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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대학원

[113호] 동양의 저항은 어떻게 가능한가 : 다케우치 요시미의 「근대란 무엇인가」를 읽는다. 윤여일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탈근대적 담론과 실천이 긴급하게 요청되는 현재, 동양에서 그 요청은 이중적인 면모를 갖는다. 서양의 탈근대가 근대로부터의 벗어남이라면, 동양의 탈근대는 근대로부터의 벗어남이자 - 근대화가 곧 서양화라는 점에서 - 동시에 서양으로부터의 벗어남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텍스트를 통해 이 이중적 요청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도록 한다. ‘서양’과 ‘동양’은 담론적 구성물이다. 하지만 두 담론적 구성물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경계 지어진 영토상의 명칭인 서양은 자기한정을 거부하고 바깥으로 뻗어나간다. 서양은 하나의 특수로서 다른 항(동양)과 대립하지만, 이 다른 항이 자신을 특수로서 인식하게 하는 보편적 준거점으로 작동한다. 동양의 자기인식은 서양과의 .. 더보기
[113호] 홍석천을 만나다 "그들의 삶은 coming out 이 아니었다. coming soon 이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차분한 성격이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음악과 미술, 글짓기, 운동 등 다방면에 소질이 많았어요. 시골 동네에 흔히 있는, 공부 잘하고 잘 노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이성관이 남들과 달랐고, 쉽게 이야기할 곳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했었지요. 또 대학진학 이후엔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기도 했어요. 제가 89학번인데, 90년대 대학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고 방송과 뮤지컬, 개그맨 활동까지 그야말로 정신없이 활동했거든요. 그때엔 그냥 이렇게 살면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 더보기
[113호] 사랑은 제약 속에서 영원과 편재를 희망하는 열정 김명석(연세대 철학과 강사) 흔히 사랑은 모든 제약을 벗어나는 것이라 여겨지지만 제약을 뛰어넘어 나와 타자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는 자칫 타자를 나에게로 귀속시키는 폭력적 사태를 유발한다. 따라서 제약은 나와 타자의 거리감을 유지시키며 사랑을 보다 더 풍성한 것으로 이끄는 사랑의 조건이다. 제약을 온전히 떠맡는 역설적 선택에서 사랑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필자의 단상을 따라가 보았다. 꽃들이 자기 모든 아름다움을 탕진해 버리는 사월 하순 너는 찰랑거리는 웃음을 치마에 담아 내 앞에 나타났다.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의 물리적 거리는 일 미터의 절반으로 좁혀졌다. 일 미터 이상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에티켓이었지만 우리 마음은 한두 번 맞닿았다. 그것은 흔히들 첫눈에 반했다고 말하는 그런 유형의 현상이었.. 더보기
[113호] 나는 연애를 모른다 어둠의 왼손(수유너머 연구원) 좋아하는 언니가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이 대다수인 커뮤니티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면서 ‘잘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대학 새내기였던 나에겐 대단하게만 느껴졌었다. 서로 ‘자기’라고 호칭하는 여자친구와 손을 꼭 잡고 걸어다니면서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뿜어내기도 했고, 찌질하거나 무지한 동기들에게 호통도 잘 쳤고, 어르기도 잘 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회의 장을 맡고 있었고, 여성학 모임에도 열심이었다. 나는 그녀의 카리스마가 좋았다. 그녀는 내게 준 책 속지에, 나를 보면 예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럽다며 “이렇게 만난 것을 하늘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마지막으로 각인되어있는 기억은, 남자친구의 손을 붙들고 걸어가는 아련한 뒷모습. 어느 날, .. 더보기
[113호] 지젝의 사랑론(論): 쿨한 사랑에서 열외(列-外)하는 열애로! 한보희(연세대 비교문학 강사) 시와 사랑, 그 폭력적 소격효과 로만 야콥슨에 따르면 시적 언어는“일상 언어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이다. 이 유명한 명제를 살짝 바꾸면, 슬라보예 지젝의 사랑론으로 들어서는 입구로 삼을 수 있다. 사랑이란 일상적 삶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이다.“사랑은 존재의 질서에 하나의 차이를 만들고 균열을 내려는 폭력적 정념, 다른 모든 대상을 희생함으로써 하나의 대상을 특권화하려는 폭력적 정념이다. … 사랑의 선택은 이미 자체로 폭력인데, 그것은 폭력이 사랑의 대상을 맥락에서 떼어내 사물(Thing)의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이다(슬라보예 지젝,『죽은 신을 위하여』, 57쪽).” 사랑은 일상이라는‘자동화된(automatized)’궤도에서 주체를 탈선시키는 삶의 시어(詩語)들이다. 시의 요체.. 더보기
[113호] 한국 다문화주의의 겉과 속: 이주민에 대한 열외적 열애 오경석(한양대학교 다문화연구소 소장)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다문화주의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이주민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 하지만 이 뜨거움(熱)은 실상 일방적인 온정 내지 동정의 시선에 그칠 뿐이며, 이에 이주민의 타자성은 우리의 동일성으로 재차 용해되어 버리고 있다. 이주민들이 사회의 주변부로 끊임없이 내몰리는 현실 또한 여전하다. 다문화 연구가인 필자를 통해 표면적 포용과 배면의 배제로 점철된 한국 다문화주의의 현주소를 짚어보았다. 한국은 이민국가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문제를 고민해볼 기회와 경험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질성의 압력이 강한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로 여겨질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주민 대중이.. 더보기
[113호] 연애, 열애, 열외 두 사람에게 뻗어나온 선(線)이 말과 감정과 몸의 형태를 빌어 서로 섞인다. 말들은 이어지고 감정들은 맞닿으며를 말들은 이어지고 감정들은 맞닿으며 몸들은 접촉한다.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농밀하게, 양자를 잇는 현(絃)은 쉴 새 없이 진동한다. 사람 사이의 연(緣)이 ‘붉은실’로 표상되는 것은 그러므로 우연이 아니다. 연애(戀愛), 즉 서로를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행위는 말과 감정과 몸을 이용해 너와 나를 얽는 하나의 망(網)을 함께 자아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망을 구성하는 선들이 서로 마찰하며 붉은 빛깔의 열기를 방사하는 상태를 우리는 열애(熱愛)라 부른다. 하지만 연애에서 열애로의 전위에는 부정적인 계기가 함축되어있다. 이전의 성긴 망은 열애를 통해 점차 틀에 박힌 직물(織物)로 재단.. 더보기
[112호] 자본의 흐름, 사유의 정지 곽성우 기자 신체적 허기는 정신적 빈곤을 초래한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기야 하겠지만 배고픈 체 소크라테스가 되는 일이 말처럼 쉽진 않다.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이조차 허락되지 않은 이에게 마냥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말하는 것은 기만을 넘어선 폭력이다. 다시 말해 경제적 기반은 단지 먹고 사는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유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현실은 다분히 편향적이다. 경제적 양극화가 그 어느 때보다 가열 차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소크라테스 되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사유가 곧 사치인 절박한 삶들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삶이란 사유의 빈.. 더보기
[112호] 기관(organ)뿐인 사회, 혹은 망각에 잠식당한 신체(body) : 홍형숙의 <경계도시2> 읽기 재현 Representation 을 단순히 가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이 거듭되는 Re- 행위 -ation 내에 현재 -present- 가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 반복적 행위가 현재에 대한 가상을 넘어 시뮬라크르의 차원으로 전도될지라도, 재현에는 항시 현재가 말소된 흔적으로나마 남아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 흔적을 추적하는 것은 이미 포지티브화 된 사진을 보며 그 이전의 네거티브한 필름을 상상해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현재의 은폐된 단면을 목도하게 된다. 영화로 재현된 공간에서 영토적 포섭의 결을 읽어내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불편한 기억을 상기하려는 필자의 사유를 따라가 보았다. 신이수(영화감독) 가 다루고 있는 것은 잔존하는 몇몇 기록물에 의지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