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학술

[131호]서강대학교 심리학과 2014년 9월 금요콜로키움, 한글과 영어에서의 글자 전환 효과

서강대학교 심리학과 2014년 9월 금요콜로키움

 

한글과 영어에서의 글자 전환 효과

 

이창환 _ 심리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는 2011년 이래로 매월 학과 교수님이 직접 자신의 최근 연구결과를 발표하거나 학과 교수님들의 추천을 받아서 외부에서 저명한 학자를 초빙하여 발표 콜로키움을 가지고 있다. 이는 대학원생들에게 최신 연구 동향과 연구 성과물을 소개함으로써 학습 향상과 각자의 논문 아이디어 생성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번 가을학기 첫 콜로키움으로 발표된 주제는 한글과 영어에서의 글자 전환 효과비교와 이에 대한 이론적 논의이다. 언어심리학계에서는 대부분의 연구가 영어와 같은 로마자 알파벳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에 제안된 이론들을 모든 언어에 일반화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에 본 발표에서는 대표적인 단어처리 현상인 글자전환효과를 중심으로 한글과 영어의 수행을 비교하여 기존의 영어권 기반 이론들의 한계를 지적하고 한글기반 모형의 단초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언어 간 비교(crosslinguistic comparison)를 통하여 일반화된 이론을 만드는 연구방식은 언어심리학에서 전형적인 것이며, 연구가 단어처리에서의 주요 현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본 연구에서 관심을 가진 언어에서의 주요 현상은 글자 전환 효과(Letter transposition effect)이며 이는 지난 10여 년간 단어재인 분야에서 많은 연구 출판이 이루어진 주제이다. 글자 전환 효과는 단어 중간 또는 말미에 글자들이 서로 위치가 바뀌어 졌을 경우 원래의 단어와 혼동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 Lee & Taft, 2011; Kim, Lee, Lee, 2012; Gómez, Ratcliff, & Perea, 2008). 예로 “judge" 와 같은 영어 단어의 가운데 글자들을 서로 교환하여 ”jugde"를 피험자에게 제시할 경우 원래 단어로 착각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 어휘판단과제(예: "jugde[비단어로 판단해야 함]" 의 반응시간 측정을 측정하면 판단이 느림)를 비롯하여 점화과제에서의 수행 (예: JUGDE [점화자극; 컴퓨터 화면에서 미리 주어지는 자극] -> judge [목표자극] 의 수행이 상대적으로 좋음), 눈 운동 패턴 연구 (예: jugde를 단어로 착각하는 패턴) 등에서 일관되게 보고되었다.

 

글자 전환 효과가 단어재인 연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유로 단어 내 글자가 어떻게 부호화되고, 위치가 정해지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글자 전환 위치가 글자의 어디인지(예: 전반부, 후반부)에 따라서 단어 내 차등적인 글자위치의 중요성과 처리 순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여 줄 수 있다. 최근까지의 일반적인 보고는 초반이나 후반부의 글자들이 교환된 경우(예: judge -> ujdge [초반])에는 중반부의 글자들이 교환된 경우보다 유의미하게 적은 혼동을 야기한다(Guerrera & Forster, 2007). 글자 전환 효과가 특히 이론적으로 중요한 이유로 글자 전환 효과의 양상은 단어재인의 초기과정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그 이유는 글자 전환에 영향을 주는 변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따라서 단어재인 초기 과정에서 관여하는 변인의 종류와 처리 양상을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전통적으로 단어재인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형태소 정보가 단어재인의 초기 단계에 관여하는 지 여부인데, 글자교환을 통해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즉, 형태소의 경계를 넘어 글자 전환을 한 경우 (runway -> ruwnay [run 과 way는 형태소인데 n 과 w가 형태소 경계를 넘음]), 글자 혼동효과가 통제 조건(예: runawy[통제조건은 형태소 내 교환])에 비하여 더 일어난다면 이는 형태소정보가 상당히 초기 단계에 관여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히브리어, 중국어 등 몇몇 나라에서의 연구들이 있어 왔으며 글자 전환효과가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로 기존 영어권 모형의 수정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이들 연구자들의 기본적인 방향은 영어권 단어 연구자와 협력하여 영어의 글자 전환 효과와 해당 자국 언어 간의 글자 전환 효과의 양상을 비교하여 언어 특정적 변인을 제시함으로써 기존 언어 모형에 대한 수정을 제안하고 있으며 보다 보편타당한 일반 언어처리 모형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영어와 형태적, 의미적, 음운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진 한글의 글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환하고 이에 대한 어휘판단 실험들을 실시하였다. 어휘판단 과제는 컴퓨터에 제시된 글자열이 단어이면 “예” 라는 반응을 하고, 제시된 글자 열이 비단어이면 “아니오” 라는 반응을 하는 전형적인 실험 언어과제이다.

 

실험 1에서는 두음절로 구성된 단어의 음절 간 초성과 초성(예: “문장” ->“준망”), 종성과 종성(예: “문장” -> “뭉잔”), 또는 가운데 두 글자(예: “문장” -> “뭊낭”) 를 교환한 글자 열에 대한 어휘판단을 실시하였다. 실험 2에서는 단어의 음절 내 초성과 종성 (예: “문장” -> “눔장” [첫음절 초성과 종성 교환])를 교환한 글자 열에 대한 어휘판단을 실시하였다. 실험 3에서는 한글에서 글자 혼동 효과가 나올 수 있는 조건으로 말미자음군 을 포함한 단어 (예: 닭)에 주목하여 말미자음들을 교환한 것이 혼동을 일으키는지를 알아보고자하였다. 마지막으로 영어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글자들을 교환(실험 4-6)하여 한글의 양상과 직접 비교하였다.

 

연구결과, 한글에서는 전반적으로 어휘판단이 용이하여 실험3을 제외하고는 글자 전환효과가 나오지 않았다. 반면, 영어단어에서 모든 조건에서 글자 전환된 비단어에 대한 판단이 훨씬 더 어렵고 오류를 많이 생성하여 상대적으로 더 유의미한 글자 전환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단어재인시 영어는 글자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고 각 글자가 유동적으로 지각됨을 의미한다. 반면, 한글은 글자들의 위치가 정해져 있고, 초성, 중성, 종성의 단위로 묶여서 지각됨을 의미한다. 한글 실험3에서 말미자음간 교환에서만 혼동이 일어난 결과는 자음간의 교환이 종성이라는 처리 단위 내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영어권 글자전환 모형은 한글을 비롯하여 로마자가 아닌 언어에는 일반화할 수 없고, 각 언어집단 별로 특정적 처리 모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글은 초두자음과 말미자음이 로마자 언어에 비하여 비교적 물리적으로 지정된 위치(글자의 위와 아래 의미)에 반드시 쓰여 져야 하고 따라서 초두자음과 말미자음이 어휘접근의 기능적인 단위로서 작동할 개연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실험 1과 2의 전형적인 글자 교환 조건들에서 한글의 경우에는 거의 오류가 없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기존의 영어권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잠정적인 결론으로 한글의 경우는 언어의 형태학적 특성상 초두 자음과 모음, 말미 자음의 위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글자 위치정보가 기능적으로 어휘접근에 간여한다는 모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향후 몇 가지 보강 연구가 필요하다. 우선 본 연구의 실험 1과2는 한글의 대부분의 단어가 복음절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음절 단어로 실시되었는데, 많은 기존 영어권 연구는 단음절 단어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예: cat -> tac; 두 글자를 바꿈). 따라서 한글 연구도 단음절 단어(예: 공)를 사용하여 이들의 초성과 종성을 바꾸는 방식 (예: 상 -> 앗)에 대한 수행을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앞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영어권 연구의 한 방향은 점화과제를 사용하여 글자 전환된 자극에 대한 보다 무의식적인 처리의 양상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즉, 글자 전환된 자극 (예: tac)을 점화자극(미리 보여 주는 자극을 의미)으로 약 50ms 내외 보여주고, 목표자극(예: cat; 피험자가 수행을 해야 하는 자극)에 대한 수행을 알아보았다. 점화자극을 50ms 내외로 제시한다는 것은 단어 처리의 지각 단계를 반영하기에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글자의 위치가 어떠한지를 알아보기에 적합한 실험조작이다. 따라서 향후 한글도 영어권과 유사한 실험 자극과 실험 조작을 구현하여 언어 간 동등한 조건에서의 이론과 수행을 비교하는 연구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