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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35호] 20~21세기 한반도에서 국가적 성폭력과 그 희생제의로서 여성의 몸

 

20~21세기 한반도에서 국가적 성폭력과 그 희생제의로서 여성의 몸

 

 

최현실 _ 동국대학교 학사지도교수

 

 20~21세기 한반도에서 작동되었던 폭력현상에서 발생한 희생양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일본군위안부, 여성빨치산, 여성탈북자는 국가와 이데올로기, 정치에 의해서 희생되었던 대표적인 몸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시대적 차이, 이데올로기적 차이, 공간적 차이라는 특성이 존재하고 있지만 희생 내용을 살펴보면 역사적 시기와 내용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과 보편적 인권의 배제라는 공통적 현상이 나타났다.

 

 일본군위안부, 여성빨치산 그리고 여성탈북자의 삶을 여러 개의 생애사로부터 공통의 테마를 도출하는 방식인 범주적 내용분석(categorical content approach)을 중심으로 재구성했을 때, 20~21세기 한반도의 역사적 사건 속에는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과 피해 그리고 희생구조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쟁과 혼란의 시기에 성적 대상으로 전락한 여성의 몸


 

1) 일본군위안부
 일본은 조선민족대책안1)에 따라 1937년부터 조직적∙체계적으로 식민지의 어린 여성들을 위안부로 징집하였다. 이로 인해 8,000명가량의 여성이 군인들의 사기진작과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고 군인들의 성병을 예방하며, 점령지역의 강간을 방지하여 폭발적인 반일감정을 통제하는데 이용되었다.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어떠한 보호도 배제한 상태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을 상대해야 하는 위안부 생활은 한계를 넘어서는 성적 학대와 지속적인 폭력의 과정이었고, 성병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었으며, 매독이란 질병에 노출된 생활이었다.


2) 여성빨치산
 빨치산 특히 비전향 여성빨치산의 삶은 한반도의 특수한 인권의 한계 공간 속에 존재하였다. 당시의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는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취급이 불가능하였고 안보라는 이름 아래 특정계층의 인권을 극단적으로 제한하였다. 특히 전향을 거부한 여성빨치산의 몸에 가해진 형벌은 철저한 인권의 배제였다.

 여성포로들의 입을 열기위해 가해진 고문은 남성들에게 가해진 고문과는 구별된 성고문의 형태로 나타났다. 성고문은 다른 형태의 고문들보다 여성들을 무력하게 만들거나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도 하였다. 또한 비전향자 빨치산은‘재범의 위험성이 현저하다’란 이유로 처벌받기도 했다. 즉 사법절차의 한계 설정 없이 광범위한 구속∙심문∙위협 등이 여성빨치산에게 가해졌다.

3) 여성탈북자
 여성탈북자들은 생사를 건 탈북과정에서 몸이 생명유지를 위한 도구로 전락되는 것을 경험한다. 탈북과정에서 여성들이 겪는 첫 번째의 경험은 강제적인 인신매매를 통해 중국인에게 팔려가는 것이다. 보통 2~3차례 혹은 5~6차례 팔리면서 중국인과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인신매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혼은 사랑과 애정으로 묶여진 가정이 아니기에 부부간의 신뢰가 자리하지 않는다. 연구 참여자들은 생존을 위한 결혼생활이 말도 통하지 않고 마음에도 들지 않는 사람과 원치 않은 성관계를 맺어야하기에 여성으로서 치욕적이었다고 말한다.

지워지지 않는 몸의 흔적 그리고 트라우마


1) 일본군위안군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대다수는 일본군에 저항하거나, 도망가다가 칼에 맞은 자국을 몸에 지닌 채 평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위안부 기간에 생긴 매독의 후유증으로 젊은 시절부터 자궁을 들어내거나 불임 등 각종 여성병을 앓게 되었고, 평생을 울화병으로 정신적 신체적 트라우마를 겪으며 살아왔다.

2) 여성빨치산
 구속∙심문∙위협 등 빨치산의 활동에는 총 맞아 죽든지, 얼어 죽든지, 굶어 죽을 각오가 필요하다. 극한의 악조건에서 수행되는 빨치산의 활동에서 여성빨치산은 몇 년씩 산 속에서 생활하면서 무월경증이라는 여성의 신체변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신체변화는 남녀빨치산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였고 여성빨치산들은 산에서의 투쟁과정에서 남성과 동일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3) 여성탈북자
 인신매매와 제3국에서의 북송위기로 인한 긴장된 생활은 탈북자에게 깊은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남겼다. 탈북과정에서의 경험은 낮은 자아 존중감 외에도 수면장애, 불안, 일 중단,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과 같은 트라우마 상태에 놓이게 한다. 이들은 탈북과정과 중국에서의 불안한 삶의 연속으로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장기간 과도하게 소진해 버렸기 때문에 정작 남한에 와서는 자신을 추스를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증상은 한국에 온 뒤에도 적게는 2~3년, 크게는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

가부장적 사회/반공사회/제3국에서의 죄인 아닌 죄인으로서의 삶

1) 일본군위안부
 생존한 위안부들은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1990년대 이들의 인권과 희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그 어떤 사회적 이해와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가족과 이웃에게 사실을 숨기며 평생을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왔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대다수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동거로 결혼생활을 유지하거나 연령차가 큰 남편과 살거나,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한 채 외롭고 가난한 생을 살아왔다.

2) 여성빨치산
 여성빨치산들의 출소는 오랫동안 사회와의 단절과 친인척 관계망의 파괴로 인한 또 다른 고립이 되었다. 빨갱이 딸을 둔 부모님은 고문이나 화병으로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남은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출소한 여성 빨치산들은 가족과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타지로 옮겨 다녀야 했으며, 형사들의 감시로 인해 한 동네에서 장기간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떠돌아 다녀야 했다.


3) 여성탈북자
 제3국에서 탈북자는 사회적 인간으로서 인간이 누려야할 모든 대상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제3국에서의 생활은 불법체류자로 체포되어 북송될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에 인권이란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끝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즉 공동체의 법과 종교적 질서로부터 추방됨으로써 법적 지위를 상실한 ‘호모사케르(Homo Sacer)2)’와 유사한 사회적 지위를 지니게 되며 그의 실존 전체가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벌거벗은 생명으로 축소되는 삶을 유지한다. 따라서 탈북자들의 제3세계(중국)에서의 생활은 그 어느 누구도 믿거나 의지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젠더, 인간다운 삶을 찾아가다

1) 일본군위안군
 1991년 故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을 전쟁피해자로 일본정부를 고발하기 이전까지 일본군위안부는 과거의 경험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문제로 생각하며 평생을 숨기고 살아왔다. 일생 동안 고통 속에 살아왔던 피해자들이 신고를 함으로써 일본군위안부로서의 경험과 고통을 공개하는 것은 평생의 짐을 내려놓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죄인 아닌 죄인으로 과거를 숨겨왔던 피해자들에겐 그 때의 경험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식민지 상황에서 불가항력으로 겪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받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역사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단죄는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해소할 뿐 아니라 제3의 피해자를 예방할 수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내전에서 발생하는 전쟁 중에 나타난 성폭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2) 여성빨치산
 비전향 여성빨치산은 그들의 입산경로에 차이가 있었지만 입산 후에 받은 의식교육이 수감과 출소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이들은 산에서의 생활에서 겪은 사회주의 교육과 억압받지 않는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여성평등 사상에 고취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체포이후 감옥 생활이나 출감이후 사회생활에서의 고난 속에서 평생 동안의 버팀목이 된다.


3) 여성탈북자
 여성탈북자의 한국사회 정착은 트라우마의 극복 여부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부정적 부류는 탈북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진하거나 외상 트라우마를 겪어 이성적으로 자신을 통제하기가 곤란한 경우이다. 이들은 불안과 심리적 경직으로 인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이 없다. 반면 외상트라우마가 낮은 경우는 남한 생활의 적응이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자기 한 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희망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맺음말


 일본군위안부와 여성빨치산 그리고 여성탈북자에 나타난 공통적인 희생구조는 여성의 몸에 대한 성폭력이다. 이들 여성은 공적영역에서 보호받지 못했고 가부장적, 반공적 한국사회에서도 오랫동안 불가항력으로 경험했던 사건들로 인해 일생에 걸쳐 ‘죄인 아닌 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이들의 경험은 특수한 여성 집단에 가해진 폭력으로 한정되었고, 이렇게 개별적으로 규정된 폭력의 대상이 되어버린 희생자들의 저항 역시 한정된 여성인권의 테두리에 머물렀었다.

 따라서 오늘날 여성운동가의 여성인권을 위한 지구적 연대의 정치적 전략은 프리드먼(Elisabeth Friedman)이 주장하는 ‘여성의 권리’보다는‘인류절반의 권리’로 나타난다. 이러한 연대의 활동은 3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지구상 곳곳에 여전히 존재하는 인간의 권리로서 여성의 권리가 확보되지 않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현상을 지속적으로 공개하는 운동이다. 둘째, 여성의 몸에 가해진 제반 폭력에 대한 외면이라는 수동적 부정의를 회피하지 않으면 폭력은 지속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활동이다. 셋째, 전쟁이나 국가적 위기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지배, 인권이 미치지 못한 지역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이 역사적으로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고 사적 영역 속에서 머무르는 현상에 대항하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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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이 1937년 7월에 중일전쟁을 도발한 후 입안한 비밀문서로‘조선의 미혼 여자를 군대의 특수요무에 충당한다.’는 항목에 따라 조직적으로 위안부를 징집했다.
2) Giorgio Agamben, HOMO, SACER: Serereign Power and Bare Life, translated by Daniel Heller-Roazen, Library of Congress Cataloging-in-Publication Data, 1998, 박찬우 옮김, 『호모사케르;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서울: 새물결, 2008,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