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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25호] 청춘의 카니발, 대학축제 들여다보기

 

지루하던 계절이 지나고 모든 것이 활기를 찾아가는 늦봄. 캠퍼스가 달아오른다. 짧아지는 옷차림과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우리들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주인공은 바로 대학축제이다. 지난 527일부터 61일까지 서강에서도 별빛이 내린다는 이름 아래 축제가 열렸다. ‘놀 줄 모르는 모범생 축제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듯 축제준비위원단의 각오는 남달랐다. 이번 축제는 527일 각 단과대의 마당사업으로 시작해 29일 전교생총회, 30일 의기제, 31일 본판, 61일 각 단과대의 주점 순으로 치러졌다. 청년광장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그만큼 의미를 남긴 축제였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져본다.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의 우리들에게 대학축제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 왔던가. 우리는 유예되었던 자유를 마음껏 분출할 기대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축제의 첫 경험을 통해 새로이 주어진 대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하기도, 부정하기도 했을 것이다. 외압으로 인해 자유가 통제되었던 과거의 캠퍼스를 상상해보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캠퍼스의 자유분방함은 벅차도록 감격스럽다. 그러나 대학문화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대학축제는 캠퍼스의 진화된 자유만큼의 발전이 이루어 졌을까.

 

캠퍼스 공간과 주체의 변화로부터 탄생한 대학축제

 

축제의 시공간은 일상과는 분류된 행위 양식을 갖는다. 인간은 노동으로 인한 생활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축제를 기획하고 집단적 유흥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져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축제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현대에 와서 축제는 그 의미가 더욱 새롭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양극화로 파편화된 개인들에게 소속감으로 인한 위안과 일상과의 분리에서 오는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경험은 축제가 거의 유일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대학축제는 어떤가. 대학축제 또한 각 시대마다 사회상을 반영해 대학문화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모든 축제가 그렇듯 대학축제 역시 소속감과 일체감을 전제로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해 고된 학업을 잊고 학우들과 함께임을 느끼며 동지애를 다지려는 의지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 축제는 1950년대에 시작된다. 서로 다른 성격과 목적을 지닌 단과대학들이 학교 차원의 정체성을 강화하고자 대학에서는 처음 축제를 기획했다. 처음에는 개교기념일에 전교생이 모이는 형태였으나, 기념식만으로는 점점 팽창하는 대학생 집단의 정체성을 강화하기는 어렵다 보니 지금의 축제처럼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문화행사로 변모했다. 사실 대학축제가 활성화 된 것은 각 학교에서 대학생들의 집단정체성을 강화할 필요성을 인식한 데에 있다. 이는 갑자기 급증한 축제의 주체와 캠퍼스 공간의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해방 이후 10여 년이 흐른 1950년대 후반에는 대학생의 수가 10만 명에 육박할 만큼 양적 팽창을 이루었다. 1945년 해방 당시 전문학교 이상 고등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학생이 8천명 정도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라고 볼 수 있다. 단시간에 엄청나게 증가한 대학생들은 대학 본관, 대강당, 도서관 등으로 모여 들어 대학생으로서의 자신들의 소속을 확인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일부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의 집단 정체성 강화를 목적으로 한 대규모 축제가 시작되었다. 대학생의 양적인 증가 현상과 자신들의 집단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학교 측의 의지로 대학축제 문화가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축제문화가 정착되지 않다 보니 규모도 작고, 정기적으로 반복되지는 못했다. 이후 스포츠와 연극, 이화여대의 메이퀸 대관식 등으로 캠퍼스 내에서 모두가 함께어울리는 대형 축제의 형태를 갖추면서 다른 학교들도 대학축제 문화를 구축하려는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민족의 뿌리를 강조한 대동제의 출현

 

대학축제가 성행하자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초기의 대학축제는 외국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서구문화를 표방하는 데만 급급했다. 포크댄스, 쌍쌍파티 등의 서구문화를 즐기던 대학생들의 관심은 70년대에 들어 전통적인 것들로 옮겨졌다. 그리고 바람직한 대학축제상이 어떤 것인가에 따른 논의가 점차 가열되기 시작했다. 논의의 중심에는 대학 축제의 상업문화, 유흥문화, 소비문화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이 자리했다. 연예인 초청 공연이 최초로 이루어진 이후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는 연예인 초청 행사 등의 한정적인 부분에서만 두드러졌고, 거금을 들여 기성가수들을 초청하는 것은 대학문화의 본질을 상실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동아리나 학생들이 모여 파는 음식이나 물건들은 시중에 비해 오히려 비쌀 뿐 아니라 판매 방법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아 저속한 상업 문화를 그대로 유입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자 당시 대학생들은 운동권으로서의 투쟁과 상업적 소비문화에 대한 거부 의사 표시로 마당극 등의 전통양식을 통해 불안한 정치적 상황을 드러냈다. 줄다리기 등의 대동놀이를 통해 대학생 모두가 참여해 집단적 유희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축제의 출현을 염원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돌파구로 대동제가 등장한다. 대동제라는 이름은 70년대 서구문화에 젖어있는 대학가의 축제양식에 대한 대안적인 용어로, 기존 문화가 가지고 있는 소비적, 향락적인 문화양태에 대한 투철한 자기고민과 반성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또 우리의 전통적인 축제 놀이인 대동놀이를 전면에 내세워 우리 민족의 전통과 공동체성을 강조했다. 1983년 고려대학교를 시작으로 이후 많은 대학들이 대동제를 표방하면서 대학축제의 전형으로 자리 잡으며 대학축제를 뜻하는 신조어가 되었다. 1984년 고려대 교지편집위원회에 실린 자료에서 고려대 축제준비위원회가 우리의 다짐이라는 표제로 발표한 성명서에는 학원민주화의 일원으로서 어떤 외부의 간섭이나 탄압은 배제되어야 할 것이며, 퇴폐적, 향락적 사이비 문화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주체성과 뿌리를 강조한 민속제로서 존재해야 함을 각인 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는 곧 퇴색되고 말았다.

 

쌍쌍파티, 포크댄스 등의 서양문화를 즐기는 80년대 대학축제 풍경. 이후 전통 대동놀이를 전면에 내세운 대동제를 통해 새로운 축제문화를 구축하려 했다.

 

 

자발적 놀이의 소멸, 술 취한 대학

 

대동제공동체의 놀이를 재현하겠다는 기존의 의도를 벗어나 결국 과거의 부정적인 면을 되풀이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현재의 대학축제도 이름만 대동제일뿐 과거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학생들이 교내에 연 주점은 10대 미성년자들이 대학생 행세를 하며 술을 마시는 장소가 되었고, 폭음으로 인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아 대학문화의 암적인 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로 여겨진다. 축제에서까지 아카데미즘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술에 취한 교정의 모습은 학생들의 무질서한 에너지 분출 공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축제기간 학생들의 손에 줄줄이 들린 쇼핑백들은 또 어떤가. 경품이 가득 들어 있는 쇼핑백을 든 학생들이 줄 선 대기업 홍보 부스와 파리만 날리는 학생들 부스의 대조적인 모습이 낯설지 않다. 기업은 대학축제를 홍보 기회로 이용하고 총학은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더 풍족한 축제를 운영하려 한다. 표면만을 훑는다면 윈윈전략처럼 여겨지지만 대학자율화 계획 이후 도를 넘어서는 대학의 상업화를 축제에서까지 절감해야 하는 것은 석연치 않게 느껴진다. 또 부자 대학과 가난한 대학, 유명 대학과 인지도 없는 대학 축제 간의 양극화도 빼놓을 수 없다. 축제가 애교심과 소속감을 전제로 한다지만 도가 지나친 일부 대학의 축제 풍경은 대학 서열의 양극화를 부추긴다. 특히 연고전 혹은 고연전이라고 불리는 연고대 교류행사가 학벌 우월의식을 극단적으로 나타내는 집단 이기주의의 전형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교내를 벗어나 신촌 일대 상점가에 연고전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리고, 기차놀이로 거리를 점거하는 행위에는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꼴 사나운 애교심만 남았다.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우월의식으로 왜곡된 축제에서 공동체 의식을 모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뿐만 아니다. 연예인 초청 공연에 관한 찬반 논란은 대학축제 시즌마다 빠지지 않는다. 총학은 일회성 이벤트 행사를 위해 축제 예산의 40% 이상을 사용한다. 대학축제가 학우들의 공동체 의식을 다지기 위함인지, 연예인 공연을 보기 위함인지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연예인 공연에 비해 동아리들의 공연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학생들은 연예인이 오면 몰려들었다가 퇴장하면 우르르 빠져 나간다. 동아리 공연은 연예인 공연에 앞서 무대를 예열하는 역할에 그친다. 그만큼 축제의 흥행을 좌우하는 건 유명연예인이다. 학우들의 자발적 참여를 위해, 대외적인 학교 위상을 위해 거액을 들여 연예인을 초대하고 누가 학교에 오는가가 자랑거리가 되는 우리 축제의 현주소는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지난 해 우리학교 총학에서는 인디밴드 20팀을 초청해 화제를 낳았다. 주류 상업대중문화의 학내 유입을 막기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학우들 사이에 의견은 분분했다. 연예인 초청 공연을 아예 하지 않을 것이 아니라면 잘 알지 못하는 인디밴드 보다는 유명 가수 공연이 낫다는 의견, 그리고 캠퍼스 내에서 상업 대중문화를 그대로 따르지 않은 시도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학생들의 불협화음을 우려한 안정책을 선택한 것일까. 올 해 총학은 다시 NS윤지, 박재범 등 유명가수에게 고액의 출연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기존의 관행을 따랐다.

 

연예인 공연에 몰린 인파, 줄지어 설치된 연예인 홍보부스, 주점. 일시적 유희만을 추구하는,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대학축제의 모습이 어쩐지 서글프다.

 

자발성과 탈일상성의 축제문화 구축

 

최근의 대학축제는 이러한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새로운 축제문화를 구축해 보려는 듯하다. 올 해 축제 기간 동안 뉴스에서는 달라진 대학 축제의 모습을 연달아 보도했다. 축제 때마다 반복되는 지나친 교내 음주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일부 대학에서 노알콜 축제를 선언한 것이다. 과거 주점이 들어섰던 자리에 놀이마당을 마련해 술에 의지하지 않는 놀이로서의 축제를 기획했다. 연예인 공연이나 술이라는 매개 없이도 유희하는 인간, ‘호모루덴스의 자질을 일깨워 보겠다는 야심찬 시도다. 서울의 한 대학은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기도 했다. 기업홍보 부스를 원천봉쇄 할 수는 없지만 부스 설치비를 받지 않다 보니 축제 예산에 관한 학생회 재정 운영에 대해 학우들은 좀 더 신뢰 할 수 있게 되었고, 학우들이 누릴 수 있는 공간에도 여유가 생겼다. 우리 학교에서도 기업에 홍보 부스 한 자리를 내주는 대신 홈리스 자활을 위한 잡지 빅이슈 코리아의 판매원에게 공간을 제공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재 각 학교의 축제준비단은 총학생회에서 주로 주관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공개적으로 게시판에 축제준비위원단모집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참여율이 높지 않다면 결국 총학이 축제를 기획하고, 우리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행태가 반복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학이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거액을 들여 연예인을 초청하고, 기업 후원을 받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공동체 의식이 강해 민속놀이 등의 공동체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계절에 따라 끊임없이 진행되던 농사에서 마을 축제는 일상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위로와 격려의 계기가 되었다. 고된 노동을 벗어난 축제는 일상성을 벗어난 것이어야만 했다. 학교에 속해있는 우리들에게도 대동제 역시 고된 학업에서 잠시 잊는 이탈적 속성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의무로 느껴지거나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면 축제는 의미가 없다. 서강의 축제는 타학교에 비해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고, 학생들의 참여도 적은 편이다. 이것이 좁은 학교 면적이나 적은 학생 수의 문제라고만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주변 학교 축제의 화려함에 우리들은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학생들의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휘황찬란한 대학축제의 모습을 본뜨려 하기보다는 학생들의 자긍심을 일깨워 축제 기획부터 많은 학생들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상적인 축제의 모습을 재현한 2002 한일월드컵 거리응원 풍경. 소속감과 긍지로 하나 되었던 기억을 우리 모두 잊지 못한다.

 

호모 루덴스의 청춘의 카니발

 

최근 서강사랑방에는 축제기간 동안 소음으로 인해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그 아래에는 축제기간이니 어쩔 수 없다는 체념식의 댓글만이 남겨져 있었다. 학생들을 위해 기획된 축제임에도 누구에게는 일회성 유흥의 장소로, 누구에게는 공부에 방해만 될 뿐인 그들만의 행사로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재충전을 위해 잠시 학업을 정지할만한 축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 유명 연예인 혹은 술이라는 매개 없이는 놀이를 즐길 수 없는 걸까. 대학 내에 빠르게 잠식하는 상업화에 학생들이 주인인 축제마저 물들어야만 하는 걸까.

완벽한 축제는 없다지만 우리에게는 진정한 축제가 이런 것이구나 짐작할 만한 공통된 기억이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바로 그것이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얼싸안고 기뻐하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 우리들의 가슴은 여전히 벅차오른다. 응원은 경기장에서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거리응원을 통해 자발적인 참여, 공동체 의식, 놀이 등의 축제성을 모두 갖춘 축제의 이상적인 모습을 재현해 냈다. 이는 개인화된 국민들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자리였다. 대학축제도 마찬가지다. 제한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원이 즐기지만, 국가 안에서 하나가 되었듯 우리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소속감을 가지고 기쁨으로 하나가 되려는 마음부터 시작이다. 과거 대학축제가 시대적 상황에 의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면, 좀 더 나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대동제는 좀 더 청춘의 감수성과 열정으로 하나가 되어보기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