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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30호] 대만의 형법 규정에 관한 소고

 

대만의 형법 규정에 관한 소고

 

김나리_ 법학과 석사과정

 

대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색과 대만 형법의 상관관계

법률은 사회가 있기에 존재하고, 사람과 사람이 있기에 생겨나 발전해 나간다. 특히 인신의 구속과 재산의 몰수라는 폭력성을 국가라는 이름 아래 합법적이라 규정하는 형법은 해당 형법이 적용되는 사회 그리고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각 문화마다 국민 모두가 동의하고, 준수할 수 있는 국가의 형벌권 발동 범위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 나라마다 독특한 형벌 규정이 존재하며, 이러한 형벌 규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와 독특한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형법과 문화의 상관성을 고려하여 본고에서는 이번 대만 학술문화 탐방을 통해 직접 보고 느낀 대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색을 소개하고, 그를 통해 본 대만의 형법 규정을 논해보고자 한다.

 

대만의 문화적 특색이 들어나는 형법 법률에 대한 검토

1) 중국과의 관계에서 오는 대만의 특수한 형법 법률

중국과 대만의 경우에는 모두 자국만이 영토내의 유일한 정통성과 합법성을 가진 국가임을 주장하면서 자국의 법률이 중국 전체에 적용된다는 것을 기본 입장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1992년 양안관계조례가 제정되기 전까지 대만은 대만헌법상 중국대륙도 중화민국의 영토에 속하고 중국대륙의 주민도 중화민국주민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중국주민이 중국 또는 대만에서 범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대만법원의 형사재판관할권이 미치고 대만형법이 적용된다는 것을 기본 입장으로 취해왔다. 그러나 1992년 양안관계조례를 제정하여 양안관계에서 발생하는 형사사건에 대하여 장기간의 격리단절상태를 고려하여 일정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대만주민의 중국에서의 범죄행위는 물론, 중국주민의 대만에서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대만법원의 형사재판관할권을 인정하고 대만형법을 적용하여 왔다. 그러나 중국주민이 중국에서 행한 범죄행위에 대하여는 법률적으로 대만법원이 대만형법을 적용하여 형사처벌 할 수는 있으나 사실상 처벌이 곤란한 점을 고려하여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을 예외를 두었다. 위와 같은 장기간의 단절 속에서 대만의 형법은 형식상 중국의 영토를 자신들의 토지 관할 아래 두고 중국의 주민들을 자신들의 대인 관할권 아래 두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현 대만 영토와 현 대만 주민들에 대해서만 적용 되는 형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양안관계조례라는 특수한 법령이 만들어지는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2) 대만 형법내의 독특한 규정

구조거부죄에 대한 규정

1929년 중화민국 형법은 제 150조에 만약 그 행위가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하고 위험에 의해 야기 될 수 있는 손해의 한계를 초과하지 않는다면, 그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신체, 자유, 혹은 재산에 위험이 되는 임박한 위험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동한 사람은 손해배상 의무가 없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 것이 위험의 발생에 대해 책임이 있다면 그는 손해배상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다. 이는 흔히 착한 사마리아인 법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타인에 대한 구조의무를 규정한 법이다. 현재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법제화 하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으로 많지 않다. 이는 항상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는 법률로서, 사인이 사인을 돕는 일에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착한사마리아인을 형법 법률로 법제화한 중화민국 형법에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막대한 권력과 내세를 우선시 하는 그들의 도교신앙, 그리고 다양한 민족과 출신으로 이루어진 국가 구성원이 법제화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사료된다. 국가의 권력이 강하지 못하면 이와 같은 사인의 행동을 강력히 규제하는 형벌권은 작동하기 어렵다. 장개석 총통을 구심점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가득한 대만의 국민성 때문에 이와 같은 법률이 무리 없이 법제화 되었다고 보여 진다. 또한 대만은 국민의 80% 정도가 도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 현세의 착한일이 후세에 나타난다고 믿는 그들의 신앙은 타인을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이러한 문화가 법령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살며 다양한 출신의 구성원들이 모여 한 나라를 이룩하고 사는 환경이므로, 위와 같은 법은 필연적으로 안타까운 사고를 막고 국민 통합을 이룩하기 위하여 필요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도 있다. 위와 같이 대만은 그 독특한 환경으로 인하여 소위 착한 사마리아 인의 법이라 일컬어지는 구조거부죄를 형법에 규정하고 있다.

 

마약류 취급에 관한 엄격한 규정

중화민국 형법, 즉 대만의 형법 중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마약류 취급에 관한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중화민국 형법은 마약류를 취급 혹은 소지한 자에게 최고 사형을 구형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마약류 운반에 연루되기만 하면, 사형을 구형 할 수 있음을 법제화 해놓은 강성형벌인 국가 싱가폴과 견줄 만큼 엄격한 형벌이다. 이는 과거 서구 열강으로부터 들어온 아편에 의해 의도치 않은 홍역을 치른 중국의 뼈아픈 역사를 반영한 법안이다.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대만의 고궁박물관에 가면 아편을 태우기 위해 발달되었던 다양한 담뱃대와 물품들이 있다. 아편을 너무나 사랑하여 아편을 피우기 위해 현세까지 전해지는 예술 작품을 만들 정도였으니, 당시 중국에서 아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아편 때문에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 할양 시키는 뼈아픈 역사를 맛보았다. 그런 중국의 입장에서는 기필코 단속해야 하는 것은 마약류 일 것이고, 이는 대만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대만은 마약류에 대한 엄격한 처벌 기준을 마련하여 자국 내에서 마약이 유통되거나 사용되지 않도록 철저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현재의 형법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

 

나가면서

구조거부 행위에 대한 처벌을 입법한 조항이라든지, 혹은 강간 추행의 죄에 대한 처벌과 미수범체계를 다룬 대만의 형법은 우리와 유사하기도 하면서 다른 모습을 띈다. 흔히 우리 형법을 비교법적 관점으로 연구할 때 식민지배나 내전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한 대만의 형법은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와 많은 공통점을 공유한 대만의 형법에 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져 우리 형법개정안의 방향을 잡는 일과, 형법 학계의 연구에 활력을 불어 넣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