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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135호] 학술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헌법에 위반된다

학술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헌법에 위반된다1)


 

임지봉 _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교육과 법률유보의 원칙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기본권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즉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할 의무를 지지만 중요한 공익을 위해 필요부득이한 경우에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데, 그 경우에도 기본권의 제한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법률’에 의한 기본권 제한이라는 의미에서 이 원칙은‘법률유보의 원칙’이라고 불린다. 법률유보의 원칙은 대단히 중요한 헌법상의 원칙이다. 첫째, 법률유보의 원칙은‘국민에 의한 국민의 지배’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민주주의원리와 연결된다. 임명된 권력인 행정부 공무원들이 만든 행정명령이나 행정규칙 등이 아니라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만든 법률, 즉 ‘국민이 만든 법률’에 의해서만 국민 스스로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법률유보의 원칙은 법치주의원리와도 닿아 있다. ‘법률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의 기본권도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가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정부가 만든 행정명령이나 행정규칙 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법률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행정부에 의한 지배’가 되어 위헌이 된다. 특히 우리 헌법은 제31조 제6항을 통해 ‘교육의 영역’에서 이러한 법률유보의 원칙을 한번 더 강조하고 있다.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여 교과서 제도를 포함한 ‘교육제도 법률주의’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지니는 위헌성

 지난 3일, 국민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고시’를 통해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단행되었다. 이에 대해 아직 국정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현 상황에서 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시도 자체가 높은 위헌성을 가진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는 국민의 여러 기본권들을 제한한다. 첫째,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가 제한된다. ‘ 교육받을 권리’로 인해 중∙고등학생을 포함해 모든 국민은 나면서부터 교육을 받아 학습하고 인간적으로 발달∙성장해 나갈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받을 권리’의 효율적 보장을 위해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제도에 관한 기본원칙으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단일화된 국정교과서에 의한 역사교육은 이 중에서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되어 중∙고등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제한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교육이 국가권력이나 정치세력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의미하는데, 단일화된 국정 역사교과서는 국가가 만든 단 하나의 교과서에 의한 역사교육이 이루어짐을 말하므로성장과정에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특정한 사상 주입을 강제하는 교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1992년 11월 12일의 교육법 제157조에 대한 결정에서 교과서가 국정화된다면 학생들의 사고력이 획일화될 수 있고 필요 이상으로 국가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면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면서 국사 과목은 국정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미 선언한 바도 있다. 둘째, 중∙고등학생의 교육받을 권리의 제한은 동시에 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권 제한도 된다.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바에 의하면 “자녀의 양육과 교육은 일차적으로 부모의 천부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셋째, 역사 교사들의 ‘교육의 자유’도 제한된다. 이것은 헌법 제31조제4항의 ‘교육의자주성’과 관련되는데, ‘ 교육의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육내용과 교육기구가 교육자에 의해 자주적으로 결정될 것이 요구된다. 어떤 역사교과서를 교과서로 선택해 학생들을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야말로 중요한‘교육내용’의 결정사항이므로, 하나의 국정 역사교과서만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교사들의‘교육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다시 법률유보의 원칙으로 돌아가자. 국정 역사교과서가 합헌이기 위해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 부모의 ‘교육권’, 역사 교사의 ‘교육의 자유’등 여러 기본권들을 제한하는 조치가 ‘법률’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행정부의 행정규칙에 해당하는 ‘고시’로 단행되었다.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중요한 조치를 ‘법률’이 아니라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행정부 내의 ‘고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완성된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보기 이전에, 국정 역사교과서 시도 자체가 높은 위헌성을 지니는 이유다. 더욱이 고시 확정 하루 후인 4일에 국사편찬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헌법정신에 입각한 교과서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은 아이러니다. 이미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자체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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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필자가 11월 12일자 석간 내일신문에 실은 컬럼인 “국민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의 위헌성”을 수정∙보완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