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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130호] 모르는 편이 좋았던 야오이의 역사

 

 

모르는 편이 좋았던 야오이의 역사

 

김상하_ 게임 프로듀서

 

2000년대 들어와서는 BL(‘보이스 러브를 줄인말)이라는 이름으로 만화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보편화된 장르가 되었지만, 남성들만이 등장하는 남성간의 성적 판타지를 그린 작품들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일본에서는 그러한 장르를 한때 야오이(やおい)’라고 불렀는데, 야오이는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여성 서브컬쳐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다. 그러한 야오이의 시대를 리얼타임으로 살았던 남성 오타쿠의 입장에서 써보는 야오이론 정도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야오이의 탄생과 발전

그런데 애당초 야오이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진 말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여성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남성동성애(호모) 만화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소설, 게임 등의 캐릭터나 역사상의 인물, 연예인, 가수, 스포츠 선수 등의 실존 인물, 그리고 가끔 오리지널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자기 취향에 맞춘 남성 커플을 쵸이스하여 동성애관계로 가정하는 패러디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남성들은 야오이라는 문화 그 자체를 경원시할 수밖에 없다.

야오이라고 일컬어 지는 그 무엇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 일반적으로는 동인지 활동이 개시되었던 1970년대 중반에 이미 야오이와 비슷한 형태의 문화가 존재했다고 한다. 19751221, 도쿄 토라노몬 소방회관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 코믹마켓(당시에는 일반참가자가 약 700명 정도되는 소규모 행사였다)에서 소녀만화 계열의 만화연구회를 대표하는 QUEEN의 기관지를 보면 남성동성애 묘사를 찾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미적인 문맥으로 묘사된 남성의 나체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 시절에는 주로 레드 제플린, 데빗 보이 등의 서양 뮤지션이나 캡틴 하록등의 작품을 패러디한 만화가 만들어졌다. 이 시절의 작품의 대부분은 바람과 나무의 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탐미적이며 반짝반짝 빛나는 남성 캐릭터에 심취해, 그때까지 금기시되었던 성적 묘사를 많이 추구하고 있었다.

 

 동인지, ‘랏보리

 

그렇다면, 남성동성애 동인지는 언제부터 야오이 책이라고 불리게 된 것일까? 실은 여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확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야오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동인지 랏보리らっぽり)19791220일호 지면에서 이루어진 좌담회에서다. 이 때에 참가자이자 국내에서는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이라는 만화로 유명한 만화가 하츠 아키코(波津彬子)’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러하다.

 

우선, 단어가 처음 나온 곳은 약 15년 전 러브리라는 만화연구회로서, 자신의 작품과 타인의 작품을 평가할 때에(이 모임에서는 비평 노트나 자유전언 노트를 회람하곤 했다) 갈등도 없고(야마나시 なし), 결말도 없고(오치나시 ちなし), 주제도 없다(이미나시 意味なし)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이 삼박자를 갖춘 만화는 그다지 칭찬할만한 구석이 없다는 자조직인 의미를 포함해서 야오이라고 불렀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 시절에 야오이라고 불렸던 만화는 남성동성애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그런 야오이라는 말 자체가 친구들 사이에서 자연 발생한 말장난이었다는 것이다. 이 시절의 동성애 패러디는 호모네타(호모 클리셰)’ 등의 이름으로 불렸었다. 야오이는 당초에 동인지 문화를 주도하던 세대에 의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이러한 야오이의 개념의 등장으로 동인 세계는 일변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동인지 문화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쉽게 주류 서클에 들어갈 수 없는 엘리트 문화에 가까웠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가벼운 동인지를 만든다고 해도 그러한 작품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야오이는 동인지 서클의 엘리트 그룹들로부터 고정관념을 깨고 나온 것이었기에 그 파급력은 매우 큰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세상의 많은 일반인들이 그렇구나, 그냥 갈등이 없어도, 결말이 없어도, 주제가 없어도 좋은 거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걸 그리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애니메이션 패러디 장르의 폭발적인 붐이 오다

1980년대 초엽은 동인지 세계의 대전환점이었다. 1979년부터에 코미케의 대표가 요네자와 요시히로(米沢嘉博, 2006년에 세상을 떠나 현재는 유한회사 코미켓이 코미케를 운영하고 있다)로 바뀌며, 코미케 개최 회장도 이동하여 입장자도 7000명을 넘어섰다. 코미케의 상징처럼 알려진 코스튬플레이도 이 시절에 시작되었다.

 

코미케 내부 사진

 

그 견인차가 된 것이 애니메이션 패러디였다. 기존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패러디 동인지를 만들어서 유통하는 행위가 성립된 것은 1976~1977년경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기존 작품이나 작가의 팬클럽 등에서는 작품을 패러디화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한 동인지에 바다의 왕자 트리톤의 팬이 트리톤은 색기가 있다니까라는 문장을 쓴 것만으로도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사례가 있을 만큼 1970년대에는 동인 활동에 대한 순혈주의가 지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978년경에 되면, 이런 상황이 변하여 애니메이션 패러디가 주류가 되기 시작한다. 그런 시절에 야오이계를 크게 변화시킨 애니메이션투장 다이모스가 방영을 시작한다. 투장 다이모스는 선라이즈가 제작한 로봇 애니메이션으로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가라테를 사용해 싸운다. 주인공이 적인 우주인 사령관의 여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 때문에, 로봇 애니메이션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불렸던 작품이다. 그럼 대체 그런 작품의 어디에 야오이가 끼어들 여지가 있는 걸까? 그것은 주인공의 연인의 오빠, 적사령관인 리히텔의 존재에 있다.

이 시절의 야오이계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소재로 한 호모 패러디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서양 뮤지션을 소재로 한 호모만화가 주류였다. 그런 와중에 이전부터 서양 락 음악계 탐미동인지를 제작해왔던, 타케다 야요이(竹田やよい, 현재도 활동중인 유명한 BL작가)의 서클 DMC가 리히텔을 소재로 한 야오이 책을 제작했던 것이다. 리히텔은 금발에 찢어진 긴 눈의 미형 캐릭터였으며, 이것이 서양 음악계의 호모 패러디를 그려오던 사람들에게는 취향에 맞았던 것이다.

투장 다이모스의 야오이 책에 등장으로 그러한 호모 동인 만화를 추구하는 층이 발굴되고, 그들이 이후 상업적인 활동을 하게 됨으로써 애니메이션 패러디 야오이 책은 성장하게 된다. 이미 그들의 세계에서는 리히텔을 가지고 노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애니메이션 계의 카테고리 중에는 리히텔은 미형 라이벌로 분류 된다. 애니메이션 계에는 거인의 별의 하나카타 미츠루, 로봇 애니메이션 계에서는 용자 라이딘의 프린스 샤킨을 시조로 하는 유서 깊은 미형 라이벌 캐릭터들이 리히텔의 야오이 데뷔를 계기로 일제히 동인소녀들의 먹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이데온의 기제자랄, 육신합체 갓마즈의 마그, 던바인의 반바닝스, 보톰즈의 입실론 등이 차례로 야오이 소녀들의 먹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건담과 같이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고 해도 야오이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샤아와 그의 절친이자 원수인 가르마 자비 단 2명뿐이었다. 최근에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작품 안에서 자유자재로 커플을 고르는 그러한 문화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란바랄과 스렛거를 커플로 만들어 야오이 소녀들이 불타오르는 일은 아직은 없었던 것이다.

 

 투장 다이모스

 

야오이의 분화

1979~1983년에 걸쳐서 코미케는 규모에 있어서도 내용적으로도 크게 변화하였다. 고교생 정도였던 초대 야오이 세대도 사회인이 되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동인지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게다가 그녀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세대가 참여하면서 세대별 집단이 형성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에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이쥬가 호모 성향을 지닌 애니메이션 패러디 동인지의 정보를 게재하지 않기로 한다. 이 시절에는 페니스나 남자들끼리 항문성교를 하는 장면이 명확하게 묘사된 야오이책이 유통되고 있어서,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이 주요 독자였던 아니메이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성적인 동인지의 범람은 동인지 문화 그 자체가 주류 매스미디어로부터 추방되는 결과를 낳았다.

 

 아니메이쥬

 

야오이 동인지가 매스미디어부터 추방됨으로 인해 지금까지 주로 통신판매로 동인지를 구해오던 지방 독자들은 동인지 그 자체와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그녀들의 욕구는 코믹마켓에 실제로 참여하는 방법으로 집약되게 되며, 코미케에서의 동인지 직판이라는 유통 시스템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코믹마켓에 참가할 수 있었던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야오이 소녀들 사이에서는 코미케의 신성화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확대되어간 야오이 동인지의 코미케에서의 총수는 1983년에 이르러서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그렇게 급격히 규모가 커지는 시기에 야오이 소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캐릭터에 관련된 야오이 동인지만을 체크하는 행동이 일반화 되기 시작한다. 베이스가 되는 작품(현재 동인지계에서는 이것을 장르라고 부른다)마다 구분화가 시작되며, 동시에 그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애호하는 것에 대한 감정의 첨예화도 이때부터 나타난다. 그리고 1984년에 캡틴 츠바사의 붐으로 인해 야오이는 본격적인 커플링의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캡틴 츠바사는 소년 점프 식 스포츠 만화의 3대원칙인 우정노력승리에 야오이 소녀들 특유의 시점인사랑을 첨가한 우정노력승리=동성애라는 야오이의 법칙이 성립된 작품이다. 이것은 이어서 대히트를 기록하는 성투사성시로 이어지며, 이것이 발전과 분화를 거듭하여 오늘날의 BL물까지 이어지게 된다.

 

 캡틴 츠바사

 

다시 말해서 야오이=BL’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야오이란 어디까지나 작품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추지 못한 형태소만 존재하는 2차 창작물 전반을 의미하는 것이다. “AB의 원작에 그려지지 않은 어느 순간의 상황을 직접 창조해내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과정과 그 결과물이 야오이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야오이란 여성향 서브 컬쳐 속에서의 여성들 특유의 2차 창작문화 전반을 일컫는 용어고, BL이란 엄밀하게 말해서 그러한 야오이의 한 분파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야오이의 거의 대부분이 섹슈얼한 요소를 갖춘 BL에 잠식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구분되어서 이야기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리지널로 창작된 탐미 계열의 소설들을 야오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그야말로 동성애물로 불린다. 일본의 유명 여성향 잡지인 쥬네(JUNE)가 한번도 야오이를 표방하지 않고 탐미주의를 표방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야오이 동인지 문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본문에서 이야기하듯이 주류 잡지들에서 동인지 판매 광고의 게재를 중지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련의 조치들로 인해 음성화 되어버린 것이 오히려 다양성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로 인해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과 동인지의 대형 유통업체가 등장하면서 정보 공유가 쉬워지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서클이나 작가가 등장하게 된다.

과거에는 동인지 작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리기 위해 활동하거나, 목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주류 잡지에 프로 작가로 데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인지 그 자체로도 큰 돈을 버는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동인지 작가들의 목표는 점차 자신의 동인지를 더 많이 파는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점차 팔리는 것만 그리는 카테고리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다양성이 사라진 것이 지금의 야오이 문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