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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16호] 구제역과 조류독감을 둘러싼 사회경제학



이은경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한파 및 물가 폭등과 더불어 새해 벽두를 장식하고 있는 뉴스는 구제역으로 인한 소돼지의 살처분 광경과 고병원성 조류독감 및 신종플루의 재유행이다. 이러한 이슈들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나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중요한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상대적으로 북반구에 한파가 몰아치고 북반구의 여름과 남반구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환경파괴로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변화는 세계 농업생산량에 영향을 미쳐 곡물가 상승을 낳고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작년부터 이어진 기후변동과 4대강 공사 등은 농산물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고 이는 바로 물가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전염병의 재출현

전염병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염이란 두 개체가 만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새로운 장소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개체군과 만나면서 전염병을 얻었다. 습지를 개간하는 과정에서 말라리아를 얻었으며, 가축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결핵, 홍역, 천연두, 에이즈와 같은 동물유래 질병과 인플루엔자, 광우병, 탄저병 등과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을 얻었다. 인류는 이러한 희생을 통해 전염병과 생물학적 균형을 이루면서 현재의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대량 희생 이후 새로운 인구집단과의 대규모 만남은 없었고, 짧은 시간이나마 어느 정도 면역학적 균형이 이루어진 평화의 시대가 왔다. 하지만 전염병을 완전히 극복한 듯 보인 시기는 20세기 초반에 불과하다. 현재 지나친 환경개발과 생태계의 변화 등 인간의 활동이 야기한,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통해 이루어진 안정적인 균형이 급속히 깨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습지의 개발과 가축생산의 변화 같은 인위적인 생태계 변화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온 바이러스의 적응도를 뒤흔들어 다양한 종을 넘나드는 바이러스 변이를 촉발시키고 있다.

병원체 변이는 전 세계적 규모로 벌어지는 농축산물 생산방식의 변화가 야기한 새로운 자연환경에 병원체가 적응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전염병시대』의 저자 폴 이왈드는 병원체가 진화하는 과정을 진화생태적 관점으로 볼 것을 주문한다. 병원체의 변이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진화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염된 물과 집단생활이 확산되면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선택적으로 번식하게 되고, 독한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면 항생제에 독성있는 병원체가 진화한다.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나 고농도의 항생제를 칵테일해서 치유해야하는 다제내성결핵 등의 출현은 이를 증명한다. 『조류독감』의 저자 마이크 데이비스 또한 조류독감의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밀집된 환경 하에서 대규모 역병으로 발전할 기회를 얻는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는 대규모 가공공장 주변에 가금류 농장들이 조밀하게 위치하는 사육 형태를 갖는 현대의 축산업 혁명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가금류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돼지의 경우는 더욱 큰 규모의 공장에서 키워지고 있는데, 돼지가 특히 문제인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돼지의 호흡기에서 바이러스의 재조합이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돼지의 호흡기에는 인간독감 바이러스, 조류독감 바이러스,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모두 결합할 수 있는 수용체가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뒤섞이는 혼합용기로 불려왔다.

이처럼 사라진 것으로 보였던 전염병이 새롭게 유행하는 배경에는 육류소비의 증가와 이를 가능하게 했던 축산업의 변화가 있다. 전 세계 육류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 육류로 바뀌고 있고 그 추세는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확산되면서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3억 명이 축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며, 지구 농업생산량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육류소비는 1980년 이후 본격화된 공장식 축산업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공장식 축산업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다는 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동일한 조건 하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해내기 위하여 밀집 사육 환경을 선택한다. 높은 생산성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동물의 자연적인 습성은 무시된다. 성장 환경의 부적합성, 신체 훼손, 질병 등으로 질병의 발생 가능성과 확산 속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 사육되는 가축들은 많은 양의 항생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염병과 사회경제학

전염병 발생의 근저에는 우리시대의 사회경제학이 숨어있다. 공장식 축산업 발전의 배경에는 식품가격의 하락과 신자유주의 발전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가 번영을 누리는 배경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저렴한 기초재 상품의 출현이 있었다. 특히 80년대부터 먹을거리의 소비자 가격은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는데, 이는 낮은 임금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를 도식화 하면, ‘경제성장을 통한 동물성 단백질 섭취의 증가 및 값싼 농산물 가격의 유지→사료용 곡물 재배 증가 및 곡물시장 불안정 확대→공장식 축산업 확대→취약한 사육환경과 집단화로 인한 바이러스 변이→전염병 발생→사료와 곡물, 축산물 유통의 증가→전염병의 대규모 유행’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얼마 전 대형마트의 치킨 판매로 논란이 된 먹을거리의 원가논란을 보자. 값싼 치킨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싼 가격으로 닭을 공급하는 생산시스템을 요구한다. 즉 저가의 병아리 공급, 대규모 사육환경, 값싼 사료, 빠른 성장을 위한 항생제 및 화학물질 투여, 농장과 가공공장에서 일하는 값싼 노동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병아리와 사료, 약과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집단이다. 현재는 이 전체를 케겔과 몬산토 등과 같은 다국적 식품기업이 장악하고 있고 제약회사도 한 몫하고 있다. 생산하는 항생제의 40%가 가축에게 사용되는 것이며,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하면 백신과 치료제가 판매된다. 또한 이런 원자재들이 값싸게 이동할 수 있는 운송체계가 필요하다. 옆집에서 기르는 닭을 좀 더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하기보다 수만키로를 날라오더라도 생산비가 더 싼 닭을 선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환경파괴와 먹을거리 안전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 부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와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저임금이 있어야 한다.

다국적 제약회사와 식품기업의 메커니즘을 보다 자세히 뜯어보자. 이들 대부분은 석유에 기반을 두고 있는 화학기업에서 출발했다. 이들이 다루고 있는 품목은 종자, 농약, 비료, 육종과 같은 원자재와 약품, 독극물 등 화학제품, 그리고 가공, 유통, 판매 등 건강과 먹을거리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이다. 대부분은 제약회사를 겸하거나 합작형태를 취하고 있으면서 한쪽으로는 신약개발을, 다른 쪽으로는 살충제, 독극물을 생산하고 있다. 생물종에 대한 대부분의 특허권을 갖고 있어 농사를 짓든, 가축을 기르든 대부분의 수익은 기업들에게 돌아간다. 생산가격을 낮추기 위해 대규모 단일환금작물 농장과 가축농장을 운영하고 가공을 거쳐 전 세계에 판다. 대규모 환금작물을 재배하는 지역(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저개발국가)은 환경이 파괴되고 식량자급율이 떨어져 약간의 사회불안정에도 매우 취약해진다. 취약해진 사회경제적 환경은 전염병발생의 원인이 되고 전 세계에 유통되는 먹을거리는 전염병 전달의 통로가 된다. 급기야 전염병이 대규모로 발생하면 이번엔 치료제와 백신을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전염병이 사그라들면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에 기금을 유치하고 국가별로 치료제를 비축하라고 권고한다. 그 와중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곤지역은 진전되는 사막화와 창궐하는 전염병으로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전염병과 불안정 사회

이렇듯 먹을거리의 생산과 전염병의 발생, 사회경제시스템은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환경파괴와 전염병의 문제는 일방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물론 안정적인 검역시스템과 튼튼한 공중보건시스템이 존재하는 선진국은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미약할 수 있다. 하지만 전염병은 역치가 있다. 치명적 독성이 진화하는 방향으로의 변이와 한순간의 실수, 사회시스템의 혼란은 언제든지 전세계적 규모의 전염병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일본 지진참사를 보더라도 아무리 잘 구축된 사회시스템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무력하다. 이미 동물과 식물의 전염병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외부효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존재하더라도 미약한 영향으로 치부하고 시장이 활성화되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사기로 점철된 거품키우기로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초래되었고 그러한 번영을 뒷받침한 먹을거리 생산방식은 경제 불안정성을 극대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심각한 전염병의 발생으로 인한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생산방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자연의 불안정성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인류의 합리적인 사회운영이 더욱 절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