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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1호]빈곤의 변화, 신빈곤과 근로빈민의 발생

빈곤의 변화, 신빈곤과 근로빈민의 발생

 

김영란_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

 

신빈곤, 빈곤을 보는 새로운 렌즈

1970년대 중반 이래 유럽 각국에는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나타났다. 인구 중 새로운 집단이 빈곤 속으로 빠져 들게 되었는데 특히 피고용자와 자영업자들의 수가 전통적인 빈곤에 비해 새로운 빈곤층에서 크게 증가하였다. 이들은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로 과거 ‘일을 통한 빈곤 탈피’라는 공식을 무너뜨리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이들은 위험과 경험의 형성과정에서 새롭게 부상한 사람들로 ‘신빈곤’으로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신빈곤의 발생은 1960년대 복지국가의 황금기 이래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노동의 유연화, 고용의 불안정, 복지제도의 전반적인 후퇴, 경제적으로 산업구조의 재편, 소득보장제도의 동요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과거에 빈곤하지 않았던 계층마저 빈곤화되는 등 새로운 빈곤 형태를 양산하였는데 특히 근로빈민(working poor)은 신빈곤의 핵심층으로 부상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성장의 파급효과에 기대어 빈곤문제를 일부분 해결해 왔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빈곤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근로능력이 없는 전통적 취약집단이 빈곤층의 주류를 이룬 것과는 달리 근로능력이 있는 빈곤층이 새로이 등장하였다.

 

사진 _ <PH.W.MAAS>, 2014, 홍한나

 

신빈곤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전통적인 빈곤이라고 할 수 있는 노령, 실업, 질병, 장애 등에 의한 빈곤은 전후 복지 제도 속에서 빈곤의 악화를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이후의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가족수준에서의 커다란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빈곤을 발생시켰고 점차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즉 소득의 약화, 직업의 불안정성, 직업의 상실, 부채의 증가, 가족해체 등의 요인들이 빈번히 상호작용 하였다. 1981년 프랑스의 오엑스 보고서(Oheix report)는 고용에 있어 불안정한(precarious)상황에 있는 노동자들을 현재의 경제적, 기술적 변화에 의해 난파된 사람들로 예전의 빈곤층과는 다른 신빈곤층으로 보았다. 특히 고용과 빈곤 양자에 있는 사람들을 근로빈민이라고 하며 새로운 빈곤을 구성하는 핵심층으로 보았다(Barbier, 2002: 1-36).

 

그러나 이 시기의 경제적 변환만이 새로운 인구를 빈곤의 위험에 노출시킨 것은 아니다. 토크빌(Tocqueville)은 그의 연구 ‘Memoir on Pauperism(1835)'에서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출현하고 있는 빈곤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토크빌은 발전된 사회의 경우 인구 중 높은 비율이 산업생산에 들어가게 되는데 노동자들은 국내에서의 과잉생산, 국가 간의 경쟁 등 경제변동과 불안정으로 인해 취약한 상태에 있게 된다고 본다. 즉 갑작스럽게 인구의 상당부분이 실직 등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들어가게 되며 실제적 경제발전의 폭이 가속화됨에 따라 노동자들의 취약성은 증가될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토크빌은 새로운 산업질서는 전례 없는 규모로 번영을 가져오나 개별노동자들은 불확실한 고용에 들어가게 된다고 보았는데 결국 경제의 지속적 변환이 새로운 인구를 빈곤의 위험에 노출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1970년대 사회경제 구조의 변화에 의한 일정 인구의 빈곤위험 노출이 ‘새로운’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신빈곤에서 굳이 새롭다는 개념을 쓰는 이유는 빈곤의 발생, 개념, 대상과 범주 등에서 기존의 빈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신빈곤은 산업화를 통해 물질적 풍요를 경험했던 후기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빈곤현상이라는 점이다. 빈곤의 발생 원인이 새로운 세계경제질서 즉 신자유주의라는 경향에 기인하고 그로인해 노동이 유연화되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빈곤은 기술변화와 관련된 것으로 풍요의 시대가 제공한 새로운 사회와 방식을 향유할 수 없는 빈곤층의 심화된 역량, 능력결여에 의해 가장 명확히 특징 지워진다.

 

둘째, 신빈곤층을 구성하는 핵심층으로 근로빈민을 들 수 있다. 신빈곤의 문제는 과거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라기보다는 그 중 일부는 과거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부각되지 않던 문제이다. 역사적으로 노동은 사람들이 빈곤에서 탈피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실제 노동이 모든 사람을 빈곤에서 구제하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근로빈민이 있었지만 이들은 현재 빈곤문제에서 그 비중과 심각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데 그 예로 빈곤층에서 근로빈민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빈곤의 대상으로 젊은 층의 부상을 들 수 있다. 1980년 이래 20년 넘게 지속된 장기불황의 대가일 수 있는데 실업자인 부모와 함께 성장하며 불가피한 사회적 하강을 경험하는 세대로 삶에 있어 실질적인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주로 빈곤가족 속에 있으며 이들 대다수는 저학력, 저숙련으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게 된다.

 

셋째, 신빈곤은 빈곤에 대한 관심이 절대빈곤에서 상대적인 빈곤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신빈곤 현상에는 실직 또는 불완전 취업상태의 지속 그리고 생활수준의 하락 등 객관적 변화가 존재한다. 또한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으로 절대빈곤층으로 내려오는 계층이 많은 것이 아니라 절대빈곤층 바로 상위에 존재하는 계층이 좀 더 두터워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 집단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절대빈곤 보다 상대빈곤과 함께 고용상태, 취업상태의 변화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신빈곤이란 물질적 빈곤과 아울러 문화적 소외 등의 문제를 포괄해야 하는 것으로 단순히 소득의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넷째, 신빈곤은 전후 복지국가에서 사회보장체계가 적절히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난 새로운 빈곤현상으로서 복지시스템의 한계와 관련된다. 사회보험 중심의 빈곤예방대책은 늘어나는 장기실업자, 근로빈민, 빈곤의 여성화 등의 문제에 대응하지 못하였다. 신빈곤은 과거의 경제사회적인 패러다임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세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과 관련되는 것으로 과거보다 빈곤으로 떨어질 위험성이 커졌다. 따라서 신빈곤의 해결방안도 과거의 전통적 빈곤으로 해결하는 수단으로는 힘들고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신빈곤으로 볼 수 있다.

 

근로빈민(working poor), 그들은 누구인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 유럽의 경제적 상황은 근로빈민층이라고 알려진 비교적 새로운 사회계층을 낳았다. 일반적으로 근로빈민은 현재 고용되어 있으나 정해진 빈곤한계선이하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인권위원회(2003)는 신빈곤층(working poor)을 ‘근로빈민으로 보고 노동능력이 있어 일을 하고 있거나, 부득이 하게 실업상태에 있는 빈곤계층’ 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근로빈곤층으로 저소득한계선인 중간소득의 2/3 또는 60%미만의 소득, 풀타임금로자 중간임금의 50% ~60%에 미달하는 저임금 그리고 불안정한 고용에 종사하며, 개별적인 훈련 및 기회의 가능성이 없으며, 고용주의 유급휴가, 상병수당, 퇴직금, 육아휴직 등 사회적 서비스 제공에서 배제되는 사람들로 정의하고 있다(Atkinson(eds), 2002 : 147).

 

이러한 근로빈민에 대한 임금 및 소득을 기반으로 한 정의 외에 오스트리아와 벨기에 노조 및 기타 근로자 대표기구들은 근로빈곤층 대신 불안한 복지(precarious welfare)라는 개념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하였다. 불안한 복지는 어떤 수준의 소득이 특정목록의 물품확보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 가능성을 포함하여 적극적인 사회생활 참여를 가능케 하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최저임금위원회, 2002 : 44). 전반적으로 근로빈민의 정의는 개인의 발전을 위해 제공되는 기회와 훈련의 가능성, 고용주가 근로자 자녀의 보살핌과 관련하여 제공하는 서비스의 정도에 좌우되는 고용의 질과 관련된다.

 

사진 _ <PH.W.MAAS>, 2014, 홍한나

 

신빈곤은 어디에서 오는가?

1970년대 이후 빈곤의 재구조화는 사회‧경제적 변화와 관련되는 것으로 신빈곤의 발생구조에 대한 고찰은 ‘새로운’ 빈곤의 원인과 정책결정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 경제의 세계화는 경제성장과 일자리창출을 달성하려는 케인즈주의적 전략이 더 이상 적용할 수 없게 되는 것으로 기업조직, 생산시장, 노동시장의 전면적 재편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노동계층의 빈곤화로 이어진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산업구조와 인력구조의 재조정, 기업조직의 슬림화를 골자로 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노동계층을 고용불안정이라는 위험에 노출시킨다. 그리고 노동계층의 내부구성집단에 서로 다른 효과를 창출한다. 경쟁력을 갖춘 노동계층에게는 비교적 유리하게 작용하는 반면 미숙련노동자와 취약계층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악조건을 제공한다. 특히 불안정취업 전략은 유연성의 도입으로 체계적으로 이용된다. 대륙과 전지구적 규모에 생산단위, 기술지식, 통신망, 원거리 연수 등을 연결하면서 소위 ‘기업망’은 점차 분절되어 간다. 자본의 이동성을 용이하게 조직하면서도 노동비용이 적은 저임금국가로 향한 이전은 노동자간 경쟁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다. 불안정취업은 새로운 유형의 지배양식이다. 이는 항시적으로 전체적인 불안전상태의 제도위에 기초한다(피에르 브르디외, 2004 :121-127)

 

둘째, 1980년대에 들어와서 산업구조의 변화는 노동과정의 고도화로 나타난다. 전문적이고 기술이 숙련된 직종은 선호하는 추세로 이러한 자격이 미달된 노동의 수요는 주로 저임금에 의존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추세는 임시직, 비자발적인 파트 타임직, 영세 자영업과 같은 ‘전형을 벗어난 불확실한 직업’ 을 조장하며 실제적으로 실업의 높은 위험, 열등한 기술, 열악한 노동조건과 약한 노조 등과 관련되어 있다(Room, 1990 : 75-77). 미국의 경우 비교적 저실업을 누리고 있지만 빈곤선보다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일자리만 늘어나고 있다. 유럽의 경우 고용전략에서 직업의 양극화에 대한 위협은 실제적인 것으로 새로운 기술에 투자는 높은 직업계급에 집중된다는데 있다. 반면 저숙련직업은 훈련, 기술향상, 개인적 발전을 위한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Esping-Andersen, 2002 : 20-25).

 

셋째, 이러한 논의는 저임금과 빈곤간의 전통적 연결을 강화하였으며 고용의 불안정성과 함께 사회보험에서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많은 파트타임 일자리와 임시직들은 고용보장과 부가급여, 생활임금 등을 제대로 제공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족부양의 책임이나 노조가입의 기회 등도 마찬가지 이다. 비정규직 노동이 확산됨에 따라 고용주-피용자의 관계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의료보장, 적정임금 심지어 일자리 창출 등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개별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전가되었다. 현재 사회보장시스템은 안정된 정규직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새로운 위험에 대한 안전망으로 작용할 수 없다. 이렇듯 노동시장의 분절화, 불안정고용의 증가, 사회보험에서의 배제에 의한 빈곤은 이전 경기침체기와 1980년대 빈곤을 구별하는 것이다.

 

새로운 빈곤, 새로운 정책

서구의 경우 지난 20년간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술구조의 변화 등 경제적 상황의 변화와 복지정책의 한계 등은 근로빈곤층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사회계층을 낳았으며 한국의 경우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빈민층은 확대되었다. 근로빈곤층은 노동시장에서 취약해지고 있으며 특히 저임금고용이나 불안정 고용은 노령기의 실질적인 빈곤의 위험이 된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빈곤은 사회복지정책에 주요한 도전이 된다. 신빈곤은 과거의 소득중심의 절대빈곤과는 달리 취업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즉 취업의 질과 관련된 것으로 경제적인 면에서 세제개혁, 최저임금확대 등 소득정책, 개인의 역량강화로서 직업훈련 및 기술관련정책, 고용 및 노동시장 정책의 변화, 복지정책의 변화 등 이들 요인간의 통합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국가가 중심이 되어야 하며 인간개발중심의 복지국가는 지구단일 시장경제체제의 불안정성에 대처하는 국가전략적 투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국제시장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일수록 국제 자본시장의 자율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사회적 비용, 적응비용을 내재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시장체제에 통합되면 될수록 시장이 불안정성에 전략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으로 사회안전망의 확충이 중요하다. 금융기관의 규제, 교육에 대한 지원, 기술발전, 직접 빈곤을 약화시키는 것 등 이 모든 것은 상당한 정부의 개입을 포함한다. 새로운 수요, 기대와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복지국가를 포함해서 정부는 국가를 현대화하고 개혁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자원과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는 발전된 복지국가는 과거 세대처럼 오늘날에도 핵심적이다. 시장은 연대성 구축기제가 아니다. 복지국가의 경제적 효과는 결코 경시할 수 없다. 경제적 효율성 이면의 신뢰할 만한 유일한 논리는 복지국가가 복지를 생산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권의 이상은 21세기까지 연장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대한변호사협회. 2003.『인권보고서』.

최저임금위원회. 2003. 『저임금근로자들과 노동빈민층에 대한 비교분석』.

피에르 브르디외. 2004. 『맛불』. 동문선.

Atkinson, T(eds.). 2002. Social Indicators : The EU and Social Inclus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Barbier, Jean-Claude. 2002. "A Survey of the use of the term pre′ecarite′ in French economics and sociology". Centre d`etudes de l`emploi. Mars 2002 : 1-34.

Esping- Andersen, Gosta. 2002. Why We Need a New Welfare State.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Room(eds).1990. 'New Poverty' in the European Community. New York : Policy and Politics.

The Oheix Report. 2004. http//:www.cee-rechere.fr/uk

Tocqueville, A. 1997. Memoir on Pauperism. Chicago : Ivan R. D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