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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40호] 공익변호사로서의 삶의 의미_이일(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공익변호사로서의 삶의 의미

 

 

이일 _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월요일 아침. 기상한다. 어젯밤 재판기일이 임박하여 밀린 서면을 쓰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했지만 오늘의 일정은 소화해야한다. 씻고 나와 간단히 요기한 후 첫째 딸을 유치원 버스에 안전하게 태워서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인사하여 보낸다. 시간을 체크하고 시내버스에 탄다. 다행히 종점 부근에서 출발해서 보통은 의자를 찾아 앉을 수 있다. 의자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은 1시간여의 출근시간 동안 문서작업들을 추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와이브로 에그를 켜서 노트북이 와이파이 신호를 잡을 수 있게 한 후 지난밤 국내외에서 온 메일들 중 시급히 답해야 할 것을 답한다. 영어로 답하는 것에는 아직도 시간이 좀 필요하므로 급히 답할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한편 카톡과 왓츠앱 메신저 - 주로 외국인들이 사용한다 - 를 통해 연락이 온 구글 번역기를 통해 번역된 한국어, 영어 메시지, 아랍어 메시지도 함께 확인한다. 현재의 제도상 해결방안은 별로 없는데도 도움이 필요한 난민들은 여전히 많다. 우선 일들이 너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게 한 후 가능한 한 가지 정도의 문서작업을 택한 후 작업을 완료한다. 주로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A4 용지 1-2장 정도의 출입국관리 사무소에 보내는 의견서나 공문과 같은 것이다. 난민을 구금하지 말라고, 체류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출국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주로 그런 내용들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외국인들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 가면 한없이 작아지고, 그 앞에서 공무원들의 권력은 너무나 무서워진다. 공무원들은 그들을 구금하고, 쫓아낸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미리 연락을 받고 온 통역선생님과 함께 새로운 난민 분을 상담한다. 기존의 여러 처분서나 서류들을 검토하고, 억울한 사정과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야기를 자세히 듣는다. ‘지금 어느 단계죠?’ 다행이다. 이의신청단계라서 아직 난민위원회에서 승부를 걸어볼 여지가 있다. 지금 난민사건에 대한 제도가 많이 꼬여서 1차 심사부터 법원 단계까지 문제가 많고, 특히 실제로 돌아갈 경우 박해가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를 확인받고 난민으로 보호받는 것이 소송단계에서는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에 가능하면 어떻게든 소송 전에 승부를 보아야 한다. 난민 분으로부터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받지만 그래도 마음이무겁다. 이분에게는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나는 과연 잘 도울 수 있을까. 그래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웃는 얼굴로 또 보자고 인사한다. 내가 저 난민분의 지금 남은유일한 기댈 곳이므로 더욱 쾌활하게.

세월호의 상흔이 아직도 가실 수 없는 한국에서 조심스러운 비유이지만 한국에서 난민들을 옹호하는 활동가, 변호사들의 삶은 사실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는 승객들에게 구명조끼와 튜브를 던져서 뭍에까지 나오도록하는 것과 비슷하다. 배가 침몰하지 못하도록, 전쟁이 멈추도록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안전하게 구조되는 것을 바라는 것도 불가능하다. 해안가까지 행운을 따라 겨우 구조된 난민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다음의 삶은 막막하다. 인간의 삶은 난민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난민 이전에 인간이 있고, 꿈이 있으며, 미래가 있다. 그러나 여러 물리적, 법리적 어려움, 사회적 편견을 뚫고 활동가들은 결국 실패가 더 많은 구조를, 그 만큼 가슴 아픈 구조를 감행한다. 더없이 기쁘고 행복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가슴 아프고, 눈물을 보며, 고통스러운 때도 많다.

나는 이제 변호사로서 8년 차,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만 5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보통 사법연수원 수료 후 장교로서 근무하는 군법무관 경력도 합치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공익법센터 어필은 5가지 취약한 외국인들 즉, 난민, 구금된 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 무국적자, 해외한국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조력하는 비영리 공익변호사 단체다. 5명의 변호사와 주로 대학생 인턴들이 함께 일한다. 다행히도 지금은 다양한 영역에서 공익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여러 단체들이 많이 생겨나서 그 인식이 조금은 바뀌고 있지만, 어필이 처음 생겨났을 때에는 단체의 설립 자체가 모험이었던 것으로 안다. 변호사가 -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정의, 양심과는 거리가 먼 직업과 같아 보이는 직종 중 하나인 변호사가 - 후원을 받으면서 비영리 법인을 세워 전적으로 공익활동,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다니.

이미 결혼을 하고, 어엿한 성인으로서 내 삶의 미래를 설계하고 결정할 수 있었던 나로서도 처음에 어필에서 공익변호사로서 삶을 시작하겠다고 하였을 때 부모님께 말씀을 아예 안 드릴 수는 없었는데, 부모님께서도 많이 걱정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판사도 할 수 있는데, 큰 로펌에 가서 돈도 벌수 있을 텐데, 네 꿈이 그렇다면 지지해줄 수도 있지만 몇 년만 법원에서 일하다가오면 안 되겠니?’부모님의 그 마음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조차도, 아무런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는 삶을 기꺼이 선택하는 것에 적잖은 고민이 있었다. ‘나 혼자라면 괜찮은데 가족들까지 잘 책임질 수 있을까’, ‘몇 년 동안은 괜찮지만, 내가 이 일을 평생 동안 변함없는 열정으로 할 수는 있는 것일까’. 결국 30대 초반에 나는 모험을 택하기로 마음먹어 어필에서 공익변호사로 삶을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먼 미래가 어떨지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앞에 놓인 과제들, 그리고 난민들 - 인간들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다. 현재까지는 단 한차례의 후회도 없다.

5년 전 선택의 기로에서 내렸던 나의 결심의 근거는 이렇다. 단 한번 살게 될 인생에서, 마지막에 후회할 일들로 시간을 채우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살고 약간의 여가시간의 의미 있는 활동들로 부족함을 채우기 보다는, 매일을 채워갈 직업이 의미있는 활동들이 되면 더욱 좋겠다. 비즈니스 변호사로서 큰 기업을 변호하는 것은 왠지 나에게 맞지 않고, 판사로서의 삶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편을 들어주는 적극적 활동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당시에 내가 찾을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전적으로 소수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돕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주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안정된 미래를 포기한 것에 대한 걱정, 경제적 여건에 대한 걱정들로 염려를 해주었고, 실제로 선택하기 이전에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당시의 염려는 지금 보면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다고 확신한다. 걸음을 내딛기 전까지는 엄청난 것인 것 같았지만 막상 내딛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허상들이었다.

한국의 난민단체들의 연대체에서 대표로 일하며 정부와 줄다리기를 하기도 하고, 공항난민신청과 관련된 소송들에서 선례 없는 판시들을 받아내 제도를 바꾸기도 하고, 무엇보다 실패하고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 많은 난민들을 풀려나게 하고, 보호받게 하고 쫓겨내지 않게 도울 수 있었다. 더 크게는 서로 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한국사회의 구성원들로 어울러져 자신의 행복과 평화를 찾아갈 것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내가 신기루를 걷어내는 모험 없이 이런 삶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해 나는 쉽게 결론을 내리거나, 누군가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경지에 아직 전혀 도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나의 삶, 함께 일하는 공익법센터 어필 동료들의 삶, 그리고 비슷한 선택들로 한국사회 곳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는 삶을 선택한 선후배 공익변호사의 삶들을 볼 때 분명하게 확신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인간의 삶의 의미는 나를 가꾸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의 삶을 가꿀 수 있도록 도울 때 분명하게 발견되고, 훨씬 더 풍요로워 진다는 것이다. 이웃을 잃고 개인에게 집중하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고도의 속임수다. ‘자신을 다듬고, 더많은 스펙을 가꿔서 기업이 찾을 멋진 상품이 되게 하라라는 메시지는 모두가 도달할 수도 없고,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거짓이다. 나의 행복은 붕괴된 사회 속 꾸며진 나를 거울 속에서 보는 나르시시즘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둘째, 거짓된 메시지의 거짓성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믿고 선택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더 많은 노력을 하고, 더 많은 스펙을 쌓고, 높은 연봉의 직장을 찾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전적으로 허구인데, 자본주의 사회가 조직하고, 인간의 인생에 대한 불안, 그리고 기댈 공동체와 사회적 가치가 붕괴되어 모든 책임을 오롯이 자신이 져야만 하는 상황이 함께 만들어 낸 허구다. 인간의 삶의 의미는 결코 그와 같은 곳에서 발견되지 않는데, 그 사실의 허구성은 균열을 내듯 도전하여 메시지를 비웃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공익변호사로서의 삶이 주는 도전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세상 속 부정의에 분명한 균열을 내고 있고 그 균열이 만들어내는 작지만 분명한 정의와 평화를 목격하고 있다. 누구나 그와 같은 경험을 각자의 인생이 조직되어 온 맥락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 3년간 한국사회는 줄기차게 노래를 불러왔고 빛이 가져다준 승리를 한국사회 전체가 집단적으로 목격해오고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이것은 개인의 삶에서나 사회 전체로서나 낭만적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다. 단지 빛에 대한 신뢰를 선택한 사람들만이 더욱 분명히 그 진리성을 깨닫게 되는 사실 말이다. 빛에 대해서 눈을 뜨지 않으면 주변에 어둠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공익법센터 어필은 난민, 구금된 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 무국적자, 해외한국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며 정의와 평화가 이뤄지는 세상에 대한 꿈을 꾸는 비영리 공익 변호사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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