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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글

[140호] 무의미의 축제

 

 

하나. 대학원 수업 중이었습니다. 학생부모’(아이를 둔 대학원생)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유치원생 아들이 치마를 입어도 되냐고 물어봤어요.” 마침 그 수업은 여성학 수업이었습니다. 그 학생 부모는 질문을 받고, “그래도 된다고 쉽게 대답할 수 없던 자신이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했습니다. 남자인 아이가 치마를 입고 유치원에 갔을 때,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고 했습니다. 배움과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 어쩐지 저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고향집에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곧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와 읽고 있던 책을 덮었습니다. 밀란 쿤데라 장편소설무의미의 축제. 마침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던 차였습니다.

 

다르델로,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중략)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중략)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 “꼭 의미가 있어야 하나?” 세상은 자꾸만 무언가 의미있는 것들을 해내라고 강요하고, 무언가에 의미부여하길 강조하며, 또 그를 해내기 위한최선의 노오력을 쏟아내길 강요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의미들이 각자가 부여한 의미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내고 강요한 의미들일 때가 있습니다(아니 많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모두가 이 의미들을 따라가야 하는 걸까요?

 

 

이번 신문 140호의 기획에 대한 단상들은 많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삶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서 묻고 생각해보는 시간이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여전히, 세상이 요구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통해서 모두의 의미가 다 의미가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모두 다 의미 있기에- 오히려 무의미한 세상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무의미해야만 누구에게도 의미를 강요하지 않을것 같아서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내가 배운 대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요?” 이번 140호는 이 질문으로 시작해서 이 질문으로 끝을 내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140호에 실린 필진에게 던진 질문이고, 두 번째는 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부디 이 신문이 여러분에게도 삶의 의미에 대해 묻고,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래어봅니다.

 

 

편집장 신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