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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4호] 불안은 당신의 몸을 겨냥한다.

 

 

 불안은 당신의 몸을 겨냥한다.

 

 

박 승 일(서강대 신방과 박사수료)

 

 

 

 

 

사례 1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개강총회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가 음주가 지나쳐 토할 경우 무게중심이 머리에 쏠려 자칫하다간 화단에 고꾸라져 사망할 수 있습니다. 이참에 공부하자고 책을 읽으면서 도서관에 가다가는 청명한 하늘에 반사된 유리창 빛에 넘어져 뇌진탕으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집에 있어서도 안 됩니다. 밀폐된 공간에는 포름알데히드와 기타 중금속이... 천식과 폐렴을...

 

 

 

 

사례 2

질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방지하며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고른 영양섭취가 필수적입니다. 암 예방을 위해서는 마늘, 당뇨병 예방은 콩, 심장병에는 고등어, 노화억제에는 호두, 다이어트에는 버섯, 정력증강에는 보리, 활성산소 해독에는 부추, 두뇌계발에는... 건강을 위해서는 고른 영양소 섭취 외에도 하루 1시간 이상의 유산소 운동과... 특히 술과 담배는... 또한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위기탈출 넘버원><비타민>

<위기탈출 넘버원>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삶의 여러 상황 속에 있을법한 재난(재해 및 범죄) 사고의 유형과 그 대비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틈입하여 안전에 대한 앎을 각인하고 허용 ()가능한 행동의 범위를 구획하는, 그럼으로써 결국 불안을 삶 깊숙한 곳까지 침투시키는 불안의 정치학에 다름 아니다. 안전에 대한 집착은 동시에 불안을 증폭하는 것이기도 한데, 문제는 불안이 그 자체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안개와도 같이 여기서 저기로 또 시시때때로 불거지면서 그 전염성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증폭된 불안은,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사고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까닭에 특정한 분야로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삶 전체가 잠재적 위기상황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과도 같은 주의 사항을 신체 위에 아로새긴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인 이 위기상황 속에서 우리의 신체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비가시적인 위험을 파악하고 이로부터 탈출하느라 분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불안하다.

물론 불안과 관계 맺는 방식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위기탈출 넘버원>이 일상 여기저기에 산포되어 있는 위험 요소를 직접적으로 가시화함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운다면(당신도 이와 같은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또 다른 건강 프로그램인 <비타민>은 몸에 좋은 음식, 질병의 자가 진단법, 의사의 진단 및 처방, 예방과 치료법 등 건강한 신체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고 다시 이를 근거로 적절한 대응법을 제시하는 식이다(당신은 이렇게 대처해야 한다). 무엇을 먹어야 하며 또 먹어서는 안 되는지, 운동은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고, 건강 검진은 얼마 만에 받아야 하며,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예방·치료·관리·재활과 관련된 수많은 건강 정보들이 전문성의 외피를 벗고 웃음과 퀴즈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예상할 수 있듯, 그 다음 날이면 방송에 소개된 브로콜리가 동나고 병원에는 관련 질병을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친다. 하지만 불안은 여기서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불안은 위험의 탈장소화를 통해 일상의 전 평면으로 흩뿌려지고, 뒤이어 의학적 시선 아래에 포섭됨으로써 일상과 의학의 경계를 와해하는 결정적 촉매가 된다. 일상의 의료화(medicalization)는 모두의 불안 위에 구축되어 있는 셈이다. 언젠가부터 콜레스테롤, 활성산소, 항산화작용, 줄기세포 등의 전문 용어가 일상적인 표현으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이나 비타민으로도 부족해 오메가3, 미네랄, 마그네슘, 칼슘, DHA까지, 신체 부위별로 특화된 약들을 상시 복용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건강에 대한 불안과 함께 정확히 그것을 겨냥하고 있는 관리와 처방의 실천, 곧 신체를 둘러싼 지식()의 역학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위험(danger)과 리스크(risk)

그 저류에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위기탈출 넘버원><비타민>은 불안을 표상/재현(representation)하는 방식에서 사뭇 차이를 보인다(최근에는 소재 문제 때문인지 그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방송국 프로그램 소개를 보면 두 프로그램의 목표가 확실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위기탈출 넘버원>이 그리는 세계에서 위험은 개인의 바깥에서 가해지기 때문에, 이때의 개인은 언제 사고가 들이칠까 불안해하면서도 그저 조심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것이 탈출인 이유도 개인을 둘러싼 위험 지대를 벗어나는 것 말고는(물론 탈출은 불가능하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위험에 대한 강조와 함께 불안을 삶의 한 가운데 기입해 넣은 것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탁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런 반면, <비타민>의 세계는 위험의 원인이 개인 내부에서 비롯되는 까닭에 이에 대한 적절한 관리와 통제가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 세계에서 개인들은 건강과 관련된 여러 지식을 숙지하고 또 따름으로써 스스로를 의학적 주체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도록 요구받는다. 그런데 이때의 의학적 주체는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만이 아니라 언제고 병에 걸릴 수 있는 모두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실로 소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위험(danger)이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하고 정체가 불분명하며 무엇보다 부정적이기만 한 그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한 통제와 개입을 통해 관리(management)해야 하는, 심지어 그것을 감수함으로써 긍정적인 결과를 산출하기까지 해야 하는 일종의 리스크(risk)로 변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자와 리스크 관리(risk-taking)의 절묘한 결합이다. 이와 더불어 불안 역시 개인의 행동과 습관을 이전과 다르게 변형시키는 중요한 인자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삼겹살 앞에서 칼로리 때문에 불안해하는 주체는 이미 비만과 고혈압의 발병 가능성까지 계산하는 건강 관리의 주체인 셈이다. 이처럼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는 질병이라는 리스크를 헤지(hedge)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치료 및 관리의 주체이자 객체로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여기에 결부된 수많은 행위들을 다시 건강/질병의 범주 속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주의력결핍ADHD는 언제부턴가 갑자기 질병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 속에서 불안은 졸지에 더 나은 삶을 위한 유인책이 되고 만다.

 

불안과 함께통치하기

역설적인 것은 이 두 프로그램이 이러한 차이와 함께하나의 결과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마치 담뱃값에 새겨진 그로테스크한 폐암 사진과 그 밑에 조그맣게 새겨진 경고문(담배 성분 및 가능한 질병의 나열)이 서로 다른 선의 작동과 배치를 형성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담배에 연결된 신체를 곧장 향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개인의 바깥과 안을 동시에 공략함으로, 즉 개인을 불안 속으로 몰아넣고(위기탈출 넘버원과 폐암 사진) 다시 그 불안을 스스로 관리(risk-taking)하도록 요구함으로써(비타민과 경고문) 불안과 개인의 신체를 하나의 순환으로 긴밀하게 엮어 낸다. 요컨대, 불안을 (위험이라는) 부정성과 함께 인구 전체로 퍼뜨리는 동시에, 이에 대한 해법은 (리스크라는) 긍정성과 함께 순전히 개인의 차원으로 한정하는 식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달성 가능한 것이 인구와 개인의 동시적 통치임은 물론이다. 불안은 인구의 일부가 아니라 그 전체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와 함께 행위 주체가 스스로를 관리·조절·통제하도록 부추긴다는 점에서, 정확히 현대적 통치(governmentality)에 맞닿아 있다. 잠깐 언급할 것은, 앞에서의 긍정성이 (칭찬을 통해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듯) 어떤 변화에 뒤이어 다른 변화가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단순히 그 결과가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부정과 긍정 모두 통치가 작동하는 한 단면일 뿐이다. 이처럼 불안은 신체를 사이에 둔 채 통치의 한 상관항으로 스스로를 변형시켜가며 끝없이 비대해진다.

당연하게도 신체를 관류하면서 작동하는 불안의 정치학은 몇몇 TV 프로그램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불안은 온갖 매체와 콘텐츠를 통해 신체에 직접 가닿는다. 자동차 사고, 화재, 산업 재해, 건물 붕괴, 가스 누출에서부터 치매, 각종 암, 심장병, 뇌출혈에 이르기까지 재난과 질병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촘촘하게 포박하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은 뭐라도 움켜쥐게 만든다. 바로 이때 마치 구세주와도 같이 이 모든 불안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뭔가가 있었으니, 그것의 이름은 바로 보험’. 하지만 주의할 것. 보험은 보험금을 납입하는 한에서만 우리의 불안을 아주 잠깐 동안 유예시켜줄 뿐이다. 게다가 보험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원인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돈으로 환산해서 보상해주지 않던가.

사망 시 일억 원까지 보상해 줍니다’. 이처럼 보험은 질적으로 서로 다른 생명과 돈을 등가의 위치에 두는 데 성공함으로써 (그 결과) 불안해하는 이들의 보험 가입을 유가족에 대한 경제적 책임이자 의무로 손쉽게 이양하는 데에도 더불어 성공한다. 여기에 덧붙여 보험은 다달이 납부하는 보험금을 그대로 방치하기보다는 금융과 연계시켜 투자하도록 권유함으로써 인간의 생명을 돈으로, 그리고 다시 적극적인 재무 설계로 옮기는 데에도 성공했다. 불안은 이와 같이 위험의 부정성과 리스크 관리의 긍정성를 통해 통치의 궤적 가운데 그대로 포섭되어 여기에서 저기로 계속해서 그렇게 떠돌아다닐 뿐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면 그것은 바로 불안과 함께이루어진 통치의 한 결과로서일 것이다. 당연히 그 한 가운데에 우리의 신체가 있음은 물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