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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0호] 무속의례(巫俗儀禮)와 꽃장식

 

무속의례(巫俗儀禮)와 꽃장식

 

이수자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나주대학 교수·안성여자기능대학장·중앙대학교 민속학과 겸임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및 문화재위원 등 역임)

 

 

우리 무속에서 꽃을 볼 수 있는 경우는 편의상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제단에 놓이는 꽃, 신체나 신격으로 존재하는 꽃, 독립된 의례 속에 존재하는 꽃 등이다. 제물을 진상하는 제단에 놓이는 경우 이들은 대개 제단, 곧 전안의 후면에 놓이거나 아니면 제단의 전면 좌우 양쪽 끝에 놓이면서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무속의례를 빛내고 있다. 황해도 굿에는 봉죽, 서리화, 제석꽃, 꽃갓꽃, 칠성쟁비꽃, 만감흥꽃, 만도산꽃, 군웅꽃, 조상꽃, 수팔련(살잽이꽃) 등의 꽃이 있고, 평안도 다리굿에도 많은 꽃이 있다. 서울굿에서 사용되고 있는 무화는 수팔연, 목단꽃, 살제비꽃, 가지꽃, 천상화, 위패꽃, 눈설화꽃, 막꽃 등이 있다. 이 중 수팔연꽃은 가장 좋은 꽃이며, 목단꽃은 신령님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나쁜 액을 몰아내는 꽃이라 한다. 살제비꽃은 변화무쌍한 꽃으로 국운이 위태로우면 원래와는 반대로 피고 낮에 시드는 꽃이라 하는데, 바리데기가 이 꽃으로 죽은 사람을 살렸다고 해서 바리데기꽃이라고도 한다. 동해안별신굿에는 추라작약, 사개화, 고동화, 정국화, 가시개국화, 연화봉, 연꽃, 고동화, 산함박, 막꽃, 매화, 살잽이꽃 등의 지화가 사용되고 있다. 큰굿일 때는 반드시 진홍색 목단을 제단에 올리며, 연꽃은 원래 오구굿에서만 사용했던 꽃이라 한다. 연화봉은 골매기 성황님이나 성주님 같은 신이 좌정하거나 그 속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용한다. 남해안별신굿에서는 지화가 별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다만 오구새남굿을 할 때는 목단꽃, 초롱꽃, 복사꽃, 장미꽃, 태전 등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 중 태전은 신이 내려와서 타고 노는 지화라 한다.

무속의례에 있어 꽃이 신체로 봉안되는 경우는 서울 밤섬 부군당의 예가 있다. 이 당에는 부군신, 삼불제석님, 군웅님 등 3신이 모셔져 있었는데, 이 중 부군신은 바로 그림으로 그려진 꽃이다. 이곳에서는 굿을 할 때 제단에 놓여있는 떡 위에 지화(紙花)도 꽂아 놓는다.

꽃과 관련된 의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는 예전에 서울 큰굿에서 행했었다고 하는 꽃 파는 거리와 충남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행해지고 있는 은산별신제(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 중의 꽃받기의례를 예로 들 수 있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예전에 서울의 큰굿 의례 중에는 꽃 파는 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굿을 시작하면서 주당물림을 하고 난 후 부정청배를 하기 직전 꽃을 전안에 올리면서 하는 것으로, 무당이 화공(花工)에게 꽃을 사는 절차가 있었다. 무당은 꽃에 대한 상세한 내력을 알고 있어야 했는데, 만약 무당이 꽃에 대한 내력을 알지 못하면 환쟁이는 꽃을 팔지 않았다. 꽃을 산 무당은 네모난 생두부를 쳐가면서 사모를 바쳐서 육모를 치고, 육모를 바쳐서 팔모가 되고, 팔모가 돼서 열모가 되고 열모를 쳐서 열두모가 됐네라고 하면서 열두모가 된 두부에다 꽃을 꽂고, 진설된 떡에도 꽃을 꽂는다. 꽃이 꽂혀진 두부는 불사님 몫으로 수명장수케 하는 신약으로 인식되었고, 이 때 잘려져 나온 자투리 두부는 관객들에게 먹게 했다. 은산별신제 중의 꽃받기 의례는 제의의 앞부분에서 진대베기에 이어 행해지는데, 먼저 정결한 사찰이나 혹은 솜씨 있는 사람에게 미리 부탁하여 꽃을 만들어 놓았다가 본제가 행해지는 별신당으로 옮기는 행사로 그 행렬이 아주 장관이다. 꽃을 만드는 사람은 매일 목욕재계하면서 온갖 정성을 쏟아 꽃을 제작하는데, 꽃은 한지에 여러 가지 색으로 물을 들여 연꽃, 국화, 목단 등 지화를 만든다. 이 꽃과 화등은 본제 시에 별신당에 올리는 제물과 함께 공물(供物)로서 올려져 진열되었다가, 꽃병 2개는 별신당에 보관하고 나머지 4개의 꽃병에 들어있는 꽃은 별신제가 끝난 후 찬조자와 마을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신화(神花)로 여겨 방안에 꽂아두면 복이 온다고 믿고 다음 별신제가 열릴 때까지 보존한다.

 

은산별신제. (출처: 교통신문)

 

 

꽃 없는 전안은 없다’ : 필수 무속소(巫俗素),

우리나라 무속의례에서는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꽃이 매우 중시될 뿐만 아니라 신성시되기까지 한다. 서울의 무속현장에 꽃 없는 전안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역시 우리 무속에 있어 꽃이 얼마나 중요시되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굿일을 할 때도 무당은 꽃을 장만하여 신당에 설치하면서 꽂는다라 하지 않고 모신다라고 말할 정도로 꽃은 신성시된다. 무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꽃은 대개 한지로 만든 지화(紙花)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색깔과 아름다운 모습으로 굿청을 장식하고 있다. 또한 갖가지 의미와 기능을 가지면서 굿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꽃이 이처럼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지면서 우리 무속에 등장하고 있다면, 꽃은 우리 무속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중요한 무속소(巫俗素)’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꽃은 왜 이처럼 우리 무속에서 중요시되었고 또한 신성시되었던 것일까?

 

무속의 시원에서도 꽃이 중시되고 있어

우리 무속의례에 많은 꽃이 등장하고 신성시되는 것은 무속의 시원(始原)<생명꽃> <서천꽃밭>과 같은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무속의 시원은 바로 열두거리 큰굿이었다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곧 우리 민족의 고대적 제의였고 의례였다. 우리민족의 고대적 제의였다고 볼 수 있는 열두거리 큰굿은 이 세상을 창조해냈고 인간사 일을 관장하는 수많은 신들이 실재(實在)한다고 믿고, 이러한 여러 신들에게 제의를 행하면서 우리들 인간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했던 종교적 의례이다. 열두거리 큰굿에서는 신들에 관한 언술적 형상물인 신화(神話), 즉 본풀이들이 구송되고 있다. 이들은 천지창생신화라 할 수 있는 배포도업침, 생불할망본풀이, 무조신에 관한 신화인 초공본풀이, 꽃뿌리인 이공본풀이, 전상신에 관한 신화인 삼공본풀이, 저승차사 신화인 강님차사본풀이, 장수법을 마련해준 신에 대한 신화인 멩감본풀이(사만이본풀이), 세경본풀이(자청비신화), 풍농신인 뱀신에 관한 신화인 칠성본풀이, 문전본풀이, 마을 수호신에 관한 신화인 본향본풀이, 집단의 조상신에 관한 신화인 조상본풀이 등이 있었다.

그런데 주화인 <생명꽃>과 이러한 꽃들이 피어있는 공간인 <서천꽃밭>은 생불할망본풀이 및 이공본풀이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생불할망본풀이는 불도맞이라는 제의에서 구송되는 것으로 아기 산육신인 생불신에 관한 신화다. 불도에서 불은 인간이나 아기를 뜻하는 말이고, 도는 신을 뜻한다. 고대에 있어 우리 우리민족은 아기, 또는 인간을 이라 말했던 적이 있는데, 이것은 남성의 신체어 중 고환을 뜻하는 말인 불알이란 말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불도맞이란 아기를 탄생시키는 신들을 맞이하여 행하는 제의라는 뜻이다. 생불할망본풀이는 멩진국따님애기라는 여신이 동해용왕따님애기라는 여신을 이기고 아기를 점지·출산시키는 생불할망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서천꽃밭은 이 여신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여신은 하늘에서 생불할망이 될 자격을 인정받은 후 지상으로 내려올 때 하늘에서 꽃씨를 받아와 지상에 뿌리고 서천꽃밭을 만든다. 그리고 여기에 핀 생불꽃을 따서 들고 다니며 부부 사이에 아기를 잉태시키는데, 생불꽃은 바로 ’, 즉 아기를 생기게 하는 꽃이란 뜻이다. 생불꽃은 동쪽에 있는 푸른 꽃으로 점지하면 아들, 서쪽의 하얀 꽃으로 점지하면 딸, 북쪽의 검은 꽃으로 점지하면 단명(短命), 남쪽의 붉은 꽃으로 점지하면 장수(長壽)하게 되며, 가운데의 황색 꽃으로 점지하면 이 세상에서 만과출세하는 아이가 될 수 있다.

네 번째로 행해진 제의였다고 생각되는 이공맞이제에서 구송되었던 이공본풀이라는 신화에서는 이러한 꽃밭과 생명꽃 내용이 더 발전하고 있다. 서천꽃밭에 부엉이가 들어와 꽃밭을 망쳐놓자 생불할망은 하늘 옥황에게 꽃밭을 지킬 꽃감관을 보내달라 한다. 여기에 뽑혀 가는 신이 사라도령인데, 그의 부인 원강아미는 남편과 함께 이곳으로 가다가 임신한 몸으로 힘들어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자 도중에 장자집에 팔려 종으로 남는다. 후에 이곳에서 태어난 아들 할락궁이는 아버지를 찾아 서천꽃밭으로 떠나가는데, 원강아미를 탐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장자는 이 일로 더욱 화가 나 원강아미를 죽여 띠밭에 버린다. 사라도령은 아들 할락궁이에게 어미가 죽임을 당했음을 말하고 웃음웃을꽃, 싸움싸울꽃, 수레멜망악심꽃, 도환생꽃을 주면서 장자네 일족을 죽이고 어머니를 살려오게 한다. 할락궁이는 웃음웃을꽃을 이용하여 장자네 식구를 모이게 했다가 싸움싸울꽃을 이용하여 서로 싸우게 하고, 마지막으로는 수레멜망악심꽃을 이용하여 장자네 일족을 모두 죽여 버린다. 그리고 도환생꽃으로 죽은 어머니를 살려내 어머니와 함께 서천꽃밭으로 돌아간다.

 

서천꽃밭.(출처: 제주 기당박물관 오석훈)

 

농경기원신화라 할 수 있는 세경본풀이에서는 여신 자청비가 자신을 겁탈하려는 남종을 죽인 후 남장을 하고 서천꽃밭에 들어가 도환생꽃을 얻어와 남종을 살린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 남편 문도령을 만나 결혼한 후 마지막에 수레멜망악심꽃을 가져와 하늘에 일어난 변란을 제압하고 그 공으로 오곡종자를 받아 음력 칠월 열나흘에 남편 문도령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다. 집을 지켜주는 신들에 관한 신화인 문전본풀이에도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일곱 형제 중 막내아들인 녹디셍인은 물에 빠져 죽은 어머니를 살리고자 서천꽃밭에 가서 도환생꽃을 가져와 어머니를 살려내고 조왕신으로 좌정시킨다.

생명꽃과 서천꽃밭은 이처럼 여러 신화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무속신화의 주요한 신화소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을 탄생시키는 꽃씨를 하늘에서 가져왔다는 것은 인간생명의 기원을 하늘과 관련하여 인식했다는 뜻이다. 생불꽃, 수레멜망악심꽃, 도환생꽃 같은 꽃들은 인간의 생명을 조정할 수 있는 꽃이라는 점에서 생명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주화(呪花)이며 신화(神花) 들이다. 서천꽃밭은 인간의 생명을 조정하는 생명꽃들이 피어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신화적 생명공간이며, 이상향으로서의 이계(異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은 아주 멀고도 먼 곳에 있으며 항시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고 있는 신성한 공간으로 표현된다. 생명꽃과 서천꽃밭은 신화를 창조한 집단이 우리 인간 생명의 기원 및 죽음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명해 보고자 마련한 것으로, 신화적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꽃과 꽃밭이라 할 수 있다.

 

긴 생명력을 가진 꽃장식

우리 무속의례에 있어 무화(巫花) 혹은 신화(神花)는 원래 <생명꽃> <서천꽃밭>과 같은 것을 모태로 하여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육지 쪽에서는 후일 바리공주 신화 같은 것에 <생명꽃> 화소들이 결부됨에 따라 무속의례에 있어 꽃, 혹은 꽃장식이 더욱 발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굿을 하는 목적이 다양해짐에 따라 이와 관련된 기능을 가진 무화들이 보다 많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무속의례의 꽃장식이 오늘날과 같이 화려하고 다채로와질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문화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 변하는 것이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고, 또한 상호 접촉이 생기면 변동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무속의례 속의 지화들은 무속이라고 하는 고유한 우리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독자적인 문화라 할 수 있고, 종이로 꽃을 만든다는 점에서 지화는 소중한 우리 전통공예 중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전승될 필요가 있으며, 그 활성화 방안도 모색되어져야 한다.

 

[참고문헌]

이수자, 큰굿 열두거리의 구조적 원형과 신화, 집문당, 2004.

이수자, 무속의례의 꽃장식, 그 기원적 성격과 의미,한국무속학14, 한국무속학회, 20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