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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5호] 세월호참사 피해와 국가의 책임

 

세월호참사 피해와 국가의 책임

 

김한균 _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이것이 과연 국가란 말인가?


 세월호참사는 “이것이 과연 국가란 말인가?”1)라는 참담한 물음을 던진다. 세월호참사는 일회적 사고가 아니다. 사고와 사건이 겹쳐진 참사다. 세월호참사를 가리키는 4/16은 사고발생-대책실패(구조, 피해수습, 진상규명, 안전제도개선)-사고반복-사회적 불안의 연쇄로 구성되는 하나의 사회적 참사현상을 가리키는 기호가 될 수 있다. 9/11이 테러 이후 변화한 세계를 상징하는 기호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국가가 모든 사고의 발생을 막을 수는 없다. 그 진상과 원인을 규명하여 대책실행과 피해수습을 통해 반복참사를 예방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보장해야 하는 책임만큼은, 그러나 피할 수 없다.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 국가는 무능하거나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국가가 안전을 지켜주는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피해자들과 국민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왜곡하거나 진상파악과 대책실행을 회피하는 국가는 범죄적이다. 따라서 4/16은 일회적 사고가 아니라, 범죄적 사태이기 때문에 국가의 가해책임과 국가의 피해배상 및 피해자보호책임의 문제를 제기해야 마땅하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피해해결이 부진한 가운데 증폭되어 온 정부에 대한 불신과 사회적 불안 역시 피해다.

4/16 피해의 본질과 특성

 4/16 피해는 순수 피해자라는 통념이 가하는 폭력, 국가기관에 의한 2차 피해의 형태로 나타난다. 범죄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통념은 그 자체로 피해자에게 폭력적이다. 그런 통념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른바 ‘순수 피해자’라면 수사와 처벌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나설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여긴다. 피해자 스스로 자력구제를 하려 들어서도 안 되고, 진상규명을 고집하면서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통에 가족친지와 마을사람들을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어서도 안 된다. 그저 각자 슬픔과 실의에 잠겨 ‘가만히 있어야’한다. 국가의 처분을 기다리되, ‘일반인’의 개입은 마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참사 피해자들도 순수 피해자일 것을 요구 받는다. 이러한 통념의 폭력을 악용하거나 강화하는 국가기관의 태도는 진상규명을 관철하고 국가에게 책임을 분명히 묻고자 하는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와 연대하는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피해자의 위치를 단순한 피해배상의 개별 대상으로 묶어두려는 부당한 행위다.


 이 같은 부당한 행위를 더 구체적으로 개념화하면 2차 피해의 문제가 된다. 범죄피해 사후 사법기관, 언론, 의료기관, 주변인의 부정적 반응으로 피해자가 정신적 사회적 피해를 입는 경우를 2차 피해라 한다. 국가기관은 4/16 피해자가 피해해결의 최우선 과제로 요구하는 진상규명을 사고를 일으킨 회사 직원과 담당한 공무원의 수사 및 처벌 문제로 축소시키고 있다. 진상조사를 위한 법제와 조사기구 활동도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이른바 세월호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국가의 소극적인 태도는 사회의 분열적 상황을 심화시켰다. 또한 진상규명과 피해배상의 선후관계를 무시하는 태도로 피해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특히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해자와 시민들의 행동을 사찰하고 통제하는 경찰력의 과도한 행사는 국가기관의 4/16 피해자에 대한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4/16 피해에서 국가책임의 본질과 특성

 4/16 사태의 경과에서 국가책임의 양상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사고방지와 구조 및 수습실패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다. 이것은 국가기관의 무능에 대한 책임이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 보호와 지원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이다. 구체적으로 국가는 4/16 사태에서 구조책무를 방기한 책임이 있다. 이어서 진상규명과 피해배상의 책무를 진압적인 통제로 갈아치운 책임이 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피해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저버린 책임이 있는 것이다.

 특히 구조실패에서 진압적 통제로 전환하는 양상은 국가의 무능이 폭력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국가의 무능을 폭력으로 가리려 한다면, 국가폭력범죄의 문제로 전화(轉化)할 수 있다. 나아가 바로 이러한 진압적 통제로의 전환은 국가(기관)범죄 피해자를 법적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 역전시키기도 한다. 4/16 사태에서 국가가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의 특징이다. 따라서 이들은 국가로부터 보호 또는 배상받아야 할 피해자가 아닌 사회에서의 요주의 인물 또는 사회의 질서를 해치는 자로 평가받음으로써 피해자의 지위조차 갖지 못한다. 국가는 4/16 피해자들을 사회질서를 해치는 가해자로 역전시켜버린 책임 역시 면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형 참사의 진상과 피해결과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는 재발방지와 안전강화를 위한 제도개선과 피해배상 및 회복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에 소극적이거나 피해사태를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국가는 안전대책과 제도개선과 피해배상 및 회복을 위한 실천의지가 없음을 자인(自認)하는 셈이다.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르면, 범죄피해자는 범죄피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제2조 제1항). 피해상황을 빨리 벗어나려면 진상규명과 피해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국가는 피해상황 속에 4/16 피해자들을 가두어 둠으로써 인간 존엄성을 보장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구체적으로는 피해자가 참사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알고자 하는 권리, 적절한 배상을 적절한 시점에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범죄 피해자는 해당 사건과 관련하여 각종 법적 절차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제2조 제3항). 진상조사기구 구성과 운영에서 4/16 피해자를 배제함으로써 국가는 법적 절차에 참여할 범죄피해자의 권리를 거부한다. 따라서 국가책임의 관점에서 피해자 권리침해의 문제가 제기된다.

 

국가범죄 피해자학의 관점

 세월호참사는 일회적인 사고이거나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특유한 사건이 아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를 선택한다면, 어떤 나라에서건 발생 가능한 범죄적 사태다. 또한 재난방지 실패와 진상규명 방해, 피해자 권리침해를 되풀이함으로써 국민의 피해를 초래하였으니 국가범죄의 책임을 물어야 마땅한 형사정책적, 피해자학적 연구대상이다. 국가범죄는 계획적, 체계적으로 자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제1차행위가 우발적으로 발생했더라도 그 행위의 진상규명을 방해하거나 피해자 구제조치를 저지하는 제2차적 행위가 더해져 체제적인 국가범죄로 될 수 있다.2)

 폭력적인 국가든 무능한 국가든, 그 피해자인 국민은 국가에 대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 그런 점에서 피해자 권리 보호는 중요한 이론적 실천적 과제가 된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 이후 국가범죄 피해자학(victimology of state crime)이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피해자학적으로 정의되는 국가범죄는 국가 또는 국가기관의 이익을 목적으로 자행되는 불법적이고 사회적으로 해악적이며, 불의한 행위를 뜻한다. 국가의 적극적 행위뿐만 아니라 부작위(omission) 역시 국가범죄다.3) 국가범죄 피해자학의 핵심명제는 다음과 같다.4)

 첫째, 국가범죄피해자는 사회적으로 가장 권력이 약한 자들 중에 나온다. 둘째, 국가범죄 가해자는 정책과 제도의 해악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자에 대한 고통이나 해악이 밝혀진 뒤에도 오히려 정당화하려 든다. 셋째, 국가범죄피해자는 그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다(Victims of State Crime are often blamed for their suffering). 넷째, 국가범죄피해자는 피해해결을 위해 국가 제도 자체 또는 시민사회운동에 기댈 수밖에 없다. 다섯째, 국가범죄피해자는 재피해자화의 대상이 되기 쉽다. 여섯째, 국가의 불법적 정책이나 조치는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자행될 지라도 제도적 관료적 차원의 목적 실현을 위함이다.

 

 국가의 무능과 짝을 이룬 폭력은 범죄적이다. 문제가 된 조직 해체에 이어 피해자 보상 등 법적 절차까지, 사고의 교훈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수순을 과거처럼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부시행정부를 무너뜨린 것은 이라크가 아니라 기후[허리케인카트리나 사태]였다”5)는 경고를 새겨듣고, 국가책임의 관점에서 세월호참사 피해를 해결하고 청산해야 한다.


포스트 4/16 안전정책의 과제

 4/16 사태에서 피해해결의 가장 큰 과제는 제도개선을 통한안전정책 실현이다. 안전보장과 안전문화는 국가의 역할만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국민의 참여와 협력이 필수다. 특히 기획과 실행과 평가 단계에서 피해자 관점이 반영되고 피해자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4∙16세월호참사 특별법을 근거로 대형참사 피해해결과 안전대책 수립의 원칙을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피해자 및 주민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제31조 제1항 제1호). 둘째, 피해자 및 주민이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되거나 이탈되지 않도록 방지하고 삶의 질 향상차원을 고려해야 한다. (제31조 제1항 제2호). 셋째, 지역 소재 민간단체, 공익단체 등의 참여 및 연계를 보장해야 한다. (제31조 제1항 제3호). 넷째, 대책 개발에서 피해자 및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제31조 제3항) 다섯째, 대책 개발∙시행을 위해 필요한 조사∙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제31조 제4항)

 결국 4/16 사태는 국가범죄, 국가폭력, 국가무능에 의한 피해 문제를 피해자학적, 형사정책학적인 새로운 차원의 연구과제로 제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4/16 피해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국가권력에 의해 재피해자화 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4/16 피해해결을 위해서는 국가제도의 개혁도 필요하고 시민사회운동의 지원도 필요하다. 따라서 4/16 이후 형사정책과 안전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요청된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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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서강대학교 교수 성명서. 2014년 6월 9일.
2) 이재승, 국가범죄, 2010, 23면.
3) K. Faust & D. Kaularich,“ Hurricane Katrina Victimization as a State Crime of Omission”, Critical Criminology, vol. 16(2008), 86면.
4) Kaularich, D. et al,“ Toward a Victimology of State Crime”, Critical Criminology, vol. 10. 2001,  83-189면.
5) R.Solnit, 정혜영 역, 이 폐허를 응시하라, 2012, 421면.
6) 포스트 4/16 형사정책의 방향과 내용에 관하여는 필자의“피해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국가범죄 피해자학적 관점에서 본 세월호참사 대응과제” 민주법학 제58호, 201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