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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5호] <블랙미러: 밴더스내치(2018)> 선택이 있었는데 없어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김희주

 

 

(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1031407001&code=960100)

최근 넷플릭스는 재미있는 시도 중이다. 각 콘텐츠에서 이용자가 스토리에 개입해 자신의 선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바로 그것이다. 넷플릭스는 현재까지 10개의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공개하였는데, 이 글에서는 그중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블랙미러>의 한 에피소드로, 시리즈 중 유일하게 인터랙티브 콘텐츠 형식으로 제작되었으며 2019년도 에미상 최우수 TV 영화 부문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선택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침 식사로 어떤 시리얼을 먹을 것인지, 버스에서 어떤 음악을 들을 것인지와 같은 선택을 하면서 이용자는 이러한 인터랙티브 방식에 적응하게 된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이용자는 더 중요하고, 심오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입사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동료가 권하는 마약을 복용할 것인지, 아버지를 죽일 것인지, 죽인다면 시체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와 같은 다소 거북하고 피하고 싶은 선택마저 반드시 해야만 한다. 매 선택은 앞으로의 이야기에 영향을 주며, 선택에 따라 결말도 달라진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게임 제작자인 스테판과 그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렸을 때 자신의 인형을 숨긴 아버지와 그 인형을 찾느라 어머니의 기차 시간을 바꾸게 한 자신 때문에 어머니를 기차 사고로 잃은 트라우마가 있는 스테판은 아버지를 증오하며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헤인즈 박사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 한편 스테판은 독자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책인 밴더스내치를 원작으로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데, 처음으로 출근한 게임 제작사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제작자인 콜린을 만난다. 이후 스테판은 게임을 제작해 나갈수록 자신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환각에 시달리고, 여러 악몽을 꾸며 정신이 피폐해져 간다. 이러한 기본 스토리를 바탕으로 이용자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여러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공식적인 결말은 5개이지만 약간씩 다른 매우 많은 결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는 때때로 자신이 정말 선택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선택 분기가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약을 버린다약을 변기에 버린다처럼 사실은 같은 것을 물어보는 선택지가 등장하거나, 양쪽 선택지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도 결국 같은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 이러한 선택지가 계속해서 등장하다 보니 이용자 입장에서는 선택에 있어서 몰입도와 흥미가 저하되고 선택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른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선택만 해라)식의 전개 또한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특정 선택의 경우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명시적으로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아주 허무한 결말을 보여준 후 처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리고 하나의 결말을 보더라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지 않고 이전 선택지부터 다시 선택할 것을 유도하기 때문에, 결국 이용자들은 제작자가 의도한 결말을 모두 볼 때까지 영상을 반복적으로 시청하게 된다.

이러한 반복 시청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매 분기의 선택이 스토리를 미세하게 달라지게 하기 때문에 다른 결말을 보기 위해서는 한참 전의 선택으로 돌아가서 그 시점부터 다시 시청하며 다시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똑같은 것을 다시 볼 때마다 드는 피로감이 상당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작품 내내 악몽에 시달리는 스테판과 모든 엔딩을 볼 때까지 이 영화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이용자가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스토리 상 많은 아쉬움이 눈에 띄었다. 물론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인 만큼 기술적 한계가 수반되었겠지만, 선택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스토리 탓에 결론적으로 이용자가 맞이하는 결말과 상관없는 너무 많은 장치를 심어 놓았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장치를 위해 너무 많은 내용을 스테판의 꿈으로 처리해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구조가 특히 아쉬운 점이었다.

 

결국 이 작품의 주제는 작품 속 스테판이 자신의 게임에 대해 설명하는 대사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게이머에게 너무 많은 선택지를 주려고 했었다. 그 가지를 모두 잘라냈다. 게이머들은 자유 의지가 있는 줄 알지만, 결국 엔딩은 내가 정한 대로다. 다양한 결말을 위해 뿌려진 장치들이 이 주제를 중심으로 수렴되는데, 평행세계를 논하던 콜린의 대사 자유 의지가 있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미로에 갇혀 있어, 그리고 스스로가 자유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으며 자신의 삶 전체가 어떤 단체의 조종 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스테판의 망상과도 부합되는 주제의식이다.

 

이용자가 직접 개입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작품의 주제가 결국 자유의지에 대한 부정이라니, 역설적이게 느껴진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스테판이 제작한 게임이 성공적으로 발매되는 결말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스테판의 게임을 넷플릭스 콘텐츠로 리메이크하려는 한 제작자는 스테판의 게임이 매우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고 이해하며 뉴미디어의 자유도를 언급하지만, 그 역시 제작 중 스테판과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를 상실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미디어가 주는 자유의지에 대한 환상마저 거짓이었으며 우리 모두는 미디어에 의해 정해진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결말이었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블랙미러> 시리즈를 관통하는 전체적인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데, <블랙미러> 또한 넷플릭스라는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시리즈임에도 늘 미디어와 기술 발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주제를 다뤄왔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블랙미러: 밴더스내치>가 이처럼 역설적인 메시지를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전달한 것은 그 자체로 이용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줌과 동시에 주제 자체를 직접 경험하게 하는 효과적인 시도였다.

 

결국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선택에 집착하며 좋은 결말을 보기 위해 매 분기로 돌아가 선택을 바꿔가며 반복하는 순간 이용자는 선택의 미로에 빠지게 된다. 마치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선택 때문에 고통받으며 자유도가 높은 게임 밴더스내치에 집착하는 스테판처럼, 원하는 결말을 보기 위해 아무리 되돌아가서 다시 선택을 할지라도 이용자는 결국 자유의지를 상실한 것 같은 씁쓸함을 맛보게 될 뿐이다.