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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39호] 특집- 박근혜 선배님께서는 안녕하십니까?

 

 올 한해, 서강에서는 유난히 많은 대자보(大字報)들이 눈에 띄었다. 흰색 전지에 검은 매직펜으로 꾹꾹 눌러 쓴 대자보에는 서강대 남양주 캠퍼스 설립에 반대하는 글부터, 박근혜 선배님은 지금 안녕한지를 묻고, 최순실 게이트를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그 내용도, 형식도 다양했다. ‘우리를 움직이는 목소리’, 바로 대자보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취재 및 편집 양계영

 

 


Ⅰ. 서강대 대자보의 역사


 대학교 내의 대자보 역사는 1960년 4.19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은‘우리는 캄캄한 밤중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라는 구절을 담은 대자보 <4∙19 선언문>을 부착하여 민주화 운동의 개막을 알렸다. 서강대의 경우, 1994년 박홍 총장 사퇴 관련 대자보 사건을 들 수 있다. 1994년 8월 25일 한겨례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총학생회(회장 남계현)는 주사파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박홍 총장에 대해 총장직 사퇴를 촉구하고‘총장님은 더이상 스승의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교내에 부착해 박 총장의 발언에 대한 사과를 주장했다.


 한편 교내에 대자보를 부착하여 소통의 장으로 이용되던 각 게시판들이 없어질 뻔한 사건도 있었다. 2012년 총학생회장 고명우(철학과)학우가 서강대 커뮤니티를 통해 올린 <대자보를 찢는 것의 의미>라는 글을 살펴보면, 2010년 총학생회에서 집행부를 하던 때를 회상하며 당시 학교측이회의에서제안한내용을소개하고있다.“ 학내에넘쳐나는홍보물 때문에 너무 지저분하니 게시판을 철거하고 LED판을 세우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가지고 학생 대표자들이 많은 논의를 했습니다.”학교에서 LED판을 통제한다면, 그 때 우리는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고 학우를 비롯한 총학생회의 고민은 이러했다. “이것이 결국은 학교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항들에 침묵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결과적으로 LED판을 세우자는 논의는 거부되었고, 대자보 문화는 계속 계승되어 올 수 있었다.


 2013년에는‘안녕들하십니까’대자보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정다운 학우(불어불문학과)는 서강대 학생들이 모이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강 학우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정 학우는“나를 세상에 맞추는 게 과연 행복한 삶인가라는 고민을 시작으로 대자보를 쓰게 되었다”고 말하며 스스로“알을 깼다”고 밝혔다. 그녀는 인터넷에 글을 올린 다음날 직접 손으로 쓴 대자보를 처음으로 교내에 게시하기도 하였다. 그녀가 보여준‘담담하게 안부를 묻는 형식’의 대자보는 단순히 쓰고 읽는 행위에 그치지 않았다. “안녕들 하시냐”는 물음에 스스로 대답하게 함으로써, 대자보를 직접 쓰지 않아도 자신의‘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직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교내에 ‘안녕들’시리즈로 이루어진 대자보는 ‘철도 민영화와 파업 노조원 직위해제’, ‘ 밀양 송전탑’, ‘ 불법 대선개입’등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각자의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담은 내용을 대자보에 서술함으로써 점차 다양한 의제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의 삶에 대한 성찰이나 고백을 이야기하고, 질문을 던져 또 다른 이야기를 생산하는 공론의 장으로도 이어졌다.




Ⅱ. 여전히 우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대자보는 쓰는 시간이 필요하고, 충분히 읽고 반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대자보를 쓴다는 것, 그리고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3년간 교내에서 대자보를 제작한 학우들을 찾아, 그들의 고민을 함께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1)

 

 

 

 자신을 ‘세상을 평등하고 행복하게 바꾸는 것이 꿈인 사람’이라고 소개한 이가현 학우는 2013년 <8000서강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주인공이다.“ 철도 파업 당시 대학생으로서 그리고 알바노동자로서 힘들었던 점과 불통의 박근혜정부와 서강의 유기풍 총장이 무엇이 다르냐는 내용의 대자보를 작성했어요.”이 학우는 그 당시 처음 대자보를 쓰게 된 이유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겠다는 대자보를 썼어요. ‘세월호를 정치에 이용하지 마라’고 하는 것이 진실을 목격한 세월호 유가족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 후 2015년, 민중총궐기 당시 이 학우는 온몸이 불타는 듯 뜨거움을 느꼈다. “당시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흠뻑 맞았어요. 넘어져 팔이 부러진 친구를 싣고 있는 구급차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는 공권력을 보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이어 이 학우는 당시 집회의 내용보다는 시위의 폭력성 여부만 언론에 주목 받는 것을 보고 회의감과 절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작하게 된 대자보가 <11월 14일, 국민을 죽이려하는 공권력을 보았습니다>이다. 대자보는 이 학우에게 있어 삶에 대한 고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고백과도 같았다. 그리고 늘 그 고백의 마지막 문장은‘함께 행동하자’였다.

작은 한 문장과, 한 단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하는 추동력이 된다고 밝힌 이 학우는 이어“대자보를 쓴다는 건, 남들이 결정한 삶을 거부하고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살겠다는 의사표현인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주체적인 삶의 태도로 표현될 수 있는 대자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신의 삶을 위한 용기를 내는 거죠.”누군가는 반드시 그 대자보의 내용에 동의할 것이라는 게 이 학우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대자보의 문장력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솔직한 마음에 감동해요.”이 학우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해도 일기를 쓰듯이 써 나가면 분명히 진솔한 나의 감정이 실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의 삶뿐만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도 더욱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 이가현 학우가 계속 대자보를 써 나가는 이유이다.

 

 

 


 

 김태인 학우는 너무나 절망스러운 상황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반복되는 것을 보았다. 뉴스에서는 한 비정규직 경비노동자가 과중노동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고, 며칠 뒤에는 풀무원의 화물노동자들이 과중노동과 노조탄압에 저항하고자 여의도의 한 광고판 위에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우기로는 우리나라가 점차 국민소득도 상승하고 잘 살게 되었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우리는 사람답게 살지못하는 건지 답답한 마음이 컸어요.”김 학우는 정부가 노동 환경을 더 악화시키려고 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감추려고 하는 상황에 화가 났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과 감정을 대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대자보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5년 10월, 김 학우는‘어쩌면 마지막 일지도 모릅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김 학우는 대자보에서“이제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이들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닌 우리 모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며 당시 정부에서 ‘한국사과목 국정 교과서’와‘노동개혁’을 반대하는 내용을 써서 붙였다. “적어도 서강 대학생이라는 한 편의 다수성을 가진 우리들은, 평소에 주변에서 벌어지는 노동문제들을 보고서 쉽게 공감하지 못하고 남의 일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크다고 느낍니다. 우연히 주어진 다수성에 안심하며, 경쟁에서 배제되어 고통 받는 소수들을 무시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방식이겠죠.”김 학우는 당시 고통 받는 소수들이 늘어나고 다변화되어 간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고 말했다. 스스로 소수가 될 것이 두려웠고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우리 이러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어 김 학우는 대자보의 성격에 대해 말문을 이었다. “대자보라는 매체가 참 묘해요. 긴 글들을 굳이 시간을 들여서 읽어 주시는 분들이 어딘가에는 계시더라고요. 그걸 통해 아주 잠깐이라도 대자보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면 제가 대자보를 쓴 소정의 성과는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청년들이 대자보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학우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절박함’을 이야기했다. “주변을 보면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는 심정에는, 사실‘이걸 말한다고 문제가 쉽게 해결되겠어?’하는 비관도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지속하고자 하는 건 절박하니까, 안그러면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저
역시도 그렇고요” 대자보의 내용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부담 없이 대자보를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이 학우가 밝힌
바람이다.

 

 

 

 

 

 

 

 


5월 17일, 성별이‘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평소 다른 여성들에게 무시를 받았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가해자의 서술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사건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를 비롯한 공간들에서 여성들은 침묵을 깨고 말하기 시작했다. 박정하 학우는 “이러한 변화하는 시점에서 무언가를 바꾸어보자는 이야기를 학내 구성원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페미 세력들을 중심으로 달빛 걷기, 추모 집회 등이 열리는데 학교 안에서도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
어요.”
 ‘연락이 오는 학우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박 학우의 고민은 대자보로 이어졌다. 5월 23일, 그녀는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교내에 붙였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어구에요. 그 사건을 비롯하여 여성들이 뭉칠수 있는 지점은 분명히 있고 서로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연결될 때, 서로를 의지하여 나의 경험과 나의 아픔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박 학우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림으로써 그 목소리는 분명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 후, 자신이 쓴 대자보가 뜯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자보가 뜯긴 것을 보고 여전히 나뿐만 아니라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야기들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여졌어요.”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아, 내가 뜯길만하게 정곡을 찔렀구나, 그렇게 온순한 이야기를 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어서 박 학우는 학내 분위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의견의 자유로운 개진을 옹호하고 대자보를 뜯는 등의 의견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과 위협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대자보뿐만 아니라 온라인 등에서도 활발한 의견 교류가 이루어질 때, 변화의 토대가 쌓이는 구나 생각합니다.”

 

 

 

 



 김평강 학우는‘천호’라는 필명을 쓴 위 대자보의 주인공이다. 김 학우가 대자보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은 2015년부터였다. 김 학우의 고민은 학우들에게 당시 정부의 성과임금제나 비정규직 늘리기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이러한 고민의 과정을 거친 이유는 대자보가 얼마나 좋은 내용을 가지고 있든 간에 그걸 읽지 않은 이상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제작한 대자보에는 김과장과 정부장, 노동자와 사장이 라는 인물을 바탕으로 풍자적인 대화가 등장한다. 특별히 이러한 형식으로 대자보를 제작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김 학우는 “멋진 내용 보다는 사람들이 보다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자보를 쓰는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학우들의 반응이 정말 괜찮았어요. 심심찮게 주변에서 네가 쓴 자보 재미있게 읽었다고 친구가 그러더라는 이야기가 들려와서 기분이 좋았어요.”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대자보를 본다는 것, 김 학우가 대자보를 제작하며 느낀 바이다.
 “청년들이 대자보를 쓴다는 것은 정치라고 생각해요. 이 청년들의 목소리가 커져서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서 영향력이 생긴다면 주체적으로 행동했다는 점에서 이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 같아요”김 학우는 이어 대자보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몇백원짜리 전지에 자신의 생각을 적으면 되는 정말 간단한 작업이에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보를 통해서 적고, 또 그 자보를 본 누군가가 그 자보를 본 자신의 생각을 다시적고, 이렇게 자신의 생각들을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학내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어요.”

 


Ⅲ. 걸음은 떼어도, 발자국은 남는다.


앞서 소개된 학우들의 대자보에서 읽어야 할 것은 비단 대자보 내용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 또한 필요하다. 대자보를 제작한 학우들이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하는 말은‘교내에 대자보를 붙일만한 더 많은 공간이 제공되어야 한다’였다. 현재 학우들이 주로 대자보를 붙이는 공간은 K관과 로욜라 옆 게시판, 도서관 라운지 게시판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대자보를 볼 수 있다는 K관 앞에는 현재 공사로 인해 공간이 협소할 뿐만 아니라, 각종 광고 유인물로 인해 새로운 대자보가 붙어도 그 존재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따라서 교내에 많은 학생들이 지나가면서도, 멈추어 서서 대자보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확대되어야 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자보판이 관리가 되어 언제든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도록 서강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퍽퍽한 세상 속에서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는지, 내가 사는 이곳은 침묵하거나 무관심하길 강요받는 사회는 아닌지 확인하는 중요한 신호이기 때문에 대자보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옳지 못한 것에 분노할 줄 모르고, 현실 사회의 문제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펄럭, 고요한 침묵을 깨고 흔들리는 대자보는 외롭지 않다. 걸음을 멈추고 눈을 맞추어 줄 당신이 있기에.

 

 


※ 참고
<한겨례신문> 서강대 총학생회 박총장 사퇴촉구 (1994.8.25.)
<오마이뉴스>‘ 민주주의 조용히 붕괴’알린 서강대 대자보 훼손 (2013.06.21.)
<경향신문>‘ 안녕들’대자보 주인공 인터뷰 -서강대 정다운씨. (2013.12.17.)
<시사저널>‘ 순실의 시대’대자보의 부활. (2016.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