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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38호] 코미디 작가 장덕균 인터뷰

 

KBS <유머1번지>, 변방의 북소리, 회장님 우리 회장님, 영구야 영구야, 탱자 가라사대, KBS <개그콘서트> 그리고 tvN <코미디빅리그>까지. 여기 한 시대의 정치풍자웃음을 책임져왔던 이가 있다. 직접 만나보니 그의 직업만큼이나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었다.

웃음은 물과 공기다.” 돌아보니 그는, 그의 웃음 철학처럼, 우리 삶에 물과 공기를 선물하고 있었다. ‘웃을 일이 없는 세상에서 웃을 일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퍽퍽한 국민들 삶에 한 평생 웃음을 선물해 온 장덕균 코미디 작가를 만나, 그가 전하는 웃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 및 편집 신윤희

 

 

. 웃음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콘텐츠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습니다. (게다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중 웃음이라는 방법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선생님께서 웃음에 매료되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장덕균(이하 장)> 제가 어렸을 때, 70년대 우리나라의 기본적 삶은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때는 사실 풍족하지 않은 시대였고. 모든 면에서 여유 있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에 제가 행복했던 건, 코미디 프로를 보는 것이었어요. 코미디를 볼 때만큼은 저녁 반찬이 무엇이었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무엇이었든 상관없었고. 단칸방에 네 식구가 다 같이 살아도 상관이 없었어요. ‘웃음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삶에 유일한, 절대적인 행복감을 주는 존재였던 것 같아요. 그 어린 나이에 TV속 배삼룡 선배님이라든가, 코미디언들의 웃음을 보면서 저기서 일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80년대 <유머1번지>라는 프로그램에서, 그 시절 국민을 가장 재밌게 해주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웃음이라는 것이 제 삶의 직업적인 것이 됐죠.

서강> 코미디 혹은 웃음이 가지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아마 코미디를 안했으면 삶에 의미가 없었을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상고를 진학했었어요. 우리 때는 실업계 학교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급이 되는 상고들은 졸업할 때 담임선생님 싸인 하나로 은행이나, 무역회사 같은 곳에 취업이 되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 소원이 상고 가서 은행 취직하면 얼마나 좋니?’ 그래서 일단 진학을 했어요. 그랬는데 갑자기 이게 내 길이 맞는 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판단으로 고등학교 등록을 안 한 거예요. 제가 스스로 인생을 바꾼 사람인거죠. 상고 갔으면 은행권에 취직이 되어서 어떤 삶을 살았겠지만, 전혀 다른 길을 온 거잖아요. 바꾸고 나서 앞으로 너 뭐할 거야?’ 고민을 하다 코미디 작가가 되어야겠다.’ 그래서 그 어린 나이에 코미디 원고를 써서, 아무 신분도 없이 MBC라는 방송국을 찾아가서 당시 피디한테 원고를 보여주고, 작가로 데뷔했어요. (그런 일이) 전무한 일인데. 아무튼 제겐 절대적인 힘을 보여 준거죠. 코미디가. 그때 이쪽으로 길을 바꾸면서 생각한 게,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에 유명해지고 싶다근데 지금 두 가지 다 이뤘어요. (웃음)

 

 

 

사진2 | <코미디빅리그> 포스터. (tvN 제공)

장덕균 작가가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품은 <코미디빅리그>이다.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 붙는다. 17살이었던 장덕균 작가는 (그의 표현대로) 무모하리만치 직접 쓴 원고를 들고 MBC로 찾아갔다가 <청춘만세>라는 프로그램으로 데뷔한다. 후에 KBS <유머1번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으로 우리나라 최초로정치풍자 코미디를 시작한다. 정치풍자집 <YS는 못말려> 또한 최초의정치풍자 책이었다. 편집자주.

 

서강> 코미디/예능은 가장 트렌디하고 창의적인 분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야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일하셨다는 건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나름대로 유머감각(?)이나 아이디어를 얻으시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시다면?

> 공부해야죠. 개그에 대한 아이디어, 새로운 표현들을 쉬지 않고 계속 창출하려 노력했어요. 코미디를 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는 게 아니고, 일과 후에 친구랑 술을 먹든, 잠자다가 꿈을 꾸든 항상 웃음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뭔가 저기에 아이디어가 없을까. 저는 볼펜하고 메모지가 제 주머니에 꼭 있었어요. 영화를 보러 가서도. 영화관 실내가 어둡잖아요. 그래서 제대로 글씨가 안 써져도, 영화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단 메모를 하는 거예요. 그런 작은 메모지를 모아놓은 것들이 나중에 보면 포대자루로 2,3포대 있고 그랬어요. 그 메모에서 <YS는 못말려> 책이, 또 수많은 코미디 아이디어들이 나왔던 것 같아요.

서강> 작가로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이신가요?

> 웃음이라는 게 어느 정도 절제된 선을 잘 지켜가면서 시청자들을 웃겨야 된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담아야 된다.’ 이 두 가지가 제대로 전달되었을 때 희열이 있죠. 우리가 공개방송 녹화를 하지만, 그 현장에서 그분들이 많이 웃어줬을 때, 그건 뭐 진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거든요. 그리고 또 방송이 나간 후에, 버스를 타고 출근할 때 사람들이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이야기를 할 때가 있어요. (웃음) 지금도 언론매체에 실리는 거보다는 전철이나 길거리에서 내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학생들이 이야기할 때, 따라하고 그러는 걸 봤을 때는, 정말 아 정말 이 맛에 하는 구나이런 생각을 (하죠).

서강> 작가로서 겪었던 슬럼프도 있으셨나요? 현재 하고 계시는 웃음에 대한 고민이 있으시다면?

> 이런 표현을 가끔 쓰는데 입맛이 없어서라는 표현은 있을 수 없어요. 다 즐겁게 먹으면 되는 거고. 제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좋아해요. 삶에 대해 누구나 고통이 있겠죠. 우리가 표면으로만 보면 저 사람은 아무 고민이 없다그렇더라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나보다 더한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걸 내재적으로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장덕균씨는 얼마나 유복한 가정에서 살아서 맨날 재밌는 일만 하고 살아왔느냐고.” 사실 제가 실제로 이런 삶을 살았다고 말하면 놀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말 저만 어렵게 산 건 아니겠지만, 네 식구가 단칸방에서 대학 초년생까지 살았으니까.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셨어요. 술만 마시면 집 다 때려 부수고. 어머니는 애들 교육시키려고 남의 집 가서 일도 하고 공장 다니면서. 그렇게 살았어요. 거기서 만약에 제가 내 환경은 왜 이럴까?’ 그랬으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못 줬겠죠. 이런 표현이 있더라고요. “이렇게 태어난 것은 네 잘못이 아닌데, 이렇게 사는 건 네 잘못일 수 있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죠. 누구나 일을 하다 보면 자기 일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 때가 있겠죠. 그런데 거기에 빠져 있으면 결국엔 자기 손해가 아닌가. 더군다나 제가 우리 개그맨들한테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즐겁게 일을 해야 된다. (괴로워하면서) 시청자에게 우리 것 보고 웃으세요.’ 하는 건 옳지 않다고 하면서, 최대한 저 자신뿐만 아니라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즐겁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서강> 요즘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전통 코미디보다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더 많은 추세인 것 같습니다. 코미디의 위기라고 볼 수 있을까요? ‘코미디의 위기라는 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저는 몇 년 전부터 이걸 전혀 다른 시각으로 봤어요. (코미디) 편수가 줄었을 뿐이지, (리얼 버라이어티가) 던져놓은 상황에서 출연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 ‘저들은 우스꽝스러운 짓을 할 것이다라는 것을 구성상에 넣는 게 리얼인데, 어떻게 보면 코미디라는 장르는 좀 줄었지만, 사실 코미디라는 원천소스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고 봐야죠. 어떻게 보면 버라이어티가 다 코미디화 되어서 그 숫자는 줄었을 수 있지만, 사실은 내제되어 있는 그 장르적 특성은 엄청 확대된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 코미디에서 활동하던 개그맨들이 리얼 버라이어티로 다 진출했잖아요. <12>김준호라든지, <무한도전>에 아직 정식 멤버는 아니더라도 오리지널 멤버로 활동하는 양세형이라든가 많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위기라 볼 필요는 없고. 맨날 위기라고만 보면, 숨통이 막히는 건데. 어떻게 보면 오히려 활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서강> 코미디나, 예능과 같은 웃음을 소재로 다루는 콘텐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또 이들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 우리가 어떤 조직에 있든 맡은 파트가 있잖습니까? 그걸 잘해줬을 때 그 조직이 융성해지고 발전할 수 있듯이 웃음이라는 부분도, 방송에 교양도 있고 다큐도 있고 다 있지만 코미디는 웃음을 주는, 즐거움을 주는 부분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서양 속담인데 얼굴이 안주다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마찬가지로 예능에 나오는 사람들은, 술을 먹으며 친구와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듯이 시청자들에게 안주가 되는, 술 맛나게 하는 그런 의미로 존재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웃을 일이 없는 세상

 

서강> 요즘 20,30대가 가장 많이 듣고, 또 하는 말이 헬조선이라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삶이 고단할수록 웃을 일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작금의 현실에서 웃음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직업이 코미디 작가라 웃음을 매개로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런 제 자신도 웃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많이 따릅니다. 물론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 이외에도, 휴식을 취하거나, 개인적인 일을 볼 때, 또 사람들과 교류를 할 때도 역시 제가 쫓는 것은 웃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웃음이라는 것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서 얻어지는 웃음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웃는 웃음, 결국 물과 공기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약에 웃음이 없다면 건조한 사막 같은 환경에서만 살아가야겠죠. 폭소를 터트리며 크게 웃는 것도 웃음이지만, 마음속의 어떤 조금의 기쁨이 일어나서 엷은 미소를 짓는 것도 웃음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처해 있는 환경이 힘들어, 큰 폭소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삶에서 미소라도 지을 수 있는 그런 삶의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한 없이 건조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갇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서강> 웃음에 대한 형태가 다양하겠지만, 웃을 일이 없다고 할 때 흔히 정치를 많이 생각할 수 있잖아요. 정치가 국민에게 어려움을 준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 의미에서 정치풍자가 특히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최초로, 그리고 꽤 다양한 정치 풍자 유머집을 발간하셨습니다. 정치 패러디(풍자 패러디)의 의미와 역할,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물론 이런 생각을 국민들이 다 하겠죠. ‘경제라든가 이런 부분이 어려워졌을 때, 팍팍한 삶의 숨통을 좀 트이게 하려면 위정자라든가,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쟁(政爭)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개선시켜야 (되는 것이 아닌가).’ 말로만 일자리 창출이고 어쩌고 그러는 거는. 그냥 말에 그치고 있잖아요. 실제로 젊은 사람들이라든가, 또 나이 드신 분들의 재취업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 제가 <YS는 못말려> 책을 쓴 게 벌써 23년 전입니다. 그 당시에 이런 바람은 있었어요. 정치인들도 여유 있는 조크도 좀 하면서. 여야가 대치하고 싸우더라도. 좀 더 유머러스한 표현,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하면 좋지 않을까). 23년이 지난 작금의 현실을 볼 때, 아직도 여·야는 시대가 어느 시댄데, 세상이 이렇게 바뀐 상황에서도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은 그런 대치와 막말을 서로 주고받고 있고. 사실 이런 모습들이 삶이 힘든 국민들을 더 짜증나게 할 수 있죠. 제가 이런 책들을 내면서 바람이 있었던 것은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이었죠. 항상 이야기하지만, 꼭 폭소만이 아니라. 그런데 지금 정치는 오히려 폭소를 주잖아요. 어이없는 웃음. ‘저 사람들이 정말 투표로 뽑힌 국회의원들인가?’ 생각이 드는, 수준 이하의 그런 것들을 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우리 국민들의 삶을 더 짜증나게 하는 것이겠죠. 우리도 경제가 컸다고는 하는데. 정치적인, 혹은 어떤 정치인들의 행태는 아직도 국민들 눈에 미흡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3 | <YS는 못말려> 표지. (미래미디어 제공)

이 책의 서문에서 장덕균 작가는 다수 대중의 삶에 대한 욕망과 (정치권력에 의한) 사회·정치적 욕망이 위배될 때, 하나의 욕구불만으로서 정치 패러디가 생산된다.”고 했다. 편집자주.

 

서강> 정치풍자 유머집을 으로 발간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하고 술을 한 잔 먹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최고 권력층인 대통령을 가지고 정치풍자집을 내면 왠지 느낌이, 대박이 터질 것 같다.’ 생각하며 저 혼자 메모를 했어요. ‘나중에 써야지.’ 그런데 다음 날 술이 깨니까 그때가 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절인데, ‘지금 내가 제목을 재미있게 지어서 가령 두환이는 골 때려이런 제목으로 책을 내면, 어디 끌려갔다가 두드려 맞고, 경부선 철로에 변사체로 발견되지 않았을까.’ 그때는 그런 의문의 죽음들이 많은 때였잖아요.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취임 연설을 하시더라고요. “위대한 문민시대에~” 저는 그 위대한 문민시대라는 말에 이제 됐다. 적어도 이런 책을 내도 누가 잡아가고 그러진 않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책을 출간하겠다니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 말리더라고요. ‘, 말이 그렇지 너 큰일 난다.’ 그래도 문민시대, 국민을 믿고. ‘국민들이 나를 보호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출간을 했죠. 그런데 기대했던 것에 10만 배 이상의 반향이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책이 나온 게 모든 일간지 1면 톱 기사였고, KBS 9시 뉴스에도, 외신에도 보도됐어요. 아마 당시에 국민들은 그 책을 보면서, ‘이야, 진짜 민주화가 됐구나! 말로만 민주화가 아니라. 이제는 이런 책을 쓴 작가가 안 잡혀가는구나.’ 그런 실증을 제가 보여준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강> 혹시 정치풍자를 하는 과정에서 외압같은 것을 겪기도 하셨나요?

> 없을 수가 없겠죠. 사실 권력자들의 주변과 그 밑에는 그들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항상 있을 거 아닙니까? 정치 풍자 내용이 나갔을 때, ‘권력자들이 얼마나 안 좋아할까그런 눈치를 보겠죠. 권력 당사자께서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내가 정치 풍자 대상이 되어도 좋다.’ 그렇게 말해도. 그 밑에 사람들은 아이고 또 그분 마음이 불편하시면 안 되는데하는 거죠. 가령 제가 많은 TV매체에서 그 시대의 정치 풍자를 할 때, TV 관리 책임자들이 넌지시 자기들 이야기는 안 다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경우나. 사실은 거론되는 거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5공화국때는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TV프로그램인데, 저희가 그 시대를 대놓고는 못 표현하니까 제1공화국 이승만 대통령 때 이야기를 빗대서, 그 시대 설정을 해놓고 요즘 정치를 풍자하려고 했었죠. 녹화 전날 리허설 리딩까지 다 하고, 녹화 당일 날 스튜디오로 갔더니 그 세트를 없애버렸더라고요. (웃음) 우리가 세트 뜯었다고 하는데, 밤새 세워놓은 세트를요. 결국은 마지막 단계에서 방송사 고위층이 이거 좀 안 했으면 좋겠다뭐 이런 것 때문에 (웃음) 세트가 없어졌더라고요. 녹화하지 말라는 이야기죠. 그래서 방송을 아예 못 냈던 적도 있었고. YS 정권 때도 당시에 YS의 차남 되는 김현철씨 문제가 언론에 불거졌을 때에요. 그런 문제를 풍자하는 걸 했는데. 당시에 사극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치고 있어서. 고전 왕실을 무대로 옮겨서, 그곳을 무대로 현실 정치를 풍자해보자. 그래서 17분인가 녹화를 했는데, 방송은 고작 2분 나왔어요. (웃음) 위에 사람들이 편집 전에 녹화된 테이프를 보고 야 이거 빼라, 저거 빼라하고 나니까 2분 남더라 이거죠. (웃음) 그래서 제 친구는 야 너 새 코너 한다고 해서 내가 보려고 했는데,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끝났더라.” (웃음) 2분밖에 안 나갔으니까 화장실 갔다 오니 끝난 거죠. 그러다 결국에는 그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졌어요. 그런 어려움들이 많았죠.

서강> 정치 풍자 패러디 코미디를 만드실 때, ‘풍자 유머(양보할 수 없는) 선생님만의 원칙이나 비결이 있으셨나요?

> 어떤 장르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정치를 풍자한다는 것은 내가 어느 한 쪽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런 것은 아니에요. 철저하게 국민적 시각에서. 국민이라는 게 생각이 다 다를 순 있겠죠. 그런데 중요한 건. 대다수의 국민이 가진 보편적 정서, 국민들이 정치를, 정치인들의 행태를 바라보는 바람, 그런 기준에서 씁니다. 그러니까 양쪽을 다 알아야죠. 한쪽에 편향되지 않게. , 풍자라는 게 장황하게 앉혀놓고 설명하면, 그건 풍자적 요소가 결여된 거잖아요. 풍자는 임팩트 있는 포인트를 잘 잡아서 던졌을 때 시청자들이 , 이거는 뭘 이야기하려는 거구나그리고 나도 이런 것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집었다.’ (생각하게끔 하는 거죠). 누구나 사실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답답함에서 풍자를 접근하는 거거든요. 작가도 그렇고. 그것을 보고 공감하는 독자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포인트를 제대로 집어서 압축성 있게 전달해주는 것. 제가 하는 일은 코미디니까. 거기에 거칠고 상스럽지 않으면서 피식혹은 큰 웃음 터트리면, ‘이야 이거 제대로 집었다.’ 이런 걸 작가로서 창출해냈을 때 혹은 독자나 시청자들의 반응이 왔을 때, 희열을 느끼며 정치풍자를 하는 것이거든요. 물론 그 문제 저변에는 우리 정치가 조금 더 나아져야겠다.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아야겠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있죠.

서강> 요즘 정치 패러디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치 풍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 TV라든가 어떤 매체로만 보면 옛날보다 사라진 게 사실인데, 사실은 요즘에 다른 매체들이 많이 생겼잖아요. 인터넷 포탈이라든가, SNS라든가 이런 것들이. 그래서 사실은 패러디가 많이 사라진 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홍수를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해요. 하나로 집약되지 않은 것뿐이지. 지금은 풍자 전문 작가뿐만이 아니라, 일반인 중에도 대단한 풍자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재야의 많은 분들이 있어요. 옛날에는 사실 그들이 표출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묻혀만 있었잖아요. 지금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전문작가가 아니어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기존 단일 매체 ‘TV’라든지 이런 곳에서 정치드라마라든가, 코미디들이 없어진 상황이 됐는데. 이건 뭐 결국은 정책 당국자의 의지죠. 그 사람이 이런 게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시절엔 방송국 사장이 풍자를 왜 안 하냐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던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풍자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설사 대통령이 나를 풍자삼아서 해라고 말했어도 다 필요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실제로 표출할 수 있는, 매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장해주지 않으면 사실은 어렵죠. 현실이 그래요.

 

. ‘웃음이라는 이름의 가능성, 혹은 대안

 

서강> 웃을 일이 없는 심각한 사회현실에서, 웃음이라는 이름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웃음이 가능성이나 대안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어떤 형태일까요?

> 사실 저는 웃을 일이 없어이건 결국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이 없다고 생각해요. 무슨 이야기냐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웃으려고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그 웃음 속에서 행복감이라는 걸 (느껴야 되죠). 폭소는 아니어도 옅은 미소라도 지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은 남을 통해서, 재미있는 친구를 통해서, 저 코믹한 웹툰을 통해서라든가. 그리고 내 자신도 남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거든요. 내가 남을 도와주면, 그 사람이 좋아서 미소 지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웃음을 준 것이고. 사실은 그런 운동을 범사회적으로는 못하더라도 개인적인 노력은 하면서 살아가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에요.

서강> 이렇게 웃을 일이 없다는힘든 시기일수록 웃음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특히 더 무겁고 커지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웃음을 생산하는 이들의 사회적 역할이나 의무는 무엇인가요?

> 제가 외국에 나가보니까 현지에 있는 유학생들한테 저를 소개하면 코미디빅리그 너무 좋아합니다라면서 실시간 인터넷 채널을 연결해서 다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코미디빅리그> 출연자들이 지방 공연만 가도 전석이 다 매진되는데. ‘이민 가서 사시는 분들을 우리가 한번 찾아가보자.’ 그러려면 많은 경비들이 필요할 거잖아요. 그런 제 꿈을 이야기했더니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이 도움의 길을 만들 테니 한번 추진해보자(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계획을 실제로 외국에 가서 하려고 하는데 보러 오실 거예요?’하면 다들 표가 매진되고, 난리가 날 것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사실 상업적인 공연을 하려면 여러 번 공연을 하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의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웃음을 만드는 이들의 의무라고 생각을 하고, 역할이라 생각해요. 저희도 순도 높은좋은 웃음을 드리려고 끊임없이 일주일을 고민하고 하니까. 이것을 더 적극적으로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뭔가 찾아가는 서비스를, 웃음을 가지고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서강> 순도 높은좋은 웃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 웃음에 욕심을 내다보면 조금 과한 표현이 들어갈 때도 있어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분이 있단 말이에요. 열이면 열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겠죠. 그러나 그 중 지양해야 될 것은 줄어야 된다는 말이죠. 불편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처음에 두 명이 불편했다고 하면, 다음에는 한 명 정도만. 이런 식으로 줄여나가는 거죠. 물론 이상점은 어느 한명도 코미디 프로를 보고 마음이 불편하거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 하는 그런 웃음을 만들고자 하는 게 저희 지향점이에요.

서강>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 우선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코미디빅리그>가 시청자 여러분들의 사랑, 관심으로 뿌리를 내렸잖아요. 진짜로 감사한 일이고. 앞으로도 <코미디빅리그>라는 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찬란한 코미디 프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려는 목표가 있어요. 또 아까 말씀드렸던 해외 공연. 전 세계에 우리 국민들이 다 있잖아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그분들 피부 가까이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실제 눈앞에서 (코미디를) 펼쳐줘서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다음 목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