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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53호]코로나로 더욱 부각되는 택배노동자 살인적 노동실태: 근본적 대책 마련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촉구한다_김진일

전국 택배연대 노동조합 로고

“코로나 속 국가의 재발견, 그게 슈퍼여당 만들었다” 여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의석을 차지한 결과에 대해 모 일간지는 이렇게 평가했다.

전세계가 코로나로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K-방역”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정부는 대처를 잘해왔다. 그렇기에 여전히 확진자가 나오며 불안감이 있지만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치룰 수 있었고, 이에 국민들은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바야흐로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져 나가는 정부의 역할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김 진 일

자본의 횡포를 막아줄 보호막이 절실했던 택배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용을 줄이려는 자본의 요구로 등장했다. 재벌들이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교체할 때 택배회사들은 더 악랄한 '꼼수'를 찾아냈으니, 바로 택배노동자를 '사장님'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택배회사 입장에서는 고정급 없이 배송하는 만큼 돈을 주고, 4대 보험 안 들어줘도 되고, 배송에 필요한 차량, 보험료, 유류비, 사고로 인한 비용 모두 택배노동자에게 떠넘겨도 되니 너무나 매력적인 '발명품'이었을 거다. 그러나 일 시킬 때는 직원처럼 부리다 책임질 일이 생기면 개인사업자라며 나몰라라하니 택배노동자에겐 '날벼락'과 같은 상황이었다. 

 

또한 택배회사는 택배노동자와의 직접계약을 함으로써 그나마 져야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중간에 위탁대리점을 끼어 넣었다(택배회사-위탁대리점-택배노동자). 일방적 계약해지(해고) 등 문제가 발생하면 대리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 대신 위탁대리점장들의 수많은 갑질을 눈감아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택배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면서 하청에 재하청 구조에 놓이게 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부도 '노동자가 아니다'는 이유로 자본의 횡포에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니 어떤 개인사업자가 아프거나 다쳐도 쉬지 못하고, 상시적인 해고위협에 시달린다는 말인가...

매년 꼬박꼬박 부가세, 소득세를 내며 납세의 의무를 지는데 택배노동자는 어떤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니 분노스러울 뿐이다. 

 

그나마 문재인정부가 2017년 11월 3일 “노동자 스스로 노동조합을 통해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설립필증을 발부함에 따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장시간 노동개선 등 택배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지만 택배시장 점유율이 과반에 육박하는 CJ대한통운은 2년이 넘도록 거부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이어 지난해 11월 사법부도 “택배기사는 노동자가 맞다”고 판결했지만, CJ대한통운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감염위협에 시달리며 넘치는 물량 때문에 결국 과로사까지

 

이렇게 교섭을 미루는 동안 택배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졌고, 군대에서 갓 제대한 청년노동자가 감전사하는 등 2018년 한해에만 CJ대한통운 허브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세 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택배노동자 장시간노동이다. 

2017년 서울노동권익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4시간이다. 5일제로 하루 8시간씩 근무하는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34시간 그러니까 4일 정도를 더 일하고, 수년째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우체국 집배원보다 매주 18시간이나 오래 근무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에 들어서며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온라인주문이 급증함에 따라 택배물량이 폭증함에 따라 택배노동자는 살인적 노동으로 고통 받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재택근무를 하며 코로나를 피해가고 있는데, 택배노동자는 감염위협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장시간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위협에도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5월 4일 광주에서 일하던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가 갑자기 쓰러진 후 결국 숨을 거두었다.

10년 택배일을 하며 처음으로 가족과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날, 사랑하는 어린 두 아이와 아내를 남겨 둔 채 마흔 한살 젊은 나이의 가장이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2월부터 4월 내내 1만개(하루 평균 400개)가 넘는 물량을 소화하며, 결국 과로사로 쓰러진 것이다. 지난 3월 쿠팡 배송노동자가 과로사로 사망한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출처: 한국경제 신문

배송물량을 줄이면 되는거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기가 맡은 구역에 떨어진 물량은 무조건 소화해야 하기에 택배노동자는 그럴 수 없다.

 

택배노동자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하루 쉬는 것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결국 배송수수료의 두 배 가까운 금액을 주고 대신 배송할 사람을 구해야 하기에, 배송하다 다쳐서 깁스를 한 상태에서도 일을 쉴 수가 없다. 

그런데, 힘들다고 배송물량을 줄인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배송물량이 증가함에 따라 수입도 늘어나겠지만,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K-방역으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 것처럼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절실하다

 

그나마 지난 4월 13일 국토부가 “코로나19 대응 택배종사자 안전·처우 개선 보호조치”를 내놓았지만, 이는 재벌 택배회사들 눈치를 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조치였다. 이때 제대로 된 보호조치를 발표하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더라면, 고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나 원통할 따름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택배회사가 책임회피에 나서며 택배 현장이 죽음의 현장이 되지 않도록, 택배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쓰러지지 않도록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세계적 흐름도 특수고용노동자를 보호하고 원청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먼저 미국은 이미 “공동사용자 개념”을 도입하여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교섭을 통해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15년 8월 27일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한국으로 따지면 중앙노동위원회)가 하청업체로부터 노동자를 파견받아 창고관리를 시킨 브라우닝페리스에 대한 하청업체 노동자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였다.

하청이 노무관리를 해도 원청이 작업과정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했다면 원청도 ‘공동사용자’라고 판결한 것이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의 법적 지위와 사회보장을 둘러싼 논의가 수년 전부터 활발히 진행되며, 어느 정도 진척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이탈리아다. 지난해 5월 이탈리아 라치오주는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와 플랫폼 업체의 책임을 명시했다. 해당 법률은 △업무 관련 재해나 질병 발생 시 노동자 보호 △안전교육 강화 △플랫폼 업체가 책임 보험 및 운송수단 유지 비용 지불 △사회보장제도 적용 △단체협상을 통한 기본급과 성과급 산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노동절에 “노동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노동존중 사회’는 우리 정부의 핵심 국정기조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말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가 택배노동자를 비롯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 증진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코로나에 맞서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한 것처럼, 노동문제에서도 획기적 전환이 만들어지도록 적극적 역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출처: 더스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