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09

해결하지 않는다. 함께 헤맬 뿐이다.

 

장현정_ 사회학자, 도서출판 호밀밭 대표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약 10년 정도 록 밴드 활동을 했다. 음악을 그만둔 뒤로 어쩌다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문화연구, 철학, 미학 같은 학문도 기웃거렸지만 늘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딴따라라고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어떤 쪽이든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보다 자유롭고 엉망진창(?)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나에게 학문이나 일은 낮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고 딴따라나 삶은 밤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 work-life balance'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낮과 밤도 균형을 이루면 좋은데 우리들 대부분은 밤에도 환하게 형광등을 밝혀놓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삶의 영역에서 밤을 밀어내 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낮의 영역에서는 물론 답이 아주 중요하고, 그 답은 숫자 하나만 틀려도 사람이 죽거나 건물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라 아주 엄밀해야 했다. 하지만 밤의 영역에서는 반대로 답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밤의 영역에서는 답이 처음부터 없거나 혹은 아주 많은 답이 가능했다. 그리고 나는 밤을 더 사랑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키우면서 삶 자체가 우리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부여하는 엄중함도 경험했다. 나날이 늙어가는 부모와 나날이 커가는 아이들의 중간에 끼어서, 아마도 나에게 삶의 엄중함은 앞으로 더욱 크고 무겁게 다가올 것이다. 삶의 엄중함이란 내가 나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내 직업이 무엇이고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따위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자연처럼 냉정하고 차분하게 다가오고 흘러갈 뿐이었다. 그렇게 낮과 밤이 혼재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렴풋이 어떤 깨달음 같은 걸 하나 얻게 되었다. 그것은 눈이나 뇌로 확인하고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라서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느낌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쓰게 함으로써 우리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아 마침내 고요한 삶으로 이끄는 요가처럼, 나 역시 어떤 이데올로기에 마취돼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고 다그치지 않았나 하는 서늘한 느낌.

요컨대, 시시각각 세계가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며 삶을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답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지만,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히 삶을 긍정하고 이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지만 자신의 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소수다. 돈을 벌기 위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 사람 자체가 좋아서 만나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어서라면 사랑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새로운 걸 알게 될 때마다 가슴 설레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충만함을 느끼는 공부가 아니라 그저 좋은 대학에 가거나 출세를 위해 하는 공부라면 그런 공부가 사랑스러울 리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비쩍비쩍 말라갈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어려운 이치도 아닌데 왜 진즉 깨닫지 못했을까 싶다.

도구화된 것들, 지금 여기 내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늘 그 다음, 혹은 미래의 어떤 답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삶이란 우리를 우리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언젠가부터 인문학이 유행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에 단 하나의 답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아주 수많은 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이에서 기쁘게 헤맬 수 있는 용기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인문학에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도 오직 그것뿐이다. 단 하나의 답을 가진 사람이 모두를 향해 일방적으로 떠드는 독백 (mono-logue)’ 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답이며 그렇게 다양한 답 사이를 관통하고 가로지르며 서로가 기쁘게 헤맬 수 있는 이른바 대화 (dia-logue)' 의 세계로 향하기 위함이다. 주어진 틀에서 끊임없이 일탈하며 적극적이고 나아가 공격적으로 헤매되 각각의 악기가 모두 답이고 서로 소리를 주고받으며 무대 위에서의 한순간 한순간에 집중하는 록 음악처럼 말이다.

학자든 예술가든 기업가든, 자신의 일을 그 무언가를 위한 도구로 삼지 않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교수가 되기 위해공부하는 삶, 명성을 얻고 유명해지기 위해만든 작품, 돈을 벌기 위해하는 사업..... 이런 삶들은 가치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다지 인문학적인 삶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혼자 있는 시간에 더 바랄 것 없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그 무엇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우선 살아있다. 우선 살아있고, 그렇게 살아있는 자신을 의식하면서 시시각각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곱씹는다. 이들에게 삶이란, 주어진 규칙에 따라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이나 해답을 찾아야하는 시험 같은 게 아니다. 놀이다. 놀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거두지 않고 묻는다. 묻고 헤매고 기분 좋게 갈팡질팡한다. 묻고 헤매고 기분 좋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삶의 근육과 뼈가 단단해지지만 그 자신은 그러거나 말거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것을 위해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 시험에서 주어진 답은 하나일 테지만 학교 바깥에서 그런 일은 거의 없다. 하늘이나 바다, 일출이나 노을, 혹은 아이들의 웃음이나 어르신들의 주름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보고 모두 똑같은 느낌을 받거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독재나 폭력은 특별한 개념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일상적인 말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모두가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생각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게 독재고 폭력이다. ()인문학적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몸에 밴 습관이나 익숙한 사고방식이란 얼마나 완강한가. 요즘 인문학이 유행하니 이런저런 기관에서 가끔 특강을 할 기회가 있는데, 그럴 때 자주 받는 질문들도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해서 얻는 게 무엇인가요?”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꼭 이런 인문학 같은 것이 필요한가요?”

시간이 별로 없는데 인문학을 빠르게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사실 나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처럼 들린다. 밤에 어울리지 않는, ()인문학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질문이라기보다 독백이기 때문이다. 질문이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답이 있는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 자신의 필요나 입장만 중심에 놓고 도구화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라는 말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많이 오염됐기도 했지만 사실 검도를 배우든, 야구를 배우든, 최소한 나름의 분야마다 기본적인 태도와 룰은 있는 법이다. 답을 찾으려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돈을 벌겠다고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보고 있는 것처럼 뭔가 어긋나 있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살아간다. 모놀로그의 삶 말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다이얼로그의 삶에 관한 것임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자기 안의 욕망을 자기증식 시키다가 마침내 자멸을 향해 나아가는 폭탄 같은 삶은, 인문학적 삶과는 상극이다. 몇 줄 좋은 문장을 읽는다고 삶에 윤기가 돌 수는 없는 일이다. 먼저 삶 자체를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어릴 때 록 음악을 사랑했던 이유는 음악 자체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그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태도가 멋있어보였기 때문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록 음악과는 별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스스로 딴따라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역시 바로 그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니저러니 떠드는 것처럼 우리에게 실제로 무슨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 역시 그저 가장 자기다운 삶을 살고 싶고, 혼자 있는 시간에 충만하고 싶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태도일 뿐이다. 삶을 제대로 살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삶은 여행 같은 것이라고들 말한다. 좋은 표현이지만 어떤 여행을 말하는 건지 가끔 궁금할 때도 있다. 여행은 일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빠듯하게 일정을 짜고 사진촬영을 끝내면 또 바쁘게 동선에 따라 이동하는 식의 여행이라면 그것은 이미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라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때의 여행은 삶을 위한 것, 질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욕망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일에 불과하다. 진정한 여행은 나름 준비를 하더라도 결국은 가서 헤매고, 헤매는 과정에서 한 뼘쯤 기존의 자신을 넘어서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삶이 여행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과연 목적지가 어디가 될지, 오늘 하루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시시각각 긴장하고 또 그래서 한편으로는 설레는, 말 그대로의 여행에 가까운 걸까 아니면 스테이지마다 정해진 미션들을 수행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출장 같은 여행에 가까운 걸까.

나 스스로는 여전히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생각이나 습관도 10대 후반의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어느새 나이를 먹어 가족, 학생들, 직원들 등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압축적 성장을 비롯해 여러 중층적 이유로 구조적 모순이나 불평등도 심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한방에 무언가가 해결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런 세상은 역사 속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안 올 것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정답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찧고 까부는 딴따라의 심정으로 더욱 자주 이렇게 되새겨본다.

해결하지 않는다. 함께 헤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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