속 사람들의 갈등, 궁금증, 야한 것에 대한 상상 등이다. 손오공의 예에서 축적된 긴장은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긴장의 축적은 논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표현이나 연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유머를 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해야 한다. 여러분이 TV에서 개그 프로를 본다면 이 점을 주목해 보자. 개그맨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렇게 논리적으로 대단히 참신하지는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신에 그들은 적절하게 연기를 한다.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축적되어야 하는 긴장은 감정적인 긴장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평범한 비밀을 알려줄까? 유머를 재미없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매우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고, 냉정한 사람이다. 그들은 연기하지 않고 유머 이야기의 논리적인 내용만 전달하는 것이다. 긴장 축적에 실패하는 것이다.

 

(4) 유머에서 재미로


이와 같은 유머의 논리적 구조는 다양하게 검증가능하다. 4가지 조건들을 가지고 조금씩 변형을 해 보면 어떤 사소한 차이는 유머를 매우 재미없게 만든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영어로 된 유머를 읽고 왜 우스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억도 이해된다. 뿐만 아니라, 나는 아주 생산적인 것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유쾌한 감정을 자극해야 한다는 4번째 조건을 변형하면 유머는 아니지만 다른 종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재미의 발견이다.
이것은 이야기(혹은 스토리텔링)와 콘텐츠의 부가가치가 커지는 오늘날 매우 중요한 지식이 될 수 있다. 이미 옛말이 되었지만, 흥행 영화 한편의 수익이 1년 동안 자동차 수출액과 맞먹는 시대가 아닌가. 물론 그런 세계적인 흥행 영화를 재미에 대한 지식만으로 쉽게 따라갈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영화를 조금씩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면 전체적으로 그와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공포영화를 만든다고 해 보자. 공포 영화라고 다 무서운 것은 아니다. 어떻게 관객에게 짜릿한 공포를 선사할 수 있을까? 잔인한 장면에서 피만 튄다고 공포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긴장의 축적과 급격한 해소, 그리고 2중 구조와 같은 재미의 핵심 조건들을 갖춘다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것은 나의 책(『재미의 경계』)에서 여러 사례분석을 통해 뒷받침했다. 사랑 이야기나 감동적인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유머와 재미의 개념적 관계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표를 보면, 재미의 조건이 유머의 조건보다 더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재미’의 개념이 ‘유머’의 개념보다 더 추상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의 다양한 장르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추상적인 개념의 장점이 그것이다.

 

(5) 유용하고 정확한 지식을 위해


‘재미’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럴 듯한 대답들이 있다. 예를 들어 라프 코스터에 의하면, ‘재미’는 ‘패턴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대답이 싫다. 그럴 듯한 말이기는 하지만 정확한 대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패턴을 학습하는 과정이지만 재미없는 것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따분한 수학이나 영어 공부에도 패턴 학습은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와 같이 그럴듯한 지식들이 많이 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유머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고 하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확하고 추상도가 높은 지식은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내용이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유머든 뭐든,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탐색한다면 단순히 재능과 우연에만 의지하는 것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룰 것이다. 재미와 유머에 대한 이 글의 설명도 그런 점에서 관심을 가져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