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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08호] 2000년대 거대한 변환과 칼 폴라니


구본우(중앙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2000년대 거대한 변환과 칼 폴라니

만약 리스크의 정확한 계산이 실제로 가능했다면,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들이 말해왔던 것처럼, 인류에게 가장 효율적이고도 안전한 유토피아의 세계가 열렸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는 리스크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사회 전체를 이 리스크 계산의 바탕 위에 움직이도록 만든다는 것이 바벨탑을 쌓는 일에 불과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사회 전체가 자본시장이 됐을 때, 사회는자본시장의 논리를 감당할 수 없고 자본시장의 운동 방식은 사회의 변화무쌍함을 감당할 수 없다는 단순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어제까지의 지구 경제는 자유로운 시장 거래, 지구적 자본시장 통합, 치솟는 주가와 부동산 가격의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사람들이 금융보호주의, 보호무역주의, 금융기관의 국유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실로 거대한 변환을 예감케 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전환의 시대, 19세기 자유주의가 현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해가고, 세계대전, 파시즘의 등장, 대공황 등 일련의 폭력적 사태를 거치면서 맞이했던 거대한 변환의 시기를 살았던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저서『거대한 변환』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배와 유토피아

‘사회에서 경제가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할 것인가’하는 질문에 답변하는 것은 폴라니에게 있어 평생의 과제였다. 이때, 경제의‘실체(substantive)’의미와‘형식적(formal)’의미를 구분하는 것은 이 과제를 수행하는데 매우 중요한 출발점일 수 있다. 폴라니에 따르면, 실체적 경제란 인간과 환경이 끊임없이 제도를 매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과정 자체를 의미한다. 반면 형식적 경제는‘어떤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논리적 추론으로 구성되어 있다.실체적 경제가‘사실’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형식적 경제는 목적 수단 관계의‘논리’에서 시작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이질적인 경제의 의미를‘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순간 발생한다.

첫째, 논리적 형식이 복잡한 실재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형식적 경제 이론은 비록‘자연’,‘보편’의 옷을 입고 있다할지라도 결국에는 세계에 대한 특수하고 인위적인 해석의 결과물이자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유토피아적 상상에 불과하다. 그런데 형식적 경제와 실체적 경제가 동일한 것이라는 인식, 다시 말해 형식적경제의 논리들이 곧 실재하는 사실들의 반영이라는 인식이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 거대한 전도가 발생한다. 사실상 일체를 이루고 있어서 떼어내고 구별하기 어려운 세계의 요소들을‘노동’,‘토지’,‘화폐’라는 허구적 상품형식의 이름을 붙여 서로 분리해내는 것, 희소성 상태와 합리적 인간이라는 공리로부터 도출된 형식논리에‘시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시장의 논리에 따라 상품형식들이 이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이 사유습관이 실재의 세계를 대표하는 것이 되었을 때, 세계의 모든 사실들은 시장이 파놓은 수로를 따라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내며 움직여 간다.

두 번째 문제는 아무리 강력한 형식적 경제이론도 실체의 경제를 완전히 포섭할 수는 없으며, 세계를 영구히 지배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실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변동은 형식적 경제이론이 구성한 유토피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이율배반을 산출하며, 어느 시점에 이르면 사회는 이 유토피아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렇게 사용연한이 끝난 유토피아를 계속 유지하려 하면 할수록, 현실과 유토피아 사이의 거리는 멀어져가고 굉장히 폭력적이고 파국적인‘형식’(form)의‘변환(transformation)’,즉 거대한 변환이 야기된다.

신자유주의라는 유토피아

신자유주의는 리스크 계산이라는 또 다른 유토피아에 기초해 있다. 금융공학의 힘을 빌려 리스크를‘객관적으로’측정할 수 있다는 신화는 세계 대전 이후 주춤하고 있었던 자기조정적 시장이라는 자유주의의 강령이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교과서에서 말하듯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 가격은 미래효용 혹은 미래수익에 기초해서 결정된다. 그런데 미래의 수익이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면 이 상품을 둘러싼 가격 흥정도 어려운 것이 되고, 가격체계가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시장, 특히 온갖 신용관계가 확산되어 있는 시장은 한 순간에 기능 정지 상태에 빠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시장은 국가나 공동체 같은 전통적 리스크 관리자와 불편하게 동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1980년대를 전후하여 시장의 행위자 스스로가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는 신념이 형성되었으며 이를 실현시킬 규칙들이 만들어졌다. 사실상 리스크 평가 모델에 기초하고 있는 시가 회계가 새로운 회계기준이 됐다. BIS 비율, 순영업자본 비율, 지급여력 비율 같은 각종 금융기관에 대해 리스크 계산에 기초한 금융 규제가 시행됐다. 각각의시장 행위자들이 계산된 리스크를 반영하여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격과 현금수익을 투명하게 공시하고, 리스크에 대한 안전대책을 스스로 확보한다. 그리고 다른 시장행위자들은 이 공시된 가격과 계산된 리스크 수준에 기초하여 투자 및 거래 여부를 결정한다. 리스크 계산과 투명한 공개라는 규칙 외에는 다른 어떤 시장 규제도 필요치 않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 기업, 은행, 가계와 같은 집단들의 위상과 행위를 변화시켰다. 국가는 국공채 금리 조절과 재정 회계를 따라 움직이는 또 다른 시장 참여자가 됐으며,공공정책, 사회복지정책은 시장 변동과 사회적∙산업적∙사회적 살림살이 사이의 완충망이 아니라 시장 변동의 충격을 살림살이에 고스란히 전달하는 전동장치가 됐다. 기업은 시장의 변동에 따라 자산을 매매하고 비용을 조정하는 —대표적인 비용 조정 대상은 노동 비용이다— 자본시장 투자자가 됐으며, 은행은 산업적 자금 배분을 수행하는 집단에서 계산된 리스크와 수익성을 따라 움직이는 투자자로 변화했다. 가계 역시 보험, 연금,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로유지되는 투자 단위가 됐다. 기후, 범죄, 은퇴 후의 삶, 사람의 몸과 같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수많은 요소들이 금융투자 상품으로 변모했고, 사회 전체는 시장, 특히자산이 거래되는 자본시장의 움직임에 종속되기 시작했다.

사회의 복원

현재 신자유주의 체제는 기나긴 변환의 초입으로 들어선 것으로 보이지만, 그 변환의 기간이 얼마나 될지, 변화의 방향이 어떤 것일지, 그 깊이는 얼마나 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장기적인 변환의 큰 방향에 있어서 인간이 능동적으로 창조해 나가야 할 질서에 대해 폴라니의 기획은 어떤 혜안을 던져줄 수 있을까? 폴라니에 따르면, 가치 평가는 초역사적이고 자연적인 원천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사회가 지향하는 특수한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 특정한 사회적 자원이나 인간 행위는 해당 사회의 목적에 얼마나 기여하느냐에 따라 가치 평가될 수밖에 없으며, 사회는 사회의 목적에 맞는 가치의 할당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방법과 체계를 고안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 평가 또한 이윤 혹은 자산의 증식이라는 목적에 기초하여 평가되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이러한‘역사성-사회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 평가가 무목적성, 자연성이라는 환상은 오직 시장과 같은 특수한 제도가 특권화되고 자연화된 결과의 소산일 뿐이다.

그렇다면 시장이냐 국가냐의 이분법은 새로운 질서를 상상하기 위한 적합한 틀이 아니다. 폴라니가 보기에 사회는 언제나‘전체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는 특수한 동기나 특수한 기능들로 환원될 수 없다. 시장과 국가를 대립시켜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특수한 기능을 표현하고 있는 특정한 제도들을 특권화하는 시도일 뿐이다. 시장 경제의 모델은 소비자로서의 인간의 삶의 측면들을 제도적으로 특권화한 것이고, 국가중심의 명령경제의 모델은 생산자로서의 인간 삶을 제도적으로 특권화한 것일 뿐이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발견되는 사회의 통합 형태는 단일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진화과정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중 어느 하나의 제도 형식을 중심으로 전체적 인간 삶을‘조직’하고자 한다면 그 결과는 인간과 사회 전체의 황폐화를 초래할 뿐이다. 폴라니의 기획은 언제나 사회 자체를 최대한 온전하게 드러내고, 전체로서의 사회를 복원시키는 것에 있었다. 제도나 절차는 사회의 목적과 인간에 대한 상상에 종속되어야 하며, 언제나‘사회란 무엇이고 인간의 살림살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열려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도록 고안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변환의 시기,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은 언제나 폴라니를 포함하여 과거 어느 시대 사람의 몫도 아니요, 미래 후손의 몫도 아니다. 우리시대의 몫이다. 수많은 수학적 가치평가와 금융공학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환상 속에서 한참을 헤매고 난 지금, 사회가 무엇이고 인간의 살림살이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어야 한다는 폴라니의 한마디는 꽤 주의깊게 들어야할 목소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