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집

[140호] 도시에서의 삶, 공간의 의미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가장 가까운 것에 대한 관심이다.

내가 마주한 공간에서 의미들은 결코 평범하고 작은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의미있게 만든다.

 

취재 및 편집 양계영

 

 

 

밀집된 도시, 의미의 부재

 

오늘날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도시의 역사성과 전통양식을 보존하면서 쾌적한 문화도시를 만드는 것이라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대의 도시는 사람들의 다양한 인간 활동에 의해 살아 숨 쉬던 곳곳을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모두 획일화하고 있다. 급속한 성장 속에서 업무지구, 상업지구, 주거지구의 형식으로 구역이 나뉘어졌으며, 그에 알맞은 건물들로 외형을 채워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외형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제작하여 인위적으로 채워 넣는 작업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지역의 특성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었다. 결국 한정된 대지조건 속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고층건물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도시는 프로그램의 부재와 경관의 해체 등으로 인해 더 이상 걷고 싶은 거리 혹은 장소로서의 의미를 상실하였다. 단순히 건물을 지탱하기 위한 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 도시 계획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 출신 저널리스트 제인 제이콥스는 이러한 도시의 현상에 대해 언급하며 도시의 생태계가 균형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방법으로다양성을 뽑았다.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따라서 이를 지속할 방향으로활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문화관광부에서 공간문화과를 신설하여 도시 생태속 다양한 문화적 공간의 조성과 관련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건설교통부에서는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를 추진하면서 향후 도시공간정책의 중요한 주제의 하나로문화예술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논의해 볼 수 있는 지점은 과연 문화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조성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에서 형성되는 문화예술활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복합문화가 실현되는 공간, <숨도>

 

대흥역에 내려 서강대 방향으로 올라오다보면, ‘Soom Island’, 숨도라는 이름의 간판이 눈에 띈다. 안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책만 읽는 북카페만의 공간은 아니다. 가능성이 최대한 열려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 최창혁 기획자가 들려주는 운영방식은 이렇다. 문화공간 <숨도>는 작은 전시관이자 누군가의 꿈을 담는 무대로 변신하기도 하며, 미닫이문으로 공간을 나누게 되면극장소우주라는 영화관도 펼쳐진다. 작은 도서관인 책극장도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규칙이 눈에 띈다.자기 계발서는 지양할 것, 그리고 노트북이나 콘센트와 동반 입장은 삼갈 것.

2층으로 올라가면 미소서식지라는 또 다른 기획의 공간이 마주하고 있다. 이곳은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서식지라는 뜻으로, 1인 문화 생태활동가들을 위한 곳이다. 한 달 단위로 큰 테이블과 작업실을 제공하는 이곳은 프리랜서 작가나 건축가 등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둥지를 튼다. 회의실도 마련되어 있어 작업자들 간의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처음에 공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어떤 가치를 정해두게 된다면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독선과 아집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최창혁 기획자의 말에 의하면, 문화공간 <숨도>에는 정해진 공간의 틀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극장 같은 경우, 어느 정도 구획은 있지만 공간을 다 트고도 쓸 수 있다. 때론 천을 걸어 공간을 구분을 짓기도 한다. 사물의 배치 또한 고정적이지 않다. 극장소우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애매모호한 상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상태를 좋아해요. 공간이 작아서 못하는 게 아닌, 작아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탄생하는 것이죠.”언제든 각자의 의미로 변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숨을 쉴 수 있는 섬이자, 서식지로 부른다.

문화적이고 새로운 것을 할 것, 다른 생명들과 어울릴 수 있는 생태적인 것을 할 것. <숨도>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연관되는 키워드는 세 가지이다. 이를 중심으로 강연이나 체험행사, 문학적 오브제 등 다양한 방식을 결합하여 풀어낸다. <못자리>라는 독립예술가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창작공간을 찾는 공연예술가들에게 공간 및 소정의 창작지원비를 지원해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극장소우주에서 연극 <워리맨>의 무대가 열렸으며, 천막극장 안에서 <책 읽어주는 도마뱀>이라는 인형극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작년 12월에 열렸던 숨도 활생프로젝트인 <축축한 살롱> 같은 경우, ‘습지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그냥 강연 형식으로 전달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강연자와 토론이 될 정도의무엇이 있어야 하거든요.”최창혁 기획자는 감각을 깨우는 접근의 필요성을 말하며 결여된 감수성을 무엇으로 깨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느끼는 감정이 잘 없는 것 같아요. 감수성이라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이랑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 안에서 다양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감각하는 사람들 중 특정 군이 예술가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분들이 콘텐츠를 잘 펼칠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어요.”

이어 최창혁 기획자는 이곳이 문화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도시생활을 숨 막혀 하는 사람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숨도> 곳곳에는 반쪽자리곰과 숨어있는 목각인형숨은이’,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책용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인간과 동물, 그리고 상상력을 뜻하는 이 친구들이 풍부하게 융합되는 서식지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 날 사람들이쉴 곳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10년 전 서강대만 하더라도 잔디밭이 존재했고, 건물들도 그리 빡빡하지 않았어요. 앉아서 쉬는 공간이 있었죠. 그런데 오늘 날 그런 공간이 사라졌을 때, 단순히 그 공간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을 서식지로 삼고 있었던 생명체가 사라진 것이라고 봐요. 예전에는 그 공간을 좋아했던, 감성을 가진 서강대 학우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학우들이 사라진 거죠. 다른 어딘가로 이주를 해야 하는데, 힘이 들고 점점 캐릭터를 잃어가는 거죠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비단 그 장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삶의 공간에 서서, 의미 바라보기

 

앞서 언급했던 살아 숨 쉬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제이콥스의 제안은 주류 도시계획의 거창한 설계도와는 거리가 멀다. 그녀의 지적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사회는 그저 생존 터전만의 공간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감정을 느끼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으며 자아를 실현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연결되는 부분으로, 예술과 문화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의 확대는 앞으로도 중요한 사안이 될 것이다. 숨의 공간이라고도 불리는 <숨도>를 주목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거와 같이 미술관, 영화관, 강연장 등의 관습적 범주가 아니라 서로 복합성을 갖춘 공간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도시 속에서 비교적 높은 접근성, 그리고 다양한 전시와 공연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다. 일방향으로 만들어지던 도시 속 공간과 달리, 지역 구성원이 함께 향유하는 공간으로의 공공성을 가진다. 교류를 통해 특정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예술 아카이브를 축적하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자신만의 공간에 대해 재구성해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이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의 흐름을 읽어낸다.

 

들판에는 여기저기 불이 타고 있다. 어떤 불은 크고 어떤 불은 작다. 어떤 불은 멀리 떨어져 있고, 어떤 불은 가까이에 점점이 붙어 있다. 어떤 불은 밝게 빛나고 어떤 불은 서서히 꺼져 간다. 크든 작든 간에 각각의 불은 주변의 암흑에 빛을 퍼뜨리며, 이런 식으로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중에서

 

 

제이콥스는 도시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다양한 인간 활동이라 말하고 있다. 빛이 만들어 내는 공간과 공간의 모양은 불에서 나오는 빛이 그것을 만들어 내는 정도만큼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암흑에 형태 및 구조를 부여하는 유일한 길은 암흑 속에 새로 불을 붙이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불을 더 키우는 것뿐이다. 도시의 경우, 다양성과 복잡성을 장려하고 활기를 이끌어 내는 것만이 도시의 암흑에 빛을 비추고, 그곳을 존재하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의미를 고민하지 않고 발전해왔던 도시, 그 결과 생겨난 삭막한 무질서와 공허함에 대해 되짚어 보자. 나에게 도시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인가. 그리고 다음 질문에 답해보면 어떨지. 그 공간 속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추구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