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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29호]다시 읽는 『프랑켄슈타인』: "모던 프로메테우스"와 여성의 생명 창조력


다시 읽는 『프랑켄슈타인』: “모던 프로메테우스”와 여성의 생명 창조력


손현주_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그 악몽과 현실

프랑켄슈타인은 현대과학과 기계문명의 도래와 함께 우리의 의식에 깃든 악몽이다. 자연을 벗어나 인간의 힘으로 인조인간을 창조하는 것, 생명의 신비를 캐내고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 그것은 인류의 오랜 욕망과 죄의식, 두려움이 뒤섞인 꿈이다. 메리 셸리가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이제 우리 의식 속에 하나의 신화로 자리 잡았다. 여성의 몸을 통한 출산을 배제하고, 과학의 힘으로 인간을 창조한다는 이야기 자체는 인류의 지난한 꿈을 형상화한 것인 동시에 과학적 지식과 기술문명이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한 19세기 초의 사회상과 문화 인식, 무의식을 함께 반영하고 있다. 문명이 과학의 이름으로 자연을 길들이고 정복해 나가던 당시 문명과 자연의 이항대립 구조적 인식에서 과학적 지식의 왜곡된 적용이 낳을 수 있는 끔찍한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창조한 괴물의 이야기는 인류 문명의 어두운 이면의 불안을 단적으로 응축시켜 보여주는 어둠 속 악몽의 핵심이다.

유전공학, 생명공학, 기계공학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이제 여성의 출산을 배제한 인공적 생명창조가 더 이상 공상과학소설 속의 허구가 아닌 현실이 된 요즈음 프랑켄슈타인은 이제 더 이상 악몽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현실이 되었다. 로봇과 인공장기가 생산되어 실생활에 이용되고 인공수정을 넘어서, 인간복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해 졌다. 그리고 사이버공간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오늘날, 이백년 전 탄생한 프랑켄슈타인은 무서운 악몽 속의 괴물이기 보다는 사이버 공간이나 영화 속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캐릭터가 되었다. 인류는 이미 인조인간의 창조가 가능해질 만큼 자연에 드리워진 신비의 베일을 벗겨버렸고, 문명과 자연의 경계 자체가 희미해진 시대에 들어선 지금, 이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우리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수사적 틀을 제공해 준다. 프랑켄슈타인이 그토록 알고자 갈망했던 생명창조의 비밀, 즉, 여성의 신체가 지닌 임신과 출산이라는 엄청난 마법의 힘을 과학을 통해 파헤치고 정복하길 꿈꾸었던 초기 과학시대에 그려진 악몽의 한 자락을 통해 문명과 자연, 남성적 지성과 여성의 생식력, 과학의 힘과 임신 출산이라는 원초적 생명력의 대립과 그러한 이항 대립이 우리 문명의 인식 속에서 어떻게 서로 충돌하고 전복되어 왔는지를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초 18세 소녀가 쓴 이 소설은 신의 영역인 생명창조에 도전하는 젊은 과학자가 마침내 인조인간을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무서운 괴물의 모습을 한 인조인간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비극적 파국을 맞게 되는 이야기이다. 당시 유행하던 고딕소설풍의 공포물이자 과학의 힘과 그 위험성을 다루는 최초의 공상과학소설이기도하다. 이 작품은 신의 창조에 도전하는 무모한 인간의 야심과 몰락,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경고, 억압된 인간 욕망의 표출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어왔다. 인간을 창조한다는 원초적 우주적 테마는 이 작품의 부제, “모던 프로메테우스”로 부각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벌로 카우카소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영벌을 받았다는 신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프로메테우스는 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이기도 하다. 신화에서 불은 신들의 것으로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금단의 영역에 속한다. 신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온 생명창조에 도전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을 창조하고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이 한계에 도전하는 영웅적 인물이기도 하다.

“모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에 비추어 볼 때 모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 창조를 시도하고, 생명의 불꽃이라는 금단의 지식에 도전하는 과학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과정을 배제하고 인간의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 인간을 창조하려는 시도는 과학적 지식과 기술문명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그 핵심에 있는 “생명의 불꽃,” 즉 여성의 신체가 가진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명 창조의 신비를 알아내 전지전능한 힘을 갖고자하는 서구 문명의 남성적 욕망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자연을 분석하고 통제하고 지배해야할 대상으로 보았던 17-18세기 과학자들이, 임신과 출산을 통해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성 또한 자연과 같은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드러내 준다. 실제로 여성은 종종 자연과 동의어로 통용되기도 한다. 어머니 대자연, 혹은 어머니인 대지라는 표현은 자연과 여성, 특히 모성을 동일시하는 문화적 사고의 표현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듯이 여성 또한 정복의 대상이며, 생명창조의 신비가 깃든 여성의 몸은 “생명의 불꽃”을 손에 넣으려는 18세기 이후 근대과학이 도달하고자하는 궁극의 목표이자 프로메테우스적 야망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대상이다.

『프랑켄슈타인』에서 셸리는 과학과 지식에 기초한 생명창조의 과정을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근거로 하여 여성의 임신 출산에 비유하여 서술하고 있다. 셸리가 경험한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자전적 요소들은 작품전체를 아우르는 셸리 특유의 언어를 지지해주는 틀을 제공해 준다. 남성 과학자가 과학적 지식을 통해 여성을 대신해 생명을 탄생시키려 시도하는 반면에, 여성인 셸리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어온 글쓰기를 통한 창조에 도전한다. 그리고 그 글이 남성의 생명창조에 대한 도전에 관한 것이라는 이러한 전복적인 성 역할의 역전은 이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Richard Rothwell, portrait of Mary Shelley, 1840.


『프랑켄슈타인』, 생명창조, 임신 출산이야기

셸리 자신의 임신과 출산, 사산, 그리고 아이를 양육한 경험이 괴물의 창조와 성장, 그리고 괴물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묘사하는 과정에 투사되어 나타난다. 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한 1816년 6월 18세의 셸리는 두 아이를 출산했고, 그 중 첫 아이를 잃었고 둘째는 생후 6개월이었다. 더구나 어머니 울스턴크래프트가 셸리를 낳은 지 열흘 만에 산욕열로 사망하여 친모를 잃은 셸리에게 출산은 죽음의 공포와 맞물려 있는 사건이었다. 임신과 출산, 죽음은 젊은 셸리의 생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사건들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은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이 인간을 창조하려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여 이 이야기는 무엇보다 “출산”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설 속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창조했고 악명 높은 모던 프로메테우스인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해 냈다. 그리고 두 프로메테우스는 그 창조의 결과로 고통과 벌을 받게 된다. 전설의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을 능멸한 벌을, 모던 프로메테우스는 자연을 능멸한 벌을. 프랑켄슈타인이 금단의 지식에 손을 댄 결과는 죽음이다.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양가적 시각을 보여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절대적 지식을 좇아 북극을 탐험하는 월튼선장과 생명창조의 비밀을 캐내려 한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전형적인 프로메테우스적 영웅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이들은 자연과 문명, 여성과 남성의 이항대립 구조에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이성과 지식으로 여성의 고유한 임신과 출산을 통한 생명창조의 힘, 자연이 가진 최고의 비밀을 얻어내려 했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생명창조를 위해 찾아든 곳은 죽음이 거하는 무덤이다. 한 밤중에 어둠을 틈타 금지된 과학의 비술을 추구하여 부패되지 않은 시신을 찾아 묘지를 드나들고, 그렇게 얻은 시신 조각들을 조합하여 생명의 불꽃을 불어넣을 신체를 만들어 간다. 이 과정을 셸리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담론에 쓰이는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여성의 자궁(womb) 대신 무덤(tomb)에서 생명을 키우는 병렬적 구조를 완성해 낸다. 또한 남성 주인공으로 하여금 여성대신 임신과 같은 생명 창조의 과정을 겪게 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대립 항을 무너뜨린다. 사실 임신상태는 그 자체로서 이항대립에 대한 전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쥴리아 크리스테바는 「여성의 시간」(“Women's Time”)에서 임신을 “신체는 배로 증가하고, 자아와 타자가, 자연과 의식이, 육체성과 언어가 공존하는” 상태라고 묘사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통용되어온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항 대립이 공존하고 혼재되어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즉, 자연과 의식(이성과 지식), 신체와 정신, 생명과 죽음의 대립이 무너지는 현장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생명창조 과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풀어보며, 괴물의 신체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프랑켄슈타인은 무덤을 뒤져 몰래 가져온 신체부분들을 조합하여, 거기에 (완전하지 못하지만) 지식탐구의 결과로 얻어낸 “생명의 불꽃”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삶과 죽음, 남성성과 여성성, 자연과 인간의 인식이 함께 얽혀 있다는 점에서 여성의 신체가 경험하는 임신상태와 유사하고, 이는 이분법적 대립 항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혼돈이자 탄생의 장이다. 자궁(womb)과 무덤(tomb)의 병치에서 드러나듯이 생명의 탄생은 죽음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신화는 어머니인 자연과 이를 정복하고 문명의 경계를 넓혀가려는 근대 서구 문명의 첨병인 과학적 지식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했고, 이 이야기는 여성의 생식기능을 자연에서 떼어내어 문명으로 전유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실패하는지를, 그리고 그 실패가 처음부터 시도 자체에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에 기반을 둔 기계문명이 자연의 심연에 가려져있는 생명의 불꽃을 획득하여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깃든 마법의 힘을 취하려 할 때 일어나는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지점에서 탄생한 근대인의 악몽, 『프랑켄슈타인』은 이제 자연을 떠나 문명 속에 안주한 현대인들에게는 더 이상 악몽이 아니라 영화와 만화, 게임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캐릭터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문명의 확장으로 자연과 문명의 경계가 흐려지고 인간창조가 신화가 아닌 현실이 된 지금, 문명의 건강성을 위해 우리는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꾼다. 비록 우리가 꿈꾸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거친 자연이 아니라 길들여진 자연일 지라도.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인공지능이나 사이버현실 등으로 모습을 바꾸어 자연과 문명,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위험한 상황을 경고하며 아직도 우리의 깊은 잠 속에 출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