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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17호] 나는 대학원생이다...어느 대학원생의 하루

기대와 현실의 간극에 대한 보고서

글 서지

8:00 am
시끄럽게 알람소리가 울리자마자, 해야 할 일들이 뒤엉켜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조교 근무, 수업 관리, 세미나 참석과 다음 주 학과 행사 준비, 프로젝트 관련 진행사항들과 조모임, 무엇보다 공부를 위해 읽어야 하는 수업교재까지. 일의 종류와 때 그리고 장소가 워낙 다양해서 매일 맞이하는 아침인데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어지럽다. 정신을 추스르고 몸을 일으킨다.

9:00 AM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가방에 온갖 것을 쑤셔 넣고 집을 나섰다. 조금 뭉그적거린 탓에 조교 담당 수업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비록 내가 듣는 수업은 빠질지언정, 담당하는 수업은 빠질 수가 없는 노릇이다. 마이크에 PPT에 수업 준비도 해드려야 하고 학생 출결도 체크해야 하는데, 누가 내 대신 해주겠는가. 지난 봄 알람이 울리지 않아 수업이 임박해 눈을 떴을 때는 하늘이 노래질 뻔 했다. 초인적인 힘으로 달려와 고장 난 마이크를 교체하고 수정되지 않은 좌석표로 겨우 체크하던 그 날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날이다. 

다른 특수 대학원에 다니는 학우의 얘기를 들어보니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학비를 마련하고자 하는 마음에 근무를 시작했다가, 긴 근무가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되어 정작 야간 수업시간에는 졸고 있는 자신을 보자니 대체 공부를 하러 학교에 온 건지 일하러 온 건지 구분이 안 간다는 말에 내 가슴이 답답했다.

11:30 AM 
잠시 짬을 내 친구와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아든다. 학부생과 연애를 하는 친구 녀석은 겨우 10학점도 안 들으면서 왜 더 바쁜체하느냐고 핀잔을 듣는단다. 학점의 양만큼 부담도 비례해서 적다면 얼마나 여유롭겠느냐며 낄낄대본다. 이해할 수 없이 바쁜 대학원생하고 애인하느라 힘들 테니 잘해주라고 한마디 하고 시간을 보니 어느덧 근무하러 가야할 시간이다. 

대학원으로 걸려오는 수많은 문의 전화 중 이런 전화를 받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이 분명 한숨부터 내쉴 것이다. “대학원은 수업 적게 들으니 직장 다니면서 가능하겠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도시락 싸들고 가서 말리고 싶어진다. 

“조교님, 이건 이렇게 처리하면 안 되지 않나요?” 오늘도 부러울 만큼 당당하게 수업과 관련해 문의하는 학생이 찾아왔다. 대학교에는 배우는 학생과 가르치는 교수가 있고 일하는 교직원이 있다. 하지만 대학원생은 이 모두에 속하면서도 사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 존재한다. 근무를 하는 노동자이면서, 수업을 듣는 학생이면서, 강의를 하기도 하는  대학원생은 어느 집합에 속해 권리를 주장해야 할까? 어디서 들은 바로는 외국엔 대학원생 노조도 있다던데 말 그대로 먼 나라 이야기다.

3:00 PM
어제 밤새 검토한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마음에 차지 않는 발제문을 출력해 교실로 향한다. 수도 없이 했으니 이제 적응할 때도 되었건만, 아무리 해도 언제나 긴장되는 게 발제다. 열심히 원서를 해석해서 준비한 발제를 하다보면 가끔은 스스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한참을 걸어 산 중턱에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평지에서 맴돌다가 미로의 원점으로 돌아온 것을 알게 된 것과 같은 심정 말이다. 

1학기 때 들었던 말, “학부 때는 뭔가 아는 것처럼 느끼다가 석사 때는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박사 때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된다’는 얘기가 공부할수록 왜 이렇게 뼈저리게 느껴지는지. 나는 분명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왔다고 믿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같은 것이 맞는 것일까? 이 블랙홀과 같이 넓고 무서운 학문의 길에서 나는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좀 더 깊이 공부해보겠다던, 뭔가를 이뤄보겠다던 처음의 포부는 길을 헤매던 중 어디에다 흘리고 왔는지 모르겠다.

6:20 PM
수업을 마치고 담배를 물던 차에, 휴대폰이 울린다. 어머니의 전화다. 그러고 보니 집에 전화한지도 꽤 오래돼서 아차 싶다. 밥은 잘 먹느냐, 몸 상하지 않게 잘 챙겨라, 공부는 잘 돼가니, 길지 않은 몇 마디에 염려가 묻어난다. 독립해서 용돈을 가져다 드려야 할 나이에 아직도 학비를 들이고 있는 자식이라 죄송한 마음 가득하지만 차마 그 말을 내뱉을 수 없다.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그래도 꼭 공부가 하고 싶다면 해보라고 믿어주신 부모님이니까. 죄송하다고 말할수록 더욱 죄송해진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언젠가부터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으시는 부모님도 어쩌면 같은 마음이신 것 같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짧은 통화를 끝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욱 강해지던 의지가 반대로 나를 철석같이 믿어주는 부모님 앞에서는 작아지는 것 같다. 

피곤하지만 책이 잔뜩 쌓인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아본다. 두 시간쯤 앉아있었나. 유난히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같은 문장에서 몇 번이고 맴돈다. 이런 머리로 무슨 용기가 있어 공부를 더 하겠다고 나섰는지 헛웃음이 난다. 오늘은 발제도 죽 쑨 탓인지 기분이 영 개운치 않다. 이대로 집에 가면 너무 갑갑할 것 같은 날이다. 다시 울리는 휴대폰을 보니 간간히 연락하고 지내던 동창 녀석이 저녁에 얼굴이나 보자는 메시지가 뜬다.
 
“전화기 너머로 ‘공부는 잘 돼가니’라고 물으시던 어머니 목소리가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부서진다.”

9:40 PM
친구의 얼굴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 딸아이의 돌잔치 때 보고 처음인 듯싶다. 아이들을 키우며 드는 부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등에 ‘그래, 그렇지, 요즘 어딜 가나 다 어렵지.’ 하고 맞장구를 치다보니 어느덧 술잔을 제법 비웠다. 학창 시절 추억은 껄껄 웃으며 나누다가도 CMA, 주택청약, 재테크 등의 단어가 흘러나오면 어느새 할 말이 줄어든다. 학교에서 일해서 버는 수입은 학비를 충당하는데 쓰일 뿐 재테크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니, 부럽다. 나도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하는 친구의 농 섞인 한마디에 술의 뒷맛이 쓰다.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돌아왔는데, 과연 무엇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 내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갈수록 흐려지고 있는 탓이다.

언제나 그렇듯 대화 말미에 우리가 벌써 몇 살인지, 학창시절로부터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헤아리다 보니 새삼 시간의 무서움에 고개를 젓게 된다. 책 한 권 볼 때는 그렇게도 안 가던 시간이, 한 달 단위로, 계절 단위로는 쏜살같이 날아가 버리는 모양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겪는 고충, 그럼에도 여전히 믿고 싶은 그 ‘어떤 것’ 에 대한 열변과 성토는 언제나 끊이지 않는 안주가 된다. 술이 거하게 들어가자 친구는 네 놈이 이렇게 오래 공부할 줄은 몰랐다며 웃더니, 대학원 다니면서도 취업자리 알아봐 달라던 놈이 용케도 버틴다고 소리를 지른다.

전화기 너머로 ‘공부는 잘 돼가니’라고 물으시던 어머니 목소리가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부서진다.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서는 몽롱한 정신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 아, 내일 아침 수업 교제 다 못 읽었는데... 잠시나마 풀어졌던 머리가 또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2:00 am
잠자리에 눕는다. 일어나면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있겠지만 잠들기 전 5분 만이라도 하루를 되돌아본다. 낯간지러운 청춘예찬은 그만 두자. 다만 하루하루 버티어내는 인내만큼은 잡아두자. 그래 피로가 적이다. 지치지 말자... 말자...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