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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43호] 일본군‘위안부’ 기억의 재현과 확장을 위한 기록물 관리기관의 운영_남영주

일본군위안부기억의 재현과 확장을 위한 기록물 관리기관의 운영

 

영남대 역사학과 강사 _ 남영주

 

1. 기록물 관리 실태와 기록관 운영

20151228일 한일 외교장관은 회담을 통해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항구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합의 사항을 발표하였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합의는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위안부 문제는 한일 정부 간의 정치적 문제로 다루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이 문제는 민간차원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기에 일본군위안부관련 단체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특히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단체들이 수집한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위안부의 실체를 증언하는 결정적인 역사 자료이다. 위안부 기록물의 가치를 인식한 국가기록원은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을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을 관리하는 공공기록물관리기관이 설치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기관이나 과거사청산위원회가 명문화된 법률이나 규정이 있는 것에 비해 위안부 관련 기록물 관리기관은 사립박물관으로 분류되어 규정의 적용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기관으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공간에 건립된 <나눔의 집 일본군위안부역사관>, 대구·경북지역의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건립한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운동사의 현재를 담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부산지역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이끈 김문숙 씨가 중심이 되어 건립한 <민족과 여성 역사관> 등이다.

<나눔의 집 일본군위안부역사관>1930년대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일본에 의하여 자행된 일본군 성노예제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1998년 개관하였는데, 일본군 성 노예제를 주제로 세계 최초로 세워진 역사관이다. 2015년 개관한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1997년 발족한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일본군위안부역사관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다양한 방식의 범국민 모금 캠페인을 통해 형성된 기금을 기반으로 설립된 대표적인 커뮤니티 아카이브이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1994년 정대협이 사료관 건립준비위원회를 발족한 것을 계기로 2012년 개관하였다.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수집과 전시를 통해 위안부 교육과 문제해결,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기관과 연대하며 노력하는 행동하는 박물관이다. <민족과 여성 역사관>1990년 윤정옥 교수가 한겨레신문에 󰡒󰡐정신대󰡑원혼의 발자취 취재기󰡓를 연재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자, 󰡐부산여성의 전화󰡑의 운영위원장이었던 김문숙 씨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 것이 오늘날 역사관을 설립하게 된 계기이다. 김씨는 1991년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부산 정대협을 분리하고,󰡐정신대 전화󰡑를 개통하는 등 우리나라 최초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위안부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최초로 일본 정부로부터 위안부 배상 책임을 이끌어낸 시모노세키 재판을 주도하였다. 현재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모임의 한국대표를 맡고 있다. 앞서 언급한 기관들은 여러 단체들의 협력과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비해, 이 역사관은 김 관장의 私財를 기반으로 발족한 후 지금까지도 운영의 대부분을 김 관장이 담당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은 범죄행위’, ‘피해사실’,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위안부 관련단체들이 제공하고 있는 전시 콘텐츠는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구술 즉 피해사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본 역사관은 해결을 위한 노력과 관련된 기록물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데, 시모노세키 재판과 국민기금 반대운동 결과 생산된 기록물이 대표적이다. 시모노세키 재판에 참여한 2명의 위안부 할머니와 2명의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증언 기록과 재판에 관련된 모든 기록은 향후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김 관장은 역사관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며, 이를 위해 역사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민족과 여성 역사관은>1이 운영하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인데, 인력 부족으로 인해 기록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90세의 고령인 김 관장은 향후 역사관의 존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으며 본인의 여력이 다할 경우 기록물은 국가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하였다.(201612월 인터뷰)

 

2. 연대와 좌절

위와 같이 민간단체들이 설립한 위안부 기록물 관리기관은 이 문제를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201741일 제1회 일본군위안부박물관 회의를 東京에서 개최하는 성과를 낳았다. 1회 일본군위안부박물관회의 실행위원회는 “201512월 한일 정부가 피해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합의를 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모두 해결된 듯 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위안부 피해 실태와 역사를 전하는 박물관의 역할은 차세대평화와 인권 교육이라는 목적 뿐 아니라 피해여성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지극히 중요해졌다고 이번 회의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는 전 세계 일본군위안부박물관 7개와 위안부 관련 기억 활동을 전개하는 4개의 NGO 단체가 참가하여, 위안부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기억을 계승하고 전쟁이 없고 여성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연대하여 활동해 나갈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201710월 말,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9개국이 공동으로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보류되었다는 소식은 그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모든 단체와 관련자들을 절망하게 하였다. 위안부 기록물은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상세히 알려주는 피해자의 증언 기록을 비롯해 위안부 운영 사실을 증명할 사료 등 2744건으로 구성되었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발언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상 규명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유네스코 분담금 납부 거부를 무기로 내세워 유네스코를 압박한 일본 정부의 저지를 이겨내지 못했다. 또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인 이기정 할머니가 1111일 별세하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총 33명으로 줄었다. 생존 피해 할머니들은 평균 85세 이상의 고령이며 언제 세상을 떠나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이제 우리는 위안부 문제의 증거로 활동하는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 이 문제의 해결과 기억화를 어떠한 방향으로 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들이 역사증거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에도 운영 가능한 역사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록관 운영방안에 대해 모색해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3. 기억의 재현과 확장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물적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기록물 관리가 공공기록물관리기관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위한 법 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법률 제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선 <국가지정기록물>을 확대 지정할 필요가 있다. <국가기정기록물>에 대해서는 국가기록원에서 기록 관리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20179월 기준 총 12(15)<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되었는데, 그 중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이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사례는 3건이다. 8호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2013, 나눔의 집, 3060), 8-1호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2014,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940), 8-2호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2014, 나눔의 집, 125) 뿐이다.

둘째, 소장기록물에 대한 목록화 작업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일부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의 경우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소장 기록물에 대한 목록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서 소장 기록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록물의 소실이 우려되고 있다. 목록화 작업이 끝난 기록물에 대해서는 기록물 DB를 구축하여 이용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나아가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모든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들을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중 범죄행위와 관련된 기록물을 수집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물 관리기관이 수집하고 있는 기록물은 대부분 피해사실과 관련된 것이다. 일본이 위안부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죄 행위와 관련된 기록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중국, 대만, 필리핀 등 국외 위안부 관련기관 특히 가해국 일본의 위안부 기록물 관리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기록물 발굴과 확보가 필요하다.

넷째, 기록물 관리기관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을 활용하여 일본군위안부의 기억을 확장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견학, 전시, 출판, 강좌, 강연, 세미나, 홍보(소식지)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소장기록물을 교육용 콘텐츠로 개발하여 역사교육에 활용할 수 있게 하여 후세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가기록원 및 전공자들과의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째,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의 활동을 기록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에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 기관의 활동 또한 중요한 역사기록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92년에 시작된 수요집회는 25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 개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생산된 기록물은 향후 위안부의 실체를 입증하는 중요한 기록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앞서 살펴본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은 각기 다른 설립 주체로 인해 기관마다 집중하고 있는 활동이 다르다. 따라서 각 기관의 특성이 반영된 기록물 또한 향후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를 구성하는 역사기록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사진|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 내 희움 스토어

 

여섯째,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에도 위안부 기록물 관리기관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후원기관 및 후원자를 확보해야 한다.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의 경우 대구·경북지역에서 결성된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중심이 되어 건립된 커뮤니티 아카이브이다. 시민모임은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기록물을 수집하고 각 종 행사를 개최하여 역사관을 홍보하고 있다. 또한 시민모임의 브랜드 희움’(희망을 모아 꽃 피움)의 물품 판매를 통한 수익금을 역사관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 이 역사관은 시민단체 활동과 비즈니스가 만나서 탄생한 결과물로써 시민의 힘으로 역사관을 운영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시민모임의 활동은 지속가능한 역사관 운영을 모색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위와 같은 제안이 실행되어 피해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국가의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20171124일 국회에서는 매년 814일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간 이 문제를 위해 노력한 관계자들의 땀이 결실을 맺은 결과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 문제를 미루기에는 우리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