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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5호] 시민권과 시민성 - 국가, 민족, 가족을 넘어서

 

시민권과 시민성 - 국가, 민족, 가족을 넘어서

 

김동춘 _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 사회에서의 시민권과 시민성

 

 시민이란 국가 내에서 법적 지위와 권리, 의무를 갖고 있는 개인들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자연적 동질성을 어느 정도 전제로 하는‘민족’과도 다르며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를 넘어서는 근대국가의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을 지칭한다. 근대국가가 구성원인 모든 인민의 시민권(citizenship)의 실현단위로서 제대로 기능한 경우는 드물었다. 시민은 자본주의 내의 계급차별을 내장하면서 형성되었으며 서구에서의 시민권(citizenship), 즉 공민권, 정치권, 사회권의 단계별 확장은 봉건주의와의 투쟁을 통해 자유권과 재산권의 확보, 정치참여의 권리 확보, 그리고 경제적 복지와 사회적 안전을 확보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어떤 특정 국가 주민들이 누리는 시민권의 성격과 질은 해당 국가의 이념과 성격, 국가가 국제정치 내에서 다른 국가와 맺고 있는 관계, 즉 국가의 충분한 주권의 향유 여부에 크게 달려있다. 우선 근대국가 중에서도 해당 국가가 공화제 국가인가, 아니면 입헌 군주나 총통이 지배하는 국가인가, 제국주의 국가인가 식민지 혹은 종속국인가, 파시즘 혹은 독재국가인가 민주주의 국가인가가 시민권의 성격과 질을 판단하는 데 가장 일차적인 구분의 기준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도 시장주의 원칙이 존중되는 국가인가, 아니면‘사회국가’인가의 구분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의 경우 60여 년 동안 지속된 분단∙정전체제가 가장 중요한 역사적 조건이고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현재 조건으로 작용한다. 지구적인 차원의 냉전의 해체와 90년대 이후 자본과 노동의 국제적 이동, 금융시장과 상품 시장의 지구화(globalization)는 주권 국가의 국내 경제에 대한 개입의 정도, 사회 구성원의 사회경제적 삶을 좌우하는 능력을 크게 잠식하였고, 이에 따라 각 나라의 공공지출을 축소하여 복지제도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 그리고 대량의 노동 이민 으로 민족적∙시민적 동질성은 크게 해체되었다. 따라서 지구 차원에서 보면 유럽연합(EU)으로 인해 새로운 시민권이 형성되어 가는 측면도 있으며.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국가 단위의 시민권은 흔들리고 있다.


 ‘시민성’은 시민권의 세 영역, 즉 공민으로서의 권리와 유권자로서의 정치 참여의 의지를 갖고서 사회적 권리의 주창자이자 수혜자로서 연대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시민성은 개인의 자율성을 주창함과 동시에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의식과 공공성을 견지하고, 사회의 약자나 다수자들이 최저의 경제생활을 누리면서 안전하게 살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시민성은 곧 시민권의 쟁취를 위한 투쟁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렇게 확보된 시민권을 지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향한 보편적인 과제에 동참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을 말한다. 시민성은 서구의 근대 부르주아의 가치인 자유주의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시민성은 자유주의 이념의 개인주의의 측면보다는 공동체 지향성을 더 강하게 포함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시민권 투쟁의 정신적 동력인 ‘시민성’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는가? 우선 시민권의 원천적인 부인(否認)의 체제로서 조선 왕조와 일제 식민지 전체주의 지배체제에 대항하는 집합적인 투쟁에서 그 맹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민주화 운동 등 각종 사회운동에서 그 특징을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조선 말기 신분제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투쟁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에 대항하려는 투쟁이 그 전사(前史)를 이룬다고 생각되며, 1945년 이후에는 주로 국가의 억압에 대항하여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 과정에서 그 내용을 엿볼 수 있을 것이고, 1998년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정착된 이후에는 사회 경제적 차별과 비인간화에 맞서는 개인 혹은 집단 항의 속에서 우리는 시민성의 발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분단/준전쟁 체제 하에서 국민으로 인정되는 사람과 배제된 사람의 구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들이 먼저 검토될 필요가 있으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하에서는 배제/편입의 구조와 배제된 사람들의 투쟁이 가장 중심적이었다.


 시민성은 시민권을 얻기 위한 투쟁의 기반이 되기도 하고 물리적 구조화된 폭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과 더불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일시적인 연대의식이나 책임의식에 머물지 않고 부정의한 현실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통해 새 사회를 위한 도덕적 재건의 열망까지 포함할 때 비로소 사회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시민권 인정 투쟁은 법적, 정치사회적 지위 확보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그것이 시민성의 내용을 갖추기 위해서는 투쟁 주체의 자기변화가 전제되어야 하고, 투쟁 속에서 어떤 새로운 도덕적 기초가 필요하다. 시민성은 국가나 기업의 노골적 배제, 인간성 부인에 맞서는 과정에서 국가나 기업의 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과는 다른 차원에서 만들어진다.


 공민권, 정치적 시민권이 극히 형식적으로만 부여된 조건 위에서 진행된 자본주의 산업화는 노동자들에 대한 전근대적이고 준신분적 차별을 가하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유교적 사농공상의 논리, 관존민비, 노동천시의 사상이 자본주의적인 노동탄압과 결합되었다. 70년대 이후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계급적 차별과 더불어 전근대시절의 준신분차별, 가부장주의, 전제주의적 통제를 겪어야 했다. 물론 이들 대다수는 앞의 분단/전쟁체제의 피해자들처럼 천대받는 지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성공’을 향해 몸부림쳤다. 그것은 교육을 통해서 노동자의 지위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주의와 전통주의, 발전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일부 노동자들은 집단적 저항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바로 개인적 지위 향상이 아닌 집단적인 지위 인정 시위였다. 당시 나타난 구호인 ‘두발자유화’, ‘사무직과생산직승진차별 철폐’, ‘노동조합 결성 보장’의 요구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회사와 국가의 당당한 성원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였다.

 

절대 시민성의 형성

 

 정치공동체 내에서 준시민, 비시민의 처지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시민권 쟁취 투쟁은 지속된다. 극도로 부정의하고 부도덕한 폭력이 자신과 주변에 가해졌을 때, 법적 평등과 사회적 차별 간의 괴리가 노골화되었을 때, 단순히 국가나 기업의 성원으로 편입해 주기를 요구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서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경우는 개인 가족이 국가나 기업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주체화의 길, 즉 가족을 넘어서는 확대된 자아 획득의 길을 걸었다. 이것은 ‘절대 시민성’의 형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시민성은 같은 처지에 있는 이웃과 동료에 대한 책임의식, 고통받는 이웃과 자신의 완전한 일체화, 그리고 너 나아가 공공성의 실천을 지향한다. 


 이러한 절대 시민성은 폭력을 가한 국가 대신에 정의와 인간성 실현을 그 정신으로 삼는 새 국가 혹은 정치공동체를 지향한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의 폭력을 목격한 주변계급에 속한 청년들이나 여성들이 폭력에 맞섬으로써 새로운 주체로 등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들은 가공할 만한 폭력에 저항할 경우 자신과 가족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의 인간성이 부인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항 행동에 나섰다. 군사독재 하에서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자식을 잃은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어머니, 아버지들은 처음에는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순수하게 자식을 사랑하는 절실한 마음에서 국가에 대해 청원하고 호소하는 활동에 나섰지만, 점차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남의 자식들도 그런 일을 겪었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기도 했다. 국가폭력에 맞서서 양심의 자유를 확보하거나 양심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사실상 헌법 정신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이었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반체제 운동이 아니라 실제로는 시민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법과 제도의 실행과정의 모순, 자기 조직이 저지르는 불법과 비윤리적 처사를 그냥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낀 나머지 위험을 각오하고 행동하게 된 사람들에게서도 강력한 시민성이 발견된다. 처벌이나 해고를 각오하고 자기가 속한 정부나 기업의 비리를 비판했던 내부 고발자들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들은 해고, 즉 자신과 가족을 사회적 고립상태나 굶주림으로 내몰 수도 있는 고통을 예상하면서도 직업윤리, 인간으로서의 양심, 부당한 처우를 당한 동료에 대한 책임의식 등의 이유로 조직의 비리를 고발하고, 그 이유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조직이나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 불복종했던 시민들, 풀뿌리 시민사회 조직을 비롯하여 시민사회운동을 조직해서 대중을 참여시키는 작업을 한 사람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사회적 기부를 비롯해서 여러 개인차원의 의로운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시민성의 맹아를 엿볼 수 있다.

 

 즉, 시민성은 반정부 시위 등 단순한 분노나 대중 시위에서 출발하기도 하지만 그와 전혀 다른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시민권은 박탈감, 부당함에 대한 분노, 개인과 가족을 지키려는 동기에서 출발하지만, 시민성은 그 이상의 것, 즉 부채의식과 책임감, 공공성,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경우 시민성은 국가와 법, 가족과 이해관계의 범주를 벗어난다. 시민성을 실천한 사람들은 평소 민주화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졌거나 사회비판 의식을 갖지 않았던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회비판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체계적인 학습이나 의식화의 경험을 갖지 않았던 경우가 더 많다. 이들을 움직인 동기는 불의를 보고 외면할 수 없었던 심정,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한다는 생각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연민과 책임의식이 더 많았다.


 시민권 인정 투쟁이‘절대 시민성’의 단계로 나아가게 될 경우 그것은 남과 나를 일체화시키고, 공동체를 절대적 단위로 보기 때문에 가족 중심적인 태도와 배치되거나 그것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 경우 가족은 절대 시민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절대 시민성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시민성의 발현은 인륜성 추구라는 도덕적 지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족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밖에 없다.

 

 

 

공동체를 향한 시민성을 위하여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을 물러가게 한 광주시민들과 2008년 당시 촛불집회 시위대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쳤다. 시민성이 가장 전형적으로 발휘된 집단행동에서 시위대는 스스로 ‘국가의 주인’임을 선포했다. 촛불행동의 주역의 상당수가 여성이었고, 행동의 방식이 문화제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새 주체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관계 속의 주체’, 혹은 가족 연고 집단 내에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넘어서서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지키고 그것을 인간다운 삶이 숨 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시민성의 모색이 점점 더 중요해 지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공재로서의 시민성, 공동체를 지향하는 ‘관계재’로서의 시민성, 그리고 자신의 계급적 처지에 눈을 뜨고 이들 핍박받는 동료들과 한 몸이 되어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민중 투쟁으로서의 시민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한국의 근대 이행기의 지식인들은 반드시 서구적 개인주의와 권리 의식에 기초한 시민성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공공성 추구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는 보편적 인간 해방의 이상을 지향하였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총을 들었던 시민군,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여성들은 지역사회를 지키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정의감과 책임의식 때문에 행동했다. 그들에게는 지역사회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고, 정의실현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교육을 많이 받아 세련된 ‘시민’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들, 국가 내에서 특별한 시민이 될 수도 있었던 지식인, 남성들이 이미 도피한 공간에 새로운 주체로서 들어왔다. 철탑에 올라간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만이 정규직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 부정의와 부당함이 그들을 행동하게 만든 동력이고, 그들의 행동에는 시민성의 가치가 숨 쉬고 있다.
 

 21세기 우리가 지향하는 시민권은 국가 내 구성원들의 권리 보장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 19세기 이후 유럽의 시민권 확대의 역사를 보면 제국주의 모국에서 보장된 시민권은 자국 내의 계급투쟁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식민지 주민의 희생을 기초로 했다. 법과 권리는 오직 국가 내에서만 작동하는 원리라 볼 수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시민들이 누리는 권리는 주권을 누릴 수 없었던 식민지, 종속국의 비시민의 희생 위에 가능했다. 따라서 지역차원, 지구 차원의 보편적 시민권 확보에 대한 전망이 없다면 국가만의 시민권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지구정치 차원에서 보면 주권, 시민권, 계급관계는 서로 얽혀 있다. 과거부터 그러했지만 제국주의와 전쟁으로 얼룩진 국제사회에서, 정의란 개별 국가 내에서만 충분히 실현될 수 없는 것이며 평화질서가 수립되지 않는다면 한 국가 내의 시민의 생존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시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 내 법적 권리 주체로서의 ‘시민’의 한계를 넘어서서 생산 및 재생산 영역에서 집합적 실천을 감행하는 주체인 ‘시민’,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정의실현에 나서는 ‘시민’의 상을 모색해야 한다. 이들 탈국가적 시민이 추구하는 시민성은 평화와 정의, 계급차별의 극복의 가치를 표방하는 국제적 노력에서 구체화될 것이다. 시민권의 확보 투쟁이 집단화되고 조직화될 경우 그것 자체가 사회정의 수립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시민성은 일차적으로는 망가진 사회와 국가의 도덕적 재건을 지향하지만, 국가와 민족이라는 기존 단위의 제한성을 반드시 넘어설 수밖에 없다.

 한반도가 당면한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 문제도 이 점에서 민족적 정체성의 확인, 대미 주권의 확보 차원에 접근하기 보다는 남북한 주민들의 시민권 확보, 배제된 사람들의 시민성 확보의 전망 속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은 한반도 내에서는 이념적 분열의 극복과 시민권이 충분히 보장된 새로운 민족국가의 수립을 통해 국가와 국민 간에 새로운 관계맺음을 성취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고, 남북한을 아우르는 코리안들이 피해자 의식,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세계의 시민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경우에는 지역특수적인 시민권/시민성의 모색이 필요하다. 그것은 청산되지 않는 과거사로 인해 국가, 민족의 정치사회 단위가 과도하게 사람들의 사고와 의식을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와, 계속되는 갈등과 전쟁 위험, 핵 위험으로 인해 그곳에 사는 주민 모두가 자신의 생명권을 박탈당할 위험성에 대한 문제와 연관된다.

 

 1945년 이전까지 항일독립 투쟁이 곧 시민권 보장 투쟁이었고, 그 목표는 국민이 주권자가 되는 민족국가의 수립으로 집약되었다. 1948년 통일된 국민국가 수립이 좌절된 이후 적어도 1987년까지는 민족의 가치가 시민성과 공존하거나 그 중요한 내용을 형성하였다. 국가주권, 민족적 독립과 통일 없이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부인되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는 새로운 불평등과 차별을 만들어냈으며, 오늘날 시민권은 곧 형식상으로만 보장된 공민권의 완전한 보장과 더불어 사회적 시민권의 확보 문제로 집약된다. 그러나 지구화된 자본주의 질서와 가족 관계의 변화는 이제 한 나라 내에서, 가족을 단위로 하는 사회적 시민권 보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시민권의 문제는 가족과 국가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 21세의 시민성 역시 보편적 인민주권의 사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오늘날 국가주의와 자국중심주의, 민족주의는 사적 이해, 자유주의와 모순되지 않으며 시민권,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희생 위에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공동체, 평화와 정의의 가치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