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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3호] 대학원생들에게 一笑를 허하라!

대학원생들에게 一笑를 허하라!

 

이해수 기자

 

대학원 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제는 대학원에서의 적응이다. 적응도는 얼마나 많은 기초과목을 듣고, 영어 실력을 갖추었는지, 공부하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바로 ‘유머’이다. 만나는 사람이 비교적 한정되어 있고 비슷한 일상이 치열하게 되풀이되는 이곳에서 유머는 인간관계를 개선시키는 지적인 무기이자, 지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해 나아갈 수 있는 최고의 도구 일 수 있다. 원생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단한 생활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과 공감, 유머와 웃음은 퍽퍽한 대학원 생활을 유연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심각할 수 있는 대화를 부드럽게 하고 자유로운 대화와 정보 교환이 쉬워져 막혔던 생각이 터지기도 한다.
그러나 원생 중 대부분이 웃음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발제문 한 문장 쓰는 데도 지나치게 걱정하고 고민을 한다. 칸칸이 나뉜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아 암묵적으로 ‘말 걸지 말아주세요’의 뜻을 밝히며 책과 이어폰으로 무장한다. 끝내지 못한 과제가 신경을 건드리니 괜한 농담 하나에도 마음을 상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물론 웃음이나 유머로 문제 –학업·업무부담, 경제적 어려움, 진로·가치관 문제 등- 그 자체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웃는 동안에 적어도 그 문제를 해결할 여유를 찾게 된다.

 

우리들에게서 웃음을 빼앗는 것들

 

“힘들어 죽겠네”, “답답해 죽겠네”. 원생들이 자주 내 뱉는 말 중에 가장 입에 익숙한 말 중 하나는 ‘죽겠네’ 이다. 하루 4시간 수면, 교수님의 잦은 호출, 주말도 없는 일정, 가히 웬만한 직장 생활보다 힘든 생활이다. 오늘은 자리 잡고 논문에 집중해 보리라 마음 먹어보지만, 갑작스럽게 닥치는 일들은 계획을 흔적도 없이 쓸고 간다. 흡연, 과음, 운동부족, 영향 불균형들로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많아지니 점차 웃음이 사라진다. 문득 문득 거울을 통해 얼굴을 볼 때마다 석고 같은 표정에 흠칫 놀란다.
동기가 모 교수님의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소식에 귀 기울이기, 교수님 이름과 출신 대학 외우기와 같은 지적 경쟁(?)은 원생들의 웃음을 빼앗는다. 공부 외적인 일에 집중하는 학생들은 그 나름대로 타성에 젖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수업만 듣고 집에 돌아가는 ‘아웃사이더’를 자청한다. 석사 과정을 중도 포기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공부하는 사람’ 이라는 타이틀의 무게도 한 몫 한다. 신중하고 논리정연한 대학원생에게 유머의 사용은 점잖지 못한 듯 보인다. 어느 정도 정형화된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해 유머를 멀리해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을 받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도 ‘죽겠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니, 바깥에서 보기에도 이 집단은 웃음과는 멀다고 여긴다.

 

대학원 생활의 윤활유, 막간의 재치

 

배꼽 빼는 유머 감각이 없다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유머는 절대로 지식이나 논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남을 웃기기만 하는 재주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유머는 경직된 마음을 녹여내는 순간의 재치다. 선후배 그리고 동기들이 서로 공감하고 맞장구를 칠 수 있는 순간의 재치가 훌륭한 청량제로 작용한다. 사람에게는 때때로 피식 웃게 하는 기분 좋은 위트 한마디가 필요하다. 예민하고 까칠해져 있을 논문학기에는 더욱더 절실하다. 논문 학기 동료들에게 "논문 감 잡으세요." 말하며 감 하나를 건네 보자. 이런 정도의 유머라면 잠시 경직되었던 연구실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 손색이 없다.

 

 

“논문 감 잡으세요!” 때로는 유머 센스가 훌륭한 조언보다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는 막간의 대화중에도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명감에 둘러 싸인 채, 원생들은 점차 '소박한 것들'에 기쁨을 느끼고 웃게 된다. 원생들은 이런 소소한 웃음이 때로는 얼마나 위안이 되고 또 필요한지 알고 있다. 웃으며 한숨 놓고 평상심을 찾고,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나만 힘든 것이 아니야’ 서로가 유대감을 갖게 하는 힘. 웃음에는 그런 힘이 있다. 가볍게 읽히는 이 글마저 무표정으로 읽고 있다면, 오늘이 가기 전에 꼭 한 번 웃어 보길 바란다. 웃음은 노곤했던 하루를 달래주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한 리셋 버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