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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116호] 중동과 민주주의: 중동아랍이슬람 지역 ‘민주화 나비효과’의 일반성과 특수성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의 소도시에서 발생한 과일 노점상이자 ‘중동의 전태일’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 사건으로 촉발된 민주화 혁명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학자들이나 언론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민주화 도미노’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민주화 나비효과’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튀니지에서의 한 청년실업자의 날갯짓이 중동아랍이슬람 국가들 뿐 아니라 세계 모든 권위주의 정권에게 ‘민주화 폭풍’으로 확산되고 있고, 각국 상황에 따라 리더쉽 변동(leadership change) 및 정권 변동(regime change), 나아가 정치경제체제 변동(structural change)까지도 예측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동아랍이슬람 지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이 ‘민주화 혁명’의 특징과 함의는 무엇인가? 그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면, 민주주의의 일반성과 정치경제적·지역적·문화적·종교종파적 특수성이 혼재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민주화 혁명의 일반성

중동아랍이슬람 지역에서의 민주화 시위 및 혁명은 기본적으로 자유와 평등에 기반하고 있다. 시위 과정에서 국민주권 및 참여의 확대, 권력 분립에 의한 견제와 균형, 각종 자유권 요구, 생존권 및 복지확대 요구 등 민주주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요구와 일부 수용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 중동아랍이슬람 국가들에서 발생한 민주화 혁명의 일반적 특징을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되어 왔던 경제 모순이 폭발하는 현상을 보여주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 알제리와 같은 공화정 국가의 경우, 빈곤의 문제, 특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절대빈곤층, 청년 실업의 문제가 시민혁명을 촉발시키고 있다. 일종의 ‘빵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1인당 GDP가 세계 최고 수준인 석유 부국인 왕정 국가(oil-rentier state)에서의 민주화 혁명의 특징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둘째, 왕정은 물론이고 공화정에서의 장기 권위주위 정권에 대한 염증이 경제적 빈곤 문제나 종파적, 부족적 요인과 결합되면서 특정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셋째, 중동아랍이슬람사회의 청년들에게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사이버공간을 통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및 알-자지라와 같은 위성텔레비젼이 시민혁명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인터넷 보급과 1인 미디어 역할을 하는 SNS는 민주화 혁명 이후에도 세대 간, 성 간, 자본-노동 간 갈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넷째,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 기존의 공화정 독재정권, 왕정국가의 왕가를 일방적으로 지원해 왔으나, 민주화와 개혁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변화했다. 부시정부는 2003년 ‘확대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구상(BMENAI, The Broader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Initiative)’을 통해서, 서유럽 국가들은 프랑스의 주도로 1990년대 초에 출범한 환지중해협력구상인 ‘바르셀로나 프로세스’를 통해서 민주화 개혁을 유도해 왔다. 이번 민주화 혁명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정책은 ‘정부와 시위대 모두의 비폭력과 정부의 민주 개혁’이었다.

그러나 중동아랍이슬람 지역 민주화 혁명은 몇 가지 정치경제적, 지역적, 문화적, 종교․종파적 특수성으로 인해서 민주화 왜곡현상, 즉 강력한 반동 및 반혁명, 내전, 외세 개입 상황으로 변질되고 있다. 중동아랍이슬람 지역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상들은 크게 아싸비야(asabiyya) 부족적 집단정체성, 움마(Ummah) 이슬람 종교 정체성, 그리고 지대추구경제(rentier economy) 정체성 등으로 설명된다. 이 지역 주민들 각 개인과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 속에는 이러한 정체성들이 혼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치지도자들은 정치발전 및 경제발전 정책, 자신의 입지, 소통 방식, 그리고 이번 민주화 혁명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 특정 정체성들을 더 강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다양한 정체성으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크고 작은 다양한 갈등선이 형성되어 있고, 그것은 민주 변혁의 시기에 민주화를 왜곡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아직도 중동에서는 국가 건설(nation-state building) 중이라고 주장한다.

중동아랍이슬람의 특수성

이 특수성들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첫째, 움마 정체성, 즉 이슬람과 이슬람 종파가 민주화 혁명을 왜곡시키고 있다. 공화정이든 왕정이든 관계없이 중동아랍이슬람 지역 국가들의 헌법은 이슬람을 국교로 규정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샤리아(이슬람법)를 국가의 기본법이자 기본 이념으로 하는 이슬람국가(Islamic State)를 지향하고 있고, 일부 국가는 세속적이지만 이슬람을 중요한 기반으로 하는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예컨대, 1992년 제정된 사우디아라비아 헌법 제1조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이슬람을 종교로 하는(국교로 하는) 아랍이슬람 주권국가이다. 神書(신의 책, Quran)와 예언자의 순나가 사우디의 헌법이다.”라고 되어있다. 헌법 위에 최고 기본법인 코란과 순나가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무슬림형제단, 헤즈발라, 하마스, 알 카에다와 같은 정치이슬람(political Islam) 세력들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온건화되고 있지만 예외 없이 ‘이슬람국가’ 건설을 투쟁의 최종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번 중동의 민주화 과정에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리비아의 알 카에다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걸프지역의 시아파 시위대들에게 영향을 미쳐 국제적인 종파 간 분쟁 양상이 빚어진 것은 그 한 예이다.

둘째, 아싸비야 정체성, 즉 부족주의가 민주화를 왜곡시키고 있다. 중동 아랍이슬람 지역 국가들에는 아직도 부족주의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정치세력화 되어있다. 그것은 아직도 국가 건설 중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국가 위기 시 생명과 재산의 안정을 부족에 의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부족주의는 국민형성 및 국가통합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리비아에도 140여개의 크고 작은 부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근대화·도시화 과정에서 부족주의가 많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화 과정에서 친가다피 부족과 반가다피 부족으로 분리되어 전쟁을 하고 있고, 베르베르 부족 연대 움직임이 있었으며, 가다피에 충성하는 부족 군대가 가다피를 돕기 위해 트리폴리로 모여드는 등 부족주의 현상이 있었다. 바아스당 이념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했던 이라크 후세인과 마찬가지로 샤리아, 사회주의, 인민주권의 직접민주주의를 통치이념으로 채택했던 가다피도 부족주의, 종파주의를 일소하겠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기 위해 가끔 부족주의를 이용하기도 했다.

셋째, 지대추구 정치경제체제(rentier economy, rentier state)가 민주화를 왜곡시키고 있다. 이집트와 리비아 등 권위주의 공화정과 마찬가지로 걸프지역 왕정국가들은 지대추구 정치경제체제이다. 특히 공화정 국가인 리비아, 이라크, 신정국가인 이란, 왕정국가인 걸프협력위원회 소속 6개국은 석유지대국가이다. 석유 수입이 전체 국가재정의 80% 이상을 담당하기 때문에 민주화 과정에서 각 부족, 각 종파, 각 국가들은 석유매장지역과 정유시설이 있는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혈전을 벌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1인당 GDP가 2000~8000$에서 민주적 정치변동이 일어나지만, 2010년 경제현황을 보면, 리비아 12000$, 사우디, 오만, 바레인, 쿠웨이트가 15000$ 이상이며, UAE가 45000$ 이상, 카타르가 75000$ 이상인 것으로 보아 이들 나라에서의 민주화 혁명은 석유 특수성, 부족 특수성, 종파 특수성 때문으로 해석된다.

민주화 나비효과를 기대하며

 이처럼 중동의 민주화 대변혁은 그 일반성과 특수성으로 인해서 각 국가 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고 민주화 왜곡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중동의 ‘민주화 나비효과’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세계적 관심사이다. 한편으로 중동의 민주화 혁명에 ‘시민의식’이 축적된 ‘시민 민주화 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아직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동지역 국가들의 국민들이 경험을 통해 획득한 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 될 것이다. 빵과 자유를 박탈당한 한 젊은이의 분신자살이 중동아랍이슬람 지역 정권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전 세계 권위주의 정권들에게 ‘민주화 나비효과’로 퍼져나갈 것으로 예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