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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29호]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 2014년 4월 월례 세미나 - 프랑스의 지방분권제도에 대한 법적 고찰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 2014년 4월 월례 세미나

 

프랑스의 지방분권제도에 대한 법적 고찰

 

 

정재도_법학과 헌법전공, 박사과정 수료

 

 

이 글은 지난 430일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에서 주최한 ‘20144월 월례세미나에서 발표한 프랑스의 지방분권제도에 대한 법적 고찰의 주요 내용과 연구의 함의를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지방자치제도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의 요청과 지방분권주의를 기초로 하여 역사적으로 성립된 제도적 관념으로 알려져 왔다. 여기서 말하는 지방분권제도란 중앙집권에 대칭되는 개념으로서, 계층적인 국가조직의 외부에서 고유한 법인격을 가지고 있는 별도의 행정주체에게 행정사무의 일부를 배분하는 것을 말하며, 프랑스에서는 'Décentralisation'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중앙집권적 전통은 군주제를 통해서 지방자치기구의 성장을 억압하고 국가의 단일성을 실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어 왔다. 더욱이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나폴레옹이 프랑스 전역을 거의 균등한 형태로 나누어서 데빠르트망(département)’을 설치하고 각 데빠르트망에 황제의 대리인으로서 프레페(préfet)'를 배치하는 방식을 취함에 따라 중앙집권화는 한 층 더 강화되었다. 이러한 프랑스의 중앙집권적 행정체제는 그 후 200년 동안 커다란 변화 없이 행정의 안정성과 계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가에게 계속해서 강력한 권한과 주된 역할을 부여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 좌파인 사회당(PS)의 미테랑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1982년부터 프랑스는 일련의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개혁적 법률을 통해서 본격적인 지방분권화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03년에는 지방분권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우파인 공화국연합(RPR) 출신의 시라크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헌법개정을 통해서 지방분권제도에 대한 개혁을 헌법적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실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1982년 이후 진행되어온 프랑스의 지방분권제도의 개혁은 대체로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서 강력한 중앙의 통제와 감독보다는 관할 행정구역을 책임지고 있는 자치단체의 자율성을 충분히 확보해 주어 국가와 자치단체 간 권한과 기능을 적정하게 배분하고, 각 자치단체들과 국가는 서로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 나아가 이러한 기능분담에서 오는 연계원칙에 충실하면 지방자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충분한 요건이 마련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라고 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진행되어 온 프랑스의 지방분권제도개혁의 주요한 특징으로는 다음의 몇 가지를 들을 들 수 있다. 첫째, 프랑스는 지방분권제도를 실시하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권한배분의 적정성과 지방자치단체들의 자유로운 행정의 원칙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보충성의 원칙을 헌법에 도입하였다(프랑스 헌법 제72조 제2). 보충성의 원칙이란 지방자치단체간의 권한배분에 있어서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수준에서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행사될 수 있는 권한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배분하는 원칙을 말한다.

 

둘째, 지방자치단체로서 레지옹(région, 광역도)’, ‘데빠르트망(département, )', '꼬뮨(commune, 기초자치단체)’를 두고, 이들 간에는 상하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레지옹과 데빠르트망과 꼬뮨은 각각 다른 계층의 지방자치단체일 뿐 서로 간에 지휘·감독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각각에게 부여된 사무배분도 달라서 - 꾜뮨에게는 주로 주민자치의 근린행정과 관련된 권한이, 데빠르트망에게는 사회복지와 보건분야에 관계된 권한이, 그리고 레지옹에게는 경제계획이나 기반시설 확충계획, 평생교육 및 직업훈련 등 장기사업에 해당하는 권한이 배분되었다 - 각 지방자치단체는 부여된 권한 내에서 자율행정의 원칙에 따라 독립적인 자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프랑스는 각 지방자치단체에게 이전된 권한의 원활한 실행을 위해서 각각의 권한이전은 포괄적으로이루어지도록 하였으며, 지방자치재정의 향상을 기하기 위해서 행정권한과 재원의 동시이전을 추진하였다(프랑스 헌법 제72-2조 제4). 아울러 이전된 권한의 실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비의 통합적 보상의 원칙을 마련하고 지방자치단체에게 지방세의 세율결정의 자율성을 부여하였으며 지방분권화와 더불어 전문적이고도 중립적인 사후감사기구로서 지역회계원을 신설하는 등 각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의 실행에 있어서 독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을 마련하였다.

 

넷째, 프랑스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및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행정적 통제를 폐지하고 행정법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사법적 감독을 인정하였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지방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 주민의 참여를 강화하는 의사결정형 주민투표제를 헌법에 도입하는 등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방자치개혁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여전히 지방자치단체들 간, 지방자치단체와 국가 간 권한분배의 불명확성 및 권한의 중복이 발생하고 있어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여 행정효율성의 증대 및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들을 계속해 오고 있다. 지난 2008년에는 지방자치개혁위원회(Comité pour la réforme des collectivités locales, 일명 Balladur 위원회)를 구성하여 프랑스의 지방자치개혁에 관한 제안이 담긴 보고서를 채택하였는데, 이 보고서에서는 지역경제력을 강화하여 국제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새로운 지방행정체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으며, 구체적으로는 확장된 경제권한을 부여받는 광역화된 레지옹의 개편과 11개 대도시 연합의 추진, 그리고 꼬뮨의 재통합 등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프랑스의 방분권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각 지방자치단체에게 배분된 권한들이 각 지방자치단체의 실정과 지역주민들의 현실상황에 적합하게 실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보충성의 원칙행정권한과 재원의 동시이전의 원칙등 지방분권제도의 기본적 원칙들을 헌법을 통해서 명확하게 규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의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9(사무배분의 원칙)와 제11(권한이양 및 사무구분체계의 정비 등)에서도 대체로 이와 유사한 내용이 규정되어 있어 양자 간에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원칙들이 법률을 통해서만 규율되어 있다보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변경될 수 있는 여지를 안고 있다는 점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방분권제도를 실현함으로써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에 합리적인 기능분담을 실현하고 그것을 통해서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중앙과 지역 간의 발전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앙과 대등한 입장에서 지방자치제도를 독립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들의 권한과 활동의 기본적 틀을 국민적 의견을 수렴하여 확고하게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인데, 그런 점에서 헌법 개정을 통하여 지방자치제도의 개혁을 꾸준히 추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프랑스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