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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41호] 원우문화기고_우리는 무슨 색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가?(배보근)

우리는 무슨 색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가?

-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나서

 

경제학과 석박통합과정생 배보근

 

 대학원에 진학한 지 어느덧 3년이 되었다. 다양한 경험을 하는 다채로운 삶보다는 반복적인 시간과 똑같은 공간이라는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잃어가는 기분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것인가?’ 스스로 물음을 던져본다. 남들과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한 나에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맞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라는 말로 위안을 하면서 하루를 버틴다. 앞으로 맞닥뜨릴 많은 일과 고민, 그리고 더 많은 비교 대상들이 난무하겠지만 미래에 대한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딛고 있다.

 그렇게 대학원 생활에 적응하면서 평소에 즐기던 문화생활과 여행은 추억으로 남기게 될 즈음에 라라랜드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너무 강렬하게 라라랜드라는 영화가 마음에 닿았다. 어디에서나 봤을 것 같은 꿈과 사랑이라는 이중적 플롯을 지닌 영화이지만 화려한 카메라 기술과 감독의 세심한 손길로 세밀하게 만든 수작이다. 특히 재즈의 변주, 색의 변화 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전개방식과 배우들의 연기력은 정말 흠잡을 데 없이 감탄을 자아낸다. 그래서 감독의 섬세함 하나하나를 이야기하지 않기에는 아까워 (color)’이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라라랜드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은 배색이다. 초반에 화려한 원색의 향연에만 눈을 빼앗기기 쉽지만 단 한 장면도 색을 허투루 사용한 장면이 없다.

 첫 번째로 원색과 검정(무채색)의 대비이다. 이것은 꿈이라는 화려함과 현실이라는 어두움의 대비를 말한다. 극 중에는 이런 두 요소를 대비시키는 장면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오프닝 곡인 ‘another day of sun’의 가사를 잘 들어보면, ‘불빛이 사라진 관객석’, ‘빛들이 수 놓인 스크린'이라는 의미의 가사가 나온다. 원색이 표방하는 화려함은 무대와 음악, 배우라는 예술인들의 꿈, 그런 꿈을 향한 순수함을 나타낸다. 반면에 검은색은 생활고와 먹고사니즘과 같은 꿈과는 거리가 먼 삶과 현실을 나타낸다. 미아의 오디션 장면은 항상 원색 배경에 원색 의상이며, 미아가 봄에 간 파티에서는 원색 옷의 파티 참가자들과 검은색 옷의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연애를 하기 전 미아의 의상은 원색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메신저스 일을 하는 세바스찬은 아예 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두 번째로 사랑을 표현한 보라색이다. 영화 포스터를 장식한 것처럼 보라색은 극 중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색이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언덕 위에서 처음 본 하늘의 색, 영화 관람을 약속한 후 세바스찬이 부두에서 본 하늘색,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면에서 쓰레기통, 이 장면에서 미아의 가방색, 집에서 둘이 피아노 앞에서 노래할 때 미아의 드레스, 회상 신에서 미아가 성황리에 연극을 마친 뒤 입고 있는 보라색 원톤 드레스, 마지막 신에서 홈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아의 의상이 그렇다. 영화의 색이 워낙 화려하다 보니까 색을 중구난방으로 쓰는 것 같지만, 몇몇 색은 특정한 장면에서만 사용한다. 그 중 첫 번째로 보라색은 사물에는 대체로 진한 보라색, 미아의 의상은 연보라색, 하늘은 파스텔 톤으로 표현한다. 좀 더 나아가면 파스텔은 전반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색으로, 연애를 시작한 미아의 의상은 전반적으로 원색에서 파스텔 톤으로 바뀐다. 데이트하는 세바스찬의 의상도 흰 셔츠 일색에서 파스텔 톤으로 변한다.

 세 번째로 의상의 변화이다. 세바스찬이 브라운 수트를 몇 번 입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지막 피아노 치는 장면에서 단 한 번 올 브라운 수트를 입는다. 중간에는 톤이 업된 브라운 수트를 미아와 첫 영화 관람 때와 친구의 파티에서 연주할 때 두 번 입고 나온다. 이는 둘 다 사랑스러운 감정, 순수함의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브라운은 세바스찬에게 퍼스널 컬러이다. 그러므로 격동의 시기를 보내는 영화 중간에는 브라운의 색이 나오지 않는다. 잘 보이지도 않고 아무도 신경 쓰지도 않을 극의 첫 장면, 세바스찬의 첫 장면인 고속도로 위에서 브라운 셔츠를 입고 있다. 그 상태로 삼바 타파스 앞에서 자신의 꿈인 재즈 클럽을 한 번 더 되새긴다. 세바스찬이 삼바 타파스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집에 돌아가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감독이 연속된 장면에서 의상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브라운이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위의 세 장면은 분명 연속된 장면이다. 하지만 의상을 통해서 시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간 장면에서 현실에 쫓기는 세바스찬의 셔츠는 어두운 회색 내지 밝은 검정으로 봐도 좋다. 시간상으로 연속된 장면이라고 구성할 수 있는 장면들을 굳이 나눈 것이다. 자신의 꿈인 재즈클럽 사장을 되뇌는 세바스찬과 피아노 앞에서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세바스찬을 순수한 브라운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색의 의상을 극 중간에는 전혀 입지 않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셉스(Seb’s)의 사장으로 나타났을 때 입고 나옴으로써 순수한 자신의 꿈을 이뤘다는 것을 시사한다.

 네 번째로 조명을 이용한 색의 변화이다. 색에 관한 감독의 섬세함은 조명을 봤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세바스찬이 클럽에서 징글벨을 연주하는 장면에서, 처음 클럽에 입장하면서 사장과 인사하고 피아노에 앉기 전까지 세바스찬의 의상은 검정과 흰색이다. 전형적인 현실의 색. 하지만 피아노에 앉은 세바스찬에게 조명이 약간 밝아지면서 짙은 푸른색, 그리고 연주에 몰두할 때는 파란색으로 더 밝아진다. 생활고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싫어하는 곡을 연주하는 세바스찬의 심경과 곧 꿈에 대한 열정을 찾는 변화를 같은 의상, 다른 조명으로 표현한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다섯 번째로 5년 뒤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의상 색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소름 돋았던 순간은 5년 뒤 장면에서 차에서 내린 미아의 의상을 보는 순간이었다. 절대 무채색만의 의상은 입지 않았던 미아가 완전한 흰색과 검은색의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고 액세서리마저도 투명한 다이아몬드로 바뀌어 있다. 이전에는 에메랄드 목걸이, 녹색 귀걸이를 주로 했다. 배우라는 꿈을 이뤘기 때문에 연기는 더 이상 꿈이 아닌 생활, 즉 현실이 되었다. 혹은 5년의 시간 동안 성공을 위해서 현실적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세바스찬은 엄청난 성공은 이루지는 못했지만 재즈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욕심, 재즈 클럽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그를 표현한 브라운의 수트는 순수한 꿈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영화를 보는 내내 세심하게 표현한 색들에 매료되어 있었다. 두 주인공은 꿈과 현실이라는 고민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너무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극 중의 색들을 자연스레 삶에 반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슨 색을 꿈꾸면서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