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133호] 주민등록제도와 총체적 감시사회


주민등록제도와 총체적 감시사회


홍성태_상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감시사회: 신체 감시와 자료 감시

모든 근대 사회는 ‘감시사회’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1975)에서 제시했듯이 근대 권력은 사람들에 대한 감시의 전면화와 내면화를 통해 권력의 안정을 추구했다. 근대화와 함께 국가의 감시는 훨씬 더 방대해지고 치밀해졌다. 모든 국민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근대 국가의 성립과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사회학자 데이빗 라이언이 <전자 눈>(1994)에서 적절히 강조했듯이 근대 사회에서 감시는 통치만이 아니라 행정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요컨대 세금을 거두고 군대를 꾸리기 위해서도 근대 국가는 모든 국민을 감시해야 하며, 범죄에 대처하고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서도 근대 국가는 모든 국민을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주권자인 국민의 편에서 보자면 국가의 감시는 언제나 심각한 인권 침해를 일으킬 수 있다. 감시를 둘러싼 국가와 국민의 이런 모순은 근대 사회의 핵심적 특징이다.  

감시는 그 직접적인 대상으로 보았을 때 신체 감시와 자료 감시로 크게 나뉜다. 신체 감시는 말 그대로 사람의 신체를 감시하는 것이고, 자료 감시는 사람이 남긴 자료를 감시하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1936)>라는 영화에서 ‘현대’를 원격 신체 감시의 시대로 묘사했다. 공장에서 사장이 텔레비전 기술을 이용해서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 뒤 조지 오웰은 <1984(1948)>에서 스탈린의 독재를 염두에 두고 국가 권력이 텔레비전 기술을 이용해서 모든 국민에 대한 원격 신체 감시를 행하는 국가를 묘사했다. 이 유명한 영화와 소설이 잘 보여주듯이 신체 감시는 감시의 핵심이며, 곳곳에 설치된 수많은 CCTV는 이런 원격 신체 감시의 상황을 실현했다. 

그러나 오늘날 더 널리 행해지며 더 깊은 정보를 취득하게 해 주는 것은 자료 감시이다. 우리는 매일 여러 물건들을 사고 사람들을 만나는 등의 많은 활동들을 하며 살아간다. 이 활동들은 모두 자료로 전환되어 축척되고 분석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료 감시이다. 정보화의 진척에 따라 이런 자료 감시는 더욱 더 널리 쉽게 행해지게 되었다. 오래 전에 김진균은 ‘스파이 체계’의 개념[각주:1]으로 자료 감시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화의 전척에 따라 ‘스파이 체계’가 전면화-일상화된 상황에서 살고 있다. 그 귀결은 체코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심판(1925)>에서 제시한 것처럼 불가시한 국가 권력의 강화와 개인의 파멸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감시의 문제는 근대화에 내재된 해방과 억압의 이중성을 드러내 보이는 핵심적인 사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이다. 


독재를 위한 국가감시의 산물, 주민등록제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감시의 문제는 상존한다. 독재는 아예 국가의 감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국민들을 세뇌하지만 민주주의 사회는 국가의 감시를 최소화하고 투명화해야 한다. 정보화와 함께 이 과제는 더욱 중요해진다. 먼저 국가의 감시를 최소화하는 것은 국가가 꼭 필요한 범위 안에서 법적 절차에 따라 국민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함께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이 확실히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국가의 감시를 투명화한다는 것은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감시하고 있는가를 국민이 잘 알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보공개제도를 통해 올바로 보장되어야 한다. 

한국은 국가의 감시가 과도할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과 정보공개제도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는 이명박 정권 이후 크게 악화되었다. 여기에는 박정희 독재에 의해 확립된 주민등록제도의 문제가 놓여 있다. 주민등록제도는 크게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표로 이루어져 있다. 정부는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개인정보를 주민등록표로 관리하고 있다. 주민등록증에는 6개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지만, 그  중에서 주민등록번호는 사실 많은 개인정보를 숫자로 바꿔서 담고 있으며, 또한 사진과 지문이라는 극히 중요한 신체 정보가 담겨 있다. 주민등록증 자체가 심각한 인권 침해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실제로 관리하고 있는 개인정보는 무려 141개에 이른다. 이를 이용해서 정부는 국민의 신상을 상세히 감시할 수 있다.  

한국의 주민등록제도에서 가장 위험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고유번호제도, 즉 주민번호제도이다. 오늘날 모든 한국인은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출생신고와 함께 국가로부터 고유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으며, 이 번호를 활용해서 거의 모든 사회생활을 해야 하고, 심지어 죽어서도 이 번호로 관리된다. 한국의 주민등록제도를 초강력 국민감시제도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주민번호이다. 이 제도는 1968년의 ‘1․21사태’를 계기로 주민등록증 제도를 시행하면서 지문날인 제도와 함께 도입되었다. 북한의 특공대에 놀란 박정희 독재는 모든 국민에게 출생과 함께 일련번호를 부여해서 감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정보화와 함께 주민번호의 위험은 더욱 더 커졌다. 예컨대 주민번호가 인터넷 이용의 기반이 되면서 주민번호의 경제적 가치가 엄청나게 커졌다. 이에 따라 주민번호의 불법수집과 불법활용의 문제가 개인정보보호의 핵심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 제도의 특이성과 위험성은 외국과의 비교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주민등록은 본래 자치단체에서 원활한 행정을 위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을 등록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번호는 임의적으로 부여되며, 등록하는 개인정보도 극히 제한되어 있고, 중앙정부는 이 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주민등록 제도는 사실 ‘국민등록제도’이며, 국가가 영구적으로 부여한 주민번호로 대단히 많은 개인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제도이다. 이 중대한 차이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주민등록제도에서 가장 명확한 인권침해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지문날인 제도이다. 한국인은 누구나 만 17세가 되면 동사무소에서 열손가락 지문을 찍어서 제출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것은 명백한 인권침해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모든 국민에게 열손가락 지문의 날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열손가락 지문을 찍어서 국가에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모든 국민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국민을 국가의 주권자로 존중하지 않고 국가를 국민의 보호자로 간주하는 억압적 국가주의의 문제를 무엇보다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런 문제 때문에 주민등록증 제도의 도입에 대해 야당의 반대가 강력하게 펼쳐졌다. 그러자 박정희 독재는 단독국회를 열어 주민등록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편법으로 주민등록증 제도와 열손가락 지문제도를 도입했다. 지문날인 제도는 대단히 심각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것이면서 법적 근거도 없이 단지 시행령만으로 시행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1999년의 10차 개정을 통해 주민등록법의 주민등록증 조항에 ‘지문’이라는 문구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이 잘못의 시정을 회피하고 말았다. 재일동포에 대한 지문날인제도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훨씬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의 지문날인제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상태가 민주화에도 극복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됐던 것이다.


감시의 청산을 위하여

독재 정권이 사라지더라도 독재 정권이 만든 사회체계가 계속 유지되면 결국 독재는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독재 정권의 사회체계는 그 자체로 독재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또한 독재적 주체를 계속 생산해서 결국 독재가 계속 지속되게 한다. 주민등록제도는 독재의 청산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주민등록제도는 우리의 생활 속에 너무나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인의 모든 사회활동은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 때문에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거나 개혁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민주와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도 주민등록제도의 문제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명박 정권의 불법사찰 범죄가 밝혀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모든 사찰은 사람의 존엄성을 파괴할 수 있는 극히 위험한 활동이다. 그런데 박정희 독재의 주민등록제도는 사실 사찰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열손가락 지문과 생년월일을 적시한 주민등록증은 그 단적인 예이다. 불법사찰 범죄의 근간에는 주민등록제도를 통한 사찰의 당연시가 놓여 있다. 이 잘못을 이제 바로잡아야 한다. 

주민등록제도와 정보기술이 결합되면 사찰은 더욱 쉬워진다. 오늘날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정보기술을 이용해서 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정보기술체계는 바로 주민등록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정보기술체계를 이용하는 한국인에 대해서는 누가 어디서 언제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에 대해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독재의 청산이라는 점에서나, 정보위험사회의 문제에 대응한다는 점에서나, 주민등록제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전면적 개혁이 필요하다. 더 이상 이 과제를 미뤄서는 안 된다. 다행히 여러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2011년 3월에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었고, 2012년 4월에 ‘주민번호 수집․이용 최소화 종합대책’이 공표됐다. 그러나 주민등록제도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우리의 현실은 총체적인 인권 침해의 악화를 겪고 있으며, 이에 따라 ‘반민주 독재화’의 우려가 강력히 제기되었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경고했던 초강력 독재자인 ‘빅 브라더’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한국의 주민등록제도야말로 ‘빅 브라더’의 제도이다.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후진국’도 한국처럼 강력한 주민등록제도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반민주적 감시사회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박정희 독재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고안된 주민등록제도를 근원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것은 근대화의 본래적 위험과 정보화의 위험에 올바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제이다. 


*  '주민등록제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분석은 다음 논문들을 참고

- ‘주민등록제도와 총체적 감시사회: 박정희 독재의 구조적 유산’,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9호/2006년 상반기 

- ‘주민등록제도와 일상적 감시사회: 박정희 체계를 넘어서’,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12호/2007년 하반기- ‘유신 독재와 주민등록제도’, <역사비평> 100호/2012년 가을호

  1. 테크놀로지적 사회구조론'(김진균, 1978)에서 제시된 개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